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놀린과 록스타, 25 SS 로에베 컬렉션

명수진

LOEWE 2025 SS 컬렉션

로에베 창립연도인 ‘Loewe 1846’가 새겨진 황금 반지를 초청장과 함께 보낸 로에베. 지난 24 FW 컬렉션을 열었던 파리 12구에 있는 에스플러네이드 세인트루이스(Esplanade Saint-Louis) 성으로 다시 한번 손님들을 초대했다. 고성 앞마당에 세워진 포토월에는 악보가 새겨져 있었다. 베뉴 내부는 별다른 세트 없이 새하얀 무대 중앙에 솟대 같은 것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396cm 나무 기둥 끝에 작은 청동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작품으로,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는 ‘잠시 멈칫한 순간. 곧 임박한 비행과 궁극적으로는 자유를 상상하라고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30세에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로 임명된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일구며 40세가 된 조나단 앤더슨은 어떤 자유를 갈구했을까?

‘가벼운 꽃무늬 드레스, 그런데 크리놀린 같은 후프를 댄’ 룩이 오프닝을 장식했다. 날아갈 듯 가벼운 실크 조젯(Georgette) 소재의 밑단에 가느다란 체인을 달아 무게감을 준 덕분에 드레스는 모델의 걸음걸음마다 마치 물속에서 유영하는 해파리같이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을 줬다. 바이크 재킷은 트라페즈 라인을 적용하여 독특한 삼각형으로 변형했고, 팬츠는 로에베 로고를 허리가 아닌 옆구리에 달아서 앞뒤가 뒤집어진 것처럼 보였다. 종이 인형의 옷처럼 플랫한 미니 드레스는 글로시한 질감과 블루, 그레이, 브라운 등 컬러 조합이 훌륭했다.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은 25 SS 시즌 ‘모든 소음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답은 결국 실루엣이었다. 크리놀린 실루엣을 하의와 상의에 적용하고, 소매만 XL 사이즈로 변화를 주거나 밑단을 크게 부풀리는 등 실루엣의 변화를 주면서 일상의 옷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줬다. 로에베는 쇼 노트를 통해 이를 ‘급진적 감소(Radical Reduction)’라고 명명했다. 조나단 앤더슨이 해마다 테마를 풀어내는 방법은 유연하며 위트가 넘친다. 그가 대중을 설득하고 공감까지 이끌어내는 방식이랄까. 한편, 80년대 스타일의 그런지한 테마도 볼 수 있었다. ‘모토 레이스(Moto Race)’라고 새긴 티셔츠와 밑단을 크게 접은 크롭 팬츠를 필두로 이후 모차르트, 바흐, 쇼팽의 초상화와 반 고흐의 ‘해바라기’, 에두아르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작품이 깃털 소재 티셔츠 시리즈 위에 프린트됐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사람들은 이런 대가들의 ‘굿즈’ 사는데, 이런 점이 바로 록스타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는 조나단 앤더슨의 설명이 흥미롭다.

액세서리도 다채로웠다. 미래적인 실버 고글과 브로그(Brogue) 혹은 하이톱 스니커즈가 눈길을 끌었다. 오리 부리처럼 납작한 느낌이 나는 보드 슈즈는 민트와 바이올렛 컬러, 빛바랜 듯한 화이트 컬러가 매력적. 로에베가 탄생한 마드리드는 동명의 뉴백으로 선보였고, 부드러운 퍼즐 백도 새로운 라인업으로 공개됐다.

뭐든 어렵지 않아 보이는 건 그만큼 잘한다는 반증이다. 조너단 앤더슨은 지난 10년 동안 혁신적이면서도 무리수를 두지 않는 납득할 만한 컬렉션을 선보여왔다. 이번 컬렉션 테마처럼 ‘소음을 제거하고 조용하게’ 지난 10년을 기념하는 것도 쿨했다. 관객들은 피날레에 선 조나단 앤더슨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유명 스타는 물론 사라 버튼(Sarah Burton), 니콜라스 디 펠리체(Nicolas di Felice), 크리스 반 아셰(Kris van Assche), 피터 뮐리에(Pieter Mulier), 아드리안 아피올라사(Adrian Appiolaza) 등 동료 디자이너들이 총출동해서 함께 10주년을 축하했다.

영상
Courtesy of Loe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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