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뭔가가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온유의 이야기

전여울, 김민지

온유는 굽이치는 파도에, 흘러가는 시간 속에 그저 몸을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건 용기 있게 초연해지길 택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9월 발매하는 미니 3집 <Flow>에는 온유의 이러한 이야기가 담겼다.

뿔테 안경은 구찌 by 케어링 아이웨어, 셔츠는 토가 비릴리스 by G STREET 494 HOMME, 타이는 더트 냅 제품.
모자와 재킷, 셔츠, 팬츠, 앞코가 뾰족한 슈즈, 브레이슬릿, 네크리스는 모두 알렉산더 맥퀸 제품.

<W Korea> “청량함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요?” 첫 질문입니다(웃음). 최근 싱글 ‘월화수목금토일’의 라이브 클립이 공개됐는데 댓글에서 외모 얘기뿐이더라고요.
온유 아이고, 어머니 감사합니다(웃음).

영상 속 알록달록한 색감도 그렇고 여러모로 샤이니 ‘Dream Girl’ 활동 당시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제 요즘 느낌이 좀 그런가 봐요. 이상하게 밝아졌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요. 오래 봐온 지인들도 만나면 얼굴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월화수목금토일’ 역시 이지 리스닝 계열의 밝은 노래인데, 9월 발매하는 미니 3집 <Flow>의 선공개 곡이죠?
맞아요. 원래는 선공개 계획이 없던 곡이에요. 6월 톤앤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했는데 무대를 준비하면서 관객이 다 같이 따라 부르면서 놀 수 있는 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저히 공연을 생각해서 작업한 곡이에요. 페스티벌 직전 전반적으로 대공사를 거쳐 나오게 됐어요.

현재 <Flow> 의 작업 진도는 어떤가요?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죠?
4월부터 곡을 받아 작업하기 시작했는데 거의 다 끝난 상태예요. 이제 나오기만 하면 되죠. 6곡을 수록했는데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해본 것 같아요. 다 썼다가 갈아엎기도 하고. 제 손을 안 탄 구석이 없는데, 이번에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요. 역시 돈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웃음).

하하. <Flow>를 통해선 어떤 얘기가 하고 싶었어요?
전에 작년 첫 정규 1집 을 발매했잖아요. 그땐 위로와 순환이 키워드였어요. 모든 건 순환하고, 회복될 거고, 언젠가 돌아올 거다, 그러니 지금 아파도 괜찮아질 거다. 는 이런 순환 속의 ‘흐름’에 주목해요. 사실 요즘 꽂혀 있는 생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위치와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흘러가는 대로 그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자, 다만 어떤 상황에서든 나 자신의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나 자신의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 조금 더 설명한다면요?
그러니까, 이번에 작업하며 딱 떠올린 이미지는 ‘회색’이었어요.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둘이 합쳐졌을 때 나오는 색깔이요. ‘난 흰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니야. 그렇다고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야. 난 그냥 회색일 뿐인걸?’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회색을 떠올리며 작업한 앨범이라, 보통 추상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편인가요?
네. 저 굉장히 추상적이에요. 그래서 작업할 때 주변에서 힘들 거예요(웃음). 이번에 특히 더 그랬어요. 중간 지점에 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갔거든요. 회색도 그중 하나고, 낮도 밤도 아닌 새벽을 생각하기도 했고.

니트와 팬츠는 제냐, 스터드 벨트는 더트 냅, 목걸이는 락킹 에이지 제품.

그럼 <Flow>를 비유를 통해 말해볼까요?
음··· <Circle>과 <Flow>는 위로의 측면에서 서로 통하는데, 그 방법이 좀 달라요. 에선 ‘괜찮았어? 괜찮을 거야’라고 말했다면 에선 이렇게 말해요. ‘이미 지나갔는데 어떡할 거야. 다른 거 하면 되지. 괜찮아, 너에겐 더 멋진 것들이 많아.’ 쉽게 말해 좀 ‘T’적으로 변한 거죠(웃음).

<Circle>과 <Flow>사이 약 1년 6개월의 시간 간극이 있는데 두 앨범의 메시지에 제법 큰 차이가 있어요. 그 시간에 온유 스스로에게도 변화가 있었던 듯해요.
굉장히 많지 않았을까요? 우선 오래 몸담아온 곳을 떠나 새로운 회사와 함께하게 됐고요. 또 처음으로 전곡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는 사이 좀 덜 강박적으로 변하기도 했고요. 예전엔 작업하며 늘 ‘100이 아닌데, 100이 아닌데’라고 초조해했다면 지금은 ‘100이 어디 있어. 일단 해놓고 좋은 걸 더하면 되지’가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아까 말한 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같은 맥락의 얘기예요.

이번 앨범으로 가장 듣고 싶은 피드백이 있어요?
제 솔로 앨범 중 가장 밝은 앨범일 거예요. 온유 좀 가벼워졌다, 이런 노래도 하네, 근데 이 노래 공연장에서 듣고 싶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물론 어느 때고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한껏 담은 앨범을 내고 싶은 욕심도 있죠. 그런데 <Flow>는 딱 지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앨범 같아요. 대중 앞에서 가벼워지고 친근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는 것 자체가, 경험이 많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보컬리스트로서의 한풀이는 이미 <Circle>로 한바탕 치르지 않았나요? 데뷔 15년 만의 첫 솔로 정규앨범인데 비평적 찬사를 받았어요. 대중음악 평론가 김윤하는 ‘온유라는 사람의 목소리에 집착적일 정도로 집중해서 만든 앨범’이라는 한 줄 평을 남기기도 했고요.
그렇긴 하죠. 너무너무 집중해서, 하나하나 다 캐치해서 그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은 앨범이긴 했어요. 스태프들과의 시너지도 좋았고요. 활동이 끝나곤 여기저기서 스태프들을 만날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재킷과 셔츠, 팬츠, 모자, 브레이슬릿과 네크리스는 알렉산더 맥퀸 제품.

<Circle>은 작년 빌보드가 선정한 ‘베스트 K팝 앨범’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당시 리뷰를 봤나요?
쉬고 있을 때여서 리뷰까지 꼼꼼히 보진 못했는데 소식을 접하고 ‘진짜 보람 있네’란 생각은 했어요. 내가 가고 싶은 길에도 빛이 있구나, 느꼈던 것 같아요.

앨범의 키워드가 위로였는데, 실은 그 앨범으로 가장 위로를 얻은 건 온유였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까 ‘내가 위로받고 싶었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매번 누군가를 만나면 웃는 얼굴로 ‘여러분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했거든요. ‘제가 좀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무조건 행복해지십시오’의 마인드였어요. 그런데 앨범 작업이 끝나니까 ‘내가 행복하면서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나’를 1순위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Circle>에 관해 받은 피드백 중 가장 기억 남는 게 있다면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얘기를 해주신 분이 계셨어요. 저의 위로가 누군가의 삶에 직접적으로 가닿았다는 거잖아요. 그때 최소한의 성공은 했구나 생각했어요.

좀 전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 보컬리스트로서 풀지 못한 욕심이 있는 듯해요. 어떤 방향성의 음악을 하고 싶나요?
음악 하는 분들에겐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장르를 나누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딱 잘라 어떤 장르를 해보고 싶다기보다 신나는 쪽, 가사가 잘 들리는 쪽, 이런 식으로 크게 두고서 접근하고 싶더라고요. 또 앞으로 음악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아요. 저에게 잘 ‘들리는’ 노래가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할 것 같아요.

니트 톱과 팬츠, 발라클라바, 슈즈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온유 하면 늘 ‘좋은 목소리’로 이야기되잖아요. 어떤 음악을 발표하든 피드백의 과반이 ‘목소리 좋다’는 것으로 수렴돼요. 이런 반응들은 어떻게 다가가나요?
처음에는 안 좋아했어요. 사실 제 목소리가 특이한지조차도 몰랐어요. 남들이 되는 게 전 안 됐거든요. 이를테면 곡마다 목소리가 확확 달라진다거나. 하다못해 성대모사도 안 됐고요. 제 목소리로는 어떤 노래를 불러도 결국 온유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목소리 좋다’는 얘기보다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훨씬 듣고 싶어 한 때가 있었어요. 제가 가진 고유함을 몰랐을 때고, 무엇보다 옆엔 노래를 너무 잘하고 목소리도 좋은 종현이가 있었잖아요. 심지어 데뷔 전 종현이와 같은 보컬 학원에 다녔는데 선생님이 따로 절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넌 절대 메인 보컬이 될 수 없어.’ 어린 마음에 마치 다 끝난 것처럼 ‘난 안 되는구나!’ 생각했고요(웃음). 나중이 되어서야 다름이 틀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목소리가 좋다는 것도 결국엔 노래를 잘하는 게 깔려 있어야 들을 수 있는 말이란 것도 알게 됐고요.

‘앞으로 음악적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고 했어요. 온유가 계속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나라는 존재는 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누구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이제는 정말 이런 얘기를 여유롭게 할 수 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제발 행복해주세요, 부탁입니다’였던 것 같거든요. 저는 이런 지금이 너무 좋아요.
오늘 인터뷰에서 ‘행복’이 여러 번 언급됐어요. 온유가 생각하는 행복이 흔들릴 때, 그때마다 온유를 지탱해주는 건 뭔가요? 이전까지는 부모님이었거든요. 여전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부모님께 감사하지만 이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시기 같아요. 결국엔 행복하자는 것도 나와 하는 약속이거든요. 이제는 나를 지탱하는 주체가 ‘나’로 바뀐 것 같아요.

보다 자립적으로 변한 거네요?
그러고 싶어진 것 같아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부모님 때문에 살아야지’라고 하다 보면 책임 전가를 해요. 그런데 주체가 ‘나’가 되고 모든 것이 ‘나’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변화의 이유가 있나요?
몰랐던 것 같아요. 현실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간접적으로 비춰주는 현실에 의존하고 기댄 거죠. 그런데 지금은 혼자 나와 일을 하다 보니까 시작점이 지하더라고요. 지하에서 위로 하나하나 파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저에게 필요했고, ‘왜 파고 나가야 했나’ 물었을 때의 대답이 ‘행복하고 싶어서’였어요. 이제 좀 뭔가가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지금 너무 좋아요.

그럼 앞으로를 그려볼까요? 뮤지션으로서 꿈꾸는 모습이 있나요?
쉴 때 미국에서 콜드플레이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때 공연장으로 가는 길의 설렘, 공연장의 수많은 관객 사이에서 비록 점처럼 작게 있었지만 느낀 기쁨. 그걸 지금도 못 잊는 것 같아요. 누군가 나의 공연을 보러 올 때 그런 느낌이 들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계속 생각해요. 그리고 제 음악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재킷은 루드 by G STREET 494 HOMME, 팬츠는 질 샌더 by G STREET 494 HOMME, 슈즈는 마르니, 네크리스는 락킹 에이지 제품.
포토그래퍼
고원태
스타일리스트
정환욱
헤어
김소희
메이크업
기보
어시스턴트
박예니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