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건 다 해보면서, 그렇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이지아는 여전히 스스로를 탐색 중이다. 연기, 힙합, 과학 등 재미를 느끼는 일들에 깊고 진득한 관심을 갖는 것도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W Korea> JTBC <끝내주는 해결사>가 종영하고 시간이 꽤 흘렀어요. 2024년을 돌아보면 어떠셨나요?
이지아 그러게요. 그동안 꽤 많은 걸 했네요. <SNL 코리아>에도 출연하고, tvN <주로 둘이서>라는 미식 여행 프로그램도 했고요. 아, 2024 MAMA 어워즈 무대에도 올랐네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해였어요. 작품을 연달아 하면 이런 활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거든요.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본 것 같아요. 와 MAMA 어워즈에서 이지아 배우를 볼 줄이야.
<끝내주는 해결사>를 마치고 기자님들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무슨 작품이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제가 ‘웃기는 것에 진심’이라고 했더니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더라고요. ‘아직도 <펜트하우스>의 심수련이나 <나의 아저씨>의 강윤희에서 못 벗어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몇몇 분들이 <SNL 코리아> 출연을 추천해주셨죠.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했나요?
그럼요. <SNL 코리아> 때도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어요. 오프닝에서 랩도 하고, 신동엽 선배와 함께한 ‘내겐 너무 특별한 그녀’ 코너에서는 트랜스젠더 역할로 아슬아슬한 케미도 보여드렸죠. 재미있지 않았나요? 저도 하면서 많이 웃었어요. 그 쇼츠는 조회수 1,200만을 넘었다고 들었어요.
2024년에 가장 잘한 일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린 거요. 특히 마마 어워즈에서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게 목표였거든요. 성공한 것 같아 기뻐요.
목표를 이룬 한 해였군요.
그렇죠. 어릴 때부터 힙합을 좋아해서 녹음도 해보고 따라도 했는데, 회사에서는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와 다르다고 안 좋아했어요. 과도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저를 찾아가고 있고요.
마마 어워즈 같은 스펙터클한 음악 시상식에서 공연한다는 건 수만 명의 관중이 둘러싼 무대에 선다는 거잖아요. 평소 무대에 자주 서는 가수들도 긴장할 만한 자리입니다. 거기서 이지아가 ‘CTL(Cross The Line)’이라는 곡으로 랩을 했어요. 무대에 올랐을 때, 어떠셨어요?
저는 무대에서보다 그 무대를 하기로 했을 때가 더 떨렸어요. 그렇게 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떨리는 거예요. 무대에 오르기로 결정했을 시점이 공연으로부터 한 달 반 전이었는데. 그때부터 계속 머릿속에 무대를 그리고 구상했어요.
무대를 직접 기획했다고요?
네. ‘처음 시상할 때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는 캐주얼한 의상으로 등장한다. 모자를 쓰는 순간부터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런 세세한 것까지요. 제목이 ‘Cross The Line’이잖아요. 저한테 딱 어울리는 주제였어요. 배우인데, 선을 넘어서 힙합 음악을 하니까. 그럼 힙합과 록 요소를 섞자, 그것도 ‘Cross The Line’이니까. 그래서 무대에 드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제 파트가 끝날 때쯤 이영지 씨가 오버랩되면서 함께 무대를 꾸민 것도 같은 의미예요. 이런 아이디어들을 냈더니, 무대 팀에서 이런 말을 했대요. ‘이 사람, 무대를 아는 사람인데?’라고.
김고은 배우가 “철두철미하면서 P 같은 모습이 딱 언니야”라는 말을 했던 게 이해가 가네요.
맞아요. 저 완전 P거든요. 근데 J 같은 P예요. 준비는 열심히 하는데, 그 계획대로 안 이루어져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좋았어요. 힙합을 그렇게나 오래 좋아했는데 랩 가사도 써보고. 무대에도 오르고.
인생에서 첫 무대를 그렇게 성공적으로 했다니, 당장 앨범을 내도 되겠어요.
그건 아니지만 취미로 계속하고 싶어요. 리허설을 총 세 번 했거든요. 할 때마다 실수하거나 박자를 못 맞추거나, 어딘가 하나씩 문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본무대에 섰는데 거짓말같이 하나도 안 떨리는 거예요. 아인슈타인이 말한, 찰나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달까요.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다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에 몰입하는 건 같으니까. 그래서 함성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날은 그 공간에 저 혼자 있다고 느낄 만큼.
힙합계가 아까운 인재를 놓쳤네요. 어쩌면 본인이 잘하는 건 연기보다 음악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요(웃음). 근데 처음에 회사에서는 반대했어요. 만약 제가 어설프거나 웃기게 랩을 하면 밈으로 놀림 당하고, 박제되어 돌아다닐 테니까. 하지만 저는 자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정도인지는 회사도 몰랐던 거죠.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져요.
늘 음악을 듣고 있어요. 운전할 때는 차에서 크게 틀어놓고 운전하는 편이고. 이동 중에는 오픈형 이어폰을 껴요. 그럼 주변음도 들리고 배경음처럼 나만의 음악이 깔리는 것 같아서 좋아요.
최근 예능에서 곱창과 파란 소주를 즐기거나, 유튜브 채널 ‘짠한형 신동엽’에서 취한 모습도 화제였어요. 김고은 씨와의 미식 여행 프로그램도 반응이 좋았고요.
고은이와 친하다 보니 촬영이라기보다 둘이 맛있는 거 먹고 술 한잔하는 느낌이었어요. 발베니 12년, 14년, 16년, 21년의 맛 차이를 경험하며 음식과 페어링도 즐겼죠. 나중에는 음식 한 입만 먹어도 ‘16년과 잘 어울리겠다’고 떠올릴 정도였어요.
미식 여행을 다니며 취재도 하고, 마지막으로 칼럼까지 써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죠. 그 과정도 흥미로웠어요. 물론 당사자에겐 상당히 어려운 미션이었겠죠?
처음엔 도망가고 싶었죠. 마지막 촬영 때 피디님이 ‘한 줄로 평해달라’고 하셔서 ‘위스키가 에어링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고은이와 제 관계도 깊어진 느낌이었고요.’
평소 책을 많이 읽나 봐요. 그런 문장이 즉석에서 나오는 걸 보면.
읽긴 하지만 금방 잊어버려요. 그래서 저는 책을 읽고 잘 설명하는 분들을 보면 신기해요. 습득한 지식이 그 안에서 자라나는 사람이 있거든요. 저는 습득해도 자꾸 소화돼서 나가요(웃음).
유독 김고은 배우에게는 마음을 더 활짝 여는 듯한 느낌이에요. 이지아가 마음을 여는 사람, 혹은 계기나 상황이 있을까요?
성향이 맞아야 해요. 예민하지 않고 신뢰가 있는 그런 사이. 이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커요.
술자리를 가지면 더 가까워지곤 하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그날 하루는 가까워질 수 있겠지만, 자주 또 보는 사이가 되는 것과는 달라요.
술은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흥이 있죠. 기분 좋아지고 재미있어져요. 그렇다고 제가 막 부어라 마셔라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흥이 오르고 음악이 있다면 일어나요. 제가 술자리에서 일어나면 취한 거예요(웃음). 심지어 저는 얼굴색도 안 변해요. 그래서 촬영 때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있으면, 저는 진짜 맥주로 달라고 해요(웃음).
진솔한 이야기를 할 때도 술이 필요한가요?
음, 술이 저에게 용기를 주는 건 아니에요. 물론 긴장되면 약간 풀어지는 건 있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꼭 술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궤도의 과학 속으로’라는 유튜브 콘텐츠에서 하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더라고요. 공상과학이나 물리학, 인공지능에 대한 조예가 상당해서 놀란 이들도 많아요.
과학이라는 학문이 매력이 커요. 저는 양자역학에 관심이 정말 많아요. 우주, 뇌과학 이런 것도 좋아해요. 그거 아세요? 원자가 우리가 관찰할 때랑 아닐 때 다르게 움직인대요. 이런 걸 알게 될 때마다 신기해요.
본인에게 과학이란 어떤 의미예요?
재미있어서 계속 궁금하고 탐구하고 싶은 것. 지구가 평평하다고 알고 있을 때는 그 당시 과학으로는 그런 줄 알았던 거잖아요. 그만큼 현재 우리 과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이렇게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열어두는 게 재미있어요. 저는 문과적인 사람이고 글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근데 또 저한테 이런 이과적인 면도 있더라고요.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음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다재다능하네요. 우주, 과학이라고 하면 흥미롭지만 막연하기도 해요. 입문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나 콘텐츠가 있을까요?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 다소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의식’이라는 주제를 참신한 관점으로 접근한 책이에요. 양자 물리학이나 우주에 입문하는 분들에게는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의 저서를 원작으로 한 <우주의 구조>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요. 그럼 더 관심이 생길 거예요. 그 이후에 책을 찾아보세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배우가 과학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주고 있다니(웃음).
한 인터뷰에서 ‘저에게 신비로운 이미지가 아직도 있나요?’라고 기자에게 되묻는 걸 봤어요. 이미지는 가능성이 많은 한 사람을 갇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배우에게 꽤 중요한 키워드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는 이지아에게 어떤 이미지가 있을까요?
‘다양한 색깔이 있는 친구구나’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어떤 분이 ‘이제야 비로소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사람 같다. 멋지다’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오늘도 작품이 아닌 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인터뷰 자리라 저 무척 들떴어요.
사람들이 이지아에 대해 오해하는 점이 있다면 뭘까요?
레스토랑에 가면 “접시는 30도로 데워주시고요”, 이렇게 말하고 마치 샐러드만 먹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나 보더라고요. 그런 이미지가 가장 큰 오해 아닐까 싶어요.
그건 우아한 이미지이기도 하죠. 어떻게 보면 누군가는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이미지네요.
물론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불편할 때도 있어요.
인간 이지아의 숨겨진 모습이 10 중 몇 정도 될까요?
10 중 5 정도 보여드린 것 같아요(웃음). 놀라실까 봐 차근차근 꺼내고 있어요.
연기를 하면서 자신이 변화했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나요?
예전에 비해 너그러워졌어요. 작품이 나가면 평생 남잖아요. 그 때문에 매 순간 신경 쓰이고 예민했던 시절이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완벽한 현재는 있을 수 없어요. 그 당시에는 부족했던 거예요. 그걸 인정하게 됐어요. 지금보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중요해요. 앞으로 더 잘하면 되죠.
연기하는 인생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다른 인생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아지고 잠시나마 그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 재미있죠. 글쎄요. 그렇다고 배우라는 삶이 뭔가 대단히 다른 건 아니에요. 수많은 직업 중에서 배우라는 걸 하고 있을 뿐,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른 분들도 각자의 직업에서 느끼는 재미 요소가 있을 거예요.
혹시 차기작으로 이야기 중인 작품이 있어요?
기다리는 중이에요. 작품도 인연이에요. 배우라는 직업은 선택받아야 하는 거니까. 현재는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아다니고 있고요. 아, 유튜브를 하고 있어요. 사실 좀 늦었죠. 이제 저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많이 오픈하려고요.
2025년 새해가 밝았어요. 새해 인사는 돌리셨나요?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했어요. 사실 저는 카카오톡을 안 쓰거든요. 벌써 2년째예요. 카톡은 그룹 채팅도 많고, 잠깐 안 보면 메시지가 수백 개씩 쌓이잖아요. 그래서 문자로만 소식을 주고받아요.
2025년 계획이 있다면요?
1월 1일, 새해는 저에게는 그냥 여느 날 중 하루예요. 새해가 됐다고 해서 뭔가를 하자는 계획보다는 매 순간 나를 각인시키는 걸 더 좋아해요. 저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 싶어요.
좋네요. 오늘 화보 촬영과 인터뷰 소감을 직접 한 문장으로 써본다면요?
‘내가 된다는 것.’ 지금도 진짜 저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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