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의 림킴

전여울, 김민지

2019년 약 4년의 침묵을 깨고 림킴이 발매한 <Generasian>에서 당시 그녀는 여성에게 씌워진 불공평의 프레임에 반기를 들며 노래했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마. 이제는 판을 뒤바꿔야 할 때야”.


시간이 흘러 올해 림킴은 ‘궁(ULT)’으로 돌아왔다. 5년의 시차를 두고 발표한 노래에서 그녀는 자신을 두 팔로 힘껏 껴안은 것처럼 스스로를 긍정하고 확신한다. 두 음반 사이에 엄청난 낙차가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림킴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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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orea>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의 라인업을 장식한 여러 이름 중에서 개인적으로 ‘림킴’이 가장 의외의 발견이었어요. 2019년 림킴으로 활동명을 바꾸고 발매한 이후 페스티벌은 물론 라이브 무대가 굉장히 희소하다고 느껴졌거든요.
림킴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죠. 사실 2020년 서울재즈페스티벌로부터 초청을 받았는데 코로나19로 아쉽게 참가가 무산됐어요. 그리고 라이브 공연에 대한 욕심이 생각보다 없었던 것도 같아요. 모든 걸 ‘인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평소 성향 탓도 있고 긴 러닝타임을 소화할 만큼 곡이 충분히 쌓이지 않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공연의 중요성을 확실히 느껴요. 올해는 진짜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가 커요.

‘라이브 퍼포먼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은 무엇인가요?
로린 힐의 MTV 언플러그드 무대요. 꼬맹이 시절 셀 수 없이 여러 번 돌려봤어요. 목소리에 꽂혔던 것 같아요.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놀라기도 했고요. 중학생 땐 비욘세의 음악 시상식 무대나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그렇게 봤어요. 음악 취향을 떠나 보는 것만으로 엔터테이닝되는 지점이 있잖아요.


‘엔터테이닝’의 측면에선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림킴의 무대가 가장 기대돼요. 리아킴이 이끄는 댄스 크루 ‘원밀리언’과 함께 무대를 꾸리죠?
맞아요. 올해 2월 발매한 싱글 ‘궁(ULT)’으로 함께 무대를 펼칠 예정이에요. 당연히 댄스 퍼포밍이 들어가고요. 그런데 저도 춤을 출지는… 아직 미정이긴 해요(웃음).


‘궁(ULT)’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참 흥미로워요. 지난해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2>에서 원밀리언이 메가크루 미션 곡으로 에 수록된 ‘Yellow’와 ‘Yo-Soul’을 선정해 퍼포먼스를 펼쳤고, 그 무대를 보며 ‘궁(ULT)’의 밑그림을 그려갔다고 들었어요.
그렇죠. 그 앨범을 2019년에 발매했으니까 ‘Yellow’와 ‘Yo-Soul’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4년이 흐른 때였거든요. 저에게 두 곡은 어떤 ‘시차’가 느껴지는 곡이에요. 그래서인지 무대를 보면서 너무, 너무 좋았어요. 예상치 못한 에너지를 받았고요. 사실 <Generasian>은 긴 공백을 깨고 인디펜던트로 힘겹게 작업한 경우라 당시 ‘이걸 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그때 같이 작업한 친구들 덕분에 무사히 낼 수 있었어요. 동기 부여란 게 스스로를 통해서만 생기는 건 아니더라고요. 원밀리언 무대를 보면서도 이상한 ‘직감’이 찾아왔어요. 제 음악을 잘 소환해준 만큼 이를 예쁘게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달까. 그래서 당시 앨범을 같이 만든 프로듀서에게 연락해서 ‘궁(ULT)’을 거의 2~3일 만에 뚝딱 만든 것 같아요.

<스트릿 우먼 파이터 2>에 다양한 크루가 출연했는데, 콕 집어 원밀리언이 림킴을 재해석한건 어떤 필연 같다고 느껴져요. 강렬함과 신비로움은 림킴과 리아킴이 동시에 지닌 DNA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좀 느꼈어요. 사실 두터운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예전에 한 번 뵀을 때 ‘나중에 재미있는 거 같이해요’란 말을 가볍게 주고받았는데, 왠지 그게 언젠가 꼭 이뤄질 것만 같다는 예감은 있었어요. 작업하기도 전에 잘하실 거란 확신도 들었고요. 이번에 ‘궁(ULT)’을 발매하면서도 함께 퍼포먼스 비디오를 제작했는데 리아 쌤에게 이런저런 요청을 따로 드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촬영 당일 퍼포먼스를 보면서 ‘관통당했다’ 싶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왠지 저를 다 간파하고 퍼포먼스를 만든 느낌이었달까. 여태 제 음악을 가지고 만든 여러 커버 댄스 영상을 봤고 물론 그때마다 멋지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 원밀리언의 퍼포먼스는 확실히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궁(ULT)’은 ‘궁극적’에서 따온 말이죠? 이를 곡의 큰 줄기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당시의 저는 왠지 독기를 품은 인상이잖아요. 뭔가에 굉장히 화가 나 있는 듯하고. 그런데 사실 그때 화가 나 있었다기보다 그저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았던 것뿐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토해내듯 전부 표현하고 나니까 스스로가 좀 달라지더라고요. 또 발매 이후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이제는 좀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과거 앨범에서 공격적으로 말하고 무거운 메시지를 던졌지만 지금 저의 스탠스와 그때는 사뭇 달라요. ‘궁(ULT)’에서는 이런 바이브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우리가 뭘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떤 궁극을 떠올리게 됐죠.


확실히 <Generasian>은 어떤 의미에서 ‘배출’과 ‘투쟁’ 같은 음반이었죠. 아시아계 여성에게 씌워진 불공평한 프레임에 거세게 반기를 들며 노래했잖아요. 반면 ‘궁(ULT)’에서는 “Yes I am ultimate”라며 엄청난 자기 긍정을 보여요. 장르적으로 ‘궁(ULT)’은 <Generasian>의 시퀄처럼 보이지만 자신감, 여유, 자기 긍정의 메시지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다고 느껴져요.
그렇죠. 무엇보다 제가 달라졌으니까요. 그리고 2019년엔 모든 게 처음이었잖아요. 그간 시도해본 적 없는 음악적 색깔, 비주얼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 스스로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림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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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림킴’이 뮤지션으로서 당신이 꺼내 드는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마치 도널드 글로버의 ‘차일디시 감비노’나 데브 하인스의 ‘블러드 오렌지’처럼요.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평소의 저는 림킴과 다른 것 같아요. 일단 그렇게 세지 않고요. 음악을 할때 나오는 자아이거나 제 음악을 캐릭터화한 게 곧 림킴이겠죠. 처음 림킴을 그려갔을 때만 해도 굉장히 추상적이었어요. 어떤 방향성만 있을 뿐이었죠. 동양 여성을 키워드로 잡았는데 그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는 최대한 많은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싶었어요. ‘Sal-Ki’를 작업하면서는 영화 <킬 빌>을 떠올리기도 했고요. 일본의 날라리 여고생부터 몽골 여장군까지 광범위하게 서치하면서 제가 보기에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것을 수집한 것 같아요.


림킴 하면 ‘욕망하는 여성’이 그려지거든요. 이번 ‘궁(ULT)’에서도 “감춰진 Desire”라는 가사가 등장하기도 하고요. 반면 당신이 느끼기에 림킴은 무엇을 욕망하는 사람일까요?
글쎄요. 일단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하고 싶은 게 명확히 있는 사람이었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 가고 싶다,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다, 이걸 먹어보고 싶다, 이런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 이런 것들이 항상 있었어요. 크든 작든 늘 바라고 욕망하는 게 있었고 늘 그걸 좇으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다’란 인식이 생겼고요. 그래서 림킴으로 인디펜던트 음악을 했을 때도 두렵지 않았어요.


2020년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했죠.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것은 기어코 하면서 사는 스타일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을 때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맞아요. 그렇게 자신의 욕망을 따르고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있을 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지만 과거 인디펜던트로 앨범을 발매한 것도 결국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렇죠. 회사에 있을 때 제가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타인이 보기엔 큰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넘겨져버리는 게 개인적으론 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보는 눈이 다르니까 충분히 그럴 수야 있죠. 그런데 그런 게 쌓이면서 그냥 내 마음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었던 것 같아요. 또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는 건 내가 따로 하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인디펜던트로 활동하면서 물론 쉽지 않은 부분도 많았지만 이게 적성에 맞다고 느꼈어요. 훨씬 수고롭지만 재미있고, 결과물이 나왔을 때 좀 더 내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프로듀서, 비디오그래퍼, 스타일리스트 등 모두 직접 림킴의 취향과 맞닿아 있는 이들에게 연락해 팀을 꾸렸죠. 주로 어떤 작업자에게 끌리는 편인가요?
자주 작업하는 프로듀서 노 아이덴티티는 사운드클라우드를 디깅하던 중 알게 돼서 연락한 경우예요. 그간 만나온 프로듀서들과는 완전히 접근법이 달랐어요. 보통은 피상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잖아요. 그런데 그는 저의 본질이 뭔지 파헤치는 느낌으로 작업을 하더라고요. <Generasian> 작업에는 그 친구밖에 대안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누가 됐든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를 주요하게 본 것 같아요. 늘 ‘자기 것’을 가진 사람과 함께하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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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림킴이 가장 몰두하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저는 뭔가를 담아 표현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항상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찾는 것 같아요. 물론 강박적으로 이를 찾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넌지시 ‘그게 뭘까?’라는 물음표를 내내 띄워놓는 거죠. 그러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그 ‘무엇’은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게 좀 궁금하긴 해요. 그런데 특히 창의적인 일은 그걸 잘 해내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기가 종료되기 전에, 내가 여전히 괜찮을 때 뭔가를 찾아 해내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찾고자 하는 건 예상치 못하게 저를 방문한다고도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그 문을 닫지만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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