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마르게리트 위모의 아시아 첫 개인전

강보라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출신 예술가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의 아시아 첫 개인전, 대지미술 작업이든 작은 조각품들이든, 위모의 예술에는 생명체의 종류나 시공간을 뛰어넘어 결국 우리 모두가 뗄 수 없는 하나라는 철학이 깃들어 있다.

6월 7일 전시 오픈을 앞두고 갤러리에서 만난 위모. 함께 있는 작품은 작가가 ‘보호망’의 개념으로 만든 ‘The Guardian of Earth Migrations’.

마르게리트 위모(Marguerite Humeau)의 작품을 처음으로 목도한 곳은 지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가 펼쳐진 아르세날레였다. 마치 커다란 동굴 같은 옛 조선소 공간 속에 놓인 ‘Migrations(이주)’는 그 공간과는 사뭇 이질적인 바닷속 생물과 돌고래의 매끈한 피부를 묘사한 듯한 조각품이었다. 합성수지와 폴리머, 소금, 조류, 해초, 동물 뼈, 안료, 미네랄 먼지, 바다 플라스틱, 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등으로 만든, 해양 포유류를 닮은 세 개 형태로 이뤄진 이 작품에는 엘니뇨, 라니냐, 쿠로시오 등 해류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생물의 기원, 환경 파괴, 죽음. 그리고 맞이하는 다음의 세상···. 마치 공중에 부유하거나 날아가는 듯한 그 대형 조각에는 기후 변화와 대량 멸종, 죽음에 대한 성찰과 함께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는 신화와 영성에 천착해온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8월 17일까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마르게리트 위모의 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년에 작가가 미국 콜로라도 샌루이스 밸리에서 펼친 대지미술 작품 ‘Orisons(기도)’에 이어, 과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내러티브를 담아 완성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약 20만 평에 달하는, 여성 작가가 단독으로 작업한 대지미술 작품 중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작품을 만든 1986년생 젊은 작가. ‘기도’의 연장선으로 자연 경관을
형성하고 생동하게 하는 힘을 시각화한 조각 신작을 펼쳐낸 마르게리트 위모와 광활한 벌판과 그곳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체, 땅의 역사와 그들 간의 상호 관계망 속에서 그녀가 경험한 신비롭고도 예술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는 마치 시간의 층위처럼 여러 가지 레이어로 쌓인 대지의 층이 하나씩 벗겨진다는 상상을 하며 ‘Dead Skins’를 완성했다.

<W Korea> 이번 전시는 미국 콜로라도의 광활한 계곡과 대지에 펼쳐놓은 작품 ‘Orisons’와도 연결되어 있다. 우선 그 대지 예술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궁금하다.
Marguerite Humeau 리서치 기간만 3년이 걸렸다. ‘블랙 큐브’라는 비영리 단체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인데, 내 삶을 바꾸는 경험이었을 정도로 굉장한 의미가 있었다. 나는 과거나 미래, 혹은 우리와 평행 세계에 있는 어떤 생태계를 부활시키는 테마에 늘 관심을 가졌다. 신화 속에 존재하는 것과 실세계에 존재하는 생태계를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골몰하며 그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 농업인, 풍수사, 조류학자, 채집자, 야생동물 보호구역 전문가, 지역사회 구성원 등 여러 관계자와 협업하며 샌루이스 계곡의 역사, 서식 생명체, 그리고 장소적 특성을 연구했다. 가장 중요했던 점은 대지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 즉 땅에 있는 것을 예술 작품으로 바꾸거나 그 위에 어떤 새로운 개체를 설치한다는 식의 발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자연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역사 그 자체가 너무나 풍요롭지 않나. 나는 그것들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렇게 동식물을 포함해 사람까지, 그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물도 없는 극한적인 환경에서 뭔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바로 그런 것들이 ‘앞으로 우리 미래를 보여주는 하나의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대지 자체를 하나의 신체로 봤고, 바람에 움직이는 작은 악기들을 설치하면서는 사람 몸에 침을 놓는 일과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미국 대지 위의 그 작품과 이번 전시의 연결점은 무엇인가?
땅과 거기 숨겨진 힘 같은 것을 형상화한 작은 조각품들이 이번 전시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샌루이스 계곡에 머물면서 신기한 현상들을 겪었다. 혼자 있는데 갑자기 해일처럼 큰 모래 폭풍이 몰려왔을 때는 ‘죽는 거 아닌가’ 싶었다. 어느 날은 죽은 새를 발견하고서 나만 아는 곳에 벽돌로 무덤을 만들어 묻어준 적이 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벽돌 무덤을 열어보는 순간 갑자기 천둥이 치는 게 아닌가. 벽돌을 치워보니 새가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이들이 만진 흔적도 없었고. 그 광경을 보면서 정말 울 뻔했다. 사람들이 그 계곡을 두고 ‘영혼이 갇힌 곳’이라고 했는데, ‘새의 영혼이 어느 다른 세계로 갔구나’ 싶었다. 그렇게 초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기하고도 압도적인 경험을 하고 보니, 이 땅 자체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어떤 포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치 거미가 움직이면 그 움직임이 거미줄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서로 연결된 평행 세계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경험과 생각을 이번 전시에 녹였다.

하나의 시공간은 또 다른 시공간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녹인 ‘Disappearance of The Bird’.

다른 세계로 잇는 포털, 평행우주, 삶과 죽음 같은 추상적인 주제들을 형상화한다니 매우 흥미롭다.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
전시를 보면 중력 방출, 블랙홀의 공간 그리고 포털로서의 땅 위에 인간의 마음이 연결되고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된다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새가 사라졌던 일화도 작품으로 표현했다. 제목에 ‘가디언’을 넣은 조각품에서는 일종의 보호망을 만들고 싶었다. 나비를 잡는 그런 채집망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보호망이라는 개념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 망을 통해서 한 곳에서 일어나는 진동을 전체로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땅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소용돌이, 그 거대한 모래 폭풍이 연상되는 ‘The Twist’.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동굴 같은 공간에 바닷속 생물처럼 보이는 것들을 표현한 ‘Migrations’는 해류의 이름을 딴 작품명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 작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해양 포유류는 기후변화 때문에 많은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런 대상들을 하나의 영혼으로 생각해봤다. 또한 물의 도시 베니스 자체도 도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기에 연결 지점이 있었다. 소재 연구를 아주 많이 했는데, 특히 피부를 표현할 수 있는 소재에 계속 집중했다. 왁스, 대리석, 혹은 신소재 등등. 그 위에 채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 자체가 좀 깊이감이 생기도록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신화에 등장할 법한 캐릭터에 실제 삶의 숨결, 생명을 불어넣는 소재여야 한다는 점이다. 작업하면서 목소리나 리듬 같은 요소를 넣어 동조화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작품 속에, 그 개체 속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어떤 신성함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면서 결국에는 ‘모두가 하나’라는 주제를 던지고자 했다.


당신의 상상력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만약에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나 생명체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선 그런 주제에 굉장히 관심이 있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수렵채집인, 심령술사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이유다. 두 번째로는, 나는 우리 주변의 생명체들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명체란 어떤 식물일 수도 있고, 개미나 벌일 수도 있다. 그것들이 군집을 이루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결국 다 연결되어 있다고 다시금 느낀다. 인간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리고 죽음 너머, 이 세상 너머에 무엇이 또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작업의 동기가 되는 것 같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당신의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 혹은 경험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스물한 살 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갑자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이 사건이 나의 인생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사를 찾아가도 치유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귀에 있는 세포가 죽었다고 했다. 그 이후 이런 생각에 깊이 빠졌다. 우리 운명은 다 정해진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인가, 다른 평행 세계에서의 삶은 어떤 것인가, 나는 거의 죽을 수도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 진실에 다가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원래는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예술가가 되고 싶어졌다. 내 직관을 따르고 싶었다. 한쪽 귀로만 듣다 보면 가끔 어떤 진동과 파동을 예민하게 느낄 때가 있는데, 주변에 영혼이 떠도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이상한 느낌도 어느새 다 사라지기 마련이더라. 그래서 인간은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라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가 메마른 환경이 된다면 동식물한테서 뭔가를 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예술가로서 우리의 미래는 어떨 것이라 생각하는가? 당신의 작품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그런 주제들로 작품을 펼치기는 하지만 내가 환경 활동가는 아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지구 혹은 우주라는 광활한 시간대를 봤을 때 인간은 아주 조그마한 점에 지나지 않고, 우리 존재 자체가 어떤 우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샌루이스 계곡에 펼친 대지 예술 프로젝트, ‘Orisons’의 한 장면.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서울을 찾았다. 특별한 계획이 있나?
8월에 광주 비엔날레를 위해 2~3주 정도 다시 방문한다. 광주에서는 이날치 밴드의 권송희와 함께하는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판소리를 하는 그녀 역시 나처럼 과거의 것들로 오늘날 현대 시대의 신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갈 내러티브와 작업을 생각하면 매우 흥분된다.

포토그래퍼
최영모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