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바탕으로 그 결정체를 선보이는 ‘샤넬 공방 컬렉션’.
수백 명 장인들이 빚어낸 공예 예술의 정수를 품은 2024/25 샤넬 공방 컬렉션의 행선지는 바로 항저우의 서호였다. 하우스의 세련된 로맨티시즘, 역사가 담긴 코로만델 병풍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에 관한 이야기.
저물녘 은은하게 물에 비치는 석양빛이 아련하고 몽환적인 세계를 그리며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곳, 중국 항저우 서호. 이 신화적인 호수가 위치한 곳에서 샤넬 2024/25 공방 컬렉션이 펼쳐졌다. 서호가 이번 쇼의 배경이 된 데에는 샤넬의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녀의 자서전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익히 들었을 ‘코로만델 병풍’의 배경이 바로 서호이기 때문인데, 파리 31 캉봉가 그녀의 서재를 장식할 만큼 애정했던 19세기 중국의 대형 코로만델 병풍. 샤넬의 연인이었던 보이 카펠이 선물한 이 병풍은 극강의 섬세함을 뽐내는 옻칠과 화려하게 수놓은 보석과 자개로 순식간에 그녀를 사로잡았다. 가브리엘 샤넬에게 큰 의미를 내포했던 코로만델 병풍은 하우스 공방 장인들에 의해 아름답게 재해석되어 2024/25 샤넬 공방 컬렉션 곳곳에서 등장했다.
컬렉션이 열리기 며칠 전, 날아온 메일 한 통. 곧 펼쳐질 2024/25 샤넬 공방 컬렉션 쇼의 티저 영상이었다. 하우스는 2024/25 샤넬 공방 컬렉션의 핵심 코드인 코로만델 병풍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기 위해 영화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를 찾았다. “샤넬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며 코로만델 병풍을 관찰했어요. 병풍을 보다 보니 초기 영화 스크린이나 많은 에피소드가 담긴 만화책이 떠올랐어요. 병풍 어디를 봐도 각기 다른 일상의 모습이 펼쳐진다는 점이 대단히 흥미로웠죠. 주로 장소에서 영감을 얻는 저는, 이번엔 코로만델 병풍 속에서 찾은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병풍 속에서만 일어나고 다른 곳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이야기요.”
캉봉가 31번지의 거울 계단을 오르는 틸다 스윈턴(Tilda Swinton), 방에 들어가니 그녀를 맞이하는 코로만델 병풍. 호수 표면에 물결이 일렁이고, 바람이 지나가며 병풍 속 이야기가 현실에 펼쳐진다. 감독은 코로만델 병풍을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창으로 생각하며, 그곳을 탐험하는 여정을 그려냈다. 과거와 현대,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서로 교감하는 모습을 담은 이번 필름에는 샤넬의 오랜 친구 틸다 스윈턴 외에 하우스 앰배서더 신지뢰(Xin Zhilei)와 레아 도우(Leah Dou)가 참여해 샤넬 하우스의 유산과 미학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다시 컬렉션 현장으로 돌아와 쇼가 펼쳐지는 서호 위. 가브리엘 샤넬을 상징하는 블랙 컬러의 고급스러운 트위드 롱 코트를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걸어 나왔다. 그 뒤로 더플코트, 트위드 쇼츠, 턱시도 재킷, 롱 드레스, 카디건 등 샤넬 하우스 상징과도 같은 룩이 대거 등장했다. 룩들을 보니 샤넬 공방 컬렉션을 현실화해주는 곳, 곳곳에 흩어진 장인들을 한데 모아 긴밀한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곳, 바로 le19M이 떠올랐다.
올해도 어김없이 le19M에 속한 르사주(Lesage), 마사로(Massaro), 몽텍스(Montex), 르마리에(Lemarié), 메종 미셸(Maison Michel), 구센(Goossens) 총 여섯 개 공방은 각각 숙련된 노하우로 마법을 부리듯 아름다운 컬렉션 피스들을 완성했다. 2024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자수 공방이자 트위드 공방인 ‘르사주’. 1983년부터 샤넬의 변함없는 파트너로서 활약해온 곳으로 2002년에 하우스의 패션 공방에 합류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공방 르사주는 가브리엘 샤넬이 애정한 코로만델 병풍 모티프를 재해석해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자수를 선보였다. 코로만델 병풍의 다채롭고 풍부한 색감과 옻칠의 반사가 만들어내는 은은한 광택을 이용해 입체적이고 섬세한 트위드를 탄생시킨 것. 특히 코로만델 병풍 모티프의 플로럴 자수로 뒤덮인 드레스와 슈트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모두의 눈길을 끌었고, 구두 공방 ‘마사로’와 협업해 완성한 미드 카프 부츠는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켰다.
새로운 소재와 질감에 대한 연구에 특화된 자수 공방 ‘몽텍스’, 그들은 이번 쇼를 위해 꽃을 수놓은 브레이드 장식을 제작했다. 어둠 속 은은한 빛을 발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광 실과 음영 효과를 극대화하는 핸드 페인팅 기법은 어두운 서호위를 환하게 밝혔다. 섬세한 텍스처 기법은 안감에도 사용되며 미처 보이지 않는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았다. 매년 샤넬의 전 컬렉션에 장식을 더해온 깃털 및 플라워 장식 공방 ‘르마리에’는 이번 컬렉션에서 소재와 같은 톤의 깃털로 장식한 파스텔 톤 재킷을 선보였다. 제이드 그린 실크 소재에 다이아몬드 퀼팅 패턴과 플리츠를 장식한 재킷 위로 풍성한 마라부 깃털을 더해 더없이 우아한 룩을 완성했고, 라이트 블루 벨벳 패딩 위로 엠보싱과 아플리케 기법을 적용한 벨벳 플라워 장식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르마리에의 세심하고 정교하고 환상적인 터치는 전 컬렉션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시각적 다채로움을 선사했다. 르마리에 공방에 합류한 르뇽의 장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독보적인 플리츠 기법으로 명성 높은 르뇽의 장인들은 르마리에 장인과 함께 이번 시즌 다양한 시도를 펼쳤다. 르뇽이 플리츠를 넣고 르마리에가 스모킹 효과와 비드 작업을 한 실크 새틴 재킷은 서로 다른 기법이 만나 3D 퀼팅 효과를 냈다.
피날레 드레스 또한 이들의 작품이다. 선버스트와 오 보뇌르 데 담(Au bonheur des dames)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플리츠를 결합한 기법을 적용했는데,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남다른 노고가 들어가는 이 드레스는 세련된 로맨티시즘이라는 하우스의 디자인 코드를 적중했다. 창의적인 모자 공방 ‘메종 미셸’은 또 어떤가. 레더와 펠트 소재를 활용해 만든 챙이 좁은 오버사이즈 모자는 코로만델 병풍 속을 유랑하는 여행자가 된 기분을 선사했다. 마지막 공방인 ‘구센’. 브론즈, 수정, 우드 등 다양한 소재로 주얼리와 장식품을 제작하는 금세공 공방이다. 이번 컬렉션은 샤넬 아카이브 속 하트 모양 주얼리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뒷면에 수련잎 질감을 재현해 과거 가브리엘 샤넬의 캉봉가 31번지 아파트 테이블을 연상시키며 과거와 현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샤넬은 전 세계 예술가 및 예술 단체를 지원하고 격려하는 문화 후원자 역할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브랜드예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활동이 중요한 시대라고 보는데요.
그래서 전 언제든 샤넬과 기쁜 마음으로 협업한답니다.”
– 틸다 스윈턴(Tilda Swinton)
하우스와 10년 이상 인연을 이어온 틸다 스윈턴이 공방 컬렉션이 전하려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샤넬은 전 세계 예술가 및 예술 단체를 지원하고 격려하는 문화 후원자 역할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브랜드예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활동이 중요한 시대라고 보는데요. 그래서 전 언제든 샤넬과 기쁜 마음으로 협업한답니다.” 가브
리엘 샤넬은 1950년대부터 파리의 여러 공방에서 전통 공예 기술을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장인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지원했다. 수많은 미디어와 정보로 가득 찬 시대,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갈수록 공예 장인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
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도 묵묵히 물질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가치를 들여다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은 누군가 꼭 해야 하
는 일이 아닐까? 그런 이유에서 샤넬의 공방 컬렉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계속될 공방 컬렉션을 응원
하며, 그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동행에 힘찬 박수를 보내며!
- 사진
- 브랜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