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을 원하는 당신에게 권하는 숨겨진 작품들

권은경

아직 맛보지 못한 영화와 드라마와 예능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데, 막상 눈길 가는 무엇이 없다면?

이것저것 챙겨 보는 이들이 각각의 이유로 권하는 다음 리스트가 당신의 선택을 기다린다. 이제,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속하는 일만 남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 할리우드> 의 포스터.

도신 – 정전자(1989)

홍콩 영화 #주윤발과 유덕화의 찐사랑
▶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 왓챠, 티빙, LG U+

주말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고른 영화를 보던 시절, 홍콩 영화의 매력을 기억한다면. 실제로 최근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모두가 이 영화를 즐겁게 감상했다. 홍콩의 전설적인 도박사, ‘도박의 신’을 주인공으로 한 <도신>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다. 절대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는 고진(주윤발)은 어떤 상대를 만나도 자신만만하게 판을 뒤집는 천재다. 한편
경마 베팅마다 죽을 쑤는 도자이(유덕화)는 도박에 안타까울 정도로 재능이 없다.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던 두 남자를 엮어주는 클리셰는 ‘기억 상실’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지능까지 어린 시절로 돌아간 ‘아방한’ 고진과 틱틱대면서도 그를 챙겨주는 ‘츤데레’ 도자이의 요란한 육아일기가 된다. 둘은 사랑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나누는데, 왕조현(지금 봐도 촌스
럽지 않은 멋진 스타일링을 한)이 유덕화 여자 친구로 나오는데도 ‘찐사’는 주윤발과 유덕화가 하고 있다는 점이 황당하게 웃기다. 도신의 제자인 진도자 캐릭터가 메인인 <도협> 시리즈, 진도자의 제자 주성조(주성치)가 중심이 된 <도성> 시리즈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백 스트리트 걸스: 조폭 아이돌(2018)

애니메이션 시리즈 #성전환 수술을 한 조폭
▶ 넷플릭스

손가락 열 개를 잘라도 면목 없을 죄를 저지른 야쿠자 조직원들. ‘오야붕’은 요즘 아이돌 그룹이 돈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다리를 자르든지 장기를 팔든지 혹은 성전환 수술을 해서 아이돌이 될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그렇게 세 야쿠자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뒤 1년간 지옥 같은 특훈을 받아 지하 아이돌 ‘고쿠돌스’로 데뷔한다. 남자 조폭이 여자 아이돌이 되고 심지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는 설정은 ‘영혼 체인지’ 코미디를 극단적으로 과장한 것에 가깝고, 여성 연예인의 감정 노동을 직접 겪으며 비로소 깨우치는 아이돌 산업과 성차별 문제… 같은 것을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이 애니 시리즈는 지난해 최고의 애니 화제작 <최애의 아이>가 종종 웃음기를 빼고 다룬 연예계의 명암까지 ‘B급 병맛’ 코미디로 승화한다. 성전환 수술을 한 뒤 성기가 사라져서 예전 같은 섹스를 하지 못한다며 괴로워하다가, ‘귀여운 아이돌이 감히 섹스를 입에 올리느냐’며 일주일 동안 갇혀 포르노만 시청하는 형벌을 받는 기기 괴괴한 풍경을 또 어디에서 보겠는가.
– 임수연(<씨네 21> 취재 팀장)

괴인(2023)

한국 영화 #기묘한 뉘앙스
▶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주목하게 하는 건 물 샐 틈 없는 완성도나 세공력이 아니다. 결정적인 건, 안전한 공식에 기대지 않고 돌진하는 패기와 개성이다. 이정홍 감독의 데뷔작은 개성이 넘치다 못해 종잡을 수 없는 리듬으로 관객의 예상을 번번이 비껴가는 괴이하고 기이한 영화다. 이렇게 설명하니 ‘얼마나 비상한 이야기길래’ 하겠지만, 이 영화엔 대단한 사건이랄 게 없다. 별거 아닌 이야기로 비범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상당해서 놀라운 영화다. 시선에 따라 ‘괴인’이 되기도 하고 ‘범인’이 되기도 하는 인간관계의 당혹스러움을 파헤친 메시지도 탁월하다. <괴인>이 기묘한 뉘앙스를 내뿜는 데 크게 일조한 건 주연 박기홍이다. 놀랍게도 비전문 배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감독의 30년지기 친구다. 친구의 잠재력 을 알아보고 주연으로 기용한 감독의 눈썰미도 대단하고, 복사본 없는 새로운 타입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도 대단하다. 세상,이렇게나 건설적인 ‘지인 찬스’라니.

소셜 딜레마(2020)

다큐멘터리 영화 #어쩌면 공포 영화
▶ 넷플릭스

안마기 광고가 SNS 피드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잠시, 복기해본다. 얼마 전 거북목 통증에 좋다는 안마기 브랜드에 ‘좋아요’를 누른 기억이 났다. 아, 또 간파당했군! 인터넷 공간에 흘린 나의 사소한 흔적은 인공지능에 의해 수집돼, 타임라인에 숨죽이고 있는 광고주에게 전달된다. 지금이야, 출격! 처음엔 꺼림칙했다. <트루먼 쇼>의 트루먼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이 다큐멘터리는 SNS 뒤에 숨어 알고리즘으로 고객 관심사를 장악한 다국적 기업의 실체를 파헤친다. SNS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새로울 게 없다. 그럼에도 이 다큐가 강력한 건 페이스북 ‘좋아요’ 버튼 개발자를 비롯한 소셜미디어 전현직 종사자들이 인터뷰이로 나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SNS계 오펜하이머’들의 참회록이자 양심 고백이자 내부 고발인 셈인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능동적인 소비자’라 생각했던 우리가 실은 인공지능 손바닥 위에 놓인 ‘실험용 쥐’이자 ‘상품’일 뿐이라는 사실에 심경이 복잡해진다. ‘좋아요’ 수가 적어 우울하다면, 모니터 속 모두가 행복한데 나만 불행하다고 느껴진다면 관람해볼 것. 극사실주의 공포 영화를 만나게 될 테니.
– 정시우(영화 칼럼니스트)

브러쉬 업 라이프(2023)

시리즈 #인생 회귀
▶ 왓챠, 웨이브, 티빙, LG U+
만약 이번 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더 나은 삶이 가능할까? 이 작품은 요즘 유행하는 인생 회귀물이다. 우발적 사고로 죽은 주인공이 기존의 생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반복하는 인생 N회 차에 관한 이야기. 물론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 지난 생에 쌓은 덕을 바탕으로 결정된 생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그 생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난 생의 기억을 갖고 환
생해 더 마음에 드는 생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덕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다음 생을 위한 마일리지 포인트를 쌓듯 인생 N회 차를 반복한다. 흥미로운 건 지난 생을 기억하는 만큼 반복되는 삶이 이전과 달라진다는 점이다. 익숙한 관계 의 양상이 바뀌기도 하고, 직업을 새롭게 선택하기도 하며, 살아봤기 때문에 살아보지 못한 삶의 가능성에 대한 감각이 더욱 예민해진다. 그리고 지난 생에 찾아온 예기치 못한 비극을 막아서는 시도를 해볼 결심도 하게 된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가 끝에 다다라 반짝반짝 빛나는, 사사롭게 반복되지만 소소하지 않게 돌아오는 생의 의미와 삶의 감동이 있다. 안도 사쿠라, 카호, 쿠로키 하루 등 훌륭한 배우들의 생동감 있는 앙상블을 보는 즐거움도 으뜸.

세브란스: 단절(2022)

시리즈 #스릴러 #미스터리한 뇌시술
▶ 애플 TV+

회사에서의 기억이 퇴근하면 사라지고, 출근하면 살아난다.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만약 이런 상황을 가능한 삶으로 만들어주는 뇌시술이 있다면 기꺼이 선택할 수 있을까? 이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는 그런 상황을 선택한 자들이 빠져드는 음모론의 실체로 파고드는 기이한 SF 설정의 미스터리 스릴러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퇴근 이후로 끌고 갈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이상적이지만, 벽을 쌓듯 가로막힌 기억 너머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퇴근 이후의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왜 그런 시술을 선택한 것인지도 알 길이 요원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제 그들은 회사 안팎에서 단절되는 기억의 장벽을 부수기 위해 골몰하고, 그 과정에서 음모론의 실체가 희미한 윤곽을 드러낸다. 전체 9화 분량 중 6화를 배우이자 감독인 벤 스틸러가 연출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고, 칠흑 같은 음모의 미궁을 설계하는 생경한 재주가 돋보이는 각본도 기가 막히다. 과연 이 거창한 떡밥을 어떻게 회수할 수 있을지 궁금한 가운데 시즌 2 제작이 확정됐다고 하니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 민용준(영화 저널리스트&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슈거(2024)

시리즈 #탐정 #레트로 감성
▶ 애플 TV+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의 ‘말 없는 남자 주인공’은 말이 참 많았다.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말을 아끼지만, 관객에게는 친절한 수다쟁이라는 의미다. 그런 옛날 누아르물 속에 나올 법한 주인공이 21세기의 LA를 누비며 영화 제작자 손녀의 실종 사건을 해결해간다. 심지어 주인공의 직업도 레트로하게 ‘탐정’이다. 그는 지미 스튜어트같이 도덕적이면서 따듯한 마음을 가졌지만, 험프리 보가트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력성이 내면에서 들끓고 있다. 주인공이 중증 시네필이라는 점과 배경이 할리우드라는 점도 옛 영화에 대한 오마주에 딱 어울리는 설정이다. 중간중간 1940~50년대 실존했던 영화의 클립이 삽입되어 해당 장면이 누아르 클리셰임을 대놓고 찝어주기도 한다. 콜린 패럴은 묘하게 시대와 따로 노는 듯한 이방인 역할을
매력적으로 소화하고, 에이미 라이언이나 제임스 크롬웰 같은 베테랑들의 연기도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후반부에 이르며 장르가 기상천외한 방향으로 뒤집어지는데, 작품 내내 충분한 복선이 있었고, 1950년대 영화에 대한 연애 편지라는 기본 목적에 충실한 반전인지라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엔딩 역시 다음 시즌이 있어도, 없어도 좋을 듯 깔끔. 옛날 영화 감성을 좋
아하는 이들에게는 종합 선물 같은 시리즈다.

신의 물방울(2023)

시리즈 #파격적 각색
▶ 애플 TV+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은 와인을 아는 ‘척’하는 사람들에겐 바이블일 수 있지만, 현실을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손발 오그라드는 판타지일 뿐이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세계적인’ 일본인 와인 권위자가 등장하는 핍진성 제로의 이 원작은 이미 2009년 드라마화되어, ‘와인뽕’과 ‘국뽕’이 그 정도로 넘실대면 실사 예술로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걸 극명히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프랑스 제작진이 만든 2023년 판은 상상도 못할 파격적 각색을 통해 원작의 약점을 넘어선다. 생산지보다도 유달리 와인스노비즘이 강한 일본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줄거리인 점을 감안해 배경은 여전히 일본이지만, 주인공은 프랑스 여성이다. 이 시리즈는 소믈리에가 맥가이버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하던 기본 얼개는 과감히 버리고 오히려 배경에 깔린 가족의 이야기를 전면으로 부각한다. 제작을 총지휘한 꾸옥장짠은 베트남계 프랑스 TV 작가로, 유럽풍의 스토리 전개에 일본 만화적 요소를 그럴듯하게 버무려낸다. ‘흥분하면 코피가 터진다’는 일본 만화의 클리셰가 이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 이용되는지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작품 내내 격을 잃지 않는 정상급의 아트 디렉션도 눈을 즐겁게 한다.
– 정성욱(칼럼니스트)

차우(2009)

한국 영화 #엄태웅 #정유미 #멧돼지
▶ 네이버 시리즈온, LG U+

이 영화를 추천하기까지 많이 고민했다. 상영 당시 관객의 상당수가 못 보겠다며 중간에 탈출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불호가 극심히 갈렸고, 이 짧은 지면으로는 그때 탈출했던 이들을 설득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모든 등장인물이 ‘핀트’가 하나씩 나가 있다. 주·조연은 물론 1초 이하로 스쳐 지나가는 단역들조차 공정하고 평등하게 그렇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떤 마을에 거대 괴수 멧돼지가 출몰하면서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마을 주민들이 의기투합하여 추적 및 토벌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영화의 플롯이나 함의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차우>를 권하는 이유이자 이 영화의 낯선 특별함은, 예를 들면 이런 장면에 있다. 극 중 누적된 갈등이 폭발한 두 인물이 싸우기 시작한다. 한 명이 결국 소리를 버럭 지른 후 그 공간을 나가버린다. 그런데 장면은 전환되지 않고, 카메라는 혼자 남은 이를 계속 비춘다. 몇 초 후, 나가 버렸던 인물이 소지품을 챙겨 나오는 걸 깜빡했다는 걸 알고 찾으러 다시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순간 둘을 둘러싼 공기가 서먹서먹, 데면데면해진다. 나의 어색함은 재난이지만, 남의 어색한 상황을 지켜보는 건 어쨌든 팝콘각이다.


로제타(1999)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 #황금종려상
▶ 티빙

이 작품은 1999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는 무슨 이유에선지 무려 20년이나 지난 시점에 국내 개봉한, ‘중고 신상’ 같은 영화다. 로제타라는 젊은 여성이 있다. 영화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서 악다구니를 쓰며 맨바닥에 정확히 두 번 뒹군다. 이야기는 일자리를 구하는 로제타가 시대와 사회의 계급 문제를 거의 정통으로 뒤집어쓰고 뒹구는 내용이다. 로제타의삶 의 난이도는 극악이다 못해 정말 가관이다. 영화는 굉장히 건조한 톤을 유지하는데, 덕분에 로제타가 겪는 ‘가관’의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공감의 몰입이라기보다는 옆집에 불이 난 상황을 ‘불멍’ 하듯이 바라보는 느낌에 더 가깝다. 주인공이 겪는 불행의 포르노를 마냥 전시하는 형태는 아니다. 로제타는 유일한 조력자이기도 한 ‘남자친구 호소인’의 뒤통수를 헥토파스칼급으로 때리는 등 성격이 매우 세고 그리 착하지도 않으며, 찌질하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밉지 않다. 그리고 안쓰럽다. 우리 모두는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하며 찌질하다. 깊은 사유를 하듯 영화를 봐놓고는 로제타가 내내 입고 다니던 바람막이 점퍼를 사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던 나도 그렇다. 안 팔더라.
– 김시훈(화가)

마쓰모토 히토시의 다큐멘탈(2016)

코미디 #리얼리티 쇼 #폐쇄된 공간에서 서로 웃기기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10명의 코미디언이 각자 100만 엔씩 들고서 한 공간에 모이고, 6시간 동안 게임을 벌인다. 웃으면 탈락, 마지막까지 안 웃고 버티면 전체 판돈 1,000만 엔을 가져가는 게임. 시즌 2에서는 판돈이 배로 불어나고 탈락자는 좀비가 되는 등룰이 추가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웃음 참기’라는 뻔한 포맷의 쇼다. 모든 것이 즉석에서 이뤄진다. 노련한 배우들의 합으로 짜인 타이밍의 쾌감도, 맥락을 구축하고 완벽한 대본으로 웃기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 다들 자기 돈을 넣고 게임을 시작하는 코미디언들의 절박함은 이 뻔한 다큐-코미디를 매우 특별한 소셜 익스페리먼트의 장으로 만든다. 웃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웃는가. 그 모든 웃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뚫고 나오는 강력한 웃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코미디의 본질은 무엇인가. 당신은 이 날것의 다큐-코미디를 보면서 프로이트나 베르그송의 이론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거나 저러거나, 코미디언들이 누추한 몸을 드러내고, 팬티를 내리고, 고환을 청소기로 당겨대고, 곤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고 있는 걸 보면서 어이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에 저항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의심할 바 없는 추천작이지만 지켜야 할 사회적 지위가 있다면 가급적 혼자 보기를 권한다.


오, 할리우드(2020)

시리즈 #1940년대 할리우드 #라이언 머피
▶ 넷플릭스

할리우드의 골든 에이지를 추억하고 사랑하는 건 가끔 좀 버거운 일이다. 우리는 반짝이던 은막 뒤가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과 성차별, 성정체성에 대한 기만과 착취로 얼룩진 공간이었는지 꽤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쇼 러너인 라이언 머피는 이 작품을 통해 모든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었던 할리우드 클래식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가 새로 구축한 평행
우주의 대안 역사는 록 허드슨이 자신을 완벽히 이해해주는 게이 연인과 공개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곳이며, 재능 있는 흑인 여배우가 메이저 스튜디오의 주연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사실 할리우드가 꿈의 공장이 되기 위해 진짜 필요했던 건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시골 남자(네, 록 허드슨 말입니다)뿐만이 아니라, 그 시절에도 당연히 있어야 했지만 은막 위에는 존재할 수 없었던, ‘모두가 공정한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라이언 머피의 장기(몸이 두껍고 미소가 훌륭한 남자 배우 데려오기)는 수많은 남자 모델과 스타가 필요한 이 작품에서 더욱 빛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전성기를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낸 아트 디렉션의 성취도 언급할 만하다.
– 최진영(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장)

사진
@hollywood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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