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예술가, 곽소진

전여울

시슬리가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커리어를 지원하기 위해 제정한 ‘시슬리 젊은 작가상’이 한국에 출범했다.

미래로 연결되기 위한 시슬리의 발걸음, 제1회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작가 곽소진의 흥미로운 예술적 세계에 대하여.

‘시슬리 젊은 작가상’ 수상자 곽소진 작가.

“저는 약용 식물 요법이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던 시대에도 그 효력을 믿었습니다.” 시슬리의 창업자 위베르 도르나노(Hubert d’Ornano)의 말처럼 시슬리가 설립된 1976년만 해도 천연 식물 등을 화장품에 적용한 식물성 화장품은 거의 발명에 가까운 혁신적 콘셉트였다. 그리고 오늘날 시슬리가 프랑스를 넘어 5대륙 90개 이상 국가에 진출하며 세계적 화장품 기업으로 거듭난 데에는 이러한 도르나노 가문의 혁신가 정신이 큰 중심을 차지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이러한 혁신과 예술은 많은 공통점을 공유한다. 창의성과 상상력이 기반이 되는 정신 활동이라는 점, 오늘에 서서 내일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점에서 둘은 빈틈없이 서로 포개진다. 이 때문일지, 위베르 도르나노는 예술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달랐다. 폴란드 출신의 조각가 브로니스와프 크시슈토프와 함께 총 10점의 조각품을 제작하고, 이 중 2점을 시슬리 하면 떠오르는 향수 ‘스와르 드 륀’, ‘오 뒤 스와르’에 적용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시슬리의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예술, 둘의 만남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는데, 특히 2019년 제정한 아트 어워드 ‘시슬리 젊은 작가상’은 두 만남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작품 ‘휘-판’(2024).

파리의 개선문과 샹젤리에 부근, 시슬리가 이끄는 문화 재단 ‘트와 생끄 프리들랑(Trois Cinq Friedland)’이 자리한다. 시슬리가 예술 및 문화 사업을 지원하고 자선 활동을 펼치기 위해 설립한 재단은 2019년 파리국립고등예술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시슬리 젊은 작가상’을 제정했다. 파리국립고등예술원은 루이 14세가 설립한 로열 미술 아카데미를 계승하는 유서 깊은 교육 기관으로, 시슬리는 올해로 5년째 이곳 출신의 젊은 예술가 중 1인을 선정해 ‘시슬리 젊은 작가상’을 수여하며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의 커리어를 지원하고 있다. 화가 클레디아 프루니오(Clédia Fourniau), 이만 샤비-가라(Ymane Chabi-Gara) 등이 그간 어워드를 거쳐 갔으며, 대부분의 작가는 수상에 힘입어 세계적 갤러리와 협업하는 등 빠르게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까마귀 떼에 주목해 촬영한 작품 ‘검은 새 검은색’(2021).

한편 프리즈 서울의 론칭 등으로 한국이 국제 현대미술 현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프랑스에서 출범한 ‘시슬리 젊은 작가상’이 2024년 11월 한국에 첫 상륙했다.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급부상한 한국에 주목해 이곳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을 지원하고, 나아가 미술을 통해 프랑스와 한국 간 문화 교류에 앞장서고자 하는 것이 취지다. 한국판 ‘시슬리 젊은 작가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선발한다. 지난 11월 20일, 시슬리 글로벌 부회장 크리스틴 도르나노,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 임민욱, 두산 매거진 부회장 박혜원 등 10인의 심사위원단이 참여한 가운데 제1회 최우수 작가가 선발됐고, 그 영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1993년생의 젊은 작가 곽소진에게 돌아갔다.영화와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 작업을 시작한 곽소진은 2020년부터 구체적인 현장 리서치와 수행적 촬영을 기반으로 한 비디오 작업과 오브제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오가는 다매체적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고모의 죽음에 얽힌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단채널 비디오 작품 ‘달 닦기’(2021), 칠흑 같은 어둠 속 까마귀 떼의 자취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내며 검은색에 얽힌 다층적 시선을 제시한 2채널 비디오 설치작 ‘검은 새 검은색’(2021), 낙하산을 주요 매체로 펼친 퍼포먼스 ‘Para’(2024)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작가 및 큐레이터와 손잡고 재일 조선인의 마당극과 관련한 리서치와 협업, 공동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마당극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주목받았는데, 2023년부터는 일본 교토 히가시쿠조 지역에서 마당극이 전유된 방식과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역사를 연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넓고 보편적인 주제로 매끄럽게 확장하는 능력”과 “독특한 주제적 관심과 탄탄한 형식적 기반”, 이는 시슬리가 영 아티스트 곽소진에게서 채집한 예술적 가능성이다. 반가운 소식은, 지금 가장 흥미로운 예술적 세계를 펼치고 있는 곽소진의 이야기를 올해 상반기에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슬리 젊은 작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750만원과 2025년 상반기 서울에서 단독 전시회를 개최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퍼포먼스 ‘Para’(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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