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의 경계에서 만난 그레고어 힐데브란트

전여울

그가 8년 만의 개인전으로 다시 서울을 찾았다.

‘당신은 무엇을 그리는 사람인가?’란 질문에 독일 출신의 예술가 그레고어 힐데브란트(Gregor Hildebrandt)는
한결같이 이처럼 대답하곤 했다. “I Paint with Music.” 1990년대 후반부터 카세트테이프, 바이닐, VHS 테이프 등 아날로그 음향 매체를 사용하며 음악과 미술의 교집합에 선 작품 세계를 선보여온 그가 8년 만의 개인전으로 다시 서울을 찾았다.

8년 만의 개인전으로 서울을 다시 찾은 그레고어 힐데브란트.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잭슨 폴록이나 사이 톰블리 같은 그림이 아니야. 소닉 유스, 더 큐어 같은 밴드의 음악과 꼭 닮은 그림을 그릴 거야.” 1990년대 후반, 엄청난 음악광이었던 청년 시절의 그레고어 힐데브란트는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그림을 위해 붓 대신 카세트테이프를 들었다. 음향 매체를 재료 삼아 이들을 콜라주하거나 조립해 완성한 힐데브란트의 작품은 어쩌면 서로 양립할 수 없고 모순되는 것의 기묘한 만남이다. 보기는커녕 붙잡을 수 없는 음악, 즉 청각 정보를 회화에 박제한 그의 작품에선 침묵과 소리가 동시에 교차한다. 힐데브란트를 거쳐 추상적 음악은 실체와 형체를 얻고, 관객은 분명 아무런 소리도 전달되지 않는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음악의 흔적을 감각하고 기억 저편에 있는 저마다의 편린을 떠올린다. 아날로그 음악 저장 매체의 자장 안에서 힐데브란트의 작업은 끝없이 확장되었다. 그는 1990년대 카세트테이프를 시작으로 2000년대에 이르러 바이닐 레코드, VHS 테이프를 활용해 회화, 조각, 설치 작업을 펼치며 지속적으로 ‘음악으로 미술 하기’를 모색했다. 6월 29일까지 페로탕 서울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스쳐가는 두루미>는 이러한 힐데브란트의 세계를 밀도 있게 엿볼 수 있는 자리다. 2016년 페로탕 서울에서 개최한 <더 큐어처럼 그림 그리기>에 이은 두 번째 개인전으로, 힐데브란트는 이번 전시를 평행우주 혹은 데자뷔란 단어를 들어 빗댔다. 수백 장의 카세트테이프가 반기고 층층이 수직으로 쌓아 올린 바이닐 기둥들이 도열된 전시장에서 그와 음악과 미술 사이의 이야기를 나눴다.

<W Korea> 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2016년 개인전으로 처음 내한했을 당시 냉면을 먹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들었는데, 당신의 냉면 사랑은 여전한가?
Gregor Hildebrandt 물론이다. 8년 전 산낙지도 처음 먹어봤는데 입안에서 빨판이 계속 꿈틀거릴 때의 촉감이란!(웃음) 냉면으로 차가운 면 요리를 거의 처음 접했는데, 한번 적응하니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라.

밴드 더 큐어의 팬으로서 2016년 당신의 전시 <더 큐어처럼 그림 그리기>를 관람하지 못한 게 참으로 아쉽다. 팬 대 팬으로서 묻고자 하는데, 가장 아끼는 더 큐어의 앨범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론 <Kiss Me, Kiss Me, Kiss Me>를 가장 좋아한다. 이 앨범에 수록된 ‘Why Can’t I Be You?’는 지구상에서 가장 뒤틀리고 사랑스러운 러브 송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무척 좋아하는 앨범이다. 그런데 1982년 발매한 정규 4집 <Pornography>를 정말 사랑한다. 뭐랄까, 그 앨범 기저에 깔린 어두운 사운드에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더 큐어가 낸 최고의 러브 송을 가리는 문제에선 당신과 나 사이 견해 차가 좀 있는 것 같다(웃음). 내 생각에 단연 최고는 ‘Lovesong’이다. 그런데 요즘엔 이상하게 1992년 발매한 앨범을 자주 듣는 것도 같다.

<더 큐어처럼 그림 그리기>에서는 모노크롬 계열의 작품을 대거 선보여서인지 다소 어둡고 추상적인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반면 이번 개인전 <스쳐가는 두루미>를 마주한 첫인상은 ‘알록달록’이었다. 전시장에 풍부한 색감을 들이는 아이디어는 무엇에서 비롯됐나?
2016년 친한 동료로부터 내가 1999년에 그린 작품 ‘더 큐어처럼 그림 그리기’를 구입했다. 그 작품을 다시 손에 넣으니 문득 초기작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마음으로 <더 큐어처럼 그림 그리기>를 구상했는데, 어쩌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올린 전시였을지도 모르겠다. 작업에 풍부한 색채가 등장한 것은 순전히 우연한 계기 때문이다. 2015년 무렵부터 전시장 바닥 전체를 카세트테이프로 메우는 작업을 구상하며 형형색색의 카세트테이프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2021년 페로탕 홍콩에서 연 개인전 <Behind my Back, in front of my Eyes>에서 다양한 색채 활용의 어떤 ‘절정’이 드러난 거다. 오랜 시간 검은색으로만 이뤄진 작품을 만들다 보니 색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레 생긴 것 같다. 추상 작품을 많이 작업하다 보면 구상 작품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독특하게도 이번 전시는 야외에서 시작된다. 전시장 바깥 입구에 다채로운 색상의 바이닐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기둥 작품 ‘Rhein’을 전시했다. 기둥 작업은 2004년부터 전개한 것으로 아는데, 그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이 또한 우연한 계기였다. 2004년 베를린의 한 벼룩시장에서 바이닐 판을 구부려 간식 그릇으로 만들어 파는 걸 우연히 봤다. 그 아이디어가 재미있어서 처음엔 마치 레디메이드 작품처럼 그릇 모양의 바이닐을 하나씩 개별적으로 전시해 선보였다. 그러다 바이닐 여러 개를 쌓아 올려 기둥 형태로 발전시켰는데, 초반엔 야자수처럼 기둥이 바닥에서 천장으로 ‘S’ 자로 뻗어가는 형태의 작업도 있었다. 2010년부터는 마치 하나의 벽을 만들 듯 기둥 옆에 또 다른 기둥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더 시간이 흘러선 여러 색상의 바이닐을 쌓은 기둥 작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바이닐 기둥 작업은 이번 전시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어쩌면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자신의 고향인 루마니아에 높이 30m로 세운 ‘끝없는 기둥’과 앙드레 카데레가 3~7가지 색상의 페인트를 나무 막대에 칠해 완성한 ‘Round Bar of Wood’의 ‘하이브리드’ 같은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바이닐을 구부린 후 층층이 수직으로 쌓아 올린 조각 작품.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깥에서 본 바이닐 기둥 작업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다섯 점의 기둥 작업이 질서정연하게, 혹은 무질서하게 실내에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다.
바로 그런 지점에서 이번 전시를 ‘평행우주’나 ‘데자뷔’란 키워드를 들어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시장 내외부에서 바이닐 기둥이 비슷한 색감으로, 하지만 다른 느낌으로 반복된다. 영화에서 말하는 ‘시퀀스’와도 같은 감각으로 말이다. 이런 반복이나 기시감은 기둥 작업뿐 아니라 회화 작품에서도 감지할 수 있을 거다. 이를테면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두 점의 페인팅 ‘Kehren die Kraniche wieder zu dir’(2004)와 ‘Und suchen zu deinen’(2004)은 마치 쌍을 이루듯 서로 마주 보며 벽에 걸려 있다. 하나는 캔버스에 카세트테이프의 자기테이프를 부착해 그 위로 아크릴 물감을 칠해 완성하고, 다른 하나는 앞선 캔버스에서 떼어낸 테이프를 활용해 완성한 것이다. 마치 거울상처럼 두 가지 이미지, 즉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이미지가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는 셈이다. 이처럼 서로를 반영하는 이 두 그림, 비슷한 듯 다른 다섯 개의 기둥 작업을 지나 전시장 가장 안쪽에 다다르면 백조와 흑조가 서로 얽힌 모습을 표현한 카세트테이프 작업이 등장한다.

방금 말한 백조와 흑조 모티프의 신작 ‘Umatmen erwünschte Lüfte dir die beruhigte Flut 잔잔한 조류에서 갈망하던 공기를 마시다’(2004)는 어쩌면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보인다.
정확하다. 사실 이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이번 전시를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스웨덴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 중에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페인팅 ‘The Swan, Group IX/SUV, No. 1’(1915)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원작은 서로 부리를 맞댄 채 대립하는 백조와 흑조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을 기반으로 하되 백조를 흑조로, 흑조를 백조로 그려 모티프를 반전시켜봤다. 일종의 트릭인 셈이다. 그럼으로써 전시 초입의 한 쌍의 페인팅, 기둥 작업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혼란과 그에 따른 자극을 지속시키고 싶었달까.

백조와 흑조의 부리가 맞닿은 부분에는 ‘Lover’라 적힌 카세트테이프가 있다.
사실 그 자리에는 원래 독일 가수 하워드 카펜더블의 테이프가 있었다. ‘Lover’ 테이프는 작품 상단 왼편에 잘 안 보이는 구석에 있었는데 막바지에 둘을 교체했다. 지금껏 수많은 카세트테이프 작업을 펼쳐왔는데 이번 작품은 최초로 오로지 흰색과 검은색 테이프로만 구성해 완성한 경우에 해당한다. 무엇이든 흑백으로 구분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타파하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문득 그 구분을 깨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작품의 정중앙에 짐짓 의미심장하게 ‘Lover’라 적힌 테이프가 배치된 거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줄곧 카세트테이프를 주요 매체로 다뤄왔다. 당신이 카세트테이프에서 발견한 미학은 무엇인가?
가장 처음으로 카세트테이프를 활용해 콜라주 작품을 만든 게 1997년의 일이다. 그 당시는 가히 카세트테이프의 전성시대였다. 집집마다, 차량마다 카세트플레이어가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녹음해 믹스테이프를 주고받는 문화가 있었다. 카세트테이프에는 특정 노래가 녹음되어 있는데, 이를 활용한 내 작업은 어쩌면 노래의 비밀스러운 전달자인 셈이다. 한편 그 무렵은 나만의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찾아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상을 모색하고자 했고, 더 큐어나 소닉 유스의 음악처럼 다른 장르에서 롤모델을 가져오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은 어떠한 시각적 형태도 띠지 않은 매체니까.

그래서 이런 말이 탄생한 건가.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잭슨 폴록이나 사이 톰블리 같은 그림이 아니야. 소닉 유스, 더 큐어 같은 밴드의 음악과 꼭 닮은 그림을 그릴 거야.” 그나저나 잭슨 폴록과 사이 톰블리는 어쩌다 오랜 시간 당신에게 미움을 샀나?(웃음) 오, 그건 정말 오해다!(웃음) 두 작가 모두 무척이나 존경한다. 단지 세상에 없던 것을 찾고자 했던 마음 때문이었음을 알아달라.


현재 음악 레이블 ‘Grzegorzki Records’도 운영 중이다. 꽤 독특한 사이드 잡으로 보인다.
사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카세트테이프나 바이닐 같은 아날로그 매체를 대량으로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재료 수급의 문제도 있었고 저작권 문제도 클리어하게 해결하기 위해 레이블을 차리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더라. 여타의 레이블과 다른 점은 우리는 주로 시각예술가를 포함한 작가들의 음반을 찍는다. 지금껏 20장 가까운 음반을 냈는데, 좀 팔불출 같지만 그중 지금 내가 교수로 몸담고 있는 독일 뮌헨 미술원 제자들의 음반도 있어 무척 자랑스럽다(웃음).

2층 전시장 풍경으로 아날로그 음향 매체를 주재료로 활용한 다양한 페인팅 작업을 만날 수 있다.

가끔 디제이로도 변신하는 것으로 안다. 어떤 파티에서 틀어도 실패가 없었던, 당신만의 필살기 같은 곡은 무엇인가?
시스터스 오브 머시의 ‘Marian’을 유독 자주 틀었다. 특히 독일어 가사가 흐르는 대목에선 볼륨을 좀 더 높이곤 했다. 요즘 기분이라면 파의 ‘Beauty needs Witness’를 틀 것 같긴 하다.


언젠가 당신의 작업으로 옮겨질 수도 있는, 가장 최근 듣고 놀란 음악은 무엇인가?
최근 독일의 아방가르드 밴드 ‘아인슈튀르첸데 노이바우텐’의 신보 <Rampen>을 들었는데 좀 충격적으로 좋았다. 특히 12번째 트랙 ‘Aus den Zeiten’이 환상적이었다. 이 곡에는 “Sing for me in yellow”란 가사가 있다. 노란색은 미래를 상징하는 색이자 내게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색이었다. 그래서인지 저 가사를 듣는 순간 어떤 아이디어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포토그래퍼
최영모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