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지에 오른 배우, 구교환의 태도

이예진, 권은경

<더블유 코리아>와 넷플릭스 코리아가 의기투합하여 기획한 ‘베스트 퍼포먼스 위드 넷플릭스’는 1년 동안 선보이는 넷플릭스 작품의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다

분명한 건 K 드라마와 K 배우의 놀라운 힘이다. 우리는 늘 재밌는 무엇이 출현하길 기다리고, 여기서 즐기는 것은 이제 전 세상 어딘가에서도 즐기는 것이 된다. 그 사실을 큰 동력 삼아 <더블유 코리아>의 눈길이 향한 곳은, 넷플릭스다.

집업 후디와 플루이드 셔츠, 스웨트 팬츠, 노즈링은 모두 Balenciaga 제품.

언뜻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해 즉흥적인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교환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자신이 어떤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지 치밀하게 연구하는 학구적인 배우다. 그것을 현장에서 세부적으로 조정하는 작업까지 가능하다.

한마디로 그는 본인의 연기를 지독하게 컨트롤하는 경지에 오른 배우다. 자신이 펼치는 연기가 감정에 대한 것이든 액션이든, 혹은 즉흥성이 있는 태도이든,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교환을 최고의 배우라 말하고 싶다.”
– <기생수: 더 그레이> 감독 연상호

플루이드 셔츠와 재킷, 테일러드 팬츠, 타이, 이어커프는 Balenciaga 제품.

W KOREA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설강우는 가족의 행방을 좇다가 기생생물의 존재를 알게 되고, 우연히 수인과 얽히면서 사건에 휘말린다. 작품 안에서 설강우라는 인물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구교환 수인과 하이디의 ‘귀고리’라고 하면 어떨까. 그들과 함께하면서 더 빛나게끔 해주는 캐릭터니까.

수인과 강우, 전소니와 구교환은 합이 잘 맞는 콤비이기도 하다. 전소니 배우는 당신과 작업하면서 흥미로운 자극을 꽤 받았다고 한다.
그런 자극과 영향은 쌍방으로 이루어진다. 소니 배우가 받은 느낌이라면, 나 역시 소니 배우를 통해 받은 느낌이기도 할 거다.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에 상대를 통해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또 나에게서 어떤 리액션이 절로 나오게끔 마음을 주고 있는 존재가 바로 상대 배우다. 그래서 나는 상대 배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장면 안에서만큼은 같이 연기하는 사람을 통해 영감과 영향을 많이 받는다.

7월 3일에는 영화 <탈주>가 개봉했다. 우선 북한 보위부 장교인 리현상의 제복 입은 모습이 아주 섹시했다.
<탈주>에서 나는 군인을 연기했다기보다 피아니스트를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군복 입은 음악 아티스트를 연기했다는 게 더 맞는 말 같다.

탈북하기 위해 도망가는 규남(이제훈 배우)을 현상이 멀리서 바라보며 총을 쏘려고 조준할 때, 실은 더 빨리 쏠 수 있지만 잠시 지켜보고 두고 보는 것 같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괴롭히든 뭘 하든, 현상이 규남을 자기 옆에 두고자 하는 그런 마음을 애증이라고 해야 할까?
규남이라는 인물은 현상이 현재 꾸는 꿈 같은 것 아닐까. 그 꿈을 부시고 싶기도 하고, 부시지 못하는 거기도 하고. 부시고 싶을 때는 총의 스코프 안에 두기도 하는데, 막상 총을 쏘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떻게 부시나, 그 꿈을?

<탈주>의 이종필 감독 얼굴을 확인하니 그분이 배우로 출연한 작품들도 바로 떠올랐다. 영화 <아저씨>에서 ‘이모, 반찬이 죄다 잡법이네’라고 하던 형사!
맞다, 경력이 워낙 화려하고 스펙트럼이 넓으시다. 거슬러 올라가면 <백년해로외전>이라는 단편을 비롯해서 여러 단편, 장편영화에 출연하셨고. 드라마, 멜로, 액션 등등 다 소화하신다. 최근 무대 인사를 같이 다니면서 ‘선배님. 정말 연기는 다시 안 하시는 거예요?’ 라고 확인했을 때 안 한다고 하신 것 같은데, 눈빛으로는 아직 하고 싶은 마음이 보이는 것 같기도… 물론 나의 해석이다(웃음).

두 사람 모두 연출과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서로 간에 더 통하는 바도 있었을까?
리현상이라는 인물을 같이 연기하는 기분이었는데, 그게 이종필 감독님이 훌륭한 배우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은 아니다. 모든 영화 속 인물은 감독님 안에서 나오는 인물이니까. 감독님에게 규남이 같은 면도, 현상이 같은 면도, 또 선우민(송강 배우) 같은 면도 있을 것이다. 한 영화의 캐릭터들은 감독님들의 마음 안에서부터 출발해 파편화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리현상 역시 감독님의 자아 중 하나라고 여겼다.

그럼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기할 캐릭터나 감독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도 던지는가?
인터뷰어가 인터뷰를 준비할 때 그 대상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다르듯이, 감독님들의 방식이란 것도 저마다 다르다. 나는 주로 감독님과 빨리 친해져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식이든 정서를 공유하고 싶다는 뜻이다. <탈주>를 준비하면서 첫 미팅 때는 물론 리현상을 대하는 감독님의 태도부터 여러가지를 얘기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캐릭터를 두고 농담을 많이 했다. ‘리현상이라면 여기서 이럴 것 같은데?’ 식의 터무니 없는 농담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캐릭터와 친해지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이베이 로고 폴로 셔츠, 플루이드 셔츠와 로고 타이, 비니, 노즈링은 Balenciaga 제품.

당신의 말 재간은 인터뷰 때나 코멘터리 영상 등을 접할 때도 익히 알 수 있는데. 작업할 때는 물론 일상에서도 자주 나올 구교환식 농담과 유머가 당신의 한 성향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렇다, 그냥 내 성향인 것 같다. 그런 걸 즐긴다. 뭔가에 거대한 개념으로 다가가면 경직되고 위축된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배우로서 내 큰 장점이 현장을 재미있어 한다는 점이다. 연기력이나 발성이나 그런 문제를 다 떠나, 나의 가장 큰 능력치가 바로 그 점에 있다.

하지만 오늘 현장의 경우 한 여름에 발렌시아가 패딩을 입고 야외 촬영을 해야 했다. 전문 모델도 아닌 당신이 그것마저 즐겼다면 당신은 정녕…
나는 재밌었다. 화보 촬영도 한마디로 프로덕션을 계속 바꿔가면서 찍는 시리즈 같은 거 아닌가? 오늘은 대략 8개 스테이지를 깬 것 같은데(웃음). 화보를 위해 8개의 신이 존재했던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재밌다.

당신이 출연한 작품의 메이킹 필름을 찾아보는 편인가?
일부러 찾아보진 않는 편인데, 크랭크업 날 다 같이 모이거나 뒤풀이를 하면 메이킹 촬영 기사님이 영상을 틀어줄 때가 있다. 그렇게 영상을 보면서 내가 자주 하는 행동을 발견했다. ‘한 테이크 더’라고 잘 말하더라. 테이크에 만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좀 다른 세계관의 리액션을 해보고 싶어서 나오는 말이다. 그럼 감독님이 골라 쓸 수 있는 다양한 소스가 마련되는 셈이고, 이미 OK가 나온 후라 마음 편히 시도해보면서 좀 더 스트레칭 하는 기능도 있고 그렇다.

티셔츠와 레이어드 톱은 Balenciaga 제품, 선글라스는 본인 소장품.

배우 구교환이 추구하는 연기, 혹은 연기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화두는 뭔가? ‘연기관’이라고 말하면 거창하니까 ‘추구미’라고 하자.
캐릭터에 대해 반만 알기. 대사를 반만 외운다는 뜻은 아니고(웃음). 사전에 연습과 분석을 거듭해도, 현장은 언제나 나를 기분 좋게 배신한다. 그 배신이 나에게 추진력을 달아주는 기분이다. 그날 촬영할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나가도 그 그림은 현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부서질 수 있는 것이다. 부서진다 한들 그게 나한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잘 모르겠던 것들이 현장에서 받은 영감과 영향으로 선명해지면서, 비로소 채워진다. 그렇게 만드는 게 상대 배우의 액션이나 리액션일 때도 있고, 그날의 의상일 때도 있고, 날씨나 로케이션일 때도 있다. 현장에서 초면 같은 느낌으로 마주하는 것들을 워낙 좋아한다.

최근 몰두하는 재밌는 일이 있나?
첫 장편영화의 콘티 작업 중이다. 로케이션 헌팅도 다니고. 프리 프로덕션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하고 있다. 올해 안에 크랭크인 하는 게 목표인데, 미리 날짜까지 딱 못 박아놨다. 일부러 주변에 더 말하고 다닌다. 그래야 정말 실행할 수 있으니까!

이베이 로고 스웨터, 트랙수트 팬츠, 가죽 소재의 파카, 입에 문 장갑 형태의 알파인스타 지퍼드 파우치는 Balenciaga 제품.
B 로고 목걸이와 후디 맥시 드레스, 손에 건 아이폰 뱅글은 Balenciaga 제품.

꽤 오래 전부터 이옥섭 감독과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런저런 작업물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감독으로서 첫 장편영화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나?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상하고 아주 재밌는 멜로’ 정도로 해두겠다. 뭐 나의 예술적인 야망에서 비롯된 것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누군가의 감정, 취향, 처한 환경이나 주변을 바라보는 태도 등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바뀔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특히나 변동이 심한 편이고. 그렇게 보내버린 이야기가 많다. 이 시나리오는 지금 영화로 옮기지 않으면 유통기한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요즘 내 그림일기를 쓰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 어쨌든 관객을 좀 흔들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지금껏 좋아하는 작품들은 다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흔들어놨다.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는 많은 요소가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이지만, 상상했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과 이야기를 영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 중에서 좀 더 끌리는 쪽이 있을 것 같다. 감독 구교환의 출발점은 무엇에 가까웠나?
이야기 쪽이다. 이야기로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같은 거 말이다. ‘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겁니다’라고 무엇을 내놓는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느낀 것을 공유하고 싶다는 점이 컸다. 그런 마음은 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가져갈 것 같다.

어릴 적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뭔지 기억하나?
아마도, <슈퍼 홍길동>. 당시 포스터를 찾아보면 ‘<우뢰매>의 김청기 감독이 뜨거운 정열로 쏘아올린 새로운 폭죽’이라고 소개되는 영화다. 김정식 선배님과 전유성 선배님이 출연한 <따봉 수사대 – 밥풀떼기 형사와 전봇대 형사>도 굉장히 재밌게 본 걸로 기억하고. 그 시절 어린이 영화들이 가진 정서가 여전히 내게 일부분 남아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우뢰매>를 보면 심형래 선배님이 배우의 동선과 에너지만으로 한 신을 버티는 장면이 있다. 그런 장면을 아주 좋아한다. 배우든 감독이든 작품을 만든다는 건 결국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어떤 장면에선 배우의 힘으로 버틸 필요가 있고.

여러 개의 벨트 라인이 더해진 팬츠와 커다란 실루엣의 푸퍼, 슈즈는 Balenciaga 제품.
후디드 스터디드 집업 재킷과 스터디드 카고 팬츠는 Balenciaga 제품.

어릴 때부터 관찰력이 남달랐나?
관찰력이 남다른 건 아니고, 어릴 때부터 무언가의 팬이었다. ‘덕후’였고.

당신의 넷플릭스 ‘내가 찜한 리스트’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나? 거기서도 덕후적 기질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찜’은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데, 내 리스트에 있는 건 거의 다 고전 영화들이다. 찜을 한다는 건 한마디로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을 체크한다는 뜻 같다.

구교환의 약점은 뭔가?
유머가 먹히지 않으면 흔들린다. 나와 유머 코드가 다를 때, 내 유머에 웃지 않을 때 약해진달까.

유머를 사랑하는 어느 배우 말이, 같이 일하게 된 동료가 처음엔 자기 유머에 시큰둥했지만, 어느새 비슷한 스타일의 유머로 호응해주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그 상대를 관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 작품은 사실 그걸 내놓는 사람들이 완성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완성하는 거라고 본다. 감상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거다. 어떤 이야기와 관객이 만나면, 만들 때는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발견되고, 또 창작되기도 한다. 심지어 나는 우리처럼 무대에 서는 사람들까지도 결국은 관객이 편집해주고 만들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한 작품이 세상에 나온 다음 캐릭터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함부로 대답을 못하겠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와 인물은 계속해서 편집되고 재창조되니까. 이걸 달리 말하면, 과거의 내 유머에 웃지 않았던 누군가도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서는 웃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유머는 결국 증명된다!(웃음)

이번 주 로또 1등 당첨 금액이 22억원이라고 한다. 22억원이 생기면 당신은 그 돈을 어떻게 쓰겠나?
22억? 와, 할 거 진짜 많겠는데! 세속적인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렇게 정리한다. 11억은 영화 프로덕션에, 나머지 11억은 홍보 비용으로 쓰겠다. 그럴 수 있다. 내가 만약 피규어에 꽂혀 있다면 피규어 사는 일에 22억을 쓸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내 영화 작업에 한창 꽂혀 있으니까. ‘영화에 미친 놈’처럼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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