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오로즈코가 탐구한 제약 없는 세상

권은경

몇 가지 소재와 장르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며 자신의 철학을 작업화하는 거장.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국제 비엔날레 무대나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거대한 규모의 설치부터 사소하고 작은 일상의 물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이제는 서울 개인전에서, 작은 크기의 드로잉으로 기하학적 탐구를 펼쳐 보인다.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만난 가브리엘 오로즈코.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한 곳에 머무르길 거부한다. 멕시코 출신인 그를 소개할 때는 항상 여러 도시가 등장한다. 가령 2024년 현재 오로즈코는 도쿄, 멕시코시티, 뉴욕에서 생활과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장소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건 국제적 예술가 사이에서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로즈코는 조금 다른 경우다. 그는 세계 각지에 스튜디오를 두고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작품 생산을 지휘하는 타입이 아니다. 스튜디오를 예술가의 비전을 구현하는 소우주가 아니라 외부와 고립되어 현실에서 동떨어진 공간에 가깝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에게 진정한 스튜디오란 일상을 보내는 생활 공간, 도시에서 여러 사물을 마주치는 거리와 같은 ‘바깥’의 장소들이다.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1992년, 오로즈코는 유연한 플라스틱으로 자기 몸무게만 한 공을 만든 뒤 뉴욕의 거리에서 공을 밀어 굴렸다. ‘유연한 돌(Yielding Stone)’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에는 자연스레 길가에 떨어진 먼지나 쓰레기, 하수구 뚜껑의 요철 따위가 공에 붙고, 새겨졌다. 1995년 열린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선 처음 방문한 나라에서 마주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간판을 기하학적 도형으로 해석한 라이트 박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이동 중인 작가 자신처럼, 그의 작품들 역시 고정된 형식이나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수십 년째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고 있다. 고정된 스튜디오 없이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온 오로즈코에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가 항상 노트를 들고 다닌다는 점이다. 언제든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수첩은 단지 더 큰 작품으로의 확장을 기다리는 스케치나 기록을 남기는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스튜디오이기도,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그는 멕시코시티의 차풀테펙(Chapultepec) 공원의 재생 프로젝트 예술 감독을 맡았다. 그 기간 동안 드로잉 1,000여 점을 그렸다고 한다. 화이트 큐브 서울이 9월 5일부터 12월 14일까지 전시 제목 없이 선보이는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개인전에서는 그 드로잉 연작인 ‘식물도감(Diario de Plantas)’의 일부와 회화 작품 총 4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일견 아름다운 유기적 패턴의 모음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오로즈코가 여의도의 두 배가 넘는 공원을 재생하는 거대한 건축-조경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마주친 여러 식물의 표면 텍스처를 포착한 기록이자, 인간이 아닌 식물의 입장에서 본 세계를 담은 이미지다.

‘El Guapo’(2024)
33 x 24cm.

<W Korea>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당신의 개인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 팬으로서 반가웠다. 다만 새로운 작품만큼이나 과거의 작품 역시 보기를 기대했는데, 이번 <가브리엘 오로즈코> 전에서는 당신이 현재 작업 중인 작품만 만날 수 있어 아쉽다.
Gabriel Orozco 실망했다니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웃음). 나는 갤러리에서 전시할 때는 늘 그 당시에 진행 중인 작업을 소개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몇 년 전에 만든, 이미 알려진 작품을 보길 기대하는 것 같다. 그래서 관객의 실망에 대체로 익숙하다(웃음). 이번 전시는 하나의 사이클을 완결하는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다. 나는 ‘식물도감’ 연작으로 지금까지 네 번의 전시를 했고, 서울을 마지막으로 이 전시는 더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당신은 거리와 일상의 세계를 스튜디오 삼아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서울의 거리와 도시 풍경을 어떻게 보았는지도 궁금하다.
서울은 올 때마다 인식의 충격을 안겨주는 곳이다. 처음 온 건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위해서였다. 그때 서울은 지금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었고, 그건 광주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거리 곳곳에 아주 로테크한 간판 조명들이 있었고, 거기 쓰인 한국어 단어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비엔날레 개막 일주일 전에 빈손으로 한국에 도착해서는 라이트 박스에 기하학적 도형의 조합을 그린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 모습의 작품을 만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때 역시 내가 과거에 만든 작품을 기대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웃음).

어떻게 보면 당신의 작업에는 항상 기하학 요소가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는 기하학적인 요소보다는 유기적으로 보이는 식물의 모습이 돋보인다.
사실 나는 조각이나 드로잉, 사진 작품을 만들 때도 기하학적 요소를 어떻게 녹여낼지 늘 고민한다. 내 작업에는 항상 우주의
질서와 기하학에 대한 탐구가 담기기 때문이다. 우주, 행성, 천문, 물리학에 관심이 많은데, 이것이 식물과 동물, 유기체의 성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추상적이거나 기하학적인 작품들에서도 유기적인 것, 실제 세계의 것을 다뤄온 셈이다. 그리고 식물은 본래 자기만의 기하학적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서울에서 하는 전시가 ‘식물도감’ 연작에 관한 한 주기를 마무리하는 다섯 번째 전시다. 당신은 거의 1,000점에 가까운 드로잉을 그렸고, 이를 두 권의 책으로도 만들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이 몇 년에 걸쳐서 진행한 당신의 연구를 보여주는 일종의 샘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절대적으로 그렇다. 대부분 작은 크기의 종이 작업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고 층층이 겹쳐 있다. 작은 회화 작품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채색을 하기도 했고, 종이에 템페라를 하듯 작업한 경우도 있고, 잉크로 그린 흑백 이미지도 있다. 그 모든 드로잉 안에 기하학과 유기적 모습이 동시에 존재한다. 거의 매일, 날짜를 기록하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일종의 연대기라고 볼 수도 있다. 글쓰기나 서예와 같달까. 내가 예술 감독을 맡아 작업하던 차풀테펙 공원이나 내가 걸었던 장소들에서만난 수많은 식물의 흔적이 섞인 작품들이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보면, 무슨 의미에서인지 숫자와 함께 당신의 이름 ‘오로즈코(オロスコ)’를 일본어 가타카나로 쓴 낙관이 찍혀 있다.
숫자는 내가 그림을 그린 날짜다. 나는 공책이나 수첩에 항상 날짜를 쓴다. 내 많은 작업이 공책이나 수첩을 통해 이뤄진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갖춘 스튜디오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공책, 수첩에서부터 아이디어를 전개한다. 손으로 직접 쓴 글과 드로잉 사이에서 뭔가가 도출된다. 스탬프를 찍기로 한 건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다. 원래는 작품에 서명하지 않는데, 꾸준히 드로잉 작업을 하다 보니 스스로 작업을 완결했다는 표시를 남기고 싶었다.

‘16.IV.22 (a) #22’(2022)
16.5 x 12.8cm.

과거 ‘Samurai Tree Invariants’(2006) 같은 작품에서는 몇 가지 기하학적 도형을 설정하고 컴퓨터를 활용해 672개의 조합을 도출하는 연작을 만든 적도 있다. ‘규칙’이라는 요소 역시 당신 작업에서 꾸준히 보이는 부분이다. 유기적으로 보이는 식물 이미지들에 나름의 규칙이 있는가?
작업을 할 때, 어떤 절차나 방법론으로 이뤄진 규칙을 두려고 한다. 그런 규칙을 통해서 어떤 결과물이 도출되는지는 부차적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일종의 게임이나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의도가 있더라도 일단은 행동에 옮겨야 비로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볼 수 있다. 내게 창작의 과정은 게임이나 스포츠와 비슷하다. 이번 전시 작품들의 경우엔 ‘이미지를 겹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자연에서 숲을 볼 때, 그 안에 어떤 질서가 존재하는지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멀리서 보면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잎과 가지와 온갖 사물이 축적된 것처럼 보인다. 패턴이나 논리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는 이야기다. 그래서 처음엔 내게 익숙한 기하학적 드로잉을 그리기 시작했고, 일을 하면서 발견한 나뭇잎을 종이 표면에 스탬프 찍듯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기하학과 유기적인 것이 결합한 것이다. 그런 다음엔 색을 넣기 시작했고, 얼룩과 우연으로 이뤄진 여러 개의 층을 겹쳤다. 더는 겹칠 수 없을 때까지 계속했다.

‘21.I.22 (a) #11’(2022)
16.5 x 12.8cm.

‘Handsome Lion Fish’(2024)
33 x 24cm.

기하학적 드로잉에 스탬프를 찍듯 나뭇잎을 찍고, 거기에 색을 추가하며 얻은 결과들. 겹쳐진 이미지 안에는 작가가 그린 것과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 공존한다.

몇 년에 걸쳐 꾸준히 남긴 그 드로잉들은 사실 굉장히 규모가 큰 차풀테펙 공원 재생 프로젝트의 예술 감독으로 일하는 동안 작업한 것이다. 그 프로젝트에서 당신은 예술가를 넘어 건축가 혹은 조경가를 아우르는 역할을 맡았는데, 어떤 경험이었나? 2019년, 멕시코시티에 있는 차풀테펙 공원의 마스터 플랜을 구상하는 일을 요청받았다. 이제 9월 21일이면 완공되어 오픈할 예정인데, 건축 공모를 하는 동시에 생물학자, 과학자, 도시 계획가를 비롯해 온갖 사람을 만나 이 공원을 어떻게 혁신적으로 바꿀지 논의했다. 규모가 큰 복잡하면서 바쁜 일을 하면서 많은 식물을 보게 되고 숲을 걷는 일이 잦았다. 그사이 내가 마주친 식물들을 마치 일기처럼 기록하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한 친밀함의 공간처럼 자라났다. 매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하거나 차풀테펙 공원 프로젝트와 관련한 업무 일지를 쓰는 동안, 의식의 끈을 놓고 무의식적인 부분을 포착하려 했다. 마치 내가 식물이 된 것처럼, 무언가를 소리 내어 말하거나 몸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내가 식물이라면 나는 어떤 색으로, 어떤 잎사귀로, 어떤 호흡으로 소통할까?

차풀테펙 공원 프로젝트 과정에선 실제로 ‘떠 있는 다리 (Calzada Flotante)’(2023)라는 이름의 교량을 만들기도 했다. 당신은 수십 년에 걸쳐 사진, 조각, 회화, 도예 등 다양한 매체를 다뤘고,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 작품 위주로 선보인다. 누군가는 당신을 조각가로, 누군가는 화가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그렇다. 나는 작업 방식을 자주 바꾼다. 하지만 내가 만든 모든 작품에 동등하게 담겨 있는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상을 철학적 관점으로 사유하기를 즐긴다. 더불어 자연적 구조를 마치 엔지니어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화가로 훈련을 받았지만 건축가로서 훈련도 받았고, 드로잉 작가로, 심지어 체스 선수로 훈련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그래서 거기에서부터 더 발전하는 것 말이다. 또 어떤 작업을 할 때면 그것을 서로 다른 규모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는 일도 즐긴다. 물리적으로 고정된 스튜디오가 없기 때문에 똑같은 작업을 유지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덕분에 계속 움직이고,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 그저 스튜디오에 앉아 바깥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고립된 시인처럼 지내고 싶지 않다. 나 스스로를 현실과 자연에, 또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지역에 노출시키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고 본다. 전시를 위해 한국에 온 것처럼, 어떤 장소나 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곳의 사람들과 새로운 우정을 맺게 된다. 그런 점이 내 작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튜디오 없이 창작을 이어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흔히 예술가에겐 스튜디오에서 홀로 창조적 행위를 이어가는 고독한 이미지가 있는가 하면, 작은 공장이나 다름없는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가라는 이미지도 있는데, 당신은 스튜디오를 ‘제로 상태’로 유지한달까?
스튜디오가 없다기보다 ‘제로 상태’로 유지한다는 표현이 더 좋은 것 같다. 나는 작품을 ‘생산’하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다. 마치 공장을 운영하듯 작품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작업하면 반복을 피하기 어렵고, 그건 사실 재미가 없는 일 아닌가. 규모 있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보면 운영 그 자체를 위해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거기엔 창의성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니 스튜디오를 유지하는 데 신경 쓰는 대신 좋은 대화, 좋은 책, 여행,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팀워크가 필요한 프로젝트를 하거나 큰 공간이 필요할 때는 그때 상황에 맞춰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구하면 된다. 또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협력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탁구대를 만들거나 시트로엥 자동차를 잘라 작품을 만들었을 때, 나는 그 일을 나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물감을 덧바르고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회화 작품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된다는 건 공장을 운영하는 경영자가 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예술가는 어떤 물체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것을 이루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당신이 꿈꾸는 창작의 생태계란 어떠한 모습인가?
1990년대에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예술 창작자로 내가 보여준 모습이 당시에 익숙한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작품은 좀 다른 생태계 안에서 작동한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경제적 구조, 작품이 다루는 시간의 감각, 여러 도시를 이동하면서 이뤄지는 작업의 방식, 여러 문화와 현지의 재료를 활용하는 방식까지도. 어떤 사람들은 내가 ‘경제’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웃음). 내 작업은 결국 경제 구조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원과 수단, 생산과 전시를 둘러싼 경제 구조 말이다. 결국,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어떤 전략을 취하는지는 작품의 배포와 전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고, 강렬하게, 또는 취약하게 구현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로지를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과잉 생산을 부추기지 않나?
아마 후기자본주의 사회가 다 마찬가지 아닐까. 여기에는 하이테크에 대한 믿음도 한몫하지 싶다. 그리고 어떤 아티스트들은 기술적 진보가 곧 아방가르드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이번 전시 작품 가운데 일부는 템페라 기법을 써서 만든 것이다. 템페라는 매우 오래된 기술이며, 심지어 유화보다 더 오래된 옛날 기법이다. 자원과 기술을 더 많이 활용한다고 해서 좋은 예술가가 될 기회를 더 얻는 건 아니다. 때로는 오히려 그 반대가 필요하다. 예술가에겐 자기만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마치 운동선수나 뿌리 깊은 나무처럼, 자신의 영역을 파악하는 것. 거기에서 시작해 자신의 작업과 기법을 넓혀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좋은 아이디어의 흐름을 찾을 수 있고, 마치 강물이 흐르듯 더 넓은 곳을 향한 흐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하는 전시가 ‘식물도감’ 연작을 선보이는 마지막 전시이듯이, 몇 년을 주기로 특정 영역에 집중하고 또 다른 영역을 향해 가는 당신의 작업 방식이 떠오른다. 이제는 어떤 프로젝트를 구상하는가?
말했다시피 나는 무언가를 배우는 게 좋다. 어떤 것의 시작에 있는 느낌. 그걸 최초로 시도하는 누군가가 되는 것보다 초보자라고 느끼는 쪽을 선호한다. 무척 흥미로운 어떤 일을 시도하면서도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 말이다. 일종의 아마추어랄까. 이것이야말로 창조성과 독창성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지금은 특별히 생각 중인 프로젝트가 없다. 그저 9월 안에 오픈할 차풀테펙 공원에 대한 생각뿐이다. 이제야 그 프로젝트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든달까. 그다음에 찾아올 ‘제로의 순간’에 머무르고 싶다. 지루해질 만큼 충분히 쉬고 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당신은 ‘다른 아티스트들이 여행할 수 있는 기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튜디오를 경영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당신은 창작의 결과물을 개인적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고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생각하는 듯하다. 차풀테펙 공원 프로젝트 같은 일은 예술가 한 사람의 작업이라 할 수 없는 성격이고, ‘식물도감’ 연작에서는 당신의 눈이 아닌 식물의 눈으로 세계를 포착하려 했다. 그런 건 개인으로서의 예술가나 경영 대상으로서의 스튜디오를 넘어섰을 때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당신이 바라봐주는 것만큼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스즈키 순류가 선불교에 대해 쓴 글을 기억한다. 존 케이지를 비롯한 많은 아티스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내용인데, ‘자아의 공허함을 알고 비움을 찾으라’는 것이다. 자아를 내려놓을 때에야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의 존재와 삶을 즐길 수 있다. 무언가를 편견 없이 보고, 국적이나 젠더, 인간과 비인간 등 무수한 구별 짓기를 떠나야 진정한 만남을 이룰 수 있다. 내가 누군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현실을 포용함으로써 자아를 비운 그 빈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다.

프리랜스 에디터
박재용
포토그래퍼
니콜라이 안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