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과 현실을 오가는 성장 드라마, 25 SS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

명수진

BOTTEGA VENETA 2025 SS 컬렉션

부모님의 옷장을 몰래 뒤져서 나 홀로 패션쇼를 벌였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가?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는 25 SS 시즌에는 어린 시절 일상의 모험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인비테이션으로 작은 무라노 유리 토끼를 보낸 것은 그 예고편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동물 모양의 빈백이었다. 컬렉션 베뉴를 옹기종기하게 채운 토끼, 개, 닭, 공룡, 수달, 범고래, 펭귄, 곰, 말, 여우, 고양이 등 60마리 동물 모양의 빈백이 게스트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켄달 제너는 말, 양자경은 무당벌레, 제이콥 엘로디는 토끼, 그리고 케어링 그룹 CEO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는 곰 모양의 빈백에 앉아서 컬렉션을 지켜봤다. 마티유 블라지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고전 <E.T>를 언급하며, 동물 모양 빈백은 장롱 속 인형들 사이에서 숨어있는 E.T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동물 모양 빈백은 자노타사코(Zanotta Sacco)와 협업을 통해 완성한 것으로, 컬렉션 다음날부터 보테가 베네타 홈페이지에서 한정판으로 구입할 수 있다.

순수한 호기심은 보테가 베네타의 우아한 분위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드러냈다. 엑스트라 오버사이즈, 좌우가 다른 비대칭 디자인, 그리고 구깃구깃한 디테일이 도드라진 특징으로 이는 자연스럽게 장롱 안에서 오래 묵은 옷을 어린아이가 꺼내 입은 것 같은 장면과 오버랩 됐다. 물론 장난기 가득한 사이사이 매력적인 아이템이 즐비했다. 한쪽은 팬츠, 한쪽은 스커트인 아방가르드한 하의, 오버사이즈 테일러드 재킷, 소매 부분을 과장되게 확대한 보머 재킷은 당장 쇼핑 리스트에 올려놓고 싶을 정도였다. 마티유 블라지 특유의 트롱프뢰유(Trompe L’œil), 즉 눈속임 기법 또한 위트와 유머를 더했다. 아워글라스 실루엣의 핀스트라이프 셔츠와 플레이드 체크 패턴을 얹은 셔츠와 코트는 모두 가죽 소재로 만들었고, 데님 팬츠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는 자카르로 짜인 메리노 울 팬츠였다.

마티유 블라지가 또 하나의 영감의 근원으로 언급했던 것은 밀라노 거리의 모습이었다. 그레이 스커트 슈트를 입은 여성은 해바라기 모양의 액세서리를 포장한 가죽 커버를 손에 들고 있었고, 몇몇 모델은 출근하는 사람처럼 도시락 주머니를 들거나, 슈퍼마켓 비닐봉지처럼 생긴 백을 들고 런웨이를 걸었다. 베이지, 브라운, 옐로, 오렌지, 레드, 바이올렛 등 깊이감 있는 컬러 팔레트 역시 밀라노 거리를 보면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컬렉션 후반부에는 동심 어린 상상력이 보테가 베네타의 수공예와 만나 클라이맥스 장면을 만들어냈다. 모피처럼 보일 정도로 촘촘하게 장식한 스팽글 코트, 굵은 실과 네트를 엮어서 만든 풀오버와 스커트, 여러 개의 천 조각을 겹겹이 쌓아 잔뜩 물결치게 만든 옐로 스커트, 가죽으로 만든 아플리케를 주얼주렁 장식한 골드 원피스와 인트레치아토 토트백, 테슬 디테일의 헤드기어가 관객의 눈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인트레치아토 위빙으로 짠 동화작가 리처드 스캐리(Richard Scarry)의 <역대 가장 커다란 책(Biggest World Book Ever!)>이 흥미로웠다. 관객들을 이상한 세계로 이끄는 매체였던 토끼 모티프는 가죽 티셔츠, 백, 그리고 벨트의 버클까지 곳곳에 활용됐다. 인트레치아토 위빙 백에는 키보드 장식을 넣어서 한번 픽 웃게 만들었고, 보테가 베네타 공예학교 학생들이 핸드메이드로 만든 미니 백, 성냥개비 모양으로 만든 이어링과 네크리스 세트까지 우아함 속에 스며든 위트가 컬렉션을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일구었다.

“어린 시절, 우리의 일상 속 매일은 모험의 연속이었죠. 환상적인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을 느끼며, 통상적인 기대나 관습에 얽매이지도 않았어요. 가능성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 같았고, 이 모든 것은 전략이 아닌 진정성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마티유 블라지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패션이 가진 구원적 힘, 대담한 상상력이 결합한 성장 이야기를 담아냈다. 캐릭터들은 옷과 액세서리를 통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성인이 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성장을 넘어, 또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였다면 가뿐히 5개의 별을 받았을 것이다.

영상
Courtesy of Bottega Ve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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