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가득한 손가락질보다 포용하고 연대하는 힘은 더 세다.
그렇기에 전 세계 영화계의 건강한 여성 커뮤니티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WIF 시상식’이 존재한다. 막스마라가 후원하는 2024년 ‘WIF 시상식’이 지난 10월 말 미국 LA에서 개최됐다. 시상식의 꽃으로 꼽히는 ‘막스마라 페이스 오브 더 퓨처 어워드Ⓡ’의 수상자이자 라이징 배우 조이 킹(Joey King)이 지금 행동하는 힘에 대해 말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에요. 다소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으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어느 날이었어요. 그때 저는 물방울무늬 우비에 <라이온 킹> 캐릭터가 그려진 잠옷 셔츠, 빛바랜 주름치마,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줄무늬 양말을 입고 있었죠. 무엇 하나 조화롭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아침 식사를 하던 엄마와 두 언니는 저를 보고 멋지다며 엄지를 치켜올렸어요. 돌이켜보면 저의 인생에는 이런 여성들이 늘 곁에 있었던 것 같아요. 건강한 방식으로 자기를 수용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 여성들 말이죠.” 지난 10월 24일, 미국 LA의 더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우먼 인 필름(WIF) 어워즈’ 시상식에서 연단에 선 배우 조이 킹(Joey King)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녀의 한 손에는 한 해 동안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젊고 재능 있는 여성 배우에게 수상하는 ‘막스마라 페이스 오브 더 퓨처 어워드Ⓡ’의 트로피가 쥐어져 있었다. “네 살에 처음 연기를 시작해 스물다섯을 맞은 지금까지 저는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일하는 다양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험난한 현장에서 스스로를 옹호하는 법,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법, 우아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법을 가르쳐줬죠. 저를 스쳐 간 제 인생의 모든 여성은 오늘 여기에 제가 있는 유일한 이유일 겁니다. 바로 이 상을 안게 된 유일한 이유죠.”
‘WIF 어워즈’는 매해 영화 및 TV 산업에서 여성의 역할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뛰어난 여성이나 여성 그룹을 선정하는 시상식으로, 1997년 창설 이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제인 폰다(Jane Fonda),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젠데이아(Zendaya) 등 당대의 아이코닉한 여성들과 영예로운 순간을 함께해왔다. ‘WIF 어워즈’는 1973년 미국 LA에서 스크린 산업의 성평등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인 ‘우먼 인 필름(WIF)’이 주최하는 행사다. 51년 전 스크린 산업 전반에 여성 커뮤니티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절 설립한 WIF는 그간 멘토링, 강연, 자금 지원, 법률 보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스크린계의 여성 창작자를 위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며 할리우드에서 성 불공평을 해소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 통해왔다. 2013년부터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아넨버그 포용정책센터 등과 협력해 발간하고 있는 다양성 보고서, 팬데믹 기간 실직 여성을 위한 모금 활동의 일환으로 전개한 소셜미디어 캠페인 ‘Hire Her Back’, 현직 TV 작가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창단한 컨소시엄 ‘TTIE’ 등 실제 이들의 발자취는 스크린의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경계 없이 이어져왔다. 그리고 2003년, 세계적 패션 하우스 막스마라가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위해 WIF를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나서며 WIF를 대표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WIF 어워즈’는 보다 넓은 계층의 오디언스로부터 지지를 얻는 축제의 장으로 거듭났다.
전 세계 영화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최전선에서 노력하는 여성을 기리고 축하하는 자리인 ‘WIF 어워즈’, 이 시상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막스마라 페이스 오브 더 퓨처 어워드Ⓡ’ 수상자다. 한마디로 ‘내일의 여성’에게 수여하는 이 상을 올해는 1999년생의 젊은 배우 조이 킹이 거머쥐었다. 4세에 TV 광고로 데뷔한 조이 킹은 우리에게 넷플릭스 시리즈 <키싱 부스>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엘’로 익히 알려진 얼굴이다. 넷플릭스 최고의 흥행작으로 꼽히는 <키싱 부스>가 세 번의 시리즈를 거듭하며 그야말로 조이 킹은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는데, 이 공전의 히트작 이후 펼쳐진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녀가 단순히 하이틴 스타에 머물지 않고 배우이자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달려온 흔적이 엿보인다. 특히 조이 킹이란 배우의 가능성을 가장 높이 알린 작품으로 2019년 공개된 8부작 드라마 <디 액트>를 꼽는 이들이 많다. 2015년 미국 미주리주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뮌하우젠 증후군(병이 없는데도 아프다는 거짓말이나 자해를 통해 타인의 관심을 끌려는 증상)을 자녀에게 투영해 학대를 일삼은 엄마 아래 자란 딸 ‘로즈’를 완벽히 연기해냈다. 캐릭터와 자신 사이의 틈을 없애고자 사흘마다 삭발에 가깝게 머리를 깎고, 가짜 이빨을 착용하고, 7년에 걸친 이야기를 압축해 극에 풀어낸 만큼 회차마다 목소리에 변화를 준 조이 킹은 이 작품으로 에미상, 골든글로브상, 미국배우조합 시상식 등에 차례로 노미네이트됐다. “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캐릭터에 끌리는 것 같아요. 인간은 웃기기도 슬프기도 하고,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죠.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고요.” WIF 시상식이 치러진 직후,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 조이 킹은 말했다.
2024년은 조이 킹이 더 넓고 깊은 보폭으로 종횡무진 달리며 자신의 이름을 더욱 견고히 한 해다. 올해 개봉한 영화 <가족이라서 문제입니다>, <슈퍼배드 4>는 모두 북미 흥행 1위를 달성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 때문에 흩어진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대작 드라마 <행운은 우리에게>는 올해 3월 공개와 동시에 비평가들의 찬사를 끌어냈다. 나아가 9월 개봉한 영화 <어글리>에선 주연 및 제작 총지휘를 맡으며 배우뿐 아니라 젊은 여성 제작자의 길도 개척 중이다. “지난 20년 이상 배우로서 이 업계에 몸담을 수 있어서 정말 운이 좋았다고 느껴요. 지난 시간들 위에 서 있는 지금은 한 작품의 처음과 끝을 모두 책임지는 일에 좀 더 매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하고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제작자로서의 도전이 훗날 저를 어디로 이끌지 너무 기대돼요. 이번에 ‘막스마라 페이스 오브 더 퓨처 어워드Ⓡ’를 수상했지만 저는 결코 스스로를 리더나 한 세대를 대표하는 얼굴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최근 배우에서 제작자로 도약한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이런 말은 전하고 싶어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게 된 최초의 불꽃을 잃지 말라는 것. 거절당하거나 과소 평가받는 순간을 마주할지언정 자신이 하는 일의 기쁨을 잃지 말고 이겨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시계를 저 먼 과거로 돌려 조이 킹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아역 배우로서 아주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커리어 초반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여성이 불리한 위치에 처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어요. 10대를 지나 이러한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나니 여성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두 배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지난 시간 여성들이 이뤄낸 놀라운 발전을 보면 정말 기쁘지만 지금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조이 킹의 말처럼 미투 운동, 페미니스트 운동 등을 계기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성평등을 위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생겨나긴 했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 2023년 WIF가 발행한 성평등 보고서 ‘The ReFrame Report On Film’에 따르면 2019년에서 2022년 사이 장편 영화 제작 시장에서 여성 창작자의 수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글로벌 최대 규모의 콘텐츠 평점 사이트인 ‘IMDb’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이 보고서는 2억 명 이상 사용자의 페이지 뷰를 추적해 한 해 가장 인기 있는 영화 100편의 목록을 선정하고, 이에 참여한 여성 작가, 감독, 프로듀서 등의 수를 추산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27명, 2020년 29명, 2021년 28명, 2022년 29명의 여성 창작자가 핵심 역할로서 작품에 참여했다. 시간이 흘러도 영화계의 성비 불균형은 지속되고 있으며, 여성이 설 자리는 있어도 여전히 파워 테이블에 여성의 자리가 적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평등을 위해 앞장서야 할 때가 따로 있지 않음을, 포용적인 커뮤니티를 위한 노력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어야 함을, 조이 킹도 말한다. “여성들은 수백 년 동안 ‘같은’ 사회적 문제에 맞서 싸우며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해왔어요. 어쩌면 여성 문제에 있어 ‘시제’는 없는 듯 보이죠. 그간 여성 커뮤니티를 둘러싸고 큰 진전이 있었지만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 완벽에 조금씩 다가가기 위해서라도 지금, 모두가 포용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바라요.”
- 사진
- COURTESY OF MAX MARA,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