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여름의 풍경, 초록 혹은 파랑

권은경

출렁이는 파도, 투명하게 파란 수영장의 물빛, 농밀한 초록과 열대 잎사귀…

여름이라 말하면서 그리워지고야 마는 그 자연 풍경을, 여기 회화들 속에서 만난다. 초록 혹은 파랑의 스펙트럼은 이토록 각양각색이다.

Jonas Wood Hanalei Bay, 2021 Oil and Acrylic on Canvas, 304.8 309.9cm.

조너스 우드
‘Hanalei Bay’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 연작을 중심으로 정물 외에 인물 초상, 실내와 야외 풍경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소재를 다뤄온 조너스 우드의 ‘하날레이 베이’는 여러모로 눈길이 간다. 그는 산의 형상을 생동감 넘치는 기하학적 조각 형태로 단순화해, 평면적이면서도 깊이와 규모를 가늠할 수 있도록 색감을 덧댔다. 작품명에 쓰인 ‘하날레이 베이’는 하와이에 있는 곳이지만, 그림 왼편에 드리운 뾰족한 야자수 잎사귀만 아니라면 이 풍경은 영락없이 한국의 산 같기도 하다. 캔버스 속 화가의 시야 속으로 단숨에 직행해 들어가듯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하늘을 향해 뻗어 한 폭의 구름을 품은 산마루, 겹겹의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바람이 솔솔 불어오면, 녹음 속 나뭇잎이 물결치고 짙은 푸르름 안에 목소리만 남긴 채 제 몸 감춘 새들이 분주히 지저귄다. 저 산을 가득 메운 나무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삐죽빼죽 자란 무성한 소나무인가. 기개 넘치면서도 정겨운 풍채를 드러낸 능선 따라, 시선 따라 걷다 보면, 캔버스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지고 우드 작품에 밴 특유의 생명력만이 남아 넘실거린다.
– 황다나(미술 칼럼니스트)

Jonathan Wateridge (His) Long Day in The Sun, 2020 Oil on Linen, 110 75cm.
Jonathan Wateridge Swim, 2019 Oil on Linen, 225 280cm.

조너선 워터리지
‘(His) Long Day in The Sun’,
‘Swim’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햇볕에 몸 전체가 따끔거리는 뜨거운 어느 여름날이다. 컵 속의 얼음은 다 녹아내려 술인지, 물인지 알 수 없다. 그림 속 남자는 마치 바닥과 한 몸이 된 듯 극도로 나른하고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다리 끝에 닿는 미미한 찬기만으로도 그는 완벽한 파라다이스 속에 존재한다. 한편, 오후 2시 정도의 빛일까,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는 그 날의 시간마저 짐작하게 한다. 그림 속 여자가 수면 위에 얼굴을 내비친 찰나의 순간, 그 여자만의 시간을 빼앗겼다. 조너선 워터리지의 회화는 이렇게 수영장을 둘러싼 인물이 어떤 심리일지 끊임없이 유추하게 한다. 분명한 건 그의 수영장은 시끌벅적하고 평범한 여름날이 아닌, 극도로 고요한 사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잠비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그는 유년 시절 집의 기억을 바탕으로 부유함과 여가를 상징하는 수영장의 사회적 풍경을 담아왔다. 마치 영화를 제작하듯 스튜디오에 수영장 세트장을 만들고, 연기자들을 탐색하며 그 상황에 발생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긴다. 그는 생생한 파란 물빛, 짙은 녹색으로 투박하게 표현된 수풀, 굵은 윤곽선으로 구분되어 마치 배경에서 단절된 듯 유령처럼 나타나는 인물을 표현한다. 이런 작가의 시선은 여름이면 나를 온전히 차단해줄 아름다운 적막을 찾아 떠나려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그 여름 하루에 충실한, 그림 속 인물처럼 말이다.
– 유두현(아트 어드바이저)

Joel Mesler Untitled (Love), 2021 Pigment on Linen, 213.4 165.1 3.8cm Framed: 215.3 167 5.1cm.

조엘 메슬러
‘Untitled(Love)’

여름은 해가 길어지는 시간이다. LA도 예외는 아니다. 퇴근 후 일찍 집에 돌아와 창문 너머로 이 도시를 지켜보면, 하늘이 오색찬란한 파스텔 색으로 물드는 때가 온다. 수많은 건물들과 그 사이를 채우는 야자수, 할리우드 사인. 노을이 지며 도시는 순간 황금빛으로 빛나고, 따가웠던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곧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조엘 메슬러의 회화 ‘무제(Love)’도 황혼 무렵의 하늘과 그 아래 반짝이는 도시를 담는다. 현재 뉴욕에서 사는 조엘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LA에서 보냈고 아직도 많은 영감을 그곳에서 찾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배경이나 그림은 LA의 하늘처럼 다채롭다. 다만 그림은 약간 무딘 톤을 띤다. 이는 안료에 최소한의 바인더를 섞어 넓게 펴 바르면서 리넨의 물성과 톤을 살리는 기법으로 완성된 효과다. 그는 구체적이고 자전적인 상징을 이용해 LA를 묘사한다. 예를 들어 그림 속 하늘을 나는 새 무리는 가끔 산타모니카에서 도심까지 날아
오는 갈매기다. 유심히 보면 가루 형태의 마약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의 아버지가 오랜 기간 약물 중독에 시달렸다고 한다. 바나나 잎사귀와 용설란 등 열대 식물을 연상시키는 문양은 어릴 적 가족과 머물던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의 벽지에서 따온 것이다. 이 호텔에서 조엘의 부모는 한바탕 크게 싸우고 곧 이혼 소송을 이어갔는데, 이때의 충격적인 기억은 조엘이 성인이 된 후에도 선명하게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니까 LA는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면서 아픈 기억들로 물든 공간이기도 하다. 갤러리를 운영하며 미술품 딜러로 활동하던 그가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는 이 애증의 도시를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기억 한켠에 숨어 있던 일련의 사건과 트라우마를 상기하고 화폭에 담으면서 조엘은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해왔다. 그는 더 나아가 자신의 그림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림 속 황금빛으로 고요
히 빛나는 단어 ‘LOVE’가 나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다.
– 이정헌(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 세일즈 코디네이터)

Joaquín Sorolla Corriendo Por La Playa, Valencia, 1908 Oil on Canvas, 90 166.5cm.

호아킨 소로야
‘Corriendo Por La Playa’
그리스 신화 조각상의 헬레니즘 스타일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 둘과, 역시 그리스 스타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사내아이 하나가 해변을 따라 달린다.아이들은 뛰고 있지만, 가만 보니 동작에 비해 좀 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반면 파도는 출렁이고 짙푸르게 반짝인다. 그을리고 모래가 붙어 까끌거릴 법한 세 아이의 피부도 반짝거린다. 스페인 태생 호아킨 소로야는 빛의 화가다. 그는 클로드 모네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흥미를 느끼며 도전했고, 클로드 모네는 그를 ‘빛의 대가’라고 치켜세웠다. 소로야는 1895년 파리 살롱전에 참가했을 때 그 도시의 차가운 빛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빛을 잃은 듯하다고 아쉬워했다. 반면 뉴욕은 태양도, 파란 하늘도, 마드리드와 같다고 여러 번 말했다.런던은? “늘 잿빛, 잿빛, 잿빛.” 30대부터 유럽 전역과 북중미에서 명성이 높았던 소로야는 전시 일과 미국 대통령이나 스페인 국왕 등의 초상화 작업 때문에 출장이 잦았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아내에게 그리움을 담아 거의 매일 편지를 썼다. 그가 가족만큼 그리워한 대상은 고향 발렌시아의 해변이었다. 가족과 함께 그곳에서 보낸 몇 번의 여름은,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보면 그의 60년 인생(두 살 때 부모를 잃고, 말년에는 뇌출혈로 3년간 붓을 들지 못한)에서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시간이었다. ‘해변을 따라 달리기’라는 제목의 이 그림을 비롯해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소로야의 바닷가 그림들은 그 행복한 시기에 창작된 것들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지만, 결국 인생이 더 소중한 게 아닐까? 아이폰이 실제보다 더 파랗게 보정해주는 서울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 조용범(HB 프레스 대표, <바다, 바닷가에서> 펴낸이)

Yoo Youngkuk Work, 1973 Oil on Canvas, 133 133 cm.

유영국
‘Work’

울진의 산은 검푸른 동해 앞까지 드리워진다. 낮에는 서로 다른 푸름으로 조화를 이루고, 아침이면 일출, 저물녘에는 일몰의 빛이 내려앉은 산과 바다는 제각기 색채로 대비를 이룬다. 한국의 제1세대 모더니스트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은 1916년 산과 바다의 자연이 수려한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에서는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 색 등이 주체가 된다. 이들은 서로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고, 모종의 균형감을 유지하면서 그 자체로 회화가 다다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경지에 깊이 다가선다. 울진의 깊은 파도, 장엄한 산맥, 맑은 계곡, 붉은 태양 등을 연상시키는 작품에서 작가는 자연과 자신의 관계를 탐구하고, 정제된 회화적 행위를 통해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하지만 고요한 자연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왜 추상미술을 택했냐는 진부한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말이 없어서’였다. 울진으로 떠난 나에게 누군가 왜 울진으로 가게 되었냐고 물어본다면, 나의 대답 또한 그처럼 ‘말이 없어서’일 것이다.
– 이준기(PKM 갤러리 PR 매니저)

Yisu Kim Inframince-Landscape, 2023 Acrylic on Canvas, 112.1 162.2cm.
Yisu Kim Inframince-Landscape, 2022 Acrylic on Canvas, 112.1 162.2cm.

김이수
‘Inframince’

제일 먼저, 김이수의 작품은 아주 멀리 있을 것 같은 수평선 그 이상을 바라보게 한다. 바라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차이가 의지의 문제라고 한다면, 김이수의 집요하고 최소한의 변화만 보여주는 색은 나와 너의 ‘상대적이었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상당히 가까웠던 관계성’ 을 이야기한다. 작품명이기도 한 ‘앵프라맹스’는 마르셀 뒤샹이 창안한 용어다. 시각적으로 그 차이를 식별할 수 없는 차이를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우리가 감각하지 못하는 미세한 차이를 가진다. 작가는 그 미세한 차이를 색으로 표현한다. 결국, 우리가 확인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무언가가 여전히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통해 또 무언가가 새로운 발전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회화의 의미가 대상에 대한 작가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표현과 그 표현을 통한 감상자와의 소통이라면, 김이수의 작품은 사실 감상자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하지만 작품 속에 내재된 내용을 떠나 그의 작품이 안겨주는 첫인상은 넓은 바다 혹은 대지이다. 어쩌면 작가는 감상자인 내가 보고 싶어 하는 풍경을 스스로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드넓은 하늘 끝까지 펼쳐진 나만의 풍경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 황희승(아터테인 수석 큐레이터)

Zhang Enli The Water, 2015 Oil on Canvas, 300 250cm.

장언리
‘The Water’

장언리는 상하이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작가다. 이 작품은 물감의 물질성, 또 표현과 추상의 관계에 대해 깊이 몰두하는 작가의 태도를 드러낸다. 자연의 일부를 클로즈업 뷰로 묘사하면서 그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 또 현실 과 상상의 경계를 조금은 모호하게 만든다. 그는 붓을 이용해 그리는 전통적인 중국 그림에 영향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도 붓질을 하는 그의 제스처가 캔버스에 겹겹이 포개져 있다. 그런데 물결을 이루는 그 붓질은 표현적이면서도 적절히 통제된 상태다. 청색의 불투명도가 획마다 미묘하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이를 통해 빛이 부드럽게 확산되는 느낌으로 그림의 깊이감을 만든다. 한편, 하얀 상태로 노출된 캔버스 부분은 빛에 반사된 윤슬을 닮았다. 이렇게 리드미컬하게 형성된 그림은 어떤 면에서는 ‘물’의 영원한 불안함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는 물의 유동성과 환영적인 특성을 능숙하게 포착해, 그림을 추상의 경지로 밀어붙였다.
– 일레인 콱(하우저앤워스 아시아 매니징 파트너)

Nicolas Party Cave, 2020 Soft Pastel on Linen.

니콜라스 파티
‘Cave’

니콜라스 파티의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피카소의 추상이나 모란디의 정물,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풍경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그의 풍경 작업에서는 특히 구름, 산과 나무, 바다와 폭포 등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스위스의 자연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그가 산을 그렸다고 해서 그 산을 보며 바로 마터호른이 연상되지는 않는다. 그는 묘사와 추상, 관찰과 상상 사이를 오가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제법 단순화된 형태를 띠었으며, 환상동화 속 세상 같은 니콜라스 파티식 풍경. 그림들에서 곧잘 몽글몽글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건 작업 재료가 파스텔이기 때문일까? 가루 타입의 파우더와 블러셔를 이용해 피부에 화장을 하는 것처럼, 그는 파스텔로 자기만의 부드러운 생기를 만든다. 종종 캔버스를 벗어나 전시 공간에 거대한 벽화를 그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포시타노에 자리한 부티크 호텔 ‘레 시레누세’의 수영장 바닥에 파랑 음영이 넘실거리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녹색이 가득한 ‘동굴’ 연작은 그의 회화 중 가장 시원한 인상이다. 산과 동굴과 물이 결합된 듯한 이 그림 앞에선 현실에서 본 어느 풍경이 떠오른다기보다 다른 세상의 장면을 마주치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동굴’은 상상력을 펼치게 만드는 이름이다. 그 속에 어떤 어둠과 빛이 있을지, 서늘함은 어느 정도일지, 그 세상은 얼마나 깊고 새로울지. 여름은 이렇게 상상과 더불어 시작된다.
–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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