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
어릴 적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왜 뜨겁게 발산되지 못한 채 그토록 입술에서 맴돌기만 했을까? 첫사랑의 상처나 쓰라림보다는 청춘들의 싱그러운 시절에 빛을 비추는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진영과 다현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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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orea> 저는 이 작품의 제목이 좋아요. 대만 원작의 제목은 <You Are The Apple of My Eye>이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쪽이 더 향수를 담고 있고 문학적인 느낌이거든요. 2월 21일, 영화 개봉일이 곧 다가오네요. 최근까지 어떤 날들을 보냈어요?
진영 KBS <수상한 그녀> 방영이 얼마 전에 끝났어요. 그 전에는 대만에서 영화를 찍느라 2~3개월 머물렀고요. 그 작품도 참 좋아요, 재밌게 촬영했어요. 제가 대만의 감수성과 맞는 부분이 있나 봐요. <그 시절, 우리가 좋아 했던 소녀>도 그렇고 재밌게 본 대만 드라마도 많거든요.
다현 저는 1월이 휴가 기간이긴 했는데, 어제부터 새 드라마 촬영을 시작했어요. JTBC <러브 미>라고, 저는 작가를 꿈꾸는 출판사 직원으로 나와요. 휴가 기간 중간중간 드라마 준비하면서 감독님 미팅이나 의상 피팅도 했고, 우리 영화 OST 녹음도 하고 그랬어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2012년 국내 개봉한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한국 작품입니다. 진영 씨는 대만과 인연이 깊어지네요. 캐스팅 제의를 받기 전에도 원작 영화를 여러 번 본 상태였다고요?
진영 네, 아주 좋아하는 영화예요. 보통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슬퍼야 울죠? 저는 희한하게 애틋하기만 해도 눈물이 나요. 대만 원작을 보면서도 그랬어요. 친구들의 사랑이 애틋하고, 그 마음이 막 와닿으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다현 씨는 원작 영화에 대한 소감이 어때요?
다현 워낙 유명한 영화라 오래전에 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죠. 그런데 촬영을 준비하면서 일부러 다시 찾아보진 않았어요. 몇 년 전에 본 그 기억과 감정만 가지고 저만의 색깔이 있는 ‘선아’를 만들어가고 싶었거든요. 감독님도 원작을 참고하기보다 우리 대본에 집중해서 연기하면 좋겠다고 요청하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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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두 주인공, 진우와 선아는 어떤 인물이죠?
진영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아이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못하고 괜히 장난치거나 오히려 괴롭히는 경우가 있잖아요. 쑥스러워서 표현을 그렇게 하는 거겠죠. 진우가 딱 그 쑥스러움의 표본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에게는 진우의 그런 모습 자체가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이었어요.
다현 선아는 일단 모범생이에요. 맑고 순수하고, 질문할 때도 악의가 없이 단지 궁금해서 질문해요. 선아가 진우에게 ‘너는 왜 꿈이 없어?’라고 묻는 대목이 있어요. 추궁하듯이 의도를 가지고 묻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랬던 선아가 진우를 만나면서 인생 처음으로 일탈이라면 일탈을 하게 돼요. 모범생이 벌도 서고, 선생님께 대들어보기도 하고, 소나기를 맞으며 걷기도 하고. 그런 일탈에서 예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감정이 생겨나니까 결국 진우의 영향을 받은 거죠. 진우도 선아를 만나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니,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한 줄로 정리한 로그라인이 이렇습니다. ‘선아에게 고백하기까지 수많은 날을 보낸 철없던 진우의 열여덟 첫사랑 스토리.’ 전지적 시점의 관객 입장에서는 두 주인공의 마음이 어긋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답답할 때도 있어요. ‘나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싶기도 했나요?
진영 저라면 좋아한다고 제대로 고백했을 것 같아요. 기회는,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연기하면서도 ‘이럴 때 이런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을 해야 하는데’ 생각한 적이 제법 있어요. 진우의 캐릭터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다현 선아가 진우와 통화하면서 ‘연애의 시작이 설렘의 끝’이라고 언급해요. 좀 더 오랫동안 설레고 싶고, 몽글몽글한 감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 저는 이해 가거든요. 같이 길을 걷다가 선아가 ‘나 사실은 이렇게 안 좋은 면도 있는 사람인데, 그런데도 네가 날 정말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라’ 식의 말을 하는 장면도 있어요. 그 말에는 사실 ‘나도 너 좋아하는데’가 깔려 있겠죠? 그렇게 말을 빙빙 돌려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저는 너무나 공감해요. 서로의 마음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누가 먼저 고백을 했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도 애매할 수 있잖아요.
특히 어려웠다거나 신경 쓰인 촬영 장면이 있나요?
진영 우리가 싸우는 장면요. 진우가 자꾸 철없는 모습을 보이니 선아도 실망하죠. 그 상황에서 제가 혼자 소리도 지르는데, 그 장면이 진우나 선아 둘 다에게 의미가 크다고 봤어요.
다현 어, 저도 그 장면 말하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싸우는 감정 신인데 야외 촬영에다 비까지 내리는 설정이었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았어요. 그런 와중에 근처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창문을 내리고 ‘뭐야, 촬영인가 봐!’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죠. 영화에서는 단 몇 분이지만, 촬영 때는 몇 시간 동안 일정 감정을 유지해야 하니 쉽지 않더라고요.
진영 중요한 장면인데 사실 대사만 보면 유치해요. 감정이 깊어졌다고 해서 뭐 그럴싸한 말이 나오는 게 아니라 진우 입장에선 한마디로 ‘왜 내가 하고 싶은 거 무시해?’ 같은 거죠(웃음). 대본을 보면서 저는 유치해서 더 귀엽고 웃음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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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싸움이 원래 유치하잖아요. 대입 시험에서 실수한 선아가 막 훌쩍거리는 장면도 있죠? 다현 씨, 눈물이 금방 잘 나오던가요?
다현 선아는 자신이 공부 하나만 잘한다고 생각하는 친구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오랜 시간 가수로 무대 위에 서고 춤추기 위해 살았는데, 큰 부상을 당하거나 성대 결절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나 이제 뭐 하고 살아야 돼?’싶은 좌절감과 두려움이 절로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컷을 반복할 때마다 스위치 전원을 켜고 끄듯이 전환하는 건 잘 안 돼요.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진영 다현 씨가 그날 엄청 울었어요. 감정이 추스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다들 놀랐죠. 몰입력이 엄청납니다
‘첫사랑’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파릇파릇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죠.
다현 저에게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이미지에 더 가까워요. 간질간질하고,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어린 만큼 서툴겠지만 그래서 순수하고 예쁜 느낌.
진영 ‘학창 시절’이 떠올라요. 아직도 제법 선명하지만 오래전 일이라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에요. 20년도 더 지난 초등학생 때의 일인데, 저는 그때의 감정까지도 기억하거든요.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감정까지는 기억을 못하잖아요.
어릴 때는 대부분의 남학생이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짓궂게 굴거나 장난을 치는데, 진영 씨는 왠지 그때도 상대방을 다정하게 대했을 것 같아요.
진영 그런 아이는 아니었어요. 짓궂다기보다는 저도 장난치길 좋아했어요. 애들 불러 모아 생일 파티 하는 거 좋아하고, 나서기도 잘했고, 활달했죠. 나름 부회장 출신입니다(웃음).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좋아하는 친구와 메신저로는 이런저런 대화를 잘 나누면서 막상 마주치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서로 인사도 안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첫사랑이라고 하면 저에겐 ‘긴장되는 감정’도 떠올라요.
그래도 20여 년 전 첫사랑의 감정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놀라운데요? 진영 씨는 평소 성격이나 면모에 대해 어떤 말을 자주 듣나요?
진영 음. 제가 좀 차가울 것 같다거나 예민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나 봐요. 그런데 저는 예민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저도 좀 예민해보고 싶고, 예민함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실상은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땅바닥에 누워서도 잘 잡니다.
다현 같이 작업한 배우들한테 오빠가 자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유독 많을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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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떤 생각을 했어요? 2011년 데뷔한 B1A4와 2015년 데뷔한 트와이스, 두 사람은 가요계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죠.
진영 선아라는 캐릭터는 이미지가 중요하잖아요. 모두가 좋아했던 그 소녀의 이미지와 너무나 부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현 씨는 실제로도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정말 착해요. 선아는 그냥 딱 다현 씨의 역할이에요. 연기한다기보다 자기 자신으로 표현해도 싱크로율이 높지 않을까 싶었어요.
다현 저는 영화 <내 안의 그놈>을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한 번 보고 ‘좋다’ 한 게 아니라 몇 번을 봤어요, 너무 좋아서. 제가 반복해서 본 횟수로 치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영화에 출연한 진영 선배님이 진우를 맡는다니 기대됐어요. 선배님이 만들어갈 진우는 또 어떤 진우일까 궁금했고요.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는 서로에 대해 어떤 발견을 했을까요?
진영 다현 씨가 상업 작품으로는 첫 작품인데 ‘어떻게 처음부터 이럴 수 있지?’ 했어요. 저는 연기 시작할 때 그러지 못했거든요. 다현 씨는 여러 가지로 이미 준비가 돼있더라고요. 뭐랄까, 집요함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하고 원하는 바가 있으면 정말 잘 해내려고 하는 집요함. 그런 면이 연기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다현 영화에서는 친구 사이로 나오는데, 사실 저에겐 ‘선배님’이잖아요. 처음에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친구처럼 편해져야 한다는 점이 고민이었는데, 먼저 다가와줘서 고마웠어요. 현장에서 제가 큰 도움을 받았고요. 감독님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전기로 디렉션을 주실 때, 오빠가 바로 옆에서 ‘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아’ 식으로 먼저 말해주고 그걸 같이 정리해서 연기해보면 바로 OK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우리 영화 에서 오빠는 정말 거의 모든 신에 나오거든요. 본인 할 것도 많을 텐데, 저를 비롯해 스태프들을 두루두루 챙기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언젠가 저런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작품 경험을 많이 쌓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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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현 씨는 아직 무대가 더 익숙할 시기잖아요. 무대에서 집중해 연기하는 것과 캐릭터로서 한 작품에서 연기하는 것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다현 와, 두 분야의 매력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배우로서 연기할 때는 ‘지금 내가 하는 연기’의 전과 후 상황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장면 직전에는 어떤 상황과 감정이었는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다음 장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흐름을 꼭 생각해야 해요. 그런데 무대에서는 그때그때 마주치는 상황에 따라 좀 더 라이브하게 임해도 되거든요. 밝고 신나는 곡을 부르다가도 팬들의 열띤 응원에 갑자기 뭉클해지면,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아련한 느낌이 나와요. 하지만 계속 아련하게 갈 필요는 없이 금세 확 밝아질 수도 있는 거죠. 그런 라이브함이 무대의 재미예요. 배우로서는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캐릭터를 만들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고요.
진영 씨는 연기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영화 <수상한 그녀>와 <내 안의 그놈>, 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와 <구르미 그린 달빛>,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등등을 경험했습니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어떤 가르침이 크게 남나요?
진영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연기하면서 가장 기쁜 점이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배우로서 생각했을 때는 경험치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면에서 감사하고 좋죠.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제 인생을 두고 봤을 때, 타인의 삶을 살아본다는 건 굉장히 값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몰입을 하면 그 인생이 느낄법한 진짜 감정을 느끼게 돼요. 대사들을 통해 생각지 못한 부분을 배우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연기하면서 인생을 배우고 알아간다는 생각이 가장 커요. 영화 <내 안의 그놈>을 할 때 제일 막연했던 기억이 나네요. 작품마다 이런 삶과 저런 삶에 조금씩은 공감할 수 있는데, 극 중 10대 학생의 몸으로 중년 남성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웠죠.
이번 영화의 주 배경은 고등학교예요. 30대와 20대인 두 분이 교복을 입고 교실에 머무는 시간을 보내면서 즐겁게 작품을 만들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데뷔하기 위해 보통의 학생들과 좀 다른 시간을 살았잖아요. 영화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의 표정이 행복해 보여요.
진영 저는 우리 영화가 어릴 적 짝사랑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면서, 과거 뜨거웠던 한 시절을 다시금 느껴보는 재미도 안겨줄 거라 생각해요. 2002년, 대한민국이 가장 흥분했을 때가 이야기의 배경 시기로 등장하거든요. 흐르는 가요부터 휴대폰까지, 그 모든 추억이 저에게도 있어요. 그 시절의 온도와 습도, 풋풋한 감정이 느껴질 거예요.
다현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학교에서 친구들과 쌓은 소소한 추억이 많지 않거든요.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 앉아있는데, 정말 학교생활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운동장에서 농구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마저 좋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중학생 때인가, 가족과 극장에 갔다가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다현이가 언젠가는 저 스크린에 나올 날이 있을까’. 어릴 적 엄마의 그 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거든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우리 영화를 상영하면서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관람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관객뿐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저의 선물 같은 영화여서 더 소중한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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