예술가들의 우정이 만들어낸 결과물

정혜미

크리스찬 루부탱과 메종 마르지엘라. 전설적인 두 브랜드가 함께 조형한 환상적인 세계가 지금 펼쳐집니다.

40년 전, 크리스찬 루부탱과 존 갈리아노는 파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런던을 떠나 막 파리에 도착한 갈리아노는 세인트 마틴 졸업 작품 포트폴리오를 들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었고, 루부탱은 발레단 백스테이지에서 신발을 손보며 힐과 아치의 균형을 연구하고 있었죠. 두 사람은 몽마르트르의 작은 카페에서 종종 마주쳤는데요. 당시 갈리아노는 마치 천이 중력을 거스르듯 흐르는 실루엣을 고민하고 있었고, 루부탱은 슈즈가 단순히 장식이 아닌 몸을 지탱하는 무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연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는데요. 갈리아노가 개인 고객을 위해 맞춤 드레스를 디자인하면, 루부탱은 거기에 어울리는 슈즈를 제작하곤 했죠. 하지만 협업은 늘 단발성에 그쳤고, 하나의 체계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2023년 메종 마르지엘라의 초대

2023년 메종 마르지엘라의 초대가 전환점이 됩니다. 루부탱이 처음으로 협업 디자이너로서 브랜드의 창작 과정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2024년 1월 파리 알렉산드르 3세 다리 아래의 긴 회랑에서 갈리아노의 극적인 디자인과 루부탱의 시그너처 슈즈가 하나가 되어 업계의 상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슈즈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두 개의 독립된 캡슐 시리즈로 파생되죠.

1. Maison Margiela by Christian Louboutin
• 마르지엘라의 아이코닉한 Tabi(타비) 슈즈를 기반으로 루부탱의 유려한 곡선과 빛을 활용한 디자인의 슈즈.
• 기존의 분리형 토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전혀 다른 여성스러운 곡선미를 보여줍니다.
2. Christian Louboutin by Maison Margiela
• 루부탱의 클래식한 하이힐을 해체하고 마르지엘라 특유의 방식으로 다시 조립했습니다.
• 슈즈의 아웃솔에 새겨진 코드, 노출된 뼈대, 테이핑된 흔적들이 새로운 디자인 언어로 자리 잡았죠.

파리의 작은 카페에서 패션과 구조에 대해 끝없이 토론하던 두 사람. 이제 그들의 대화는 한 시대를 정의할 새로운 디자인 언어로 완성됩니다. 각자의 창의성과 예술적 대화를 통해 완성한 첫 번째 캡슐 슈즈 컬렉션으로 말이죠. 그들의 독보적인 장인 정신과 디자인이 융합된 슈즈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크리스찬 루부탱과 나눈 대화

이번 협업은 어떻게 시작 되었나요?

Christian Louboutin(이하 ‘C’) 모든 일은 아주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요. 평범한 어느 오후, 저는 존 갈리아노와 만나 파리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죠.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 그가 갑자기 이렇게 묻더군요. “우리 함께 뭔가 해보는 건 어때요?” 저 역시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그에게 물었죠. “물론이죠. 어떤 걸요?” 그가 답했죠. “예를 들면, 협업 같은 거요?”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를 승낙했죠. 아마 조금 놀랐을 거예요. 왜냐면 너무나도 간단하게 결정되었으니까요. 복잡한 기획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긴 회의나 협상 테이블에서 진행하는 논의도 아니었죠. 그냥 그 순간 서로의 생각이 맞닿았던 거죠. 저는 언제나 모든 좋은 협업은 신뢰에서 시작된다고 믿어요.

2024년 오트 쿠튀르 시즌, 이미 협업의 조짐이 보였어요. 첫 아이디어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2025년 S/S 컬렉션까지 발전하게 되었나요?

C 존 갈리아노의 생각은 단순했어요. 메종 마르지엘라의 슈즈에 더 여성적인 감성을 담아내는 것이었죠. 그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왜냐면 어떤 면에서 보면 그건 제가 늘 해오던 일이었으니까요. 슈즈를 섹시하게 만들되, 과장되거나 또 억지스럽지 않게. 그 부분을 하나의 숙제처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디자인 언어를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새로운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말이죠. 존 갈리아노는 해체와 레이어링을 통해 미를 표현하는 데 능숙했고, 저는 실루엣의 유려함과 신체와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디자인 방식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스타일을 탐구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균형이 생겼어요. 예상치 못하던 요소들도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나의 컬렉션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메종 마르지엘라와 크리스찬 루부탱, 두 브랜드 모두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죠. 각자의 특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두 브랜드의 DNA를 결합해 하나의 컬렉션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접근했나요?

C 우리는 협업의 방향을 아주 명확하게 설정했어요. 마르지엘라는 실루엣, 미니멀리즘, 해체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루부탱은 유려한 곡선과 미묘한 섹시함을 더하는 걸루요. 중요한 건 두 브랜드가 만났을 때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결합되는 거죠.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두말할 것 없이 ‘Tabi(타비)’였습니다. 존은 여성적인 슈즈를 선호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비는 상당히 중성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완전히 분해해 새로운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죠. 슈즈의 비율을 조정하고 발가락 분할을 다르게 적용했으며, 힐과 발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등 기존의 틀을 벗어나면서도 마르지엘라의 실험적인 정신과 크리스찬 루부탱의 극적인 감각을 동시에 담아낼 방법을 고민했죠.

이번 협업의 핵심 개념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영감의 원천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핵심은 상대방의 언어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래서 이번 협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뉩니다.

‘Maison Margiela by Christian Louboutin’ 마르지엘라의 아이코닉한 타비 부츠를 기반으로, 기존에는 없던 요소들을 더했습니다. 예를 들면 크리스털 장식처럼요. 덕분에 더욱 여성스럽고 무대적인 느낌이 강조되었죠.

‘Christian Louboutin by Maison Margiela’ 키워드는 ‘해체’입니다. 마르지엘라의 방식으로 제 슈즈를 다시 해체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죠. ‘Faux-Cul’ 굽과 같이 예상치 못한 구조를 적용하는 방식으루요. 이 디자인은 2024년 ‘Maison Margiela Artisanal’ 컬렉션에도 등장한 디자인의 일부죠.

‘Tabi’는 마르지엘라의 실험 정신을 상징하고, 레드솔 슈즈는 강렬한 존재감과 럭셔리, 여성성을 대표하죠. 이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C 타비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도전’입니다. 기존 슈즈 디자인의 ‘전형성’을 깨죠. 반면 레드솔은 절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존재감’을 갖고 있어요. 이 두 요소가 결합됐을 때 서로를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예를 들어 이번 타비 디자인에서는 발등의 커팅을 더 깊이 파서 발가락이 살짝 드러나도록 했어요. 아주 섹시한 디테일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노골적이진 않죠. 미묘한 균형감, ‘적절한 정도의 대담함’이 우리가 의도한 포인트예요.

협업 과정에는 언제나 조율이 따르죠. 특별히 의견이 엇갈렸던 부분이 있었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합니다.

C 가장 큰 차이는 컬러에 대한 접근 방식이었어요. 저는 짙은 레드나 강렬한 푸른색 같은 컬러로 감정을 표현하는 스타일이지만, 마르지엘라는 블랙, 화이트, 누드 같은 중성적인 색감을 중요하게 여기죠. 존은 슈즈의 실루엣과 소재가 주는 질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저는 컬러가 분위기를 결정한다고 봤어요. 결국 색을 걷어내고 해체적인 형태와 텍스처의 조합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합의했습니다. 이 부분은 제게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컬렉션이 탄생했습니다.

공예적인 요소는 두 브랜드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번 협업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C 모든 디테일을 다시 생각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 타비의 실루엣을 어떻게 하면 더 여성스럽게 만들 수 있을지, 슈즈의 앞면과 밑창 사이의 바느질을 어떻게 처리해야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을지,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거의 1년 가까이 샘플을 반복적으로 수정하면서 실험했어요.

현대 패션에서 젠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지만, 이번 컬렉션은 오히려 여성성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의도한 것인가요?

C 저는 우리가 여성성이 다시 돌아오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과거처럼 딱딱하고 정형화된, 특정 이미지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더 섬세하고 더 미묘합니다. 예를 들면 젠데이아 같은 사람이 그래요. 그녀는 아주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매력이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적이예요. 한 가지 모습에 얽매여 있지 않죠. 이번 협업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했어요. 여성성은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강할 수도 있고 부드러울 수도 있으며 과감할 수도 있고 또 미니멀할 수도 있다는 것, 그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협업을 돌아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C 아마도 우리가 정말로 이걸 해냈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마르지엘라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브랜드이고, 반면 크리스찬 루부탱은 화려하고 드라마틱함을 지향하는 브랜드입니니다. 사람들은 이 두 브랜드가 함께하는 걸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존은 그런 선입견을 깨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늘 열린 자세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죠. 그리고 그런 태도가 결국 이번 슈즈 컬렉션을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진짜 ‘대화’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컬렉션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줄 수 있나요?

C “창의성은 우정을 지속시키는 힘이다.”

사진
Courtesy of Christian Loubout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