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과 발레의 100년에 걸친 우정

김자혜

파리국립오페라의 댄스 시즌 오프닝 갈라를 후원하고 전 세계 무용 학교와 축제를 지원한다.

가브리엘 샤넬과 무용계의 우정은 한 세기를 지나 지금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발레에 관한 발레

2024-25 댄스 시즌 오프닝 갈라의 <워드 포 워드(Word for Word> 공연 장면.
댄스 시즌 오프닝 갈라가 개최된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전경. 향기로운 꽃이 가득 장식된 공간 가운데 설치된 얇은 커튼. 거기에 발레 공연 영상이 상영되었다.

샤넬을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를 누빈다. 지난 10월 1일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열린 파리국립오페라의 댄스 시즌 오프닝 갈라에서 샤넬은 마이칼 스트로마일(My’Kal Stromile)의 발레 <워 드 포 워드(Word for Word)>의 의상을 맡았다. 샤넬과 파리국립오페라단 간의 대화를 통해 탄생한 무대 의상을 입은 다섯 명의 무용수가 공연을 펼쳤는데, 샤넬은 이번 공연을 위해 가브리엘샤넬이 좋아했던 플로킹 원단을 연상시키는 엠보싱 실크 자카드를 개발했다. 독특한 질감의 원단 위에는 카멜리아와 더블 C 로고, 체인 모티프 등 샤넬 하우스의 코드가 더해졌다. 남성 무용수들은 샤넬의 재킷을 재해석한 베스트를 타이츠에 매치했고, 여성 무용수들은 얇은 새틴 오간자 소재의 튤 튀튀를 입었다. 캉봉가 31번지의 전담 아틀리에에서 만든 브레이드로 라인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남성 무용수 의상의 앞면과 여성 무용수 의상의 뒷면은 오픈워크 골드 주얼 장식
버튼으로 장식되어 무대 위에서 빛났다. “의상의 컬러, 질감, 장식은 이 작품의 시각과 주제 요소를 강조할 수 있도록 주의 깊게 선정했습니다. 블랙과 핑크의 대비는 이번 작품의 핵심 주제인 전통과 변화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죠.” 마이칼 스트로마일의 말처럼, 이번 작품은 발레의 전통과 새로운 해석을 이야기한다. 엄격한 발레 규범에 충실하면서도 미세하게 변형된 움직임으로 발레의 미래를 모색하는 것. 그리고 의상은 그 의미를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여성 무용수들이 입은 소프트 핑크 컬러 의상은 고전적인 우아함을 연상시키고, 골드 악센트는 클래식 무용수들의 높은 숙달도를 보여준다. 반면 남성들의 블랙 룩은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움직임에 힘과 무게감을 실어주고, 골드 컬러 장식은 우아하고 정확하게 무용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2024-09-24 Chanel, Savoir-Faire, Opéra Garnier, essayages étoiles
남성 무용수를 위한 블랙 의상. 샤넬의 재킷을 재해석한 베스트에 브레이드와 더블 C 로고가 더해졌다.
2024-09-24 Chanel, Savoir-Faire, Opéra Garnier, essayages étoiles
여성 무용수를 위한 오간자 튤 튀튀. 브레이드로 라인을 강조하고 골드 주얼 버튼으로 장식했다.

의상의 질감 또한 안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볍게 공중에서 흩어지고 부드럽게 흐르는 튀튀, 그리고 날렵하고 날카로운 움직임을 강조하는 베스트가 그렇다. 모든 의상은 무대 위에서 ‘의상’에 머물지 않고 ‘의미’가 된다. 안무에 시각적 풍성함을 더하는 동시에 부드러움과 강함, 전통과 혁신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며 작품의 주제인 ‘절충과 진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샤넬과 함께 춤을

샤넬과 춤의 관계를 말하려면 긴 세월을 거슬러 1913년의 어느 날로 돌아가야 한다. 가브리엘 샤넬이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안무를 맡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보고 충격에 빠진 바로 그 순간! 당시 니진스키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발레단 ‘발레 뤼스(Ballets Russes)’ 소속 무용수였는데, 이후 디아길레프를 만나 친구가 된 가브리엘 샤넬은 그를 후원하고 의상을 제작해준다. 그가 <봄의 제전>을 재연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을 주어 1920년에 재상연될 수 있도록 한 것도 가브리엘 샤넬이었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1924년, 발레 뤼스가 공연하고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 (Bronislava Nijinska)가 안무를 담당한 <르 트랑 블루(Le Train bleu)> 공연에서 탄생한다.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한가로운 부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의 크레딧에는 깜짝 놀랄 만한 이름들이 올라 있다. 대본은 장 콕토, 작곡은 다리우스 미요, 무대 장식은 앙리 로랑스, 무대 장막과 프로그램은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의상은 가브리엘 샤넬이 맡았다. 이 작품에서 가브리엘 샤넬은 주인공들에게 일반적인 무대 의상을 입히지 않고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의상을 입혔다. 일상적이고 현대적이고 기능적인, 전에 없던 놀라운 무대 의상이었다. 이후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하고 조지 발란신이 안무를 맡은 <아폴로 뮤자게트(Apollon Musagète)>부터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구상한 <바카날(Bacchanale)>에 이르기까지, 샤넬은 꾸준히 발레 의상을 제작했다. 가브리엘 샤넬의 계보를 이어 칼 라거펠트 역시 안무가와 함께 일하기를 즐겼다. 2009년, <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를 위해 엘레나 글루르지제(Elena Glurjidze)의 의상을 만들었고, 파리국립오페라의 2018-2019 댄스 시즌에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의 작품 <데카당스(Decadance)>가 레퍼토리에 추가되면서, 작품의 일부로 오프닝 갈라에서 선보인 <볼레로 (Bolero)>의 파드되(Pas de Deux) 의상도 제작했다.

2024-25 댄스 시즌 오프닝 갈라와 디너, 애프터 파티가 열린 오페라 가르니에 전경.

다시 2024년 10월 1일,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로 돌아가보자. 샤넬이 파리국립오페라의 후원사로서 댄스 시즌 오프닝 갈라를 후원한 것은 2018년부터다. 이듬해인 2019년 오프닝 갈라에서 세르주 리파(Serge Lifar)가 안무를 개발한 발레 <바리아시옹(Variations)>이 상연되었을 때,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가 재탄생시킨 샤넬 의상이 무대에 올랐다. 2021년에는 수석 무용수 발랑틴 콜라상트 (Valentine Colasante)와 위고 마르샹(Hugo Marchand)이 샤넬이 특별 제작한 의상을 입고 다니엘 오베르(Daniel Auber)의 음악에 빅토르 그좁스키(Victor Gsovsky) 안무의 <그랑 파 클래 (Grand Pas Classique)>을 공연했다. 발레학교 학생부터 수석 무용수까지, 모든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 올랐는데, 그들은 샤넬과 파리국립오페라의 아틀리에, 패션 공방 소속 자수 공방 르사주의 협업으로 탄생한 튀튀, 코르셋, 티아라를 착용했다. 그리고 이 수많은 의상은 매 시즌 오프닝 때마다 데필레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2023년부터는 파리국립오페라의 주요 후원사가 되어 모든 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샤넬. 100년 전에 시작된 샤넬 하우스와 무용계의 오랜 인연은 이러한 파트너십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전통적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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