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우아한 세계로의 초대장

이예진

파리의 예술성을 상징하는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에서 열린 샤넬의 24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움직임의 마법, 창작의 자유로 꽃피운 우아함의 세계로.

오페라 가르니에를 상징하는 계단에 서서 피날레를 선보인 모델들.
화이트 웨딩드레스 룩으로 피날레를 장식한 모델 안젤리나 켄달.
금장 단추가 특징인 섬세한 트위드 슈트.
겹겹이 쌓아 올린 튀튀 형태의 허리 장식과 샤 스커트가 특징인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 신현지.
포토그래퍼 카림 사들리가 가르니에에서 촬영한 프리뷰 이미지 .

지난 6월, 올림픽 준비로 도시 전체가 몹시 분주하게 움직이던 파리의 풍경. 쿠튀르 컬렉션을 앞두고 쇼가 취소되거나 셀러브리티 참석이 번복되는 등 다양한 이슈로 2024 F/W 쿠튀르 패션위크는 비교적 차분하게 지나간 시즌으로 기록될 듯하다. 그럼에도 쇼의 창의성과 규모, 무대 연출을 놓치지 않고 오트 쿠튀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판타지를 구현한 컬렉션도 있었다. 그랑 팔레를 지켜온 샤넬은 이번 쿠튀르 쇼를 위한 무대로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를 택했다. 그 힌트는 초대장과 함께 보낸 빈티지 오페라 안경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샤넬의 2024 S/S 오트 쿠튀르 쇼의 테마이기도 했던 움직임과 우아함의 예술인 무용은 이번 시즌에도 주요한 코드로 자리한다. 2018년부터 댄스 시즌 오프닝 갈라의 후원사로 활동하던 샤넬은 2021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 2023년 파리 국립 오페라단과 협약을 맺고 오프닝 갈라부터 해외 투어와 의상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후원을 펼치며 파리 발레단의 모든 예술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실 샤넬의 예술 후원 역사, 특히 발레와의 인연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온 샤넬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활동이다. 이번 시즌 쿠튀르 컬렉션도 가브리엘 샤넬이 혁신적인 의상을 디자인해준 발레 <르 트랑 블루(Le Train Blue, 1924)>와 <아폴로 뮤자 게트(Apollon Musagète, 1928)>를 연상시키는 튀튀, 피에로 의상과 디바, 공주, 신부를 위한 드레스 등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발레의 역사를 공유했다.

러플 장식 케이프와 뷔스티에, 팬츠를 매치해 발레 코드를 차용했다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팀의 장인들이 정성을 다해 수놓은 비즈 장식.

쇼가 열리기 전 공개한 프리뷰 이미지에도 포토그래퍼 카림 사들리(Karim Sadli)가 가르니에에서 촬영한 컬렉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공간이 주는 압도적 위엄과 창조적인 영역에서의 쿠튀르 피스는 그 자체로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샤넬 런웨이로 변모한 오페라 가르니에는 강당을 둘러싼 외부 복도를 레드 벨벳으로 감싸 오페라 박스처럼 꾸몄다. 무대 디자인은 프랑스 감독 크리스토프 오노레(Christophe Honoré)가 맡았는데, 그는 익숙한 이 장소의 영역을 뒤집어 새롭게 재해석했다.

입체적인 자수 장식의 웨딩드레스 룩과 깃털과 비즈 장식 드레스의 앙상블.
발레 공연에 입장하는 듯한 검은 드레스의 행렬.
푸크시아와 페일 핑크, 청자색 등 화려한 컬러의 슈트도 무대에 반짝임을 더했다
모델 비토리아 세레티의 오프닝.

쿠튀르 컬렉션의 오프닝을 맡은 비토리아 세레티는 주름진 스모크 칼라와 네이비블루 태피터 소재의 길고 볼륨감 있는 케이프를 입고 등장하며 쇼의 시작을 알렸다. 바닥을 쓰는 케이프는 걸음마다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그 안에 비즈 태슬과 스모크 브레이드를 촘촘히 새긴 뷔스티에와 브리프를 매치해 극적인 리듬감을 주었다.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는 깃털, 태슬, 카보숑, 꽃 자수, 고급스러운 브레이드 장식, 래커 저지, 부드러운 트위드, 실키한 벨벳, 일루전 튤, 태피터, 뒤셰스 새틴 등 정교하고 화려한 최상의 소재를 풍부하게 사용해 발레와 오페라, 쿠튀르 세계가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블랙 오간자 주름으로 장식한 화이트, 블랙, 파우더 핑크 트위드 재킷에는 블랙 태슬로 자수한 미디스커트를 매치했고, 시폰 플라운스와 블랙 레이스가 레이어드된 블랙 실크 벨벳 뷔스티에, 블랙 오간자 소재의 긴 주름 페플럼 스커트, 중간 길이의 블랙 울 저지 코트와 골드 스팽글 리본으로 반짝이는 슈트, 그리고 러플 장식 재킷에 매치하는 새틴 퍼프 팬츠는 발레와 오페라를 넘어서는 오트 쿠튀르의 앙상블로 새로운 시각적 비주얼을 선사했다. 옷으로 보는 공연 무대라고나 할까! 이 모든 룩에는 새틴 소재로 된 커다란 리본을 머리에 장식해 우아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풍성한 자수 장식 역시 쇼 전반에 로맨틱한 감성을 불어넣었다. 화이트 새틴과 버건디 트위드로 재해석한 플리츠 장식의 샤넬 슈트, 블랙 코듀로이 턱시도에 자수 장식한 화이트 블라우스, 롱 퀼로트를 매치한 블랙 슈트와 블랙 깃털 장식 쇼트 재킷은 롱 코트와 풍성한 케이프, 이브닝드레스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 웅장한 공간에서 룩이더욱 돋보였던 이유는 래커를 입힌 표면으로 빛을 중요한 요소로 활용했기 때문. 그리고 블랙, 골드, 실버, 아이보리, 푸크시아, 페일 핑크, 청자색이 충돌하며 화려한 무도회에서의 섬광 같은 반짝임을 더했다. 마지막 룩을 장식한 샤넬의 신부는 페티코트 스커트와 긴 화이트 실크 태피터 드레스를 입고 대리석 계단을 걸었다. 중심은 꽃, 스팽글, 크리스털로 뒤덮여 있었고, 퍼프 소매는 주름으로 장식해 섬세한 볼륨감을 더했다. 피날레에는 오페라 가르니에의 상징적인 공간인 계단에서 모든 모델이 포즈를 취하며 쇼를 마무리했다. 창의적인 대담성을 허용하는 절대적 자유의 공간인 오페라와 샤넬의 오트 쿠튀르 패션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의 꿈과 환상의 무대는 이렇게 막이 내렸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보랏빛 트위드 코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런웨이가 된 오페라 가르니에의 계단
깃털과 비즈 장식의 조합이 화려한 드레스.
태슬을 섬세하게 장식한 오프숄더 드레스.
오페라 가르니에의 계단에서 클로징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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