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월 파리와 런던에서는 세기의 라이벌전이 펼쳐졌다.
아트바젤 파리와 프리즈 런던이 아주 근소한 시간차를 두고 막올 을린 올해, 어쩐지 승기는 ‘괴물 신인’으로 통하는 파리로 기우는 듯도 보인다. 서로 다른 매력을 입은 두 도시의 아트 위크를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횡단한 4인이 있다. 페어장에선 깐깐한 관객이 되어, 그 바깥에선 숱한 전시와 위성 행사를 호핑하는 소셜 버터플라이가 되어 달린 이들이 각자의 시선이 녹아든 리뷰를 보내왔다.
유리 궁전을 채운 명작들의 런웨이
밀물과 썰물. 오버투어리즘이 휩쓸고 있는 유럽에서 살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지칠 정도로 인파가 몰려드는 여행 성수기가 끝나가는 10월이면 매년 런던과 파리에서 ‘세기의 라이벌전’이 펼쳐진다. 올해는 ‘파리+ 파 아트바젤’에서 ‘아트바젤 파리’로 마침내 이름을 바꾼 ‘괴물 신인’의 등장으로 런던이 바짝 긴장했다. 런던 미술관들은 반 고흐, 클로드 모네,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걸출한 라인업으로 아트 위크를 꾸렸고, 한껏 초라해진 아트페어의 위용을 가리는 모양새였다. 10월 17일 VIP 초이스와 프리뷰 입장을 시작으로 개막한 아트바젤 파리는 신인답지 않은 막강한 면모를 자랑했다. 숲속의 아트페어인 프리즈와는 대조적으로 이들은 페어 장소로 유리 궁전을 선택했다. ‘그랑팔레’는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대형 전시장으로 무려 6,000톤의 강철을 사용해 완성한 파리의 랜드마크다. 이곳은 1세기 넘게 한 번도 보수되지 않았다가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샤넬의 후원을 받아 무려 4억6,600만 유로를 투입, 3년에 걸쳐 완전히 리모델링했다.
이번 페어에는 프랑스의 64개 갤러리를 포함해 42개국에서 195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작년 154개에서 크게 체급을 키운 셈이다. 긴 줄이 늘어선 오후 4시의 인파를 뚫고 페어장에 들어서자마자 유리 궁전의 위용은 즉물적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실내에서 조명의 힘을 빌려 고고한 모습을 자랑하던 작품들은 오후의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의 개방감과 고전적인 건물이 주는 매력도 컸다. 신진 화랑과 카페, 스폰서인 명품 브랜드들을 주로 배치한 2층의 발코니는 아트페어에서는 보기 드문 포토 스폿이 될 것 같았다.
부스를 둘러보며 든 첫인상은 ‘파리의 귀환’을 기념하듯 갤러리마다 최고의 작가와 작품을 들고 칼을 갈며 나왔다는 것이다. 퐁피두센터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전시 <초현실주의>의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등은 마치 페어의 주인공처럼 자주 보였다. 미술관급 작품들을 엄선한 컬렉션은 그야말로 급이 달랐다. 스타 작가의 최고 작품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보였다. 소위 8자리 숫자 작품(1,000만 달러 이상)의 존재 여부는 아트페어의 급을 나눈다. 아시아 페어에서는 아예 사라지다시피 한 8자리 작품이 이곳에서는 발에 차일 만큼 많이 보였다. 루이 비통 재단미술관 전시 주인공이 된 톰 웨슬만을 내세운 가고시안, 마크 브래드퍼드와 루이즈 부르주아 등을 앞세운 하우저앤워스,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빅터 만을 내세운 데이비드 즈워너는 힘을 잔뜩 준 모습이었다. 파리에서 열리는 행사의 호스트가 된 페로탕은 목이 좋은 자리에서 대표 작가를 총동원했다. 나아가 아트페어에선 보기 드문 야심 찬 기획 전시를 내세운 페이스갤러리는 여러모로 독보적이었다. 폴란드 화가 파울리나 올로프스카가 기획한 를 통해 작가 4인의 작업을 여성과 신비주의를 소재로 한 이야기로 펼쳐 보였다. 물론 이들도 첫날 완판을 기록했다. 컬렉터뿐 아니라 프리즈 런던을 패싱하고 파리로 온 갤러리도 꽤 보였다. 에쿼벨라, 글래드스톤, 마시모데카를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니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12월)에서 필립 거스턴의 ‘밤의 화가’(1979)가 2,000만 달러로 공식적인 최고가 판매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아트바젤 홍콩(3월)은 윌렘 드 쿠닝의 ‘Untitled III’(1986)로 900만 달러, 아트바젤 바젤(6월)은 조앤 미첼의 ‘Sunflowers’(1990~91)로 2,000만 달러의 판매 기록을 썼다. 프리즈 서울(9월)은 니콜라스 파티의 ‘커튼이 있는 초상’(2021)이 250만 달러, 프리즈 런던(10월)은 아실 고르키 ‘The Opaque’(1947)가 850만 달러의 기록을 발표했다. 이번 아트바젤 파리에선 줄리 머레투의 ‘Insile’(2013)이 950만 달러로 기록을 세웠으니, 이만하면 선두권에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바젤을 올해는 찾지 않은 대형 컬렉터가 많았던 것도 파리의 성공 비결이었다. 이들은 스위스, 영국을 패싱하고 파리를 택했다. 한 독일계 대형 화랑 디렉터는 “비자를 받아야 하는 영국을 패싱하고 파리행 티켓을 끊은 중국 큰손이 많았다”고 했다. 한 국내 화랑 디렉터는 “유럽과 미국의 올드머니들도 이번 첫 행사를 놓치지 않으려 빠짐없이 참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국내 갤러리 대표는 “만난 화랑들마다 표정이 밝았다. 판매도 기대보다 좋다는 반응이다”라고 말했다. 2022년 활황의 후폭풍으로 끔찍한 침체기를 통과하고 있는 미술계에서 모처럼 만난 긍정적인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미술 축제는 도시의 인상을 바꿔놓았다. 샹젤리제 거리를 아트바젤을 알리는 보라색 깃발로 물들였고, 관광객들과는 확연히 차림새가 다른 컬렉터들은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나야, 아트피플!). 아트바젤이 파리를 선택한 지 만 2년 만에 이 정도로 ‘폭풍 성장’을 한 비결은 파리라는 도시 자체의 힘일 것이다. 음식과 숙박, 쇼핑, 관광까지 만족시키는 가을의 파리는 분명 스위스 바젤보다 매력적이다.
파리의 약점도 물론 있다. 미국과 영국에 비하면 프랑스는 세계적 파워를 자랑하는 화랑의 숫자가 적다. 아트 위크 기간 동안 4개 전시를 동시에 연 페로탕을 제외하면 마레 지구와 마티뇽 지구의 갤러리 전시들을 두루 둘러보면서도 야심만만한 전시는 그다지 만나지 못했다. 가장 화제가 된 전시가 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한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연 제임스 터렐 전시였을 정도다.
런던이 자국 작가인 트레이시 에민, 게리 흄을 아트 위크의 주인공으로 민 것과 대조적으로 퐁피두센터에서 소개한 초현실주의 대표 주자인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오르세 미술관이 전시한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모두 1세기 전의 화가들이다. 국가적인 지원을 쏟아부어 연 아트 페어에서 자국의 작가들을 부각시키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남 좋은 일만 시키는 행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
현대미술 시장은 여러모로 프리미어 리그 축구와 비슷해졌다. 스타 작가들을 싹쓸이한 메가 화랑들은 점점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전시를 열고, 주요 작품의 가격은 100만 달러를 우습게 넘어선다. 이들이 주요 아트페어에서 돈을 쓸어 담는 동안 중소형 화랑의 지갑은 얇아지는 중이다. 고가의 작품을 살 수 있는 수요는 한정되어 있기에, 앞으로 화랑들은 아트페어 참가에도 선택과 집중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인해 조만간 아트바젤 파리가 원조 바젤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우려는 ‘오픈빨’이 걷힌 내년 2회 차 행사를 마쳐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리즈 서울도 첫 행사만큼은 전례 없이 화려하지 않았던가.
무엇이 파리 아트 위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는가
가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프리즈 서울(9/4~7)을 시작으로 프리즈 런던(10/9~13)과 아트바젤 파리(10/18~20)가 연이어 열리는 기간을 합치면 총 6주 남짓이다. 시차를 오가며 그 일정을 소화해본 사람이라면 축적되는 피로로 인해 한 번쯤 높게 솟은 부스에 걸린 작업들을 일그러진 모자이크처럼 느끼고, 도시의 고유한 매력에도 무뎌진 자신을 발견했을 법하다. 2022년 아트바젤이 프랑스 진출을 선언한 후 매해 서울, 런던, 파리 일정을 소화해온 나 역시 이런 현상을 피하지 못했는데, 올해 비로소 생각의 전환을 경험했다. 파리가 건넨 풍성함은 페어가 열린 그랑팔레 안뿐만 아니라 그 바깥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파리의 풍성함은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 세계 어디든 메이저 아트페어가 개최되는 기간이면 그 앞뒤로 아트와 디자인을 주제로 한 여러 전시 및 페어가 열리기 마련인데, 파리는 특히나 수준 높은 위성 행사를 자랑한다. 대표적인 위성 페어로는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파리 인터내셔널’과 ‘아시아 나우’, 그리고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파리 에디션을 기획한 ‘디자인 마이애미’를 꼽을 수 있다. 일전에 한 갤러리스트 친구가 ‘책임 없는 쾌락과도 같은 페어’라고도 언급한 파리 인터내셔널은 유난한 기대감에 서둘러 들른 곳 중 하나다. 19개국 75개의 이머징 갤러리로 구성된 올해의 에디션에서 유일한 한국 갤러리로 참가한 엔슬래시에이(N/A)는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는 정지윤과 김무영의 작업을 내걸었다. 사적·사회적 맥락 안에서 발생하는 모호한 감정 교류와 터부시되는 주제를 각각 기요틴, 담뱃갑, 송치가죽 등을 사용해 표현한 작업이 건물의 뼈대가 드러난 페어장 환경과 상응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반해 화폐박물관을 배경으로 아시아 현대미술가를 집중 조망하는 아시아 나우, 칼 라거펠트가 생전 20년간 거주한 18세기 양식의 대저택에서 열리는 디자인 마이애미는 파리 인터내셔널에 비해 정제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실력 있는 갤러리, 수준 높은 작업, 근사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일으키는 시너지 덕분에 활기찼다. 아시아 나우 10주년 기념 전시 의 일환으로 진행된 차웨이 차이의 참여형 퍼포먼스를 찰나로 놓친 것, 이탈리아 홈 브랜드 포르나세티 부스에서 바르나바 포르나세티를 마주쳤으나 끝내 인사를 건네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유럽을 기반으로 한 아트 및 디자인 행사이자 플랫폼인 테마(Thema)를 방문한 날에는 자칭 ‘노마드’ 작가인 쥘리에트 솜노레를 만나 그녀가 산책하는 길에 주운 나뭇가지에 숯과 사포질을 이용해 패턴을 형성하는 방법과 이후 그것을 고대 로마 기술에 따라 밀랍에 담가 조각하는 과정에 대해 들으며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그 산책에 동행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개인 혹은 기업이 평소 공개하지 않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개방하며 컬렉션을 소개하거나 흥미로운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이 도시의 아트 위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한 겹이기도 하다. 먼저 포 부아세리(Féau Boiseries)는 전시 <Making Memories>를 통해 다국적 디자이너, 현대미술가 및 공예가의 작업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의 공방을 한정 기간 공개했다. 당시 공방에서 1시간가량 진행된 프라이빗 투어는 그곳에 전시된 장-미셸 오토니엘, 오스카 무리요, 게오르그 바젤리츠와 같은 현대미술가에만 머물러 있던 나의 시야를 레베카 쾨르너, 피에트로 프란체스키니와 같은 컨템퍼러리 디자이너부터 수잔 아그롱, 피에르 샤로와 같은 근대 디자인 대가로까지 확장시켜주었다. 한편 이와는 달리 사적 서사가 가진 힘을 파리 기반의 컬렉터 미뇽 유의 집에서 체감하기도 했다. 실제 거주하는 집을 파리 아트 위크를 맞아 단기간 개방하여 운영한 전시에는 개인 소장품인 이우환, 구본창, 이배, 이슬기와 같은 한국 작가의 작업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취향은 그녀에게 컬렉팅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대화 끝에 알게 되었다.
어느 도시에서나 대형 아트페어 전후로 수많은 아트, 패션, 공예, 디자인 행사가 열리기 마련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하나라도 더 보고자 하는 욕심에 하루하루 체력과 소셜 에너지는 고갈되어갔지만, 그 결과 빠르게 안목을 키우는 동시에 소란한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지낸 지적 호기심을 다시금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와 원고를 마무리하는 지금, 10월의 파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아트페어 안팎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내년에 또 파리로 향하고 있을 내 모습이 벌써 눈에 선명히 그려진다.
이미래와 양혜규에 대한 짧은 단상
올해 10월 프리즈 런던이 열린 아트 위크에서는 유독 한국인이 많이 보였다. 양혜규와 이미래라는 한국 출신 두 여성 작가의 특별한 전시가 거의 비슷한 시기 런던에서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세계 아트 신에서 한국 작가의 약진은 더는 대단한 흥분으로 가득 찬 이슈로 와닿지는 않는다. 올해 4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그랬고, 10월 프리즈 런던과 아트바젤 파리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이름과 전시가 줄을 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타국에서 한국 작가의 전시를 목도하는 일은 각별하다. 예술은 올림픽처럼 국가전이 아니라고 되뇌고는 하지만, 자신과 국적이 같은 예술가와 갤러리를 마음으로 응원하고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비가 쏟아지는 런던의 전형적인 날씨 속에서 테이트모던으로 향했다. 과거 화력발전소였던 거대한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메인 홀. 과거 4층 규모의 높이에 거대한 터바인 기계들이 줄지어 있던 이 광활하리만큼 커다란 공간을 채우는 설치 전시 시리즈 <현대 커미션>의 올해 주인공은 이미래였다. 1988년생인 30대 중반의 그녀는 2000년 첫 번째 터바인 홀 아티스트인 루이즈 부르주아 이래로 이 공간을 선점한 역대 최연소 아티스트로 기록됐다. 7m 길이의 거대한 ‘터빈’을 중심으로 작가가 일명 ‘피부(Skin)’라 부르는 찢어진 직물 조각들이 49개의 금속 체인에 걸려 천장으로부터 늘어뜨려진 장면은 ‘과연 이미래!’라는 감탄사를 불러일으켰다.
이미래 작가는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벅찬 소감을 밝혔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받아 들고 수없이 리서치했어요. 과거 광부들이 갱도에 들어가기 전 개인 소지품을 도르래를 이용해 천장에 매달아 보관하던 탈의실 사진이 결정적이었죠.”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 어린아이부터 장년층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 기괴하면서도 신비롭고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한 채 올려다보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관찰했다. 인간의 취약성, 새로운 신체와 정체성의 생산 등의 주제를 꾸준히 탐구해온 작가의 결정적 전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쯤 되니 당연히 작가에 대해 궁금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싣고 싶어 하는 미디어가 많았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작가는 (적어도 한국 매체와는)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런던을 찾은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인터뷰는 포기한다고 치고 작가의 포트레이트 사진조차 부재했기 때문이다. 홍보용으로 나온 건 몇 년 전부터 사용해온 공식 프로필 사진뿐이었다. 사실 이미래 작가는 웬만해선 보도용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지 않는 작가로 이미 유명하다. 지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선정된 당시, 사진 촬영은 하지 않겠노라 미리 양해를 구했다며 베니스까지 날아와 작가의 모습을 촬영하길 원한 한국 기자단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적도 있다. 작가가 어떤 이유로 사진 촬영을 기피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태도와 신조가 개인적으론 꽤 당당해 보였고 마음에 들었다.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 예술가가 그녀뿐만은 아니다. 독일 작가 한스 하케가 대표적이다.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예술계의 개인숭배를 거부하기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담긴 사진 촬영은 하지 않는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사실 기자들은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이고, 작가 또한 작품으로 말할 뿐 사진 촬영이나 인터뷰는 부차적인 일이라는 건 맞다. 그 둘 사이에서 요구와 필요를 조율해야 하는 갤러리스트들이 조금 애처롭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이미래의 전시, 또 이미래 그 자체가 남긴 야심참이 채 가시지 않은 다음 날, 사우스뱅크 센터 단지의 헤이워드 갤러리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양혜규 작가의 대규모 서베이 개인전 <Haegue Yang: Leap Year> 가 이제 막 오픈을 마친 참이었다. 이번 전시는 서울, 파리 및 홍콩에서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주요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며 차세대 아시아 큐레이터로 떠오른 융 마의 진두지휘 아래 양혜규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온 작가의 다면적이고 다학제적 작업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데 평소 작가를 좋아하던 입장에선 대단히 반가운 전시였다. ‘광원 조각’, ‘소리 나는조각’, ‘중간 유형’, ‘의상 동차’, ‘황홀’, 블라인드 설치작 등 연작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대표작을 하나하나 살펴본 후의 대미에는 커미션 신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목은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를 살아낸 작곡가 고(故) 윤이상의 음악 ‘이중 협주곡’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각기 다른색상과 구조적 형태가 다채로운 블라인드, 무대 조명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졌다.
관람을 마친 후 양혜규 작가와 작은 간담회를 가졌다. 그녀는 말했다. “만족에 가까운 전시입니다. 저의 예술 세계를 잘 이해하고 충분히 준비된 기관을 신뢰하고 이들에게 온전히 맡겼다는 점에서요. 일부 미디어의 혹평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그 정도로 자신감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크리틱이란 다양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잖아요.” 전시 소식과 함께 현지 분위기와 평을 실어야 하는 기자들이 오프닝 직후 게재된 현지 언론 기사를 확인하고선 혹평 기사를 보았는지 묻자 나온 또 한 번의 솔직하고도 당당한 대답이었다. 사실 해당 신문은 이미래 작가에게도 유난히 혹독한 비평을 실었다. 특이하게도 전시 기사에 마치영화 리뷰처럼 별점을 다는 형식이었는데 매우 적은 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런던에서 두 여성 한국 작가의 전시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롤랑 바르트는 <에세이 작가의 죽음>에서 작가의 개인적 배경, 의도 또는 진술이 독자의해석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예술계에서도 적용되어 바르트를 지지하는 이들은 비평가와 예술가 모두 예술가의 삶이나 말에 초점을 맞추면 예술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해석이 제한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한 명의 예술가에 대해알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인스타그램 계정부터 확인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 작품과 예술가. 이들을 둘러싼 뮤지엄과 갤러리,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 후원자와 컬렉터, 언론과 대중. 각 개체들이 융화되어 만들어내는 환호와 비평과소음들. 이 덕분에 예술은 더 흥미롭다. 그렇기에 양혜규 작가의 대답에서 반짝 느낌표가 스쳤다.
어느 갤러리스트가 런던에서 유튜브만 본 건에 대하여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 프리즈 런던이 열리는 기간 동안 나는 녹아웃과 번아웃이 섞인 일종의 대혼란 상태를 경험했다. 현재 내가 디렉터로 몸담고 있는 갤러리 ‘실린더’는 올 한 해 빼곡한 전시 및 이벤트로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올 초 3월 홍콩에서 열린 ‘서퍼 클럽’을 시작으로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치른 두 페어인 ‘리스테’와 ‘바젤 소셜 클럽’, 9월 ‘프리즈 서울’을 거친 뒤 바로 10월 런던에서 참가한 페어 ‘마이너 어트랙션즈’와 ‘프리즈 넘버 나인 코르크 스트리트’에서의 전시까지. 물론 이 긴 여정의 중간중간엔 실린더에서 기획해 펼친 다수의 전시도 있었다.
말 그대로 실린더의 첫 해외 프로그램이었던 홍콩 서퍼 클럽에서 나는 내 미래의 사교성을 가불로 결제해 온갖 파티를 다니며 갤러리스트로서의 소통 능력을 극대화하려 했다. 그리고 이 관성을 이용해 바젤로 향했고, 마라톤 같던 일주일짜리 아트페어인 ‘리스테’를 진행하며 이 기간 동안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이벤트에 참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갤러리 프로모션의 최대치를 달성하고 왔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10월 런던에서 치를 두 개의 해외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이 구간만 넘기면 뭔가 올해 첫 평온이 찾아올 것만 같았지만, 이것은 나의 아주 큰 오산이었다.
올해 10월은 아트계에 있어 꽤나 독특한 달이었다. 아트바젤 파리가 그랑팔레에 처음 입성하는 때였고, 동시에 이미래 작가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터바인홀 전시, 양혜규의 헤이워드 갤러리 서베이 쇼, 정희민의 타데우스 로팍 개인전까지, 한국 작가의 규모 있는 전시들이 런던에서 오픈하는 달이었다. 나는 이 거대한 이벤트들을 포함해 런던에 체류하는 마지막 날까지 수많은 외부 일정을 잡아놨지만, 이윽고 한계를 맞은 나의 체력과 바닥난 소셜 에너지, 그리고 10월 중순이 다가오니 시작하지도 않은 아트바젤 파리의 사전열기 등에 종합적으로 ‘삶아져’ 나의 정신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어딘가로 증발한 상태였다. 이렇게 나는 맨정신으로 기절한 것처럼 런던 일정의 절반을 날렸다. 그러다 거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 즈음 매일 호텔방에서 보던 유튜브 쇼츠도 지겨워지고, 서울로 돌아가면 바로 전시가 예정되어 있기에 조금 정신을 차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나의 궤적을 점검하면서 훗날 입성 목표를 갖고 있는 두 페어인 프리즈 런던과 아트바젤 파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올해 여러 차례 해외를 오가며 과거 프리즈 런던과 아트바젤 파리에 동시에 참여했던, 혹은 처음으로 참여 예정인 갤러리스트들로부터 경험담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했을 때, 10월 거의 동시에 개최되는 프리즈 런던과 아트바젤 파리를 향한 미술 관계자들의 관심도가 슬며시 후자에 기울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흐름에 대한 대응일까? 프리즈 런던은 작년부터 런던에서 떠오르는 도메스틱 갤러리들을 페어에 입성시키며 포커스 섹션의 완성도를 높여 꾸려왔고, 올해부터는 작정해 포커스 섹션에 참여하는 런던 갤러리스트들의 근사한 화보를 프리즈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한발 더 나가 올해 포커스 섹션을 입구에 배치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내 통계에 따르면(공신력 없음) 이렇게 변화를 꾀한 프리즈 런던이 연식이 얼마 안 된 아트바젤 파리와 맞붙었음에도 내 주변 국적 불문의 미술 관계자들은 런던을 패싱해 파리에 가거나 파리를 먼저 들렀다가 런던에 오는 등 이미 새로운 형태의 동선을 짜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트바젤 파리가 생기기 전, 한 해 페어의 정점은 6월엔 아트바젤 바젤, 10월엔 프리즈 런던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프리즈 런던은 오랫동안 10월의 유일한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리즈 런던의 근접 거리까지 다가온 아트바젤 파리의 짧고 빠른 펀치는 나름의 유효타로 작용했고, 여전히 굳건하지만 그 존재감으로 인해 프리즈 런던은 조금은 현기증을 느꼈을 법하다. 또한 아트바젤이 6월 바젤, 10월 파리, 12월 마이애미 그리고 3월 홍콩으로 이어지는 이상적인 체인을 구성했다면, 그에 반해 프리즈는 작년 아모리 쇼와 시카고 엑스포를 인수하며 모회사가 집중할 수 있는 자회사 페어의 개수가 많아짐에 따라 에너지가 산만하게 분산된 듯 보였다. 특히 프리즈 서울과 연계해 생각해본다면, 9월 프리즈 서울과 10월 프리즈 런던이 시기적으로 너무 겹쳐 있고, 물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관람객의 분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 역시 아쉽게 다가왔다.
물론 두 페어 중 어느 한 특정 페어가 절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2022년 아트바젤의 파리 론칭과 그 후속타인 그랑팔레 입성과도 같은 기념비적 사건의 나열은 말 그대로 조금은 느슨해진 페어 신에 유의미한 긴장감을 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프리즈 서울에 참여했기에 아트바젤보다는프리즈에 조금 더 친숙함을 느끼지만, 올해 프리즈 런던만을 놓고 봤을 때 페어 자체의 매력보다는 같은 기간 열린 한국 작가들의 대규모 전시가 그나마 한국에 있는 미술 관계자들을 런던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내년 프리즈는 프리즈 서울에서 런던으로 이어지는 9~10월의 트래픽 전투에서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다양한 손님을 유치할 전략을 짤지, 그리고 아트바젤 파리는 강한 임팩트를 전한 올해에 이어 어떻게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해갈지가 기대된다. 그런 점에서 내년에는 체력 관리를 좀 잘해서 런던과 파리 둘 다 여유롭게 방문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참여 갤러리로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 프리랜스 에디터
- 김슬기, 이승민, 강보라, 노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