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패션이란?, 25 FW 릭 오웬스 남성복 컬렉션

명수진

RICK OWENS 2025 FW 컬렉션

“저는 짐을 싸면서 최소한의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무엇일까요?” 릭 오웬스 컬렉션은 전위적인 외양을 가졌지만 심연으로 들어가 보면 대단한 미니멀리스트임을 알 수 있다. 릭 오웬스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찾아가고 있는 패션 구도자이다. 릭 오웬스는 이번 2025 FW 릭 오웬스 컬렉션을 통해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꼭 필요한 것을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를 위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쇼 노트에 따르면 이번 컬렉션의 영감은 릭 오웬스 제조 공장이 있는 이탈리아의 작은 산업 도시 콘코르디아(Concordia)에서 시작됐다. 릭 오웬스는 약 20여 년 동안 파리와 콘코르디아를 수없이 오갔다. 릭 오웬스는 콘코르디아에서의 생활을 ‘이상하고 멋진’ 것을 창조하기 위한 자발적 고립이었다고 설명한다.

파리 패션위크 주간의 목요일 오전, 릭 오웬스는 컬렉션이 열리는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 장식을 최대한 배제했다. 가슴 아래까지 바짝 쳐낸 마이크로 크롭 톱을 입은 모델이 오프닝을 열고 이어 초경량 저지, 울 블렌드 이너 웨어, 미니멀한 하이넥 집업 보머 재킷과 베지터블 태닝 가죽 코트가 줄줄이 등장했다. 여행을 위해 짐을 쌀 때 넣을 것과 뺄 것을 고민하는 것처럼 릭 오웬스도 최소한의 것을 남겨두는 과정을 통해 선별한 아이템인 셈. 쇼츠에 매치한 보온 효과가 있는 롱존(long johns), 크림색 양면 카프탄, 브라운 스웨이드 팬츠 등 릭 오웬스의 팬이라면 열광할 에센셜 아이템이 마치 콕콕 짚어 요점정리하듯 등장했다.

아이템 하나하나 릭 오웬스가 스스로를 고립하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13온스 데님에 청동 호일과 왁스를 사용해 압착하고 워싱 하면서 독특한 표면 질감을 만들어낸 플레어 데님 팬츠는 마치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전투사 같은 느낌을 줬다. 라텍스 소재를 가늘게 썰고 이어서 만든 플리츠 소재는 아티스트 마티스 디 마지오(Matisse Di Maggio)와 협업한 것으로 재킷과 후디 등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됐다. 핸드메이드 방식으로 가죽을 레이저 커팅하고 하나하나 수작업을 통해 체인으로 연결해 뮤턴트의 깃털 같은 소름 돋는 디테일을 만든 스커트와 부츠는 모두 아티스트 빅터 클라벨리(Victor Clavelly)와 협업으로 완성한 것이다. 릭 오웬스 특유의 ‘상박하후’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플랫폼 부츠는 이번 시즌 ‘팩토리(Factory)’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릭 오웬스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책임감 있는 지속 가능한 기법으로 완성되었음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전달했다. 이를테면 인디고 데님은 LWG(Leather Working Group) 골드 등급을 받은 토스카나 제련소에서 제작했으며, 재킷과 코트를 만든 송아지 가죽은 식물성 천연 태닝만 사용한다. 데님 제품을 후 처리할 때에는 물 낭비를 줄이기 위해 소규모 처리 욕조에서 생산하는 동시에 사용된 물의 일부를 재활용할 수 있는 정수 공정을 활용하며 모든 데님 제품은 ZDHC(Zero Discharge of Hazardous Chemicals) 인증을 받았다.

BGM으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1977년 노래 ‘히어로즈(Heroes)’가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로 흘러나왔다. 1987년, 데이비드 보위가 이 노래를 베를린 장벽 옆에서 공연한 것이 독일 통일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실에는 암울한 소식이 많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이상하고 멋진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영상
Courtesy of Rick Owen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