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예술로 문 닫은 마이어 시대, 25 FW 질 샌더 컬렉션

명수진

JIL SANDER 2025 FW 컬렉션

듀오 디자이너 루크와 루시 마이어는 마지막 질 샌더 컬렉션이었다. 부부이기도 한 이들은 2017년 질 샌더에 합류하여 지난 8년 동안 레이블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개인적으로는 2세도 낳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들은 완성도 높은 남녀 통합 컬렉션을 만들어내고 박수 칠 때 떠나며 아름다운 작별을 고했다.

2025년 FW 시즌, 루크와 루시 마이어스 듀오는 ‘밝은 사랑의 은유(A bright metaphor of love)’를 테마로 밝은 컬러와 어두운 컬러, 가벼운 소재와 무거운 소재, 광택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상반된 것을 함께 배치할 때 생기는 미묘한 긴장감을 탐험했다. 이런 대조와 반전은 어쩌면 각각 슈프림과 디올 출신으로서 전혀 다른 감성과 감각을 절충하며 질 샌더를 차근차근 완성해낸 루크와 루시 마이어 듀오 디자이너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울, 벨벳, 실크, 레이스, 스팽글, 프린지, 레더, 퍼 등 수없이 다채로운 소재와 디테일이 믹스됐고, 핑크, 라일락, 그린 등 오묘한 음영을 준 컬러 팔레트가 미니멀한 스타일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별이 아쉬울 정도로 특히 이번 시즌에는 룩 하나하나 인상적인 것이 많았다. 전체에 리본을 장식한 아방가르드 한 A 라인 맥시 드레스, 치어리더의 수술 같은 블랙과 핑크 컬러의 원피스, 오묘한 블루 그린 컬러의 페이크 퍼 코트, 핸드메이드 알파카 소재의 니트웨어, 젠더리스하게 선보인 테일러드 재킷과 플리츠스커트 등이 마지막 기억을 아름답게 했다. 특히, 잔잔한 플라워 프린트에서 솔리드 블랙 컬러로 그러데이션 되는 실크 드레스, 코트 시리즈는 소장 가치가 있는 예술작품 같았다. 길게 늘여 트린 벨트와 스터드를 장식한 펌프스와 부츠로 은근슬쩍 펑키한 스트리트 감성을 드러낸 것도 흥미로웠다.

컬렉션이 끝난 후 질 샌더는 보도자료를 통해 듀오 디자이너의 협업이 종료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2021년 4월부터 질 샌더를 소유하고 있는 OTB 그룹의 렌조 로소 회장은 지난 8년 동안 질 샌더를 맡은 듀오 디자이너에 대해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루크와 루시 마이어 듀오는 조나단 앤더슨이 떠난 로에베로 갈 수도 있다는 소문이다. 아직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프로엔자 스쿨러 출신의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가 로에베와 협의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질 샌더 후임은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현재 발리의 디자이너인 시몬 벨로티(Simone Bellotti)가 유력하다고. 이로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 바람, 그야말로 격변의 ‘메리고라운드’ 게임에 합류한 이름이 하나 더 늘었다.

영상
Courtesy of Jil S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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