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에 곱게 싸인 폭풍의 언덕, 25 FW 알투자라 컬렉션

명수진

ALTUZARRA 2025 FW 컬렉션

알투자라 컬렉션은 토요일 아침, 사무실이 있는 울워스 빌딩(Woolworth Building) 14층에서 열렸다. 살롱처럼 포근한 공간에 디자이너와 스태프들의 가족까지 옹기종기 모여 주말 아침의 다정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각 좌석에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이 한 권씩 놓여 있었다. 책 안에는 알투자라의 25 FW 시즌의 영감이 된 이미지 – 피가 흐르는 키스 마크, 진주 목걸이, 의자 뒤에 걸린 모피 코트 등 – 를 함께 넣고 이를 한국식 보자기로 곱게 포장해두었다. 쇼 노트에 따르면 알투자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조셉 알투자라는 ‘자신의 역사를 갑옷처럼 입고 상처를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여성’에서 2025년 FW 시즌의 영감을 받았다. 그녀의 사적인 삶의 기록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듯한 방식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런웨이에 펼쳐 놓았다.

오프닝은 미니멀하고도 아방가르드한 케이프 코트가 열었는데 이는 뉴욕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스타일은 확실히 뉴욕 패션위크에서 유독 인기가 많다. 알투자라의 시그니처인 마티 스웨터(Marty Sweater)는 미니멀한 미디 혹은 풀 스커트, 라이딩 부츠, 웨이스트 벨트와 대담하게 스타일링했다. 트렌드에 충실한 모카 무스 컬러부터 매혹적인 바이올렛 컬러 팔레트가 다채로운 질감과 볼륨으로 펼쳐졌다. 피 코트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버블 스커트를 매치했고, 아방가르드한 그레이 숄 코트에 사랑스러운 러플 장식으로 볼륨감을 극대화했으며, 매니시한 시어링 코트는 A 라인으로 새롭게 변주했다.

프린트는 사적인 뉘앙스를 더 짙게 만드는 요소였다. ‘얼룩진 키스 마크는 냅킨에 남은 립스틱 자국과 비슷하고, 식물 프린트는 책 사이에 낀 말린 꽃을 떠오르게 한다’는 조셉 알투자라의 친절한 설명을 참조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한편, 피날레 원피스는 오트 쿠튀르 같은 정교한 면모를 뽐냈다. 가느다란 실을 촘촘히 연결해서 만든 블랙 보디 콘셔스 드레스는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조각을 떠오르게 했고, 커다른 스터드 혹은 라인스톤을 빼곡하게 장식한 트레페즈 라인(Trapéze Line) 원피스 또한 많은 여성들이 매력적으로 느낄만했다.

컬렉션에 즈음하여 주목할 만한 소식도 들려왔다. 작년에 데뷔 15주년을 맞은 알투자라는 최근 패션 벤처 P180과 계약하며 새로운 챕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P180은 렌털 사업을 통해 기존 패션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자립과 생존이 녹록지 않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분명 솔깃한 뉴스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줄지 자세히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영상
Courtesy of ALTUZARRA, Instagram @altuza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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