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챌린저스’를 위해 모인 역대급 능력자들

김나래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온 고잉’ 매치 포인트

<아이 엠 러브(I Am Love)>, <비거 스플래시(A bigger Splash)>,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등을 통해 세련되면서도 우아한 영화 제작자로서 명성을 쌓아온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프로 테니스 세계가 주 무대인 그의 신작 <챌린저스(Challengers)>는 주인공이자 프로듀서를 맡아 1인 2역에 나선 젠데이야를 비롯해 각본과 음악, 의상까지 각 분야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모여 완성한 화려한 ‘팀플’의 결과물입니다.

3인 3각 차별화된 스타일, 조나단 앤더슨

음악 못지않게 강렬한 <챌린저스> 속 의상 디자인은 자신의 이름을 본뜬 브랜드 JW 앤더슨을 론칭하고, 2013년에는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조나단 앤더슨이 맡았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와 조나단 앤더슨은 우연히 어느 호텔에서 마주친 이후로, 가구, 세라믹, 사진, 영화 등 창의적 분야를 통틀어 ‘디깅’하는 공통점 덕분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해요. ‘덕질 파트너’로 취향을 나눠온 루카 구아다니노와 조나단 앤더슨의 미학이 고루 합쳐져 시너지를 낸 것이 <챌린저스>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박진감 넘치는 3인 3각의 ‘절편’이 되는 인물들은 전직 스타 플레이어이자 현재는 남편의 커리어를 되찾는 일에 온 신경이 향해있는 타시 도널드슨(젠데이야), 연패 슬럼프에 빠져 있는 타시의 남편인 아트 도널드슨(마이크 파이스트), 그리고 타시의 전 남자 친구이면서 아트와도 둘도 없는 베프였던 패트릭 즈바이크(조쉬 오코너)입니다.

조나단 앤더슨은 테니스에 인생을 걸고, 테니스 코트 안에서의 성공으로 존재감을 입증하려는 타시에게 ‘승리’와 ‘보여주기’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고 해요. 이 때문에 영화 속 타시의 스타일은 평범한 테니스 플레이어의 운동복에서 성공 공식에 부합하는 하이엔드 룩으로 변모하는데요. 아디다스의 테니스 코어 룩을 입고 “컴온”을 외치던 테니스 유망주는 13년이 지난 후, 로에베의 연한 블루와 흰 셔츠 원피스에 샤넬 CC 로고 트위드 에스파듀 슬립온과 까르띠에의 목걸이를 스타일링한 채 등장합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한, 수많은 매체에서 화제가 된 타시의 바로 그 룩이에요.

타시와 테니스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두 남자, 아트와 패트릭를 위해 조나단 앤더슨은 ‘불과 얼음’으로 불리는 각기 다른 시합 스타일에 부합하는 아웃핏으로 캐릭터에 차별화를 부여했습니다. 연패 슬럼프에 빠져 있고, 타시에 의존적인 아트는 타시의 욕망을 채워줄 그릇과 같은 역할인데요. 그의 룩 또한, 순종적인 캐릭터를 반영해 깔끔하면서도 전형적인 스포츠 브랜드의 것이 많습니다. 특히 아트가 패트릭과 승부를 겨루는 US 오픈 뉴 로셸 투어에서의 매치 포인트 장면에서 입은 유니클로의 유니폼과 온의 테니스화는 카메라가 로고를 훑고 지나가면서 광고와 같은 강력한 잔상을 남겼어요. 온은 스위스의 테니스 영웅인 로저 페더러가 투자한 회사로도 잘 알려져 있죠. 유니클로가 스폰서하는 전 세계 단 두 명의 선수 중 한 사람인 로저 페더러, 조나단 앤더슨이 협업하고 있는 브랜드가 유니클로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2017년부터 영화 밖에서 로에베의 앰베서더로도 활동 중인 배우 조시 오코너가 맡은 영화 속 패트릭의 스타일은 ‘꾸안꾸’. 타고난 부를 갖춘 좋은 집안의 자제가 자신도 모른 채 쌓아온 취향을 기반으로 고를 듯한 스타일링이 콘셉트였다고 합니다. 엉성하게 안 어울리는 듯 조화로운 패트릭의 아웃핏은 조나단 앤더슨이 1980년대와 1990년대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이었던 존 F. 케네디 주니어에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어요.

도파민 도는 테크노 음악,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

대략 13년에 걸친 시제를 넘나드는 <챌린저스>는 감각적인 패션도 패션이지만, OST야말로 도파민 도는 세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장치입니다. 타시와 패트릭, 타시와 아트, 패트릭과 아트. 끝까지 가봐도 결론을 알 수 없는 주인공들의 혼란스러운 관계성을 투영한 OST는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 기반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풀어낼 수 없었을 거예요.

클럽에서 틀어도 손색이 없을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 기반의 OST는 <본즈 앤 올>에 이어 두 번째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합을 맞춘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 듀오의 솜씨입니다. ‘Challengers’, ‘I know’, ‘The Signal’, ‘Brutalizer’ 등의 빵빵한 영화 사운드는 2시간 11분 러닝 타임 내내 심장을 조였다 풀었다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의 롤러코스터 역할을 합니다. <소셜 네트워크>, <소울>로 아카데미에서 음악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사운드의 기술자들’ 답네요.

스포츠 영화인 듯 아닌 듯 매력적인 이야기, 저스틴 커리츠케스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품 중 가장 매력적이면서 대중성을 담보한 작품 중 하나라는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는 <챌린저스>의 각본을 쓴 이는 저스틴 커리츠케스. 그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감독한 셀린 송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챌린저스>의 주인공인 아트 도날드슨을 맡은 마이크 파이스트는 <패스트 라이브즈>의 각본을 읽고 좋아서 오디션 테이프를 보냈다 탈락했는데, 극본가인 저스틴 커리츠케스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셀린 송의 남편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는 일화가 있어요.

컬럼비아 대학에 다닌 저스틴 커리츠케츠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차기작 <퀴어>의 각본도 맡았다고 하는데요. 그와 루카 구아다니노는 한국으로 치면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와 같은 협업 관계처럼 보입니다. 비트 세대의 대표 작가인 윌리어. S. 버로스의 탐닉적인 원작 소설 <퀴어>를 얼마나 또 맛깔나게 요리해 낼까요?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jonathan.anderson, @challengersmovie, @treznor, IMDb, @justinkuritz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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