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과 엇박 사이, 대니 구의 모험

전여울, 김민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는 정박과 엇박 사이에서 춤추며 길을 걸어왔다.

클래식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뿐 아니라 때로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으로 변신하며 그는 스스로 한계를 지은 법이 없었다. 쉬지 않고 나아가고 격파하며 살아간 대니 구의 삶은 모험 그 자체다.

줄무늬 니트 드레스와 안에 입은 셔츠, 레더 넥타이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W Korea> 지금 한국에서 가장 바쁜 연주자일 듯해요. 예능에, 공연에.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죠?
대니 구 어제 세봤는데 4월 한 달만 공연이 11개더라고요. 5월부턴 ‘핑크퐁 클래식 나라’ 전국 투어를 돌어요. 또 5월 말 서울재즈페스티벌도 있죠. 매일 스케줄이 있어요. 이렇게 7월 중순까진 계속 달릴 것 같아요.

오늘 촬영장에 오기 전엔 수액을 맞았다고요.
처음 맞아봤는데 너무 좋아요. Nice!(웃음)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에요. 아침에 평소처럼 운동도 하고 연습도 할 수 있었거든요. 사실 스케줄이 많아서 힘든 것보다 루틴이 깨질 때 더 스트레스를 받아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서죠. 페스티벌 기획사로부터 단연 올해 ‘섭외 1순위’였다 들었어요. 지난해 관객 반응이 워낙 좋아서.
내심 ‘또 불러주겠지?’ 하는 기대가 살짝은 있었어요(웃음). 작년엔 공연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해가 너무 쨍쨍해서 관중석이 1/3밖에 차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보러 와주신 게 어딘가, ‘할렐루야’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평소 연주할 때 눈을 감는 편인데 그날은 중간중간 눈을 뜰 때마다 관객이 늘어나더라고요. 공연이 끝나갈 즈음엔 거의 만석이었고요.

클래식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죠? 무엇보다 관객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 광경은 처음이었을 듯해요.
그렇죠, 맥주!(웃음) 굉장히 솔직한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페스티벌에선 여러 무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잖아요. 관객이 언제든 떠날 수 있어요. ‘재미없다, 폴킴 보러 가자’ 하고요. 클래식 공연은 관객이 한번 입장하면 중간에 나가지 못해요. 나가면 욕을 먹죠(웃음). 그래서 작년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저에겐 일종의 테스트 같았어요. 내가 얼마만큼 관객을 붙잡아놓을 수 있을지 스스로 시험해보는 기회였죠.

매해 비슷한 시기에 서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와는 다른 종류의 경험치를 안겨주는 무대였겠네요.
맞아요. 어쩌면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도전과도 같은 공연이잖아요. 악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악기로 승부도 봐야 하지만 재즈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으니까요. 2017년 관객으로 서울재즈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저런 무대에 어떻게 서나’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작년 처음 페스티벌 무대를 밟았을 때 마치 예술의전당에 처음 입성한 기분이 들었어요. 사실 클래식 뮤지션으로서 예술의전당은 내가 언젠가는 서게 될 무대라는 걸 인지하잖아요. 반면 서울재즈페스티벌은 내가 걷는 길엔 도무지 없을 것만 같은 선택지였고요. 그런 의미에서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작년 통틀어 톱 3 안에 드는 무대였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조윤성 트리오와 무대를 꾸리죠?
네. 윤성 쌤과는 2017년 베이시스트 성민제와 듀오 프로젝트를 할 당시 처음 만났어요. 그때부터 느꼈지만 윤성 쌤은 진짜 천재예요. 머리 회전이 말도 안 되게 빠르고요. 치고 빠질 때의 타이밍을 아주 정확하게 알아요. 저 같은 클래식 뮤지션에겐 없는 ‘즉흥’의 DNA도 일깨워주고요. 저는 그런 게 있어요. 일할 때만큼은 내가 진짜 존경하는 사람들, 즉 ‘베스트’와 함께하자. 윤성 쌤은 저에게 베스트 뮤지션이에요. 지금도 한창 함께 리허설 중인데 작년과 비교해 케미스트리가 훨씬 쨍쨍해졌어요. 세트리스트도 완전히 뜯어고쳤고요. 올해는 노래 비중이 확 늘 거예요.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요.

최근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어요.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란 별명이 방송을 통해 한층 견고해진 듯한 인상인데요?
어휴(웃음). 사실 방송에 출연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껏 ‘역시 대니 구다’ 소리를 듣기 위해 달려왔는데 방송 한 번으로 까딱하면 ‘예능 하더니 딴따라 다 됐다’란 소리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 조수미 쌤이 큰 도움이 됐어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상의하러 찾아갔거든요. 그때 쌤이 좋게 푸시해줘서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음악을 하며 늘 제 역할은 명확하다고 생각했어요. 클래식 세상과 대중을 잇는 연결 고리가 되는 것. 그런데 본의 아니게 방송을 통해 그 이미지가 각인된 듯하고요. 부담이 커요. 클래식계는 워낙 보수적이잖아요. 그 세상에 금이 가게 해선 안 되고, 그 세상을 진짜로 성장시키고 싶거든요. 그래서 요즘 점점 더 ‘빡세게’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점점 더 자신에게 엄격해지는 중인가요?
그렇죠. 사실 힘에 부칠 때도 많아요. 엊그제는 온종일 촬영을 했고 어제는 아침 9시 리허설을 시작해 밤늦게 행사가 끝났고요. 이런 스케줄이 거의 매일이에요. 그런데 이 모든 건 제 인생에서 지금만 할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또 지금의 밸런스가 참 좋아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핑크퐁 클래식 나라’ 무대에 서는 날이 있으면, 클래식 청중을 위한 MBC 의 MC를 보는 날도 있고요.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인 SSF에 서다가, 더 넓은 층의 관객이 찾는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서기도 하고요. 제가 음악을 시작하며 항상 바라온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거죠.

미국에서 태어나 활동하다 2016년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만나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2020년 한국에 정착하며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고요.한국에서의 활동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교포로서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늘 따라다녔고요. 그런데 한국에 올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당시 한국의 클래식 공연을 보면 청중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했어요. 여기(한국)에 어떤 포텐이 있다고 느껴졌어요. 또 조수미, 금난새 선생님 이후로 클래식을 대중에게 문턱 없이 전하려고 하는 이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지점에서 제 역할이 보였던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 꿈꾸던 삶은 지금의 삶과 어느 정도 일치하나요?
꿈꾼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고 풍부한 삶이죠. 한국에 오면서 결심한 게, 다양한 활동과 장르에 도전하자는 거였어요. 사실 시향과는 죽을 때까지 협연할 거잖아요. 그렇다면 나에게 찾아오는 여러 기회를 적극적으로 잡아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렇게 2021년 JTBC <슈퍼밴드2>도 참가했는데 그때 제 스펙트럼이 확 넓어진 듯해요. 연주자지만 처음 노래에 도전했고 제 곡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어렸을 땐 막연히 최고를 꿈꿨다면 이젠 유일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예요. 지금 그 길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조금씩 스스로에게 신뢰가 쌓이는 것 같아요.

블랙 슈트와 셔츠, 레더 넥타이, 앵클 부츠는 알렉산더 맥퀸 제품.

지난 4월엔 EP 를 발매했어요. 작년 서울재즈페스티벌 당시 깜짝 공개한 ‘Just You’도 수록했죠.
총 4개 트랙으로 구성했어요. ‘Just You’와 ‘Love Letter’는 직접 작사, 작곡으로 참여한 노래 곡이에요. ‘Moonlight’와 ‘Twilight Waltz’는 뉴에이지 음악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도전해봤어요. 예전부터 해보고 싶은 장르였거든요. 클래식 뮤지션으로서 뉴에이지는 대중에게 다가서는 첫 단추와도 같은 장르 같아요. 관객이 이지 리스닝한 뉴에이지를 듣다 더 관심이 생기면 시리어스한 클래식 음악에도 입문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K팝을 보면 특정 뮤지션을 좋아하는 게 먼저고 이후 자연스레 그가 하는 음악도 응원하게 되잖아요. 대중을 위한 어떤 좋은 입구를 마련해주는 것, 클래식계엔 이런 시도가 거의 없어요. 사실 너무 쉬운 건데 그 한 걸음을 잘 안 떼요. 물론 클래식계가 지키려는 어떤 가치도 리스펙트하지만 저에겐 또 다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서 낸 음반이 <Moonlight> 였어요.

2022년 첫 솔로 앨범 <Home>과 클래식 레퍼토리로 정면 승부한 <Connected>부터 올해 처음 뉴에이지 장르에 도전한 <Moonlight>까지. 이후의 차기 앨범도 궁금한데, 그 밑그림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마침 2026년은 제가 한국에서 활동한 지 10년을 맞는 해예요. 그때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돌아오고 싶어요. 파트를 둘로 나눠 파트 A엔 이지 리스닝 클래식 곡을 수록하고, 파트 B엔 <Chet Baker Sings>처럼 제가 노래한 곡을 수록하는 거죠. 그리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스트링 사운드를 가미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돌이켜 살면서 가장 음악에 위로받은 경험은 언제였나요?
한국으로 이사 온 2020년 2월 1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해요. 주변 모두가 반대했거든요. 심지어 부모님조차 왜 한국에 가는 거냐고 만류하셨어요. 거짓말처럼 한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졌죠. 공연업계가 올스톱한 건 물론, 세상이 멈췄어요. 그때 월세 낼 돈조차 없고 꼬맹이들에게 바이올린 강습을 하며 스스로 이렇게 자문했거든요. ‘내가 왜 음악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러면서 처음으로 공연을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위한 연주를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음악을 통해 엄청난 위로를 얻었고 내가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 시절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그럼 가장 빚진 음악 한 곡이 있다면요?
첫 솔로 앨범 에도 수록한 바흐의 ‘샤콘느(Chaconne)’요. 인생의 터닝포인트마다 이 곡이 있었어요. 대학교, 대학원, 한국에서 첫 독주회를 할 때면 꼭 ‘샤콘느’를 연주했어요. 바이올린이 홀로 16분을 끌어가는, 굉장히 어두운 곡이에요. D단조의 강렬하고 격정적인 화음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곡인데, 중간 8분 무렵에 아주 잠시 D장조의 평화로운 구간이 등장해요. 너무나 애틋한. D장조가 등장하는 순간 갑자기 길이 보이는 듯하고 희망적인 색깔이 생겨나죠. 딱 그 네 마디가 너무 좋고 제게 큰 의미로 다가와서 타투로도 새겼어요.

대니 구의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은 딱 70%인 것 같아요. 작년만 해도 50%는 됐을까요? 이제는 일도 음악, 취미도 음악이에요. 평소 시간이 빌 때면 재미 삼아 가사나 톱 라인을 끄적이기도 하고요. 예전엔 음악을 하며 스트레스가 너무 크니까 다른 취미를 가져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젠 음악이 취미가 되어버린 느낌이에요.

나머지 30%를 이루는 건 뭘까요?
운동도 좋아하고요. 친구를 만나 와인 마시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 데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에요. 캘린더를 거의 한 달 전부터 짜는 편인데 가끔 스케줄이 바뀔 때면 되게 스트레스 받아요. 한 달에 술을 마실 수 있는 게 두세 번밖에 안 되는데, 그때 진짜 중요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마셔야 하거든요. 그런데 스케줄이 꼬이면, 윽!(웃음)

요즘 본인에게 가장 자주 던지는 말은 무엇인가요?
아침에 운동하고 샤워를 마치고 나면,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말을 걸어요. ‘오늘도 역시 설레고 감사하다.’ 지금은 한창 달리는 때잖아요. 너무 감사하면서도 가끔 지칠 때가 찾아와요. 그럴 때면 오늘 캘린더에 적힌 스케줄을 보면서 생각해요. ‘나에게 일주일에 이 스케줄 하나만 있었다면, 아니면 한 달에 이 한 번의 기회만 있었다면 얼마나 설레면서 했을까.’ 매일 바쁘다고 설렘을 잊고 살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초심을 지키려고 하는 요즘인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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