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리스 힐튼(Paris Hilton), 니콜 리치(Nicole Richie)가 출연한 리얼리티 시리즈 <심플 라이프>는 2003년 미국에서 방영을 시작하며 그야말로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총 다섯 시즌까지 이어진 이 시리즈를 두고 누군가는 2000년대 팝 컬처의 유산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심플 라이프>가 다시 돌아왔다. 이 반가운 재회, 이토록 멋진 앙코르에 대해 두 사람이 말했다.
<W Korea> 소문만 무성하던 <심플 라이프>의 리부트판이 2024년 12월 미국의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에서 마침내 공개됐다. 이름하여 재회의 의미를 담은 <패리스 & 니콜: 디 앙코르(Paris & Nicole: The Encore)>이다. 이 뜻밖의 재회는 어떻게 이뤄진 건가?
니콜 리치 모든 게 자연스럽게 성사됐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연휴 때 패리스와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첫 방송을 한 지 벌써 20년이 됐다고 하길래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이후 여러 아이디어를 주고받다 아주 자연스럽게 리부트판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패리스 힐튼 꽤 여러 번 니콜과 재회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 제안을 받았는데 번번이 거절했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다시 만나 촬영하는 내내 즐겁고 신났던 기억이 있다. 같이 있을 때면 언제나 10대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새 시리즈에서 무려 오페라 공연까지 펼치던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
니콜 리치 일곱 살 때쯤 패리스와 ‘Sanasa’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심플 라이프> 촬영 당시에도 우리만의 개그 같은 느낌으로 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이게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Sanasa’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함께 즐겨준 이들을 위해 오페라로 준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패리스 힐튼 오페라 아이디어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심플 라이프>에서는 두 사람의 우정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서로 갈등을 빚거나 다투는 장면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모습까지 다시 볼 수 있는 걸까?
니콜 리치 글쎄, 굳이 그런 것까지 재현할 필요가 있을까( 웃음). <심플 라이프>를 좋아한 많은 이들이 우리의 다툼까지 즐겁게 봐주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생각 이상으로 길고 촘촘하게 엮여 있다.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40년을 함께한 셈이다. 불화라고 해봤자 친구들 사이 으레 겪는 아주 잠깐의 어색한 시간뿐이었다.
패리스 힐튼 당시 매체들은 불화를 조장하고 과장해서 가십지에 실을 만한 자극적인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데 집중했다. 전 세계가 달려들어 상황을 더욱 크게 부풀렸다. 니콜과는 거의 갓난아기 시절부터 가장 좋은 친구로 지냈다. 친자매나 마찬가지다.
꽤 오랜 시간 <심플 라이프> 출연을 후회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거로 알고 있는데, 두 사람의 대답은 언제나 ‘아니요’였다.
니콜 리치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경험을 추억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20대에 해볼 수 있는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때’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만약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이 존재하는 지금 촬영했다면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은 절대 담아내기 어려웠을 거다. 시즌 1에서는 패리스와 눈을 가린 채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우리 둘 다 정말로 어디에 가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때 이야기를 하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패리스 힐튼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일이라곤 해본 적 없는 우리가 농장,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동물원 같은 곳에서 일한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지 않았나. 확실히 이전에는 없는 콘셉트였다. <심플 라이프>의 세계적 흥행 이후 이것에서 영감을 받은 또 다른 프로그램이 생겨나기도 했다. 팝 컬처 역사에서 꽤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고 본다.
백수 생활을 즐기는 두 사람이 방송을 통해 직업 경험을 쌓는 모습이 역설적이면서도 즐거움을 선사했다. <심플 라이프>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패리스 힐튼 패스트푸드 점원부터 동물원 사육사까지 다양한 종류의 일을 해봤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며 산다는 사실과 나 또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브랜딩이나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없던 시절부터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과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니콜 리치 시즌 1 방영 직후 우리 둘 다 모두가 알아보는 유명 셀럽이 되었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채로 총 다섯 시즌을 촬영했는데, 시즌 2부터는 전문 프로듀서와 함께 제작에도 참여하고 스토리라인도 구상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TV 쇼 제작 경험을 해본 것이다. 모두 <심플 라이프> 덕분이다.
어릴 적 꼭 이루고 싶었던 장래 희망이 있었나?
니콜 리치 열 살까진 재닛 잭슨의 백업 댄서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열다섯 살에 마음이 바뀌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백업 댄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뮤지컬 전공으로 대학에 갈 예정이었는데, 상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갑자기 방송에 출연하게 됐으니까. 그래도 항상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늘 꿈꾸었던 ‘Rhythm Nation’(재닛 잭슨의 노래)의 댄서가 되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쉽다.
패리스 힐튼 동물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수술과 마취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선 마음을 접었다. 이후 열심히 일하고 성공해서 나만의 왕국을 지은 뒤, 많은 반려동물과 행복한 삶을 살 거라고 말하곤 했다.
니콜 리치는 현재 배우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니콜 리치 배우는 늘 선망하던 직업이었다. 돌이키면 <심플 라이프> 출연 경험이 참 많은 것을 남겼다. 코미디 연기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도 했고, 더 나아가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연습을 하도록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패리스 힐튼은 작년 9월 두 번째 앨범 <Infinite Icon>을 발매했다. 2006년 첫 정규앨범 발매 이후 18년 만인 셈이다.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패리스 힐튼 2023년 12월 31일, 마일리 사이러스가 호스트로 개최한 연말 콘서트에 선 적이 있다. 마일리 사이러스, 시아와 함께 꾸린 특별한 무대였다. 공연 다음 날, 시아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그녀가 내게 완벽한 무대를 보여줬다면서 왜 앨범을 더 내지 않는 거냐고, 태생이 팝스타라며 칭찬을 해줬다. 여러 사업 때문에 겨를이 없었다고 말하니 그럼 자신이 프로듀싱을 맡아 곡을 써주겠다고 하더라. 그런 멋진 제안을 어떻게 거절하나! 그녀 덕에 완성도 높은 앨범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2000년대에 입은 옷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나?
니콜 리치 아쉽게도 이제는 없다. 미련 없이 주기적으로 물건을 정리하는 스타일이라.
패리스 힐튼 나는 특별한 추억이 깃든 물건은 보관해두는 편이다. 나를 상징했던, 내게 소중했던 물건을 곁에 둔다. 언젠가 딸 런던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자선 재단에 기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끔은 박물관에 대여하기도 한다.
<심플 라이프> 방영 이후 둘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따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롤모델로 삼는 여성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패리스 힐튼 다이애나 공주. 그녀는 무척이나 선한 마음으로 다양한 자선 단체를 통해 아이들을 돕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마릴린 먼로 역시 나의 영원한 아이콘이다. 완벽한 엔터테이너였고,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안 인물이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멋지게 표현하는 모습이 나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마릴린 먼로는 외모에만 관심 있는 백치 금발 여성이 아니라, 그런 편견을 역설적으로 연기한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런 점은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니콜 리치 나의 롤모델은 언제나 어머니였다.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따라 하거나 좇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셨다. 80년대에 어머니는 매일 밤 다양한 행사에 참석하셨는데,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드레스룸에 앉아 그녀가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머니를 둘러싼 세계에 나 또한 깊이 스며들었고, 언제나 놀랍고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패리스 & 니콜: 디 앙코르>를 촬영하며 새로이 느낀 점이 있나?
니콜 리치 가장 친한 친구와, 그것도 한 달 동안 촬영한다는 건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너무 좋은 자극을 받았다. 부디 시청자들도 나와 같은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
패리스 힐튼 니콜과 다시 함께하게 돼서 정말 행복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다시 한번 진실한 관계를 쌓은 것 같다. 특히 오페라 공연은 세계 각지에 있는 팬들을 관람객으로 초청했다. 우리가 팬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직접 들을 수 있어 무척 특별한 시간이었다.
50주년에도 두 사람의 특별한 만남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니콜 리치 그때라면 70대가 되어 있을 거다. 내 대답은 ‘예스’다. 어쩌면 양로원에서 특별한 재회를 할 수도 있을 테니 기대해달라.
패리스 힐튼 확신하건대 양로원에 들어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뭔가 재밌는 일은 해보고 싶다.
- 프리랜스 에디터
- Kyle Munzenrieder
- 포토그래퍼
- Colin Dodgson
- 스타일리스트
- Jamie Mizrahi
- 헤어
- Eduardo Ponce(패리스 힐튼), Miles Jeffries(니콜 리치)
- 메이크업
- Melissa Hurkman(패리스 힐튼), Mai Quynh(니콜 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