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사 로에베 서울에서 만난 조나단 앤더슨

이예진

로에베가 하우스의 창의성과 공예, 아트가 어우러진 국내 첫 단독 스토어, ‘까사 로에베 서울(Casa Loewe Seoul)’을 오픈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은 모든 것을 직접 큐레이션해 빛과 음영의 어울림을 담은 예술적 공간을 완성했다. 그의 미학적 시각이 담긴 공간에서 나눈 더블유 코리아와의 이야기.

스페인어로 ‘집, 가옥’을 뜻하는 ‘까사(Casa)’. 15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 태생의 브랜드 로에베는 ‘까사’로 명명한 스토어를 짓고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집과 같은 친밀함, 문화, 작품이 공존하는 이곳은 어느 예술품 수집가의 타운하우스에 방문한 듯한 기분을 준다. 지난 7월 25일, 청담동에 오픈한 단독 스토어는 마드리드, 런던, 도쿄, 싱가포르, 베이징에 이어 선보이는 까사 로에베 스토어다. ‘수집가의 집(Collector’s home)’이라는 콘셉트 아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의 미학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총 3개 층으로 이루어진 매장은 여성복 및 남성복, 핸드백, 슈즈, 액세서리, 아이웨어, 가죽 소품, 스카프와 숄, 홈 향수 등 로에베의 전 컬렉션과 현대 예술가들의 그림, 조각부터 공예 오브제와 가구 등이 조화를 이루며 한데 어우러져 있다. 짙은 녹음을 연상시키는 스페인 핸드메이드 세라믹 타일 외벽이 인상적인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여러 층을 관통하는 거대한 크기의 대나무 조형물이 반긴다. 일본 작가 치쿤사이 타나베 4 (Tanabe Chikuunsai IV)의 작품 ‘창조의 원천(Source of Creation, 2024년)’이다. “패션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 축에서 시작해서 그 둘의 근사한 융합을 매장 전체에 걸쳐서 보여주는 작품이죠. 제게 큰 영감이 됩니다.” 맞춤형 펠트를 입힌 베린 클 (Berin Club) 의자, 헤릿 토마스 리트벨트(Gerrit Thomas Rietveld)가 디자인한 각진 위트레흐트 및 스텔트먼 의자가 놓여 있고, 발밑으로는 영국의 섬유 예술가 존 앨런의 추상 풍경화가 깔려 있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작품 2점과 영국 도예가 존 워드의 화병 등등 곳곳에서 작품과 패션이 함께 숨을 쉰다. “빛과 음영이 사물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습니다.” 그의 예술적 시각은 넓은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주변의 도시 풍경과 원색 타일, 콘크리트와 오크나무, 황동, 대리석 등 서로 다른 질감의 소재가 풍부한 빛을 받아 새로운 풍경을 그려냈다. 스토어를 둘러볼 동안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서둘러 3층으로 올라가 인터뷰 준비를 하며 낮고 굵게 깔리는 묵직한 음성으로 악수를 건넸다. 로에베에서의 10년, 아트와 공예, 하우스에 대한 애정이 담긴 이야기를 풀어놨다.

스페인에서 공수한 핸드메이드 타일로 제작한 까사 로에베 스토어 외관. 거리의 풍경과 평화롭게 어우러진다.

<W Korea> 만나서 반갑다. 한국의 첫 ‘까사 로에베 서울’ 오픈을 축하한다. 다른 나라의 까사와 어떤 차이점이 있나?
조나단 앤더슨 우리가 전 세계에 선보이는 까사는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 다양한 특징을 반영한다. 까사 서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장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큰 규모의 공간을 늘 만들고 싶었다. 3개 층으로 구성된 점이나 외관 등이 정말 마음에 든다. 또 다른 매장들과는 달리 정말 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 까사의 중앙을 장식한 부작품도 환상적이다. 기대가 된다.

‘수집가의 집(Collector’s home)’이라는 공간 콘셉트는 어떻게 나왔나?
전 세계 곳곳에 자리한 로에베 매장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집합체다. 매장에 따라 서로 다른 유형의 수집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곳 까사 로에베 서울에서는 빛과 음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탐구했다. 아래층의 흑백 항아리부터 코너에 있는 라파엘라 시몬과 포피 존스의 작품까지, 빛이 사물에 미치는 영향과 그 결과로 사물은 어떻게 형태를 얻게 되는지 고찰했다.

공간을 큐레이션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아늑함과 따사로움을 전달할 것. 쇼핑하는 동안에도 다양한 것들을 보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팬진(fanzine)을 집어들 수 있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차갑고 거리를 두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 이제 근황 토크를 해보자. 파리 2025 S/S 남성 컬렉션 이후에 어떻게 지냈나?
일이 정말 많았지만, 아주 훌륭한 한 해를 보냈다. 뉴욕에서 열린 메트 갈라에도 공을 들였다. 베니스에서 9월 3일에 개봉하는 영화의 의상을 맡았는데, <챌린저스>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감독, 루카 구아디아노 연출에 대니얼 크레이그가 등장하는 새로운 영화다. 참, 남성 컬렉션도 정말 자랑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우리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컬렉션이랄까. 다가오는 시즌도 기대가 된다.

당신의 한 해는 굉장히 바쁠 것 같다. 본인만의 스케줄링 방식이 있나?
매우 바쁘고, 할 일이 너무 많지만 훌륭한 팀이 있기에 가능하다. 두 나라를 오가며 생활하기 때문에 일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정말 즐긴다. 즐기면 일에 압도되지 않는다. 즐기지 않을 때 일에 압도된다고 본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항상 바쁘게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수많은 창작 과정에서 소진된다고 느낄 때 어떤 방식으로 재충전하는가?
사실 나는 한 번도 번아웃을 느낀 적이 없다.개인적인 일에 집중하면서 재충전하는 편이다. 집에서 뭔가를 하거나 정원일을 하거나 휴가를 가는 식이다. 만약 일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면, 잠시 그 일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일하면서 느끼는 약간의 간장을 즐기는 것 같다.

내년 10주년 쇼를 앞두고 있다. 스스로를 돌이켜본다면?
나이가 들면서 예전만큼 젊지 않지만(웃음) 하는 일을 더 차분하게 대하게 된 듯하다. 당신이 하우스에 일으킨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 있을까? 로에베에 꽤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고 자부한다. 내가 로에베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렸다고 생각하니까. 브랜드에 합류했을 때 정말 자랑스러웠다.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하우스, 놀라운 장인 정신과 전통을 보유한 유서 깊은 하우스의 수장이 되는 일이라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스페인의 공예를 세계에 알리고 이 브랜드가 럭셔리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런 의미에서 로에베가 매우 독특함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로에베와 같은 브랜드는 많지 않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과 우리만의 기법을 통해 장인 정신을 앞세운 최초의 브랜드 중 하나였으니까. 어떻게 바구니를 만드는지, 그 전통적인 방법을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10년 전만 해도 모두가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려고 했지만, 나는 문화적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껴진다. 이제는 모두가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문화적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나는 로에베가 팔로워(follower)가 아니라 리더가 되길 바랐고, 실제로 선도적인 리더라고 생각한다.

로에베에서 일하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일까?
무엇이든 세상에 내놓을 때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 데뷔 시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컬렉션을 관통하는 테마가 있나? 창작의 과정에 함께하는 호기심.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탐구하고 반영하는 것 외에, 매 시즌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다른 요소는? 음…잘 모르겠지만 늘 예술과 공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새로운 도예가를 찾는 일을 정말 좋아한다. 박물관도 좋아하는데, 어제는 스페인에서 프라도 미술관에 다녀왔다. 나에게 그보다 더 영감을 주는 것은 없다. 역사에 반영되는 생각들,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 루벤스와 티치아노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면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우리가 얼마나 현대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거나, 전에 주목하지 못한 그림 속의 무언가를 발견할 때 큰 영감을 받는다. 아, 더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 세상에는 볼 것이 무척 많다. 때로는 우리가 과도하게 많은 자극을 받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젊은 아티스트, 새로운 가수, 새로운 연극을 보며 항상 새로운 소식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화적 상황의 일부가 되는 것은 내게는 무척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한 정다예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벽면.
라파엘라 시몬의 작품 쌰네(크림)가 걸린 공간.

10주년 기념 책을 선보인다고 들었다. 그 외에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나?
향후에 마드리드에 재단(문화) 센터를 열 계획이다. 아주 규모가 큰 프로젝트인데 3년 내에 완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난 2년 동안 준비해온 까사 로에베 서울을 드디어 공개했고, 일본에서 오픈할 새 매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로에베 매장이 될 거다. 앞서 말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개봉을 앞둔 작품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10주년 기념 책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이제 거의 완성 단계까지 왔는데, 사람들도 이 책을 보면서 로에베가 걸어온 10년의 발자취를 매우 흥미롭게 볼 것 같다. 그간의 하이라이트를 다양하게 담았으니까. 나는 책과 팬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패션이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문화의 진가를 알아본다는 믿음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지난 2월에 파리에서 열린 2024 F/W 여성 컬렉션을 봤다. 그때 보내준 아티스트 앨버트 요크의 초대장은 너무 예뻐서 집에장식해두었다. 쇼를 떠올려보면 피날레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반응이었다. 당신의 새로운 전성기가 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고맙다. 브랜드를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창의적인 작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항상 더 나아지는 거다. 지금보다 나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지금의 어떤 것이 로에베를 위해 맞는 선택인지 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더 많은 위험도 감수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의 쇼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며 타이트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호기심이 많아졌기 때문일거다. 사람들이 로에베에 대해 더 많이 발견하고, 로에베가 1차원적인 브랜드가 아니라 다채로운 면면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당신은 예술적인 레퍼런스만큼이나 위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당신이 위트를 옷에 담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나는 너무 진지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패션이 무겁고 진지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약간의 유머나 재치를 더하는 걸 선호한다. 모든 것에는 유머가 조금씩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사가 너무 지루할 테니까.

강아지, 새, 체리, 꽃, 도자기 등등 옷에서 등장한 아이콘 중 하나만 사용해서 만들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나?
만약 하나만 사용할 수 있다면… 어렵다. 나의 모든 컬렉션에는 항상 어떤 형태로든 동물이 등장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뭔가 아이 같은 매력이 있는 아이콘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곤충도 탐구해봤고, 다양한 것을 연구해봤는데.. 여전히 답은 잘 모르겠다.

존 워드가 수작업한 흑백의 사기 그릇 컬렉션.
주얼리와 액세서리 등이 진열되어 있다. 대리석 가구와 집기, 조도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로 로버트슨(Ro Robertson)의 멀티미디어 토르소 II, 2023.

더 확장하고 싶은 라인이 있나?
미래에는 제품의 핵심적인 부분을 강화하고 싶다. 예를 들면 에스파드리유처럼 로에베가 강조하는 진정한 장인 정신을 담은 제품을 더 살펴보고 싶다. 내년에 새로운 가방을 몇 개 선보일 예정인데, 더 고급스럽고 다양한 종류의 백으로 라인업을 강화하려고 한다. 앞으로 2~3년 내에는 파인 주얼리 디자인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당신의 최종 목표를 말해줄 수 있나?
행복해지는 거다. 로에베와 관련된 궁극적인 목표는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소비자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될 테니. 시장에는 굉장히 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좋은 브랜드는 적다. 나는 이 하우스가 하나의 방향으로만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계속해서 진화하려고 한다. 로에베가 포용하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단순히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하지 않는다.

위트레흐트 암체어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조나단 앤더슨.
지지포 포스와(Zizipho Poswa)의 미릴레 캄와냐 Mireille Kamwanya, (2022)의 작품이 놓여진 섹션.
치쿤사이 타나베 4세의 작품, ‘창조의 원천’.
므케인 느주자(Mncane Nzuza)-무제 N/A 화병이 놓인 벽면.
포토그래퍼
양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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