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Las Vegas!

장진영

‘도시의 밝은 불빛이 영혼을 사로잡아요. 영혼에 불을 붙여요. 네온 플래시를 터뜨리는, 비바 라스베이거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비바 라스베이거스(Viva Las Vegas)’는 1970년대 라스베이거스의 호화로운 세계를 그린다. 화려한 네온 사인이 황량한 사막 위를 수놓은 네바다주 최대 도시, 라스베이거스. 50년이 지난 지금도, 라스베이거스는 예술과 미식 그리고 대자연을 모두 품은 채 하룻밤의 꿈 같은 판타지를 완성한다.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립.

‘스트립(Strip)’은 1946년 이곳에 최초로 생겨난 플라밍고 호텔을 비롯해, 벨라지오 호텔, 시저스 팰리스 등 역사를 함께해온 리조트들이 모여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중심지다. 스트립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어딜 가든 최대 규모, 초호화 시설을 앞다투어 자랑한다는 것. 지금이야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이 모든 게 그러려니 싶지만, 파리의 에펠탑을 절반 크기로 재현하고, 베네치아의 수로를 인공으로 만들어버리며 호텔 이름이 플라밍고라고 정원에 진짜 플라밍고를 풀어놓는 발상을, 누가 실행에 옮긴단 말인가. 그 모습에서 ‘천조국’의 레벨을 실감한다.

부의 세계를 총천연색으로 시각화하는 휘황찬란함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스트립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퐁텐블로(Fontainbleu) 리조트가 최근 오픈했는데, 2023년 12월에 개장한 이후 8개월 만에 타임지가 선정한 2024년 세계 최고의 명소 100선에 이름을 올린 ‘브랜드 뉴’ 호텔이다.

현재 네바다주를 통틀어 가장 높은 층을 자랑하는 퐁텐블로 리조트.

20세기 중반의 마이애미비치를 콘셉트로 한 예쁜 수영장도, 심신을 편안하게 가꿔주는 스파도 훌륭하지만, 직접 숙박하며 느낀 가장 큰 묘미는 새로운 랜드 마크인 ‘스피어(Sphere)’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객실에서 24시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현재 네바다주에서 가장 높은 70층 높이 덕분이다.

다채로운 미디어 파사드로 2023년 개장 직후 화제가 된 스피어.
이모지 외관은 가장 큰 인기를 끌고있다.

스피어를 좀 더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싶다면 167m 높이의 회전관람차 ‘하이 롤러(High Roller)’로 향해볼 것. 스피어를 비롯해 라스베이거스의 산증인과도 같은 역사적 건축물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캐빈에서 도시를 조망하며 이곳의 찬란한 과거를 상상하다 보면, 오늘 무심코 걸었던 거리에 묵직하고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을 문득 되새기게 된다. 이 도시가 한층 색다르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스피어를 가까이에서 천천히 만끽하기 좋은 관광 명소, 하이 롤러.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만큼 전 세계의 먹거리가 집결해 미식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도 이곳의 자랑이다. 정통 이탈리아 퀴진을 선보이는 페라로 레스토랑(Ferraro’s Ristorante)부터 퓨전 아시안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큐(Kyu)와 지중해풍 비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크로스로드 키친(Crossroads Kitchen) 등 풍성한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특히 크로스로드 키친은 비건 음식이라고 편견을 갖지 말길! 놀라울 만큼 맛있는 버섯 스테이크와 페퍼로니 피자를 맛볼 수 있으니. ‘경험한다’는 단어가 더 어울릴 만큼 다채로운 미식을 선사하는 전 세계 내로라하는 스타 셰프들의 식당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볼프강 퍽의 스파고(Spago by Wolfgang Puck)에서 벨라지오 호텔의 명물인 분수 쇼를 가까이에서 직관하며 여유로운 식사를 즐기고, 플라밍고 호텔에 새로 생긴 고든 램지 버거(Gordon Ramsay Burger)에서 호텔 시그너처인 플라밍고 잔에 담긴 귀여운 칵테일을 버거와 함께 맛봐야 한다. 핑키 바(Pinky’s by Vanderpump) 역시 인스타그래머블하고 퍼포먼스적인 요소들로 칵테일 하나하나가 오감을 자극하는, 그야말로 라스베이거스다운 곳이다.

벨라지오 호텔의 아이코닉한 분수 쇼를 관람하며 식사할 수 있는 식당, 스파고.

호화로운 밤을 자랑하는 관광 도시인 만큼, 해가 떠 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방탈출 게임이나 미니 골프장 등 MZ 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다채로운 어트랙션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어드벤처 테마파크 Area15에서 체험형 전시를 기획해 전개하는 미술 단체 미아우울프(MeowWolf)의 독특한 전시도 꼭 가야 할 곳 중 하나다. 현재는 300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이 작업한 각종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로 구성된 오메가 마트 전시가 진행 중인데, 피식 웃게 만드는 미국 특유의 위트와 발상의 전환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와 퀄리티도 남달라 깊은 영감을 받게 된다.

체험형 전시를 펼치는 테마파크 Area15의 오메가 마트.

시끌벅적한 스트립을 벗어나 빈티지 숍과 카페가 즐비한 아트 디스트릭트와 다운타운으로 넘어가서 한적하고 힙한 분위기를 느끼거나, 광활한 대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려 후버댐을 보러가는 하루는 또 어떤가. 애리조나주와 네바다주의 경계를 이루는 콜로라도강에서 보트에 유유자적 몸을 맡기고 거대한 인공 구조물과 협곡의 조화를 목도하는 일은 스트립이 주는 세속적 즐거움과는 또 다른 기쁨과 찬탄 속에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심어준다.

콜로라도강 위에서 감상하는 후버댐. 시간대가 바뀌는 경계선이기도 해 시계가 눈앞에서 바뀌는 독특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인공적인 호화로움보다 자연의 정적을 더 선호하는 여행자에게, 스트립은 단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퍼포먼스로 관객의 혼을 쏙 빼는 오 쇼(O Show)를 보기 전까지는. 가히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인간의 움직임은 감탄을 넘어 뭉클함으로 다가온다.

“라스베이거스에 널린 좋은 콘텐츠들이, 유흥이라는 벽에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쉬움의 한마디를 토로한 태양의 서커스 소속 한국 단원인 홍연진 아티스트 코치의 말은 역설적이게도 이 도시에 다음이란 마음을 내어주게 만든다. 여행을 쇼 일정으로 꽉 채워, 예술을 파고드는 테마를 계획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 쇼와 더불어 카 쇼(Ka Show)와 어웨이크닝 쇼(Awakening show)가 흔히들 말하는 라스베이거스 3대 쇼지만 ‘꼭 가봐야 할’이라는 타이틀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선택을 손쉽게 도와주는 동시에 틀에 가두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으니.

쾌락으로 점철된 일회성 향락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라스베이거스. ‘Sin City(범죄 도시)’라는 한 때의 별명이 아주 틀린 표현이 아닐 정도로 윤리와는 거리가 먼 채 발달한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탄생해 발전해온 음악과 문화, 건축은 모두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미학적 산물이다. 마치 건조한 땅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아름다운 형상을 피워내는 선인장 같다. 그러니 향락이란 단어보다는 안팎으로 높은 경지에 다다른 예술적 정열의 도시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걸맞지 않을까.

사진
Courtesy of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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