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 코리아>와 넷플릭스 코리아가 의기투합하여 기획한 ‘베스트 퍼포먼스 위드 넷플릭스’는 1년 동안 선보이는 넷플릭스 작품의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다
분명한 건 K 드라마와 K 배우의 놀라운 힘이다. 우리는 늘 재밌는 무엇이 출현하길 기다리고, 여기서 즐기는 것은 이제 전 세상 어딘가에서도 즐기는 것이 된다. 그 사실을 큰 동력 삼아 <더블유 코리아>의 눈길이 향한 곳은, 넷플릭스다.
“고민시는 달콤쌉쌀한 초콜릿 같은 배우다. 처음 만나는 이도 쉽게 무장 해제시킬 수 있는 청량한 웃음과 달콤한 말투를 지녔으면서도, 카메라가 돌면 쓰디쓴 말과 까칠한 표정을 거침없이 꺼내놓을 줄 안다. 신비하고 고혹적인 에너지 덕분에 <스위트홈> 시즌 내내 작품 내외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 <스위트홈> 감독 이응복
“고민시의 연기가 더해지는 순간이면 예측 가능한 장면도 새롭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뀌곤 했다. 그냥 타고난 재능인 줄 알았는데, 그 뒤엔 치열하게 쏟아붓는 노력이 있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모든 것은 끝까지 애쓰고 긴장한 결과였다. 앞으로 고민시와 더 치열한 고민의 성과를 함께할 감독들에게 벌써부터 질투가 난다.”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감독 모완일
W KOREA 최근 <스위트홈 3> 8부작이 공개되며 세 시즌에 걸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 이 작품에 관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뭔가?
고민시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연기할 수 있는 터전을 얻었다는 것. 아무래도 현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인 괴물을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했으니, 배우로서 가치 있는 경험치가 생긴 셈이다. 넷플릭스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보다 많은 나라에 내 존재를 알릴 기회도 얻었고, ‘은유’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덕분에 또 다른 작품에 캐스팅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스위트홈> 시리즈의 이은유는 다소 거칠고 씩씩한 여고생 캐릭터인데, 시즌이 흐르며 오빠인 은혁(이도현 배우)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복합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은유라는 인물에게서 어떤 심정을 강하게 느꼈나?
은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픈 손가락’ 같달까. <스위트홈> 시리즈에서 괴물화가 진행되는 인간은 자기 안의 욕망이 뿜어져 나온 모습의 괴물로 변한다. 사라진 오빠를 찾겠다는 것이 은유에겐 욕망이었을텐데, 그 감정을 잘 억누르고 마침내 오빠를 만난다는 점에서 은유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 아이의 가장 큰 욕망은 세상이 변하기 전, 어렸을 때 자신이 알던 오빠의 그 본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을 듯하다. 좋아하는 발레를 하고, 곁에는 늘 자기를 지켜주는 오빠가 있고. 그런 장면을 꿈꾸지 않았을까?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은유가 가장 색안경을 끼지 않고 누군가를 보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끝까지 간다’라는 강단도 갖췄다. 은유를 연기하면서 은유에게서 많이 배웠다.
액션 연기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몸을 사용하는 일에 얼마나 감이 있다고 파악했나?
<스위트홈> 에서 내가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고 하긴 민망하다. 와이어에 매달리거나 구덩이에 빠지는 일 정도는 체력이나 담력이 필요한 경우라, 익숙해지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 같이 합을 맞추는 게 진짜 액션 연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경우는 한 신 정도만 있었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촬영하면서 액션 연기를 많이 했다.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그런 신이 꽤 필요했다. 액션 스쿨에서 훈련하기보다 현장에서 고민하면서 합을 맞추고 바로 몸을 날리곤 했는데, 합이라는 것을 비로소 확인한 경험이었다.
미스터리 스릴러인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통해서는 고민시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영하(김윤석 배우)가 운영하는 외딴 펜션에 성아라는 신비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영하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이야기다. 나는 성아를 연기했는데, 지금껏 한국 작품에서 그런 여성 캐릭터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는 여자다. 대본을 읽으면서 너무 소름 끼쳐서 몸에 한기가 돌 정도였다. 맡았던 인물 중 역대급 난도라고 느낄 만큼 어렵기도 했다. ‘큰일났다, 어떻게 표현해야 뻔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틀 밤을 새우면서 고민하고 첫 대본 리딩 자리에 나간 기억이 생생하다.
김윤석 배우와 호흡을 맞춘 경험은 어땠나?
내가 현장에서 감독님이나 선배님을 대할 때 딱히 떨지 않는 편이다. 고민시라기보다 극 중 캐릭터로 다가가는 거니까. 그런데 김윤석 선배님 앞에서는 좀 떨렸다. 최근 데뷔 초 때 쓴 수첩을 보니 내가 롤모델로 선배님 이름을 써놨더라. 어릴 때부터 존경했던 마음과 막상 만났을 때 전해진 아우라 때문에 긴장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떤 현장에서든 선배님들과 친밀해지기 위해 굳이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적으로 살갑게 다가가기 전에 배우로서, 연기로서 먼저 믿음을 드리고 싶다. 감독님은 나를 믿고 불러주셨어도 선배님들 중에는 나라는 배우를 모른 분도 많을 것이고.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로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은 후 서서히 가까워지는 그 기분이 아주 좋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모완일 감독은 <부부의 세계>와 <미스티>를, <스위트홈> 시리즈의 이응복 감독은 <미스터 션샤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을 연출했다. 드라마로 자기 인장을 새긴 경험이 있는 감독들과 작업해본 소감이 궁금하다.
모완일 감독님에겐 천재 DNA가 있는 것 같다. 평소 다양한 작품을 두루 보는 분이라는 점도 느낄 수 있다. 현장에서 연기를 두고 대화할 때,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린 적이 많은데 그런 경험도 즐거웠다. 내가 어떤 식으로 리허설을 하고 연기하는지 파악하신 후부터는 ‘오늘은 성아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같은 표정으로 기대하시는 게 느껴져서 나도 신이 났다. 이응복 감독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현장에서 서로 투닥투닥 하는 순간도 많았는데, 예를 들면 여러 번 NG를 외치면서도 정작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는 말을 안 해주실 때가 그랬다(웃음). <스위트홈> 첫 시즌을 찍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흐른 시간이 5년 가까이 되다 보니 정말 부녀 같은 관계성이 형성됐다. 시즌이 흐르면서 나도 미처 모른 내 얼굴을 발견하게 해주신 점에 감사한 마음이다.
<스위트홈 3>의 은유가 그랬듯,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한 인물의 성장 계기나 그 사람을 이끄는 동력이 눈에 잘 보이는 법이다. 우리는 관객과 시청자로서 이야기 전체를 알 수 있으니까. 고민시에게 지금 자신을 이끌어주는 동력은 무엇인 것 같나?
일을 하면서 많은 스태프들과 한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 너무 신이 난다. 내가 만약 글을 잘 썼다거나 연출에 소질이 있었다면, 배우를 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작품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들에 이바지하거나 카메라 뒤에서 작품을 지휘하는 일을 택했을 거다. 겪어보니 그런 마음이 든다.
배우 말고도 작품을 위해 뒤에서 움직이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나는 메이킹 필름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걸 볼 때 전해지는 감동이 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그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도 보이고. 요즘 AI가 발전해서 굳이 사람들이 없어도 AI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지만, AI가 절대로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부분이 그런 데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하나의 결과물을 여럿이 같이 만들어갈 때 느끼는 감정 말이다. 현장에서 우리끼리 느끼는 끈끈한 유대감, 디테일하게 만들어가는 재미들. 그렇게 공들인 끝에 나온 장면들이 모두 모여서 한 개의 작품이 된다. 그건 아주 멋있는 일이다.
촬영 준비를 할 때, 각 신마다 선보일 연기의 배리에이션을 꼼꼼하게 염두에 두는 편인가?
그렇다. 여러 가지 안들을 생각해서 가는 편이다. 그런데 만약 현장에 갔는데 내가 상상했던 분위기나 세팅이 아니라고 하면, 시뮬레이션 했던 것들은 공중으로 날려 버린다. 어쨌든 내가 생각해놓은 베이스는 내 안에 깔려 있으니, 그 안에서 상황에 맞게 바꿔가며 하려고 한다. 나는 미술적인 세팅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사전에 물론 다양한 연기를 생각해둬야 하겠지만, 그러면서도 현장에 맞게 재빨리 적용할 줄 아는 점도 중요하다고 들었다. 고민시는 본능적으로 그게 되는 사람인가?
<밀수>를 작업하면서 상황에 따라 뭔가를 빨리 빨리 바꿔야 하는 점을 배웠다. 감독님이 예상하지 못했던 디렉션을 많이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시뮬레이션 한 것과 아주 다른 디렉팅을 주시기도 했고. 그럼 그 순간 디렉팅을 이해하고 내뱉어야 하는데, 그러기까지 시간을 단축하는 훈련을 그 현장에서 한 것 같다.
바로 그 작품으로 작년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가니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던가?(웃음)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나는 혜수 선배님이 청룡영화상에서 MC를 본 지 30년 되는, 그 마무리를 하는 날에 축하하는 마음으로 참석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부모님에게 청룡영화상에 후보로 올랐으니까 방송 챙겨보시라는 말도 안 했다. 엄마가 TV 채널을 돌리시다가 나랑 비슷하게 생긴 애가 보이더니 <밀수> 팀이 다 앉아있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웃음). 그 날 엄마에게 부재중 연락이 많이 와 있었다.
어릴 적 당신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창들이 배우로 데뷔한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그건 놀랄 만한 일이었을까? 그럴 법한 일이라고 여겼다면 당신이 어린 시절부터 어떤 끼가 있었다는 뜻 같다.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을 거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인가, 동네에서 <전국 노래 자랑>과 비슷한 대회가 열렸을 때, 친구들과 나가서 장윤정 선배님의 ‘어머나’를 불렀다. 노래하고 춤추고 그런 걸 좋아했던 아이다. ‘어머나’를 불러서 문화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웃음).
아이슬란드에 일정 기간 한식당을 오픈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선보이는 tvN <서진이네 2>가 방영 중이다. 고민시에게 ‘프로 일잘러’라는 닉네임이 생겼다.
지금까지 어떤 작품을 했을 때보다 주변의 반응이 뜨거웠다(웃음). 내가 평소 잠을 설칠 때가 많은데, 거기서는 매일 누우면 바로 잠들었다. 밤에 숙소로 와서 하루 동안 어떤 연락이 왔는지 폰을 좀 들여다보려고 해도 졸려서 그럴 틈이 없었다. 꿈을 꾼 기억도 없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도 그 이상의 일을 해내야 했다. 손님이 그 정도로 많이 오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전혀 받지 않고 몸만 힘들었다. 고생했지만, 잡생각 없이 주어진 일과에 맞추는 일정한 사이클을 소화하면 되는 날들이어서 좋았다.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주방 노동을 했는데, 영광의 상처나 후유증도 남았을까?
장갑을 착용하고 설거지를 해도 물이 계속 들어가면서 결국 습진이 생겼다. 나랑 유미 언니는 한동안 손등에 생긴 습진이 가라앉질 않아서 꽤 애먹었다. 아이슬란드 날씨도 정말 추웠고. 매일 손발이 퉁퉁 부었다! 3~4월에 촬영하고 한국에 들어 와서는 손목과 발목에 침 맞으러 한의원에 다녔다.
당신은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해 직장에 다니다가 문득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에 왔다. 배우로 살아보니 뭐가 좋은가?
나는 고민시의 삶보다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삶이 더 재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라는 사람이 재미가 없어지는 기분이다. 이상하게 예전과는 너무 다른 변화도 생겼다. 책 읽는 걸 싫어했는데, 이제는 좋은 책과 시집을 본다. 역사에도 흥미가 생기고. 어려운 것을 두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도 즐긴다. 어릴 때는 그렇게 먹기 싫었던 나물 반찬 같은 건 왜 당기는 거지? 그런 데서 안정감을 찾게 되는 심리인지, 내가 좀 고리타분해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 캐릭터를 만나면 또 다른 할 것들이 생긴다는 점에서 좋다.
다른 배우가 연기한 인물 중 ‘애정하는 캐릭터’ 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는 누군가?
<첨밀밀>의 장만옥! 나는 등에 미키마우스 문신을 새긴 그 아저씨 때문에 왜 그렇게 슬펐는지, 많이 울었다. 장만옥과 여명이 같이 비를 맞거나 좁은 공간에서 상대방 단추를 잠가줄 때… 그런 순간들이 진짜 멜로라고 생각한다. 장만옥의 말간 얼굴과 음악, 미쟝센도 좋고. 아참, <이터널 선샤인>의 클레멘타인도 빼놓을 수가 없다!
마법처럼 어떤 초능력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나?
체력이 바닥 나지 않고 계속 채워지는 능력. 그런 체력 게이지! 그것만 갖춰지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진이네 2>를 촬영하면서 처음으로 홍삼 진액을 먹어봤다. 유미 언니가 주신 공진단도 먹었고. 그런 걸 먹는 것과 안 먹는 것의 차이가 꽤 크더라.
올해 넷플릭스 시리즈 두 편을 선보이는 데다 예능에서도 활약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 고민시의 2024년은 어떤 해였나?
올해 1월 1일에 하와이에서 스카이 다이빙을 했다. 요가 선생님과 함께. 선생님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그런 도전을 하면서 ‘올해 뭐든 다 해낼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으려고 했다. 뛰어내리기 직전에 진짜 무서웠다. 어느 지점에서는 구름 속을 지나느라 세상이 온통 하얀색일 때도 있었고. 그러다 낙하산이 딱 펼쳐지면서 대자연의 장관이 보이는데… 나는 무지개 모양이 우리가 아는 반원형이 아니라 사실은 원형이라는 걸 그 때 알았다. 동그란 무지개가 보였다. 좀 더 내려가니 바다에서 돌고래들이 헤엄치는 모습도 아주 조그맣게 보였고. 그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워서, 대자연이 경이로워서 막 눈물이 났다. 물론 눈물은 나오는 족족 거친 바람에 날아가버렸지. 살가죽은 떨리고. 그런 와중에도 ‘나는 정말 먼지 같은 존재구나, 작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얻고자 했던 그 자신감으로 꽉 채워졌다. 정말 좋았던 경험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올해 정말 다 잘 해내고 있다. 뭐든 뛰어들기 직전의 순간보다 무서운 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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