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음에 남은 단 한 권의 책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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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 찾아온 전례 없는 낭보로 독서 열풍이 불었다.

다시 책을 읽어볼까 마음먹은 이때 궁금한 건 역시 책을 가까이 두고 일하는 사람들의 독서 목록. 수없이 많은 책장을 넘긴 이들에게, 올해 태어난 책 중 마음에 남은 한 권을 물었다.

<맨투맨>

최재영, 민음사
요즘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으로 흔히들 ‘에너지 뱀파이어’와의 빠른 손절을 제시하지만, 솔직히 궁금하다. 누가 그 낙인으로부터 진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맨투맨>은 자신과 친구들이 가진 ‘에너지 뱀파이어’적 면모를 유심히 들여다본 끝에 사랑과 존중을 보내는 소설이다. 모두가 도망치라고 외치는 그 관계에서 아무도 도망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바로 그 힘으로 서로 기대어 버티고 있기 때문. 지지와 응원이 아닌 서로 겨루며 맞부딪는 힘으로 이들은 삶을 버티는 중이다. 삶에는 반드시 그런 시기가 있다. 그 사실을 알아채버린 모든 이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권한다.
– 김지현(문학지 <릿터> 편집자)

<영화도둑일기>

한민수, 미디어버스
이 책을 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구하자마자 읽고서 마음이 뜨거워졌다가, 잊어버렸다. 책이 주로 다루는 기간인 코로나19 시기를 그새 잊은 것처럼. 저자는 ‘해적’으로서 영화를 다운로드하고 업로드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의 안팎을 가능한 한 상세히 밝힌다. 저작권과 아카이브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책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편집자로서는 편집과 출판에 대입해 읽게 되기도 했다. 과거를 현재화한 디자인 또한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한 생각을 더했다. 재미있고 즐거워서 ‘해적질’을 해왔지만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다는 저자는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다”고 적었다. 그렇게 수많은 책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잊힌다.
– 김뉘연(출판사 ‘워크룸 프레스’ 편집 주간)

<적산가옥의 유령 군산 특별판>

조예은, 현대문학
때로는 내용보다 책의 만듦새와 과정, 배경 등의 요소가 크게 다가와 단 한 권의 책이 될 때가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랬다. 이 소설은 국가등록문화유산,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에서 시작한다. 일명 ‘히로쓰가옥’ 근처에서 고교 시절을 보낸 작가는 평범한 관광지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런 이유로 군산의 책방들은 출간 전에 출판사에서 보내온 가제본을 먼저 읽는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작가와 출판사, 책방은 여러 논의를 거친 후에 군산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판으로 결실을 맺었다. 책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모두 목격해 더 마음에 남는 한 권이다.
– 임현주(책방 ‘마리서사’ 대표)

<생각의 기술>

코디정, 이소노미아
올해 가장 많이 회자된 ‘AI 시대’와 그에 필수적인 도구인 챗GPT 같은 기술들 속에서, 무엇을 판단하고 어떤 질문을 던질지가 점점 더 중요한 능력이 되고 있다. 우연히 읽게 된 코디정의 <생각의 기술>은 일상의 모든 일에 대해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특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AI 시대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와 질문의 기술을 익히고 싶은 이들에게 해법 같은 책이 되어줄 것이다.
– 최준란(한국외국어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다산북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을 떠난 시절에 쓴 미공개 에세이 모음집. 그는 사람을 세심히 관찰하고 자신만의 통찰을 재구성해내는 데 탁월한 사람이었다. 이 책의 첫 글인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 얇은 책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게 되리라는 것을. 어두운 시대에도 여전히 빛은 있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세계는 인간의 존엄을 약속할 것이다. 마음에 작은 불을 켜주는 책.
– 김겨울(작가)

프리랜스 에디터
홍수정
포토그래퍼
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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