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겨서 뭔가 얻는 것에서 동력을 얻는다면, 저는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에 몸이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2024 파리 올림픽 한국 남자 사브르 선수 최초의 올림픽 개인전 우승,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에 이어 올림픽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개인전 그랜드슬램’ 달성한 오상욱 선수는 자신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하게 스튜디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습니다.
<W Korea> 정확히 입국 24시간 만입니다. 눈코 뜰 새도 없이 오늘 촬영에 나서게 됐어요.
오상욱 24시간밖에 안 됐나요?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된 것 같아요. 입국하고선 곧장 대전 부모님 댁에 들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고향 대전시에서 오상욱의 이름을 딴 펜싱 전용 체육관을 건립한다는 소식도 알렸죠?
영광이죠. 사실 올림픽 개막 전부터 오간 얘기예요.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면 추진에 들어간다며 어깨를 아주 무겁게 해주시더라고요(웃음). ‘무슨 체육관이야, 포기하자’ 했는데 다행히 성적이 좋게 나왔어요. 선수 이름을 딴 펜싱 체육관은 저도 처음 봐요.


지난 24시간 동안 밀린 카톡에 답하느라 시간이 다 갔을 듯해요.
요즘 좋은 기능이 생겼잖아요. 일일이 답변하는 대신 메시지에 하트를 달아주고 있어요(웃음). 사실 카톡도 카톡인데 인
스타그램 DM 양이 어마어마해요
그중 브라질에서 온 DM이 압도적인가요? 올림픽 기간 중 브라질에서의 뜨거운 인기로 화제를 모았잖아요.
그렇긴 해요. 제가 브라질상인가 봐요(웃음). 언어를 모르니 칭찬이겠거니하며 ‘좋아요’를 누르고 있어요.
아직 올림픽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듯하지만, 대장정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뿐이에요. 개운함 그 자체죠.
이번 올림픽을 통해 아시아 펜싱 선수 최초로 개인전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어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석권했죠. 그런데 정작 그랜드 슬램 가능성 이야기를 주변에서 얘기해줘서야 알게 됐다죠?
맞아요. 기자님들과 인터뷰하다 알게 됐어요. 그런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런 기분이었어요. ‘나 그랜드 슬램 했네. 진짜 했네. 어, 했네.’ 물론 영광스러운 타이틀이긴 한데 제 안에서의 어떤 기준이 그랜드 슬램은 아니었어요.


타이틀, 세간의 시선, 언론 보도 같은 것에 둔감한 편인가요?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이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지지 않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후자예요. 이겨서 뭔가를 얻는 것에서 동력을 얻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지지 않으려는 마음에 몸이 움직이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어떤 타이틀이나 세간의 평가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요.
2020 도쿄 올림픽 당시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개인전에선 아쉽게 8강 탈락했어요. 그렇기에 이번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이 더 간절했고, 마지막 퍼즐 한 조각 같은 느낌으로 다가갔을 듯해요.
저는 앞으로도 선수 생활을 계속할 거니까요.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 시합이 아닌 만큼 마지막 퍼즐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다만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고서는 퍼즐이 딱딱 맞춰지고 있다 싶은 기분은 있었어요. 그리고 그 퍼즐 한 조각에 엄청나
게 많은 것이 달려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고요.
사실 메달을 두고 누군가는 따놓은 당상이라 했지만 올 초만 해도 상황이 좋지 않았죠. 부상과 슬럼프 탓에 올림픽 개막 두 달을 앞둔 5월 국제그랑프리대회, 스페인 마드리드 월드컵에서 조기 탈락했어요.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원래는 공격을 시도했다가 상대가 막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편이거든요. ‘야, 막아봐. 내가 더 세게 때린다.’ 한마디로 패기인 거죠. 그런데 그 무렵엔 ‘어쩌지? 반대편을 때려야 하나?’란 생각이 절 지배하더라고요. 그때 옆에서 응원하고 조언해준 게 친형이었어요. 형은 저를 오래 봐왔잖아요. 그 당시 리마인드해준 게 2019년의 경기력이었어요. 그땐 경기력도 경기력이지만 마인드가 월등히 좋았거든요. 그러면서 6월부터 탄력이 좀 붙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올림픽에선 변수도 상당했잖아요. 무엇보다 예상 대진이 모두 빗나갔어요. 특히 상대로 만날 거라 점쳐진 헝가리의 실라지 아론 같은 강자들이 조기 탈락하는 이변이 벌어졌죠.
그때 좀 흔들리더라고요. 특히 실라지는 개인전 4연패까지 노리던 상황이었잖아요. 이변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그 긴장감이 오히려 약이 되더라고요. 오로지 경기만 생각하는 계기가 됐거든요. ‘쟤는 뭘 했길래 이겨서 올라왔을까?’, ‘나에게도 비슷한 전략을 쓸텐데 어떻게 경기해야 할까?’에만 몰두하자 싶었죠.
개인전 통틀어 가장 잊지 못할 득점 1점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결승전 마지막 1점이죠. 금메달 포인트까지 단 1점을 남긴 상황에서 내리 6점을 허용했어요. 튀니지의 파레스 페르자니와 붙었는데 상대 전적에서 제가 밀리는 상황이었어요. 경기 시작 전에는 막히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생각했어요. 이전 경기에서도 제 공격이 길다는 걸 파악하고 막는 데 주력한 선수거든요. 그걸 또 굉장히 잘하고요. 결승 초반 점수를 크게 벌려놨는데 상대가 쫓아오니 이러다 잡히는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 1점이 죽어라 안 올라갔어요. 마지막 1점을 딴 순간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드디어 끝났구나.’ 그때가 가장 기뻤어요.
당시 비디오 판독으로 득점이 계속 번복되고 연속 실점하는 상황이었죠.
펜싱 경기, 특히 사브르는 종목 특성상 심판의 판정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해요. 그런데 중요하다고 해서 그것에 잡아먹혀서도 안 돼요. ‘왜 진 거야?’란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건 제가 펜싱을 해오면서 얻은 경험의 결과물이에요.
기로의 순간에서 뜨거워지는 편인가요, 냉정해지는 쪽인가요?
냉정해져요. 양보할 건 빨리 양보해요. 심판의 판정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한 게 맞다’는 확신을 가지려는 편이에요.


‘단체전 3연패의 쾌거를 올릴 것인가.’ 이 역시 이번 올림픽의 큰 화두였죠. 도쿄 올림픽 당시 함께 뛴 베테랑 김정환, 김준호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하며 선수단 구성이 달라졌는데, 이를 둘러싸곤 기대보다 걱정의 시선이 많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도 그럴 게 멤버가 바뀐 후 국제대회에서 그야말로 박살이 나고 있었거든요(웃음). 올해 5월 스페인 마드리드 월드컵이 끝난 직후 다 같이 회식한 적이 있어요. 입상조차 하지 못한 대회였어요.
회식 분위기 참 살벌했겠군요.
분위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가더라고요. ‘괜찮아, 다음엔 잘할 수 있을 거야’, ‘컨디션 안 좋았잖아’ 하면서 넘어가는 분위기였는데, 제가 그런 걸 좀 싫어해요. 소위 ‘F’ 감성을 안 좋아해요(웃음).
MBTI가 ISTP죠? 빈말 못하고 능률을 최우선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성격 유형이에요.
게다가 ‘대문자 T’예요. 단체전이면 4명이잖아요. 각자 잘못된 걸 하나씩만 고쳐도 훨씬 단단해질 수 있거든요. 특히 박상원, 도경동처럼 어린 선수들에겐 멘탈에 관한 조언도 많이 해줬어요. 물론 선수들이 대표팀 선발 여부로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지쳐 있을 때긴 했어요. 하지만 선배이자 동료로서 그런 때일수록 멘탈을 세게 잡으라고 말해주고 싶었거든요.


후배 입장에선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잖아요. ‘형은 당연히 선발되니 속 편한 소리 하는 거다.’
실제로 그런 말을 했어요, 애들이(웃음). 그런데 그때 해준 얘기가 있어요. 어차피 열심히 해야 하는 거라면 열심히 하는 것만 생각해라, 그래도 안 뽑히면 그때 가서 술을 마시든 알아서 해라.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속얘기를 하면서 팀이 급속도로 단단해진 것 같아요. 이후 6월 아시아선수권에 나가서 단체전을 뛸 때 좋은 성적이 나왔고요. 그때 분위기가 진짜 좋았어요. ‘우리 이대로만 뛰면 올림픽 금메달 딴다’고 말할 정도로요.
도쿄 올림픽은 팀 막내로 출전했지만 이번엔 둘째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었어요. 이런 변화에서 무엇을 경험했나요?
후배들이 잘 따라와줬어요. 단체전 결승에선 후배들이 훨씬 잘해줬고요. 그런데 선후배를 떠나서 제가 일단 그 친구들을 후배로 대하지 않았어요. 동료라고 생각했지. 막내 생활을 워낙 오래 해와서 과거 제가 느끼기에 싫었던 걸 그 친구들에게 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어요.
한마디로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거죠.
그렇죠. 그런데 그보다도 오래전 김정환 선수가 저에게 펜싱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을 때, 저는 기분이 너무 좋았거든요. 왜냐하면 나이도 띠동갑 이상 차이 나는 데다 무엇보다 제가 어려서 우러러본 사람이 저에게 질문하는 거잖아요. ‘여기서 이건 어떻게 했냐’면서.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보통은 선배로서 자존심 때문에 못 물어봐요. 이게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후배들에게는 프라이드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따지면 이런 걸 형들에게 배운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야겠다, 동료로서 대화를 많이 해야겠다, 싶은 것들요.
한 인터뷰에서도 ‘서로가 동료처럼 지낸 것’이 단체전 우승의 비결이라 말한 적이 있죠.
네. 후배들도 저에게 편하게 말해요. ‘형,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안 됐고 이렇게 해야 했어.’ 그러면 저도 솔직히 말하죠.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여유가 없었다, 네가 맞는 것 같다.’
이번에 새로 대표팀에 합류한 두 신예 도경동, 박상원 선수를 보면 확실히 세대가 다른 게 느껴져요. 언제든 쾌활하게 카메라 앞에 서서 인터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 그래요? 저랑 몇 살 차이 안 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지? 경동이랑 세 살 차이인데···.
하하. 아무래도 김정환, 구본길 선수 같은 베테랑들과 오랫동안 함께 뛰어서 선배 격의 선수란 인상이 있는 듯해요.
사람들이 경동이랑 한 세대 차이가 난다고들 얘기하는데 나이로 치면 별 차이가 없어요···(웃음). 그런데 확실히 후배들에게서 패기와 기세를 배워요. 어린 친구들은 지고 있는 상황에도 잘 안 꺾여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면 ‘오늘 안 될 것 같다’ 싶은 순간 빨리 양보하고 꺾이거든요. 그런데 어린 선수들은 점수 차가 아무리 난들 쉽게 안 꺾여요. 이런 부분은 배워야 할 점이죠
올해 올림픽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기술, 체력, 전력 면에서 한국 펜싱이 업그레이드됐다 말해요. 발동작을 주요하게 사용해 붙여진 ‘발 펜싱’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는 추세죠. 한국 펜싱 스타일의 발전과 변화를 선수로서도 체감 중인가요?
그럼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펜싱 조기 교육의 흐름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펜싱을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빨리 시작한 축에 속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초등부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잖아요. 칼을 빨리 잡으면 칼에 대한 숙련도가 훨씬 높아져요. 그러면 움직임이 다를 수 밖에 없고요. 이런 변화는 시작에 불과한 이야기 같아요. 앞으로가 훨씬 기대돼요.
커리어 하이, 이번 올림픽이 안겨준 영광 혹은 숙제예요. 정점에 선 히어로,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제가 앞으로 나아갈 길인 것 같아요. 결국 마인드에 관한 문제죠. 저는 모르고 했지만 그랜드 슬램이라며 사람들이 치켜세워요. 그런데 사람이라면 그런 말에 면역이 생기고 정말 자신이 대단하다 착각하게 되잖아요. 만족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주입하는 숙제가 남았어요. 계속해서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야죠.

펜싱은 오상욱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나요?
주변에서 일찍 두각을 드러냈지만 그만큼 일찍 쓰러지는 사람들을 봤어요. 자신이 이룬 성취에 머물거나 성취에 따르는 책임을 못다 한 경우였죠. 그런 면에서 펜싱은 무엇보다 거만해지지 않는 자세를 가르쳐줬어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예전까진 소박한 바람이 있었거든요. 후배들로부터 ‘상욱이형, 옛날에 잘했지’ 소리를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운동선수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펜싱의 누구가 아닌, 운동선수 하면 대표되는 사람이요.
당분간 메이저 대회가 없죠.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볼까요. 꿈꾸고 바라던 휴식의 하루가 있을까요?
맞아요. 아시안게임이 있는데, 그것도 2년 뒤예요. 일단은 급한 것들을 좀 처리하고 푹 쉬고 싶어요. 휴양지가 좋겠네요. 바닷가에 누워서 허송세월 보내듯 휴식을 취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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