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크네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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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문화재단의 일곱 번째 현대 공예전 <아라크네 아이 ARACHNE EYE>가 2024년 11월 27일부터 12월 12일까지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에서 열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느질에 뛰어난 여인, ‘아라크네’에게서 영감을 받은 이번 전시는 참여 작가 25명이 모두 여성이라 더욱 흥미롭다.

최성임

예술가의 작품은 삶에서 비롯된다. 7명의 연구진이 쓴 작가 비평 연구집 <집|몸|집>과 더불어 네 자녀의 글을 담은 책 <네 개의 사과와 하얀 테이블>을 발간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문득 만난 사소한 산업 재료로 설치 작업을 시작했으며, 이제는 아이들이 성장한 만큼 작업실을 따로 두었기에 그간 추구해온 집 안팎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다.

PE망, 플라스틱 공, 실로 만든 붉은색 설치 작품 ‘끝없는 나무’가 환상적이다. 여러 연작 중에서 이 작품을 출품한 이유는?
전시 주제와 이 작품이 일맥상통한다고 봤다. 거미의 실은 알을 낳아 키우는 집과 먹이를 잡아먹는 사냥터라는 양면성을 갖추고 있다. 나는 집을 화두로 오랫동안 작업해왔고, 이는 내가 생각하는 안팎의 개념과 다르지 않다. PE망은 쉽게 말해서 양파를 담는 망이다. 아파트 13층의 모기장 안에 내가 갇혀 있는 느낌, 작가로서 내 속에 내가 갇힌 느낌을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파망 설치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 연작의 제목이 ‘끝없는 나무’인 것은 모순이다. 나무는 성장, 탄생, 재생, 소멸의 의미까지 모두 담고 있는 존재다. 내 작품도 전시가 끝나면 일단 사라지는 것이며, 삶도 소멸이 있지만 내 작업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다른 작품으로 이어진다. 내가 죽어도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의미의 영속성과 염원을 담은 작품이다.

‘끝없는 나무(The Endless Tree)’. 설치, PE망, 플라스틱공, 실, 스틸 고리, 2024.

여러 색깔의 작품도 아름답지만, 특히 레드 컬러가 돋보인다. 처음에는 얼룩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느닷없이 발견되는 얼룩은 절정의 순간이다. 단풍이 물드는 것, 사과의 붉음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김치 국물, 레드와인의 붉은색이 일상의 긴장감을 준다. 엄마로서 피를 나눈다는 것은 음식을 함께 먹는 것처럼 나무와 비슷하게 아이를 낳으면서 출혈을 하고 결국 죽고,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것이다. 이 붉은색 작품은 거미줄 안에서 내가 낳은 알과 한집 식구다. 거미줄 안에서는 나로부터 비롯된 것만 살고 나머지는 다 죽는다. 이 붉은 집은 방어막이면서 공격을 해야 한다.

나무는 생명, 성장, 죽음, 재생의 과정을 드러내기에 탐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10년간의 탐구에서 약간의 답을 찾았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이 듦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예술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작가인가? 이 같은 많은 질문 중 하나이며, 질문을 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매일 질문을 하면서 거기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찾고 있다.

회화 전공자로서 설치 작업을 하게 된 이유는?
설치 작품은 정원 가꾸기와 비슷하다. 매일 노동력이 필요하고 주위 환경과 조화로워야 한다. 또 자체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질서를 부여해야 하고, 작업자와 타인의 동선을 고려해야 하고, 자연적 조건과 인공적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 인문학적 세계나 수수께끼 같은 미로를 넣을 수도 있다. 서울대 환경설계학과 조경진 교수가 평론을 써준 적도 있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시간이다. 어떻게 시간이 드러나는지 실험하는 중이고, 지금 이 순간을 느긋하게 보는 것이 작업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 작업의 재료는 시간이다. 시간이 많이 드러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빵 끈을 엮어서 만든 황금이불이나 공을 양파망 안에 넣는 작업을 하며, 시간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작품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한 개념의 작품이라서 연극과 공통점을 갖는다.

이준

현대인에게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주목하는 작가다. 작품을 통해 집단 사회 구성자로서의 현대인을 탐구하고 있는데, 작품 활동에 몰두할수록 그 의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한다. 2025년에는 스페인 빌바오 레지던시에 가서 3D 프린트를 배운다고 하니 새로운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여성의 노동력을 상징하는 직조와 바느질에서 영감을 받은 ‘여성 작가들의 단체전’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전시 주제 <아라크네 아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바느질과 직조 기법을 사용한 작가들의 전시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나는 중앙 공간에 단독으로 작품들을 설치했는데, 유리로 둘러싸인 전시장을 360도 돌아가며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 주제를 듣자마자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이 떠올랐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가족도 태피스트리를 했고, 거미줄로 실을 엮는 작품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 작가다. 나도 그녀처럼 마음을 담은 작업을 하고 싶다. 공예 작가뿐 아니라 미술가와 전시를 같이하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재미있었고,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 재료를 따뜻하게 만드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며 영감을 받기도 했다.

실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쓴다. 언제부터 실을 작품에 사용했고, 당신의 작품에서 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시아 여성에게 실은 평범한 재료지만 해외에서는 내 뿌리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전시 초대를 더 많이 받는다. 돌잡이 때 실을 잡으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외국인들이 흥미로워한다. 실은 나에게 한 사람의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실을 이용해 나와 현대인의 삶을 표현한다. 어릴 적 엄마가 버리는 이불을 가지고 놀라고 주면, 솜을 넣어서 인형을 만들곤 했다. 학부 때 회화과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평면으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두꺼운 실을 염색해 그림에 삽입하기 시작했고, 서도호 작가의 입체 조형과 클라스 올든버그의 크지만 부드러운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본격적으로 작품에 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오른쪽 위 붉은색 작품 | ‘인간의 무게(Weight of Human)’. 레진 위에 실, 스컬피. 설치, 2020.

‘인간의 무게’, ‘방관자’, ‘목격자’, ‘맹목’ 시리즈 등 현대인의 문제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런 관심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새롭게 관심을 가진 주제는 무엇인지?
여러 연작을 통해 현대인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예를 들어 ‘방관자’ 연작에는 해외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누가 날 도와줄 것인지, 사람들이 내 상황을 방관하지는 않을지 염려하는 마음을 담았다. ‘맹목’ 연작에서는 부모 자식 간에도 당연하지 않은 맹목적 관계에 대한 의문을 표현했다. 내 자신이 작품의 시작이지만, 뉴스나 드라마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신작에서는 집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재개발도 많고 전쟁도 겪었다. 우리 조부모님의 경우 고향이 개성이라 집을 두고 내려왔다. 이동이 가능한 집을 만들어서 각자의 추억을 소장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현대미술과 공예는 분리된 듯 보이지만, 공예는 미술가와 건축가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최근의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공예는 기능성 있는 심미적 작품이다. 모든 예술가는 여러 재료를 다루는 방법을 차용하고 있으며, 작가로서 전통 공예 기법이 흥미롭다고 본다. 나도 네덜란드 레지던시에서 도자를 배워서 깨진 도자기로 하나의 새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도 하고, 옻칠과 매듭도 배웠다. 전통 기법이 오히려 더 재미있다. 미술과 공예의 경계가 없는 시대가 왔다고 본다. 작가는 누군가 불러줘야 존재하는 것이다. 다채로운 시도를 계속해봐야 한다.

앞으로의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이번에 빌바오 레지던시에 가는데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게 되어 기쁘다. 다른 이들의 사연을 잘 채집하려는 목적도 있다. 소재를 찾기 위해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신작 ‘집’ 연작도 조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작품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니, 기대해주면 좋겠다. 모든 작품의 주재료가 되는 실을 한국에서 가져갈 건데, 현지에서 그 나라의 특색에 맞는 실도 구할 생각이다. 작품에 이국적인 색과 패턴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다.

김계옥

로에베 공예상 파이널리스트 선정과 더불어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창원 조각 비엔날레 등 굵직한 전시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작품의 시작이 된 ‘스킨(Skin)’ 개념은 ‘자아’로 깊어지고 있다.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같은 이중적 의미들이 분리·교차되며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 ‘보여지는, 보이는(seen, see)’에 대해 설명해달라.
불경한 작업으로 신의 노여움을 사, 거미로 환생해 영원히 거미줄을 짜게 된 아라크네의 전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라크네가 인간의 몸에서 거미로 변하는 과정을 그려보았다. 변화하면서 느껴지는 새로운 감각과 감흥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동물 되기’ 연구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된 것 속에서 삶을 전개한다는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변화하는 내 모습을 거울로 지켜볼 때, 거울 속의 나와 거울을 바라보는 나처럼 두 감각이 서로 교차하는 이중적 감정과 의미를 상상해본 것이다. 신체가 변화한다는 것은 고통일까, 평온일까? 이 작품은 스킨을 한 겹 벗겨서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하게 한 것이 콘셉트다. 내 피부의 기억과 감정이 새 공간과 교류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작품에 장신구를 덧붙인 건 거미가 알집을 품고 있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보여지는, 보이는(seen, see)’. 적동, 옻칠, 정은. 브로치, 2024.

무슨 계기로 직조와 바느질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를 발전시키고 있나?
‘세컨드 스킨’이라는 주제로 스킨 그 자체가 주얼리가 되는 작품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주얼리는 착용하고 생긴 자국이나 향기, 빛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로 신체를 장식한다는 개념이다. 비물질적 요소를 물질적 요소로 전환시켜 피부를 표현하고자 하면서, 뜨개질, 실리콘, 돼지 내장막 등의 재료와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천을 짜는 것이 스킨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금속 공예 전공자로서 얇은 금속으로 오랜 시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든 작품의 감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금속을 섬유처럼 직조하는 작업이 아름답다. 작품 세계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설명해달라.
‘세컨드 스킨’을 주얼리, 오브젝트, 설치 작업으로 진화시키는 중이다. 개념적인 ‘세컨드 스킨’에서, 몸을 감싸면서 변형되는 ‘래피드 스킨’,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프로텍티브 스킨’으로 이어진다. ‘프로텍티브 스킨’은 래피드 스킨을 한 꺼풀 벗겨서 공간에 펼쳐놓으면서 새로운 자아를 자각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내 작업에 여성성이라는 의미를 처음 부여한 이가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큐레이터 엘리자베스 아고이다. 그녀는 지난해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작가들의 대규모 전시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현대 미술〉을 준비하면서 내 작업의 스킨 개념이 자신을 지키는 프로텍티브, 보호색과 같다는 의미를 끌어내주었다. 직조 작품으로 거대한 힘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여성성을 의미했다고 본다. 그때 처음으로 여성성의 관점에서 내 작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전시를 할 때 여성, 공예가라는 틀로 내 작품을 구분 짓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공예는 메시지가 약하고 기술적이라고들 생각하는 것이 아쉽다.

2021년 로에베 공예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이것이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로에베 공예상은 나에게 작업을 계속하라는 선물이었다. 금속 직조 작업으로 파이널리스트가 돼서 그런지 지금까지 그 작업을 하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작품 스타일로 인해 공예 전시보다 현대미술 전시에 더 많이 참여하면서 작품에 내재한 담론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조금은 차분하게, 조금은 신비로운 공간 속에 들어온 느낌이면 금상첨화다. 그 속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순간적 경험의 감동을 느끼기 바란다. 나에게 ‘스킨’이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한다. 스킨은 내 작업의 큰 축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결국 나의 큰 숙제 같다. 스스로를 파악하는 것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고 좀 더 나은 작가가 되고 싶다.

김지민

아트 주얼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종의 운명이었다. 작품이 단순히 전통 공예 영역에 그치지 않고, 아트 주얼리라는 새로운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메시지와 감동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는 장신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자비와 뒤끝 사이’ 등의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다섯 작품 모두 <아라크네 아이>를 위해 새롭게 제작했다. 아라크네의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신을 모독한 휴브리스(Hubris)의 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신의 잘못을 폭로하고 권위에 저항한 용감한 여성으로 해석했다. 또한 아테나가 아라크네를 거미로 환생시킨 행위는 자비로움이 아니라 아라크네에 대한 원한의 표현이라고 봤다. 거미가 알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알집을 만드는 것처럼, 나 역시 얇은 한지를 겹쳐 리드미컬하고 견고한 거미알 집과 같은 형태의 장신구를 제작했다. 형태를 구축하는 반복적 행위는 마치 기억의 조각을 모으는 것처럼, 내 개인적 경험과 감정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완전한 비극(The Absolute Tragedy)’. 한지, 정은, 놋쇠. 브로치, 2024.

주얼리 작가로서 한지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색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색은 단순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중요한 언어이기 때문에, 그 색의 선택과 배치는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한지는 독특한 질감과 섬세한 곡선 표현에 굉장히 적합하다. 그 자체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텍스처를 지니고 있어 색을 입혔을 때 인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자체의 질감이 색을 더욱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만들어준다.

공예에 대한 국제적 트렌드를 발견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는 장신구를 공예로 분류하지만, 해외에서는 장신구보다 개념적이고 예술적인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유럽에서는 장신구가 예술적 창작물로 간주되며, 공예와 현대미술이 경계를 허물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정호연

작품을 통해 시간에 대한 개념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간성을 품은 가죽, 껍질, 종이, 메시, 오간자 등의 재료를 선택했다.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 초창기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2025년에는 유니버스 어스 갤러리에서 그리스 첫 개인전을 할 예정이다.

폴리에스터 메시, 오간자로 만든 작품 ‘변곡’에 대해 설명해달라.
21세기의 아라크네는 기계가 아닐까? 첨단기계가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없지만 수작업은 나름의 기를 전할 수 있다. 내가 즐겨 쓰는 재료는 동시대 아라크네의 직조성과 기계적 레디메이드로 대체 가능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반부조와 입체를 만드는 독창적 작업을 두 점 합체한 작품이 ‘변곡’이다. 신작에서는 그간 잘 쓰지 않았던 메탈릭한 질감을 사용했다. 비치거나 비치지 않은 작업이 동시에 존재하는 작품이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작품 세계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 것을 은유한 작품이다. 조형 장신구만이 줄 수 있는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챗GPT 시대에 손으로 만드는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기계의 힘이 필요하다면 빌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뭔가를 표현함에 있어서 빠르게 많이 만들어야 한다면 꼭 손으로 해야 할까? 과정에 의미를 둔다면 손으로 작업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예술은 정신에서 나온다. 액세서리와 조형 장신구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콘텐츠나 나만의 창조성이 없으면 이를 어떻게 작품이라고 할 것인가?

‘변곡(Inflection)’. 폴리에스터 메시, 오간자. 브로치, 2024.

시간이라는 무형의 개념을 관계, 흔적, 기억과 망각의 이미지로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아트 장신구를 시작한 이유가 소통할 수 있는 매체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표현한다는 것은 몸에서 시작한 것을 공간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시간 속에 관계라는 또 다른 주제가 있으며, 이제 나만의 시간에서 다른 쪽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프리랜스 에디터
이소영
포토그래퍼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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