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재해석한 트렌치코트와 체크, 25 SS 버버리 컬렉션

명수진

BURBERRY 2025 SS 컬렉션

런던 패션위크의 대미를 장식한 버버리 25 SS 컬렉션. 2022년 10월에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이후로 네 번째 버버리 쇼를 만든 다니엘 리는 브랜드가 간직한 유산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보다 가벼운 옷을 선보였다. 이런 변화는 버버리의 신임 CEO인 조슈아 슐먼(Joshua Schelman)의 지원 아래 보다 자신감 있게 진행됐다. 버버리는 지난 1년 동안 주가가 무려 70% 이상 빠진 위기 속에 CEO 교체를 단행했다. 마이클 코어스, 코치에서 온 새로운 CEO 조슈아 슐먼은 상위 1%를 타깃으로 했던 전임 CEO 조너선 에이커로이드(Jonathan Akeroyd)와는 다르게 대중적 전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바.

컬렉션 베뉴는 국립극장(The National Theatre London). 그레이 벽돌이 노출된 공간에 90년대 초반 영국을 이끈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스타 아티스트 게리 흄(Gary Hume)의 작품 – 그린 컬러의 캔버스 장막 – 이 드리워졌다. 오프닝을 연 것은 트렌치코트가 아닌 Y2K 무드의 재킷이었다. 다만 스톰 플랩(Storm Flap, 가슴 바대), 에폴렛(Epaulet, 어깨 견장), 숄더 벤트(Vent, 상의 중앙선이나 옆길에 낸 솔기), 나폴레옹 칼라(Napoleon Collar, 크게 세운 칼라와 폭넓은 라펠), 벨트 등 트렌치코트의 디자인 요소를 더해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표현했다. 재킷을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비대칭으로 만든 것 또한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겠다는 일종의 상징 혹은 선언처럼 느껴졌다.

전반적으로는 트렌치코트로 각인된 엄격함을 덜어내고자 한 의도가 다분했다. 트렌치코트를 해체, 재조합하고 보헤미안적인 감성을 더해 케이프로 변형하거나, 네크라인에 깃털을 장식하거나, 실크 포플린이나 리넨 같은 소재를 사용하여 군복에서 비롯된 트렌치코트 특유의 딱딱함을 부드럽게 풀어냈다. 반짝거리는 비즈로 완성한 플래퍼 스타일의 이브닝드레스에 가죽 파카를 믹스 매치하거나, 캐주얼 피케 셔츠에 우아한 롱스커트를 레이어링하고, 유틸리티 팬츠는 엉덩이에 걸치는 로우 라이즈 스타일로 해석하여 펑키한 감성을 불어넣었다. 스카이블루, 카키 그레이, 오렌지, 라일락 등 컬러 팔레트가 마카롱 디저트처럼 달콤하게 펼쳐지며 부드러운 이미지를 거들었다. 또한 버버리를 상징하는 전통 체크 패턴을 부활하고 이를 점프 슈트, 아노락 등 스포티한 아이템으로 재해석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섹시한 스트랩 샌들, 보헤미안 스타일의 클로그, 남성용 페니 로퍼, 그리고 부드러운 호보 백 등 액세서리가 버버리의 기조 변화에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다니엘 리는 ‘버버리는 여름 브랜드가 아니라서 더 많은 즐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여름 느낌을 불어넣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도 쉽게 손이 갈 만한 아이템들이 확실히 많아졌고, 쇼트 재킷 같은 몇몇 아이템은 90년대에 푹 빠진 젠지 세대들이 사랑할 만한 것이었다. 지퍼 중간을 열 수 있도록 한 유틸리티 팬츠, 바이커 레더 재킷, 스카프가 달린 벵골 스트라이프 셔츠, 잔잔한 플라워 프린트를 넣은 벨티드 코트 등 하나하나의 아이템이 매력적이었다. 이처럼 힘을 빼고 영국적 위트를 더한 버버리는 2000년대 초반에 불러일으켰던 브랜드의 르네상스를 재현할 수 있을까?

영상
Courtesy of Bur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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