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주방으로 돌아간 ‘흑백요리사’ 셰프 4인

전여울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유례없는 인기와 박수 속에 끝이 났고, 서바이벌장을 뛰어다니던 셰프들은 다시 묵묵히 자신의 주방으로 돌아갔다.

셰프 김도윤, 정지선, 김미령, 강승원 역시 마찬가지다. 흑백의 자장 안에서, 그들을 찾아가는 유랑기를 펼쳤다.

김도윤 | 윤서울

2022년부터 3년 연속 미쉐린 1스타를 거머쥔 ‘윤서울’의 셰프. 수상하리만큼 재료에 진심인 김도윤은 ‘원물을 향한 집착’에서 좋은 요리가 탄생한다 말한다.

말린 생선의 쿰쿰한 향. 김도윤 셰프가 운영하는 신사동 ‘윤서울’의 첫인상은 이곳만의 독특한 냄새였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미쉐린 별 사냥에 성공한 김도윤은 원래도 국내 다이닝계의 스타로 통했지만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생각했어요. ‘이거 누가 나가냐, 애들이나 나가지.’ 여태 방송 섭외 문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2014년 EBS <최고의 요리비결>에 출연한 게 전부예요. 그건 교육방송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팬데믹으로 외식 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고, 그 여파가 설마 지금까지 이어질 거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요즘 같은 시대에 셰프가 곧 브랜드가 된다면 사람들이 다시 식당으로 발걸음할 거라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어요. 물론 여자친구 등쌀에 못 이겨 출연한 것도 있지만요(웃음).” 레스토랑 한쪽의 냉장실, 약 500가지 이상의 식재료가 보관되어 있어 차라리 랩실에 가까워 보이는 이곳에서 김도윤이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윤서울에 들어서면 쿰쿰한 숙성 향이 은은하게 풍긴다. 드라이에이징 기법으로 맛이 차오르고 있는 식재료는 투명한 쇼케이스에 담겨 사람들을 맞는다. 이 풍경 덕에 연구실 같은 레스토랑이 탄생하기도 했다.

가장 많을 땐 총 500여 대의 카메라가 동원됐다는 대규모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의 촬영이 끝난 후 김도윤은 다시 쿰쿰한 숙성 향이 풍기는 자신의 주방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셰프는 흔히 신선도가 생명이라 여겨지는 생선을 건조하고 숙성하며 활어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감칠맛을 끌어낸다. 드라이에이징은 주로 육류에 사용하는 숙성 기법이지만, 김도윤은 이를 생선에 접목해 조직이 쫀득하게 씹히면서 비린내가 적은 반건조 생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방식은 어느새 셰프의 전매특허로 통하게 됐다. “지금 메뉴에 있는 농어 스테이크를 예로 들어볼게요. 기름에 달군 팬에 반건조 농어를 올리면 마치 껍질이 엠보싱처럼 변하면서 독특한 텍스처가 만들어져요. 이게 바로 드라이에이징의 마법이에요. ‘생선도 드라이에이징하면 어떨까?’란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오늘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비록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어쩌면 건조의 달인에게 <흑백요리사> 2라운드 미션 재료로 반건조 우럭이 주어진 건 운명이 한 일, 하지만 김도윤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런데 그 우럭이 정말 맛이 없었어요! 너무 뻑뻑해서 못 먹을 지경이었거든요. 제가 드라이에이징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하여튼, 그렇습니다(웃음).”

깊은 감칫말의 농어 요리 한 접시. 드라이에이징 기법으로 건조, 숙성한 생선은 구우면 표면에 엠보싱 같은 텍스처가 살아난다. 마치 베이징덕을 먹을 때의 바삭함을 느낄 수 있다.
농어 요리에 곁들이는 소스는 토치에 한 번 달궈 완성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홍합과 멸치, 아삭한 석박지 김치.

김도윤에게 2라운드의 미션 재료로 들기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매장에서 직접 자가 제면한 면에 약간의 소금, 갓 짜낸 들기름을 버무려 만 국수는 윤서울이 과거 홍대 앞에 자리했을 때부터 정평이 난 시그너처 메뉴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순수한 재료로 만든 순수한 맛의 국수 한 그릇. 반건조 생선 요리가 윤서울의 과감하고 독특한 색깔을 대변한다면 김도윤표 면 요리는 이곳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면을 연구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저는 늘 ‘순수한 면’을 생각해요. 1980년대 밀가루 수입이 개방되면서 한국산 밀가루를 볼 일이 적어졌어요. 대량 생산된 값싼 밀가루가 대거 풀리니 자연스레 동네 방앗간, 제분소가 하나둘 사라졌고요. 은은한 향이 도는 신선한 밀가루를 맛볼 일이 거의 없어진 거죠. 또 아시아 지역은 쫄깃하고 차진 식감을 좋아해서 면에 첨가제를 많이 사용해요. 하지만 이런 첨가제는 면 본여의 매력을 죽일뿐더러 몸에 불필요하게 쌓여 소화 장애를 유발하거든요. 첨가제 없이도 충분히 맛있는 면이 가능한데 참 안타깝죠.”

브레이크타임, 윤서울의 한가로운 키친 풍경. 디너 타임이 시작되면 다시 맛있는 소리들로 가득 찰 공간이다.
입안에 군침이 고이게 만드는 전통주 진열대. 점심과 저녁 각각 전통주 페어링 코스를 선보인다.

“실은 레스토랑이 아닌 연구소를 차리려 했어요.” 김도윤과 막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그가 건넨 한마디였다. 랩실 가득 채워진 500여 가지 재료에 생산지와 보관 날짜가 적힌 라벨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면을 공부하기 위해 아시아 각지 밟아보지 않은 땅이 없으며, 최근 젖소에게 올리브 기반의 사료를 먹여 그에 따른 원유의 유지방, 단백질 함량 변화를 실험하고 있는 김도윤을 보면 그에게 연구자라는 타이틀도 빈틈없이 어울린다. “요즘 원물을 연구하는 셰프가 없어요. 저는 적어도 셰프라면 자신이 쓰는 식재료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 어떤 생산자를 거쳐 나에게 왔는지 전 과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물에 집착할수록 좋은 요리가 탄생할 수밖에 없어요. 전 이것 때문에 별의별 희한한 짓은 다 해봤어요. 5월엔 실험을 한답시고 죽순을 500kg이나 캐서 보관하고 있고 텍스처가 독특하고 비린내가 적은 흰자를 얻고 싶어서 닭에게 올리브를 먹여봐요. 그래서 누구는 저더러 재료 집착자, 재료 변태라 부르더라고요. 그런 저를 감금하고 싶다나 뭐라나(웃음).” 눈이 접히도록 웃던 김도윤이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고쳐 짓고 말했다. “저는 이게 재미있어요. 직업도 요리, 취미도 요리예요. 항상 요리만 생각해요.”

정지선 | 티엔미미

틀을 깬 새로운 중식의 세계를 선보이는 ‘티엔미미’의 셰프. 이름 대신 ‘딤섬의 여왕’으로 불리는 일이 많다.

“중식의 멋과 화려함을 보여주고 싶어요.” <흑백요리사>의 첫 화에서 중식 셰프 정지선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이 말은 곧 경연에 참가한 이유가 결코 우승에 있지 않다는 의미였다. 짜장면, 짬뽕에 가려진 중식의 다양성, 화려함, 섬세함을 보여주는 것은 정지선이 소위 계급장 떼고 100명의 셰프가 견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다. 그러니까 정지선은 홀로 다른 보법으로 걷는 참가자였다. “제가 처음 중식에 뛰어든 이유도 다양성 때문이었거든요. 안 쓰는 식재료가 없는 건 당연하고 중식에선 한 접시에 최소 3가지 이상의 조리 기법이 들어가요. 한창 조리법을 공부할 땐 최대로 찾은 조리법이 105가지나 됐어요. 칼, 도마, 웍만으로 툭툭 완성해내지만 화려함, 또 그 뒤엔 섬세함이 숨겨져 있어요. 중식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큰 목표였어요. 안 그랬으면 2라운드 미션에서 빠스 하나 만드느라 그렇게 큰 쟁반을 들고 설치지 않았겠죠(웃음). 남몰래 연습 무진장 했어요. 매장에서 하면 애들한테 혼나거든요.”

화르르 타오르는 불꽃, 시종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웍. 이 화려함은 정지선이 중식에 매료된 이유이기도 하다.

<흑백요리사>에 함께 출연한 중식 대가 여경래에 따르면 정지선은 “곧 있으면 국내 일인자가 될” 중식 셰프다. 하지만 정지선이 처음 중식에 입문했을 땐 ‘주방에 여자’란 말이 성립되지 않았고 ‘중식에 여자’란 말은 더욱 나란히 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한식이나 양식 셰프로 취업하는 선배가 대다수였어요. 중식은 한 명 나올까 말까 했고요. ‘아무도 안 하는 거니까’가 제가 중식으로 길을 택한 이유였어요. 왜냐하면 궁금했거든요. 그 길에 뭐가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중국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졸업 후 무작정 중국 장쑤성으로 떠났어요. 그렇게 3년간 22개 도시를 돌았고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정지선 하면 한국 중식계를 이끌 이름으로 불리지만 <흑백요리사>가 공개된 이후 예리한 시선들이 지적했듯 소비하는 요리의 영역, 그러니까 직업인으로서 셰프의 자리에 여성이 설 자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중식 장르에선 더더욱 그렇다. “저에 앞선 여성 중식 셰프님이 없었어요. 누군가 보고 버틸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거죠. 또 티엔미미 강남, 홍대점을 통틀어 현재 직원이 30명가량인데 여성 직원은 고작 4명뿐이고요.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또 다른 이유도 나마저 나서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어요. ‘나도 이렇게 버텼으니까 너희도 할 수 있어’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지선에게 딤성의 여왕이란 별명이 돌아간 이유가 있다. 반죽, 소 배합, 모양 내기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손기술이 빛나는 것뿐 아니라 바질, 트러플과 같은 재료로 서양식 재료를 써 흥미로운 변주를 시도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뽀얀 증기를 내뿜는 딤섬 찜기들. 딤성 여왕의 집, 정지선의 주방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흑백요리사>가 공개된 후 이른 아침부터 매장 앞으로 생기는 긴 대기열에 못 이겨 서초동 ‘티엔미미’는 현재 브레이크타임 할 것 없이 하루 12시간 가까이 돌아가고 있다. 덕분에 주방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딤섬 찜기에선 온종일 뽀얀 증기가 피어오른다. 딤섬은 정지선에게 ‘여왕’의 별명을 가져다준 요리이자, 팀을 이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흑백요리사> 4라운드 미션에서 승기의 깃발을 가져다준 요리다. 국내에서도 시간이 흐르며 제법 딤섬 전문점이 생겨나고 있지만 반죽, 소 배합, 모양 내기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호기롭게 딤섬에 도전장을 내미는 이는 여전히 적다. 정지선은 사람들 사이 소롱포나 쇼마이, 기껏해야 창펀 정도에 머물러 있는 딤섬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려는 사람이다. 트러플이나 바질처럼 양식에서 흔히 쓰는 재료를 사용해 편견을 깨는 딤섬을 시도하고, 지금 SNS에서 수많은 ‘좋아요’를 얻고 있는 광동식 딤섬의 일종 ‘찹쌀공’도 꾸준히 선보인다. “사실 찹쌀공은 직원들이 제일 싫어하 는 메뉴예요(웃음). 그 큰 딤섬을 15분 동안 튀김기 앞에 서서 굴려야 하거든요. 이런 걸 누가 하겠냐 싶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고집을 부리는 메뉴예요. ‘이것도 딤섬이다’ 고 말하고 싶거든요.”

중국 문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그림을 시작으로 딤섬 찜기 오브제, 미니 철가방 등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티엔미미의 풍경.
중국 요리와 좋은 궁합을 이루는 고량주들이 넘치도록 진열되어 있다. 이곳의 셀렉션에선 정지선 셰프의 고량주 사랑,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런치 오픈 전 티엔미미의 한가로운 풍경. <흑백요리사> 공개 후 브레이크타임 할 것 없이 매장이 운영되기에 지금은 보기 드문 풍경이기도 하다.

지금도 정지선은 매달 직원들과 함께 중국, 홍콩,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2020년 티엔미미가 오픈한 이래 계속되어온 전통 아닌 전통으로, 2박 3일의 짧은 일정을 위해 최소 20곳의 레스토랑을 사전 조사하고 한 매장에선 무조건 10개 이상의 메뉴를 시켜 맛을 본다. 그래서 직원들 사이에선 ‘식고문’으로 통하는 출장이지만 말이다. “제가 오너 셰프라고 해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시로 트렌드가 바뀌는데 그걸 따라가려면 전 아직 멀었어요. 그리고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지 못하는 것보다 직원들이 저에게 질문했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해줄 때 더 창피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 <흑백요리사>도 현재 위치를 떠나 다시 한번 나 자신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거라 좋았어요. 잃을 게 많은 참가가 될 거란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김미령(‘이모카세 1호’) | 안동집

낮에는 ‘안동집’, 저녁에는 ‘즐거운 술상’으로 맛있는 위로를 건네는 ‘이모카세 1호’ 셰프 김미령. 온기 있는 음식을 직접 제 손으로 내는 것은 셰프가 고수하는 철칙이다.

경동시장 지하, 아침 8시의 ‘안동집’은 분주했다. 가마솥에선 수육용 돼지고기가 과연 아침다운 기세로 팔팔 삶아지고 있었는데, 그보다 눈에 들어온 건 이미 밑반찬을 담은 그릇들이 탑처럼 높다랗게 쌓인 모습이었다. 앞으로 2시간 뒤, 오픈 시간인 10시에 맞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할지 가늠되는 풍경이었다. <흑백요리사>의 이모카세 1호, 이곳 안동집을 이끄는 김미령 셰프는 파릇한 배춧잎이 수북이 쌓인 빨간 다라이를 옆구리에 척척 끼고 주방을 오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완벽하게 쪽 진 머리와 시장 바닥을 재빠르게 활보하기 위한 7부 소매 한복은 단정하기만 했다.

콩가루를 섞어 제분해 독특한 식감이 매력적인 안동국시. 가마솥에 한소끔 끓여낸 면에 파릇한 배추, 양념장을 올려 완성한다.

<흑백요리사>를 보며 즉석밥을 돌리게 만든 사람은 셰프 김미령이 거의 유일했던 것 같다. 많은 셰프들이 난생처음 보는 조리법과 재료로 근사한 접시를 완성한 것을 보고 작은 탄사가 터져 나왔던 건 맞지만, 기어코 냉장고 속 반찬을 꺼내 밥 한술을 뜨게 만든 건 김미령이 들기름, 참기름 섞어 구워낸 김 한 장이거나 푸지게 끓인 고등어 어탕국수 같은 것이었다. “사실 처음 섭외 전화를 받고 좀 도망 다녔어요(웃음). 아침 6시에 일어나 경동시장 안동집으로 출근해 점심 장사를 하고 오후 3시면 창동으로 넘어가 요리 주점 ‘즐거운 술상’ 오픈 준비를 하거든요. 저는 방송을 한답시고 가게에 사람 두고 돌리는 사람이 못 돼요. 음식 장사는 온기 있는 음식을 내가 만들어서 내놓는 거라 여기거든요. 어렵게 출연을 결심했고 이왕이면 촬영장에서도 여태 제가 생각해오던 음식을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겉모양의 화려함보다 먹을 사람을 생각하고 만든 음식을 하기로 말이에요.”

맛깔나는 밑반찬들에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보는 것만으로 배불러지는 풍경이다.

“옛날엔 안동집 딸로 불렸는데 이제는 안동집 사장이에요.” 김미령의 말처럼 안동집은 그녀가 어머니의 대를 이어 올해로 41년째 성업 중인 안동국시 전문점이다. 올해 마흔한 살을 먹은 노포지만 <흑백요리사>가 공개된 후 안동집은 그 어느 때보다 젊은 기운으로 가득하게 됐다. “요즘 확실히 가게를 찾는 연령대가 낮아졌어요. 덕분에 시장도 활기차졌고요. 재래시장에 몸담고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보람되죠. 제가 올해로 쉰인데 여기선 젊은이거든요(웃음). 젊은 사람으로서 재래시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좋아요.” 20대 시절, 그러니까 김미령이 아직은 ‘안동집 딸’로 통하던 때 그녀는 시장의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재래시장도 백화점 못지않은 위생과 서비스, 친절을 갖춰야 한다는 게 김미령의 생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안동집은 올해로 41년째 불을 켜고 있다. 여전히 경동시장 한구석에서 재래시장을 찾은 이들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다.
안동집에선 단연 국수지만 배추전도 꼭 권하고 싶다. 구수한 배추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전은 막걸리를 부른다.

“20년 전쯤 가게에 카드기를 들였어요. 그 당시 재래시장에서 누가 카드를 받냐며 주변 상인들에게 욕을 호되게 먹었죠. 철이 없을 때엔 집에서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출근했는데 한두 해 지내다 보니 ‘이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왕이면 깔끔해 보이고 손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흰색 원피스를 입다 어느 순간부터 한복을 입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상인분들이 말씀해주세요. 안동집 사장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고맙다고”. 한겨울 테이블에 행주질을 하면 금세 살얼음이 끼고 내놓은 배추가 순식간에 얼 정도로 춥고 열악했던 시절을 지나 안동집은 41년째 불을 켜고 있다. 엄마 밑에서 장사를 배우다 보니 장사란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님을, 사람 보고 하는 것임을 김미령은 깨달았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엄마의 레시피로 만든 안동국시의 맛은 그대로다. “경북 안동은 논이 없고 전부가 거친 땅이에요. 산밑에 콩을 뿌려놓으면 잘만 자랐어요. 그렇게 재배한 콩으로 가루를 내 면을 만들었고 국수에 시퍼런 채소도 한 주먹 올려 완성했어요. 아무래도 밀이 귀하니까 양을 불리려고 아무 나물이나 뜯어다 넣어 한 그릇을 끓였죠.”

탑처럼 높다랗게 쌓인 접시들은 마치 손님을 기다리는 듯 보인다.

안동집이 김미령의 과거와 현재라면 ‘이모카세’란 말을 유행시킨 요리 주점 ‘즐거운 술상’은 김미령의 현재와 미래다. “요즘은 모든 게 체인점화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사람의 정서는 ‘정’이에요. 온기 있는 음식에 정겹게 소주 한잔할 수 있는 곳, 하루를 고되게 보내고 지친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곳을 떠올리면서 즐거운 술상을 차리게 됐어요. 총 20석 규모인데 하루 딱 스무 명만 받고 재료가 떨어지면 6시라도 문을 닫아요. 돈 앞에 흔들릴 수 있지만 저는 늘 즐거운 술상을 차렸을 때의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앞으로 저와 오래갈 가게예요. 그래서 더 나 자신에게 쪽팔린 짓은 하기 싫어요”.

돼지고기 생고기로 만든 수육. 큼직하게 썬 수육은 국수만 놓고 반주하기 아쉬울 때 좋은 한 접시다.

새벽 6시 사우나에 가 목욕 후 출근해 밤 8시는 돼야 가게의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삶은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쳇바퀴처럼 흐르는 삶에서 <흑백요리사>는 김미령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다시 열심히 살아가자는 탄력을 받았어요. <흑백요리사>에 정말 많은 훌륭한 셰프님들이 출연했잖아요. 그런데 저는 파인 다이닝이 다른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 앞에 앉은 그 사람만을 위한 음식을 해서 내놓는 것, 그게 곧 파인 다이닝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여기서 국수를 삶고 있어요, 방금 말한 바로 그 마음으로요”.

강승원(‘트리플스타’) | 트리드

‘트리플스타’에서 ‘트리드 스타’로. 뉴 아메리칸을 표방하는 ‘트리드’의 셰프다. <흑백요리사>에서 모두를 놀라게 한 칼질은 트리드의 오픈형 주방에서 직접 눈에 담을 수 있다.

<흑백요리사>에서 셰프 강승원의 활약은 어쩌면 첫 등장에 칼질 하나로 ‘쟤 뭔데?’의 반응을 끌어냈을 때 이미 예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그에게 ‘트리플스타’란 별명이 붙여진 순간부터 이 쇼의 주인공 중 하나가 강승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의도된 거예요.” 심사 위원 안성재가 세미파이널 1차전에서 강승원의 클램차우더 속 일정한 크기로 잘린 채소를 봤을 때 말했다. 이 말은 표현만 달랐을 뿐 거의 모든 회차에서 언급됐는데, 이 점에서 의도된 설계와 의도된 맛은 ‘좋은 음식’을 이루는 수 겹 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한다. 그리고 비록 스크린 너머 강승원의 요리를 맛볼 순 없었지만 쇼를 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성적이고 체계적으로 의도된 강승원의 설계와 맛을 충분히 느꼈을 거다. 첫 회에서 그가 심사를 두고 확신과 의심 사이의 발언을 했음에도, 흑수저 참가자지만 미쉐린 레스토랑에 몸담으며 백수저에 가까운 경력을 쌓았음에도, 사람들은 흔히 언더독의 서사를 응원함에도 강승원은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주방의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강승원 셰프의 칼이 눈에 띈다. 마치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한 장면이다.
도열을 맞추고 있는 팬에서 평소 강승원 셰프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식기와 요리 도구는 단정한 라벨링과 함께한다.

강승원이 28세의 젊은 나이로 오너 셰프가 되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청담동 ‘트리드’는 그의 오차 없는 칼질과는 사뭇 다르게 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항상 파인 다이닝만 해온 터라 좀 질려 있었어요. 나 자신을 극한의 틀에 가둬놓으니까 힘에 부쳤고요. 편한 음식, 내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을 해보자는 마음에 오픈한 곳이에요. 물론 운영하다 보니 점점 스타일이 바뀌어 원래 제가 하던 파인 다이닝으로 돌아왔지만요.” 그의 경력을 돌아보자면 거기엔 전부 미쉐린 별이 수놓여 있다. 군 제대 후 한국계 미국인 셰프 코리 리(Corey Lee)의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며 ‘저거다’ 싶은 마음에 곧장 샌프란시스코로 떠났고, 코리 리가 이끄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베누’에서 스타지(무급 인턴)로 일했다. “모든 게 다 제 스타일이었어요. 코리 리는 프렌치를 하던 사람이자 한국계 미국인 정체성도 갖고 있고 다문화, 다인종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해요. 이 모든 백그라운드를 한 접시에 담아내는데, 그 과정이나 만듦새가 잔재주 없이 깔끔해요. 어느 하루는 할 일이 많아 2시간 일찍 출근한 날이 있어요. 그날 셰프님이 다정한 말투로 해준 말을 지금도 기억해요. 제가 일찍 나와서 일을 끝내는 것과 정시에 출근해 일을 끝내는 것에 대한 차이였어요. 베누에서의 1년은 요리뿐 아니라 자세와 태도를 배운 시간이었어요. 이 얘기를 지금 트리드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많이 전하고 있어요.” 베누에서의 짧고도 굵었던 시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강승원에겐 또 하나의 반가운 부름이 있었다. ‘모수’의 오픈을 준비하던 안성재 셰프의 연락이었다.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였어요. 그런데 그 당시 일하던 곳이 따로 있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2017년 10월 모수가 오픈해 별생각 없이 밥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여태 한국에 그런 레스토랑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다음 날 바로 일하던 곳에 퇴사 뜻을 밝히고 모수에 합류했죠”.

트리드의 시그너처로 통하는 전복과 양파. 완도산 전복을 통째로 숯불에 구웠다. 양파는 서로 다른 조리법으로 요리해 한 접시에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숯에 구워지고 있는 한우 스테이크. 구운 감자와 배를 가니시로 올려 한 접시를 완성한다.
먼지 한 톨 허용될 것 같지 않은 주방은 어딘가 무균실을 닮기도 했다.

어쩌면 여태 미식의 첨단에 있어왔지만 <흑백요리사> 출연은 강승원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그냥 전부 다예요. 새로 깨닫게 된 게. 사고방식, 요리를 대하는 태도 전부 달라졌어요. 사실 제가 가장 놀란 건 최현석 셰프님이셨어요. 섣불리 판단해서, 경력이 오래되신 만큼 어느 면에선 깨어 있지 않을 거라 짐작했어요. 완전히 편견이었죠. 실제로 만나본 셰프님은 정확히 그 정반대였어요. 요리를 잘하시는 건 물론이고 그 누구보다 소통 능력이 뛰어나세요. 저에게 먼저 다가와서 ‘너무 잘하더라’란 칭찬도 아끼지 않으시고요. 셰프님을 보면서 많은 걸 깨달았어요.” 모든 셰프들의 꿈이겠지만 강승원 역시 트리드의 오너 셰프로서 미쉐린의 별을 노리는 중이다. 그 여정의 어딘가 즈음에 선 강승원에게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음식을 물었다. “좋은 요리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건 순전히 먹는 사람의 몫이라 생각해요. 맛은 기본적으로 좋다는 걸 전제했을 때, 그것에 더한 감정적인 자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샌프란시스코 옆에 오클랜드라는 도시가 있어요. 그곳의 2스타 레스토랑에서 고등어 감자 요리를 먹은 적이 있는데 저는 그때만큼 방금 말한 감정적 자극을 크게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갖고 있던 고등어, 감자에 대한 편견을 다 부수는 한 접시였어요. 둘 다 거의 생것의 상태였는데 제식으론 고등어도 살짝 익혀야 맛있고 감자는 푹 익어야 맛있거든요. 그걸 완전히 깨버린, 잊지 못할 한 접시예요. 언젠가 저도 이런 요리를 내는 사람이 되면 좋겠죠.”

포토그래퍼
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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