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 쿠튀르를 입은 카사노바, 25 FW 디올 남성복 컬렉션

명수진

DIOR MEN 2025 FW 컬렉션

킴 존스가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3개월 전인 지난가을, 펜디 여성복과 오트 쿠튀르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난 킴 존스가 디올 맨에 집중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남성복 미학의 극치를 선보였다. 무슈 디올이 고전적인 여성복을 통해 세계 대전 전후 황폐해진 여성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불타게 했다면, 2025년 디올 맨 컬렉션 역시 아름다움에 대한 남성의 욕망을 더욱 뜨겁게 불 지폈다. 디올 하우스의 아름다운 유산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성복에서 남성복으로 이양되고 해석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2025 FW 시즌 디올맨 컬렉션의 베뉴는 아이러니하게도 옛 군사학교로 사용되던 파리 에콜 밀리테르(École Militaire)였다. 회색의 타일을 깔아놓은 플로어에 요새처럼 생긴 하얀 계단을 설치해 미니멀한 공간을 연출했다. 디올의 수많은 유산 중에서도 킴 존스가 레퍼런스로 삼은 것은 무슈 디올이 1954년 FW 시즌에 선보인 ‘H 라인’. 킴 존스는 쇼 노트를 통해 이렇게 언급했다. “H 라인은 남성복의 세계로 완벽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은 그래픽 디테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뿌리로 돌아가서 하우스의 정수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킴 존스는 전통적으로 여성복의 문법이었던 핑크, 리본, 비즈, 보트넥, 롱스커트를 남성복의 영역으로 끌어왔다.

하얀 계단을 내려온 모델은 시원하게 개방된 플로어 런웨이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꽤 긴 동선을 걸었다. 덕분에 관람객은 모델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모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감상할 수 있었는데 룩 하나하나 지나칠만한 것이 없었다. 킴 존스의 완벽주의는 더욱 단단해졌다. 1940-50년대를 풍미한 오트 쿠튀르의 우아함이 고스란히 남성복으로 옮겨가 탄탄한 테일러링, 더할 나위 없는 소재 선택, 정교한 디테일로 드러났다.

셔츠와 재킷은 전통적 남성미라 여겨진 칼라와 라펠 같은 딱딱한 디테일을 없애고 대신 스카프처럼 부드러운 숄 형태의 네크라인으로 대치되었다. 어깨 역시 각을 내지 않고 둥글게 처리했다. 실크 블라우스는 파티 드레스처럼 등 부분을 과감히 오픈하거나 풍성한 래그 오브 머튼 소매로 로맨틱함을 더했다. 심지어 테일러드 재킷의 등 부분에는 커다란 리본을 장식했다. 단추 여밈을 느슨하게 풀어헤친 턱시도 셔츠에는 동근 튤립 형태의 스커트를 매치하여 극적인 실루엣을 연출했는데, 이는 사실 여성용 코트를 뒤집어 입어서 스커트처럼 연출한 것이다. 이 밖에도 남성용으로 변형된 디올의 시그니처 바 재킷, 더블브레스트 디테일의 실크 셔츠와 카디건, 좀처럼 노출되지 않았던 남성의 신체 부위인 쇄골을 드러낸 보트넥 카디건까지 언급하지 않으면 아쉬울 아이템이 너무나 많았다. 네오프렌 봄버 재킷이나 레더 카울 넥 블라우스는 캐주얼한 분위기를 더했다.

정교한 액세서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심미적 만족감을 주는 것이었다. 앞코에 실크 리본 디테일을 넣은 드레스 슈즈는 이번 시즌 디올의 아이코닉한 액세서리였다. 새틴, 오간자 소재로 제작한 조로 마스크는 컬렉션 내내 관능적이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로 마스크의 제작 과정은 공식 사이트를 통해서도 공개되었는데 하우스의 장인과 파리의 장인 블랑카 플라비오(Blanka Flavio)가 협업하여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모델들의 허리춤에서 반짝인 실버 참은 골무, 미니 가위, 바늘 통 등이었는데, 이는 쿠튀리에 무슈 디올에 대한 경외를 담은 오브제였다.

화려한 오페라 코트가 대미를 장식했다. 모가나이트 핑크(Morganite Pink) 컬러의 더블 새틴 소재에 크리스털과 비즈로 자수를 넣은 로브는 1948년 디올 오트 쿠튀르 SS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폰디셰리(Pondichéry) 로브에서 영감을 받은 것. 이는 존 갈리아노가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2007 SS 쿠튀르 컬렉션을 거쳐 현재로 계보가 이어지는 역사적인 아이템이었다.

2025 FW 디올 맨 컬렉션을 통해 젠더 플루이드의 새로운 순간을 창조한 킴 존스. 그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디올 맨과 결별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너무나 완벽한 또 하나의 컬렉션을 보여줬기에 소문이 현실화되면 아쉬움이 클 것 같다. 쇼가 끝난 직후 저녁, 킴 존스는 프랑스의 최고의 명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Knight of the Legion of Honor)을 수여 받는 영광을 누렸다. 킴 존스는 202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생일 훈장 수여 명단에 패션에 대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 10급을 받은 바 있지만, 영국인으로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다.

영상
Courtesy of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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