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조선희와 친구들이, 성수동 낡은 건물에 ‘집’에 관한 각자의 시각을 풀어놓았다.
“집은 나에게 열네 살에 잃은 ‘아빠’다. 5남매를 가진 장사하는 어머니 덕분에 이집저집 얹혀 살았기 때문일까? 내 사진들 속에 소박한 상점이 달린 집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충분히 눈에 드러나던 어느날 나는 그것이 나의 노스탤지어임을 깨달았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빠가 있을, 집들을 나는 하나씩 지었다.”
<지PPP>이라는 제목의 전시 오픈을 앞두고 사진가 조선희가 보내준 짧은 글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아니, ‘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우스와 홈. 물리적인 집과 정서적인 집. 이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이 얽히고설켜서 강렬하거나 은은한 감정으로 우리 안에 자리잡는다. 11월 14일부터 30일까지 성동구 동일로 79에서 열리는 <지PPP>전은 사진가, 건축가, 화가, 디자이너 등이 집에 관해 각자의 해석과 시선을 펼쳐놓은 전시다. Place, People, Play라는 문구가 부제처럼 붙어있는데, 암호명 같은 전시 제목은 ‘집’이라고 읽으면 되겠다. 조선희가 선보이는 사진들 속 집은 어느 황량한 지대에 놓여있다. 그런데 건물과 하늘의 색감은 태양빛을 한껏 받은 것처럼 선명하고 진하며, 사진이 담긴 액자는 황량함과는 다르게 화려하다. 이는 실재하는 집과 풍경에 조선희가 자기만의 터치를 하여 실재하지 않는 풍경을 만든 것이다. 열네 살 소녀가 잃은 아빠처럼 열렬한 그리움으로 자리잡은 무엇. 조선희의 집 사진은 보금자리를 찾아 떠돌았던 시간과 예쁘고 빛나는 앞날이 포개진, 그리고 존재하는 집이지만 실상은 꿈의 집이기도 한, 집에 관한 우화다.
조선희
전시장에서는 참여 작가들이 각자 집에 대해 연상하고 해석해 내놓은 재미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건축가 조병규는 전시가 열릴 건물과 공간에서 받은 인상으로 시를 써서, 그 원고로 도배한 방을 차렸다. 설치 미술과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김마저는 곤충의 머리, 가슴, 배를 형상화한 책장을 만들었다. 건축과 조경을 하는 유승종은 집 속 정원을 만들었는데, 레버를 돌리면 해가 뜬 풍경과 비 내리는 풍경을 연출할 수 있는 식이다. 사진가이자 텐트 메이커인 안형준의 텐트는 ‘집 안의 집’이 되어 노랫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참여 작가는 총 13명이다.
조병규
김마저
유승종
안형준
집을 말하는 전시가 폐허 같은 공간에서 열리고 있다는 점도 재밌는 포인트다. 워낙 낡은 건물인 <지PPP>의 전시장은 전시가 끝나면 리뉴얼 공사에 들어간다. 성수동은 서울에서 꽤 독특한 지역이다. 공장 지대에서 상업과 예술이 뒤섞여 번화하는 동네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그 흥미로운 에너지를 발산한다. 전시 오프닝 날, ‘오래된 것’의 하나였던 성동구 동일로 79 건물에 새로운 작품과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자리에서 전시에 참여한 모든 작가가 모여 커다란 한지에 점을 찍고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이 간략한 퍼포먼스는 낡은 집을 떠나보낸 후 이제 새 집이 태어나길 바라는 사람들의 의식 같았다. 물리적인 집은 언젠가 낡고 소각되지만, 새로운 꿈의 집은 그렇게 마음 속에서부터 지어진다.
강숙
모승민
박예지
아누타
이승호
조한재
최민욱
허병욱
전시명 : <지PPP> Place, People, Play
전시 기간 및 장소 : 11월 14일부터 30일까지, 성동구 동일로 79
참여 작가 : 조선희, 강숙, 조한재, 아누타, 안형준, 모승민, 이승호, 김마저, 유승종, 조병규, 허병욱, 최민욱, 박예지
- 포토그래퍼
- 조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