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6월 슈퍼맨이 처음으로 등장한 <액션 코믹스> 창간호가 60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어떤 물건의 가치를 파악하는 대표적인 바로미터는 바로 경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각종 예술품뿐 아니라, 대중이 좋아하고 갖고 싶은 모든 것은 경매의 대상이 되는데요. 대중 문화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경매를 진행하는 미국 헤리티지 옥션에서 지난 4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화책’이 탄생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1938년 6월 발행한 <액션 코믹스Action Comics> 창간호입니다. 무려 600만 달러(한화 약 81억 원)에 팔렸답니다. 이전의 최고 기록은 530만 달러에 팔렸던 동일한 책자입니다. 신문 가판대에서 10센트에 판매하던 <액션 코믹스> 창간호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요?
<액션 코믹스> 창간호에는 오늘날 슈퍼히어로의 원형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바로 슈퍼맨입니다. 슈퍼맨은 만화 역사에서 단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만화 캐릭터를 넘어 20세기 대중 문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죠.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특유의 코스튬을 입고, 코드네임을 사용해 신분을 숨기면서, 자기 능력으로 선행을 하거나 악을 무찌르는 설정은 오늘날 만화, 드라마, 영화에서 수없이 나오는 슈퍼히어로의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고 평가받아요.
특히 슈퍼맨은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이자,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한 세계화를 이끈 문화적 첨병이기도 했습니다. 이민자 출신 원작자의 아메리칸드림 경험을 투영한 슈퍼맨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냉전 시대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데 쓰였어요. 더불어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미국이 누리는 절대적인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이기도 했습니다. 유럽, 아시아에 있는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슈퍼맨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이를 증명하죠.
이번에 팔린 <액션 코믹스>는 CGC 등급이 8.5점입니다. CGC는 미국에 위치한 Certified Guaranty Company라는 곳에서 제시하는 등급인데요. 만화책, 잡지, 포스터 등 다량으로 찍어내는 인쇄물의 품질을 1~10점까지 아주 세밀하게 평가해 등급을 매겨요. 9점 이상부터는 아주아주 사소한 마모와 변색 여부에 따라 점수가 오가기 때문에 저세상 레벨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만화책을 완벽하게 인쇄하고 제본할 때 아무런 생채기가 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변색을 막는 진공 보관함에 집어넣어도 10점이 될지 알 수 없거든요.
요즘처럼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 만화책은 출판사가 애지중지 보관하던 버전조차 9점을 넘기기 힘듭니다. 그러니 1938년에 발행한 만화책 창간호의 CGC가 9점 바로 아래 등급인 8.5점이라는 건 현실적으로 구할 수 있는 거의 최고 수준의 완전본이란 뜻입니다. 특히 <액션 코믹스> 창간호는 현재 남아있는 수량을 100권 정도로 추정하고 있어요. CGC 등급을 받은 책이 단 78권에 불과하니 수집가들이 흥분할 만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본에 조금이라도 손을 가한 복원본의 가치는 훅 떨어지는 편이에요. 사람들은 인위적인 완전함보단 기적 같은 불완전함을 원하거든요. 하지만 이번 경매에서 전문적으로 복원한 <액션 코믹스> 창간호는 역대 최고 가격인 57만 6천 달러(약 7억8천만 원)에 팔렸습니다. 이게 다 슈퍼맨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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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itage Au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