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로랑의 50가지 그림자, 25 SS 생 로랑 컬렉션

명수진

SAINT LAURENT 2025 SS 컬렉션

생 로랑은 여성에 대한 진보적 시선을 제시해왔다. 60년대에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여성을 위한 턱시도인 ‘르 스모킹’을 통해 당당한 관능미를 선사했던 역사를 이어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어두운 매력과 위험, 쾌락을 즐길 줄 아는 독립적인 여성상을 그리며 매 시즌마다 특별함을 더해가고 있다.

파격적인 시스루를 선보였던 지난 24 FW 시즌과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로 이번 25 SS 생 로랑 컬렉션은 매니시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러니까 특유의 관능미를 더한 매니시 스타일이었는데, 이런 모순적인 면모는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지녔던 성향 – 예술적 세련미와 본능적 욕망이 공존하는 – 을 반영한 것이다. 파워숄더 슈트를 필두로 매력적인 오버핏의 슈트와 블레이저가 선보였다. 트렌치코트와 보머 재킷을 덧입고 셔츠와 넥타이, 뿔테안경까지 꽉꽉 채워 넣은 스타일링에 커다란 골드 뱅글 같은 액세서리 포인트로 반전을 주면서 ‘대드코어’ 트렌드를 생 로랑의 언어로 해석했다. 여기에 걸음걸음마다 화려하게 휘날리는 시폰 드레스와 라운지웨어를 연상케 하는 실크 튜닉을 더해 상반된 매력을 드러냈다.

총 34벌의 슈트 시리즈가 끝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생 로랑의 이국 취향이 발현됐다. 파워숄더의 골드 브로케이드 재킷은 80년대 스타일의 전형이었다. 새틴 러플 밑단으로 레이스를 한 겹 더한 미니스커트는 76년에 이브 생 로랑이 선보인 ‘러시안 룩’을 떠오르게 했고, 비즈 목걸이와 골드 이어링 등의 액세서리는 이브 생 로랑이 유년기를 보낸 아프리카 마라케시에서 영감을 받은 듯했다. 컬렉션의 전반부에 레드 브라운, 골드 브라운, 머스터드 옐로, 버건디 등 세련된 톤 다운 컬러가 등장했다면 중반부 이후부터는 레드, 블루, 그린, 오렌지, 바이올렛, 옐로 등 노골적인 원색 컬러를 대담하게 섞어서 ‘색채의 마법사’라는 이브 생 로랑의 별명을 떠오르게 했다.

무대 연출은 안토니 바카렐로가 이끄는 생 로랑 컬렉션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8년 전, 데뷔 쇼를 치렀던 벨샤스 거리의 생 로랑 본사로 돌아가 이번 컬렉션을 연 안토니 바카렐로는 금빛 타원형 천창을 통해 밤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이브 생 로랑이 사랑했던 마라케시의 화려한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반짝이는 파란색 바닥을 깔았다. 그리고 화젯거리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2년 전 미우미우 쇼를 끝으로 런웨이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모델 벨라 하디드(Bella Hadid)가 복귀한 것. 안토니 바카렐로는 2023년 4월에 영화 제작사인 ‘생 로랑 프로덕션(Saint Laurent Productions)’을 론칭하고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을 해왔는데 이 좋은 재료를 놓칠 리 없었다. 런웨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현란한 카메라 워킹이 있었는데 확실히 라이브로 송출된 영상미는 확실히 남달랐다. 파워숄더 재킷을 입은 모델의 뒷모습을 클로즈업한 신은 다크한 매력이 철철 넘쳐, 미장센이 완벽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영상
Courtesy of Saint Lau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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