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재한 종이를 패션으로 해석하는 방법, 25 SS 이세이 미야케 컬렉션

명수진

ISSEY MIYAKE 2025 SS 컬렉션

이세이 미야케의 크리에이티브 사토시 콘도는 25 SS 시즌, ‘종이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Paper)’을 컬렉션에 담아냈다. 대마 소재를 수작업으로 만드는 일본 전통 종이 와시(Washi)를 연구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종이의 태초부터 공예적 의미, 더 나아가 단순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에 대해 관객에게 속삭이듯 전달했다.

컬렉션은 파리 동쪽에 있는 샤토 드 뱅센(Château de Vincennes) 인근에 있는 파리 꽃 공원(Parc Floral)에서 열렸다. 싱그러운 정원과 실내 공간으로 이어지는 컬렉션 베뉴에는 새하얀 와시를 깔아두었다. 객석으로 사용한 둥근 구조물 역시 이세이 미야케의 시그니처인 플리츠 소재를 생산할 때 부산물인 종이 원통을 잘라서 재활용한 것.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옷을 입은 모델이 등장했다. 얼굴까지 가리는 한 장의 하얀 천의 원피스를 입은 모델은 맨발로 런웨이를 걸으며 원초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투명하고 반짝이는 질감은 촉촉하게 젖은 종이처럼 보여서 신비로움을 더했다. 이는 와시 소재를 사용해 만든 일본 전통 카미코(Kamiko) 드레스를 떠오르게 했는데,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역시 1982년에 이를 재해석한 바 있다.

와시 소재는 원래 100% 대마 소재로 만들지만 사토시 콘도는 여기에 레이온, 울, 면 등 다양한 소재를 섞어서 응용했다. 이를 통해 종이 특유의 부드러운 텍스처, 경이로울 정도로 가벼운 특성을 활용하면서도 실험적인 실루엣을 구현해냈다. 카멜 베이지 컬러의 슈트와 와이드 트렌치코트는 완벽하게 종이 질감을 냈다. 종이봉투 모양의 백을 옆구리에 낀 것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종이 컬렉션이었고, 트렌치코트 안쪽에 깨알처럼 새겨 넣은 붉은 인장이 흥미로움을 더했다. 블랙, 화이트 컬러 셔츠와 아우터, 가로 방향으로 뾰족하게 솟은 팬츠 등은 일본의 전통 종이접기인 오리가미 같은 디테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러 개의 니트웨어를 짜깁기하여 만든 것처럼 비정형적인 풀오버는 후반부로 갈수록 난해함을 더하는 ‘심화편’으로 응용됐다. 마구 뒤틀려 있거나 옷 여러 개를 덧붙인 것처럼 보이며 아방가르드한 분위기를 담당했다. 플리츠 시리즈는 후반부에 원피스로 선보였다. 모델들은 마치 80년대 캣워크처럼 이따금씩 빙그르르 회전하며 플리츠를 통해 획득한 자유로움을 뽐냈다. 모란, 라넌큘러스, 아스파라거스 잎을 압착할 때 발생하는 미묘한 변화를 포착한 식물화와 책갈피에 꽂아 말린 것 같은 납작한 꽃으로 만든 아이웨어, 헤드기어가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언제나처럼 수채화처럼 맑은 바이올렛, 옐로, 그린 등 컬러 팔레트가 비 온 뒤 갠 날과 같은 싱그러움을 연출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25 SS 컬렉션을 통해 입는 사람에 따라 가변적으로 변하는 동양적인 패션 철학의 정수를 보여줬다.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내러티브가 삐죽삐죽 솟아오른 치열한 패션위크 기간, 같은 옷도 입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 느긋하게 보여준 치유의 시간이었다.

영상
Courtesy of Issey Miay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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