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댓글부대>의 세 배우 김성철, 김동휘, 홍경

권은경

영화 <댓글부대>에서 온라인 여론 조작에 능한 한 팀으로 활약하는 세 배우. 김성철, 김동휘, 홍경이 따로 또 같이 이루어 낼 청춘의 한 면모가 곧 드러난다

(왼쪽부터) 김성철이 착용한 재킷은 구찌, 니트 톱은 페라가모, 팬츠는 에스티유, 틴트 렌즈 안경은 젠틀 몬스터, 벨트는 어니스트 W 베이커 제품, 셔츠와 타이, 귀고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홍경이 착용한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베스트, 팬츠는 모두 구찌 제품, 셔츠와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동휘가 착용한 엠브로이더리 재킷과 트랙팬츠는 카사블랑카 by 지스트리트 494 제품.

찡뻤킹, 찻탓캇, 팹택. 오타도, 제3세계 언어도 아니다. 배우 김성철, 김동휘, 홍경에게 주어진 작품 속 이름이다. 대기업 비리에 대해 쓴 기사가 오보로 판명 나며 정직당한 사회부 기자에게,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는 제보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 <댓글부대>는 소문으로만 돌던, 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긴 힘든 댓글부대의 실체를 그려낸다는 범죄물이다. 기자 역을 맡은 배우 손석구, 온라인의 보이지 않는 손 혹은 신이 되는 일명 ‘팀알렙’의 세 멤버는 영화의 두 축이다. 세상의 크고 작은 비극은 우리 각자가 믿는 선한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틀린 것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다. 여기에 ‘우리가 판을 움직인다’는 청춘 셋의 미묘한 우월감과 정의감, 돈의 맛을 알아버린 자의 욕망이 얽히면 또 어떨까? “관객들이 이 영화에 재미와 흥미를 많이 느끼실 거라고 확신해요. 그래서 많이 보러 극장에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팀의 리더 찡뻤킹(김성철)이 말했다.

그런데 <댓글부대>라는 작품의 존재를 안 이후 가장 궁금했던 건 이야기가 얼마나 긴장감 있고 훌륭할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런 문제는 2015년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잔혹하고 처연하게 이상한 나라를 완성한 바 있는 안국진 감독이 알아서 했을 것 같다. 호기심이 향하게 만드는 요소는 김성철, 김동휘, 홍경 세 배우의 앙상블이다.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과 연극 등을 오가며 배우에게 가능한 연기의 장을 전방위적으로 누비고 있는 김성철(그가 이끌어가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 2는 또 어떤 느낌일지). 신인이라지만 놀랄 만큼 안정감 있는 기운으로 주변 공기마저 차분하게 만드는 김동휘(그는 해맑은 얼굴로 곧 군대에 간다고, 입대 전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와 <댓글부대> 같은 영화를 남기게 되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작품 속에서도, 자연인으로서도 그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이 전달되는 홍경(‘전국 1990년대생 시네필 선발대회’ 같은 게 있다면 그를 배우 대표로 내보낸 다음 서기로 참석해 모든 발언을 기록하고 싶다). 젊은 배우로서 확실한 무기 하나씩은 갖고 있는 그들이 스크린에서 한 무리로 어울린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3월 27일 영화가 개봉하기 전 알아낸 세 사람의 강력한 교집합이 있다. 이 영화의 ‘감독님’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김성철

김성철이 착용한 재킷은 구찌, 니트 톱은 페라가모, 틴트 렌즈 안경은 젠틀 몬스터 제품, 셔츠와 타이, 귀고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성철이 착용한 코트는 질샌더, 브이넥 톱은 오프화이트, 팬츠와 슈즈는 메종 마르지엘라, 목걸이와 이어커프, 반지로 쓴 이어커프는 모두 포트레이트 리포트 제품, 모자와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작년에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 2 촬영을 마치고 얼마 전까지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공연을 했죠. 김성철이 출연한 작품 리스트를 쭉 보면 매해 밀도가 높아요.
요즘엔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어요. 저는 다작 배우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좋은 대본, 좋은 캐릭터, 좋은 사람이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예전에는 서로 다른 작품을 병행하는게 너무 힘들었는데, 작품마다 캐릭터에 대한 세팅값을 딱 정해두니까 괜찮아졌어요. 이젠 익숙합니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을 오가며 10년 쌓다 보면 절로 터득하는 기술이 있나 보죠?
다작을 하다 보니 노하우도 생기는 것 같아요. 작품을 하나만 할 때와 병행할 때 집중력이 다르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요. 그런데 공연할 때는 웬만해선 다른 작품과 겹치지 않는 게 좋아요. 공연 시기에는 루틴이 있어야 하거든요. 또 뮤지컬을 하면 노래를 많이 부르기 때문에 목소리가 꽤 달라져요. 그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서면 확실히 일상적인 목소리가 나오진 않더라고요. 작년에 어쩔 수 없이 작품 시기가 겹쳐버렸는데, 그래도 이젠 노하우가 생겨서 다행이죠.

<댓글부대>에서 온라인 여론을 조작하는 무리, 일명 ‘팀알렙’의 리더 ‘찡뻤킹’이 일상에서 볼 법한 인물이길 바라며 캐릭터를 준비했다고요.
네. 저는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아주 특이하거나 컴퓨터를 다루는 대단한 기술을 가진 게 아니라, 그저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로 설정하고 싶었어요. 감독님과 찡뻤킹에 대해 대화하면서, 감독님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 말들이 직접적으로 와닿지가 않고 혼돈이 생길 때도 있었어요. 저는 컴퓨터처럼 입력값이 정확해야 그걸 이해한 제 결과가 나오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조금 뭉뚱그리는 느낌이 있어도 현장에서 ‘한번 해보자’ 하고 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감독님을 신뢰해서였어요.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소감은요?
2015년 개봉 당시에도 신선한 작품이었지만, 만약 지금 그런 영화가 나온다면 정말 반가울 것 같아요. 요즘은 한국 영화 편수도 얼마 안 되고, 암흑기에 가까운 느낌이니까요. 실험적이면서도 보여주고자 하는 게 너무나 확고해서 매력적이었어요. <댓글 부대>를 하기로 결정한 이후에 그 영화를 봤는데, 감독님에게 더욱 신뢰가 생겼죠.

연기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는 면이 있나요?
그럼요. 연기할 때는 최종적으로 제가 편하고, 제가 낼 수 있는 색깔을 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캐릭터와 저의 공통점을 찾아요. 그러다 보면 ‘내 속에 이런 게 있구나’를 점점 알아가죠.

<빈센조>를 할 때도 공통점을 찾았나요? 송중기에게 반하는 재벌가 자제로 특별출연 한 모습, 기억합니다.
빈센조… 팬들에게 제가 큐티하고 러블리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그 이미지를 한창 부정하던 시기였거든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빈센조>를 통해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나 좀 러블리하구나.’ 네, 인정했어요.

인정할 건 결국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댓글부대>의 찡뻤킹과 김성철의 접점은 뭐였어요?
정의감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댓글부대> 시작할 즈음이 마침 뮤지컬 <데스노트>를 공연할 때였는데, 그게 정의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당시 정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의감이라는 게, 일상을 살면서 ‘정의를 구현하겠어!’ 하는 식으로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찡뻤킹이 생각하고 말하는 정의나 대의가 나에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팀알렙의 다른 두 존재를 맡은 김동휘, 홍경 배우를 김성철이 소개해준다면요?
동휘는 눈이 진짜 예뻐요. 우리 셋이 함께 있는 신을 연기할 때 동휘는 리액션이 많았거든요. 저는 남자 배우는 눈과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동휘가 리액션을 할 때마다 그 모든 게 눈으로 표현이 되니 참 좋더라고요. 경이는 정말 영화에 미친 놈입니다(웃음). ‘영친놈’의 어떤 바이브가 있다고 할까요. 그 바이브가 저한테도 계속 전달이 돼서, 저 역시 점점 더 진심이 되는 걸 느꼈어요. 두 친구와 동고동락하는 경험이 너무 즐거웠어요.

온라인에선 ‘90년대생 남자배우들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밝다’ 같은 댓글이 종종 보여요. 매체와 무대를 오가는 입장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동휘, 경이와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에 대해 얘기 나눈 적이 있거든요. 그 시기가 부러워요. ‘우리한테도 그런 시기가 올 수 있을까?’ 싶고. 모르겠어요, 지금은 배우보다 작품이 우선인 것 같거든요. 무슨 말이냐면 과거에는 ‘와, 최민식 선배가 나왔어’, ‘송강호 선배 영화 봐야 해’ 식이었다면, 이젠 저부터도 ‘누가 나온대’보다는 ‘그 작품 재밌대’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이제 배우들이 한 팀이 된 것 같아요. 작품이라는 팀 안의 배우로서요. 그러니 ‘우리 다 같이 잘 만들어서 이 작품이 잘됐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저 좋은 감독과 좋은 시나리오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배우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강력한 아우라가 생기고 동경할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것 같군요. 이정재, 정우성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영화적이었던 시대가 있긴 했으니까요.
제가 네다섯 살 때 <모래시계>에 나오는 이정재 선배를 보면서 ‘멋있다’고 했대요. 드라마 시청률이 40%대를 찍던 때죠. 시청자들이 방송 날을 기다리면서 배우에게도, 작품에 대해서도 신비감을 가졌던 옛날 이야기. 이제는 이야기할 것도, 볼 것도 너무 많아요. <환승연애>에 나오는 서사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요(웃음). 과거만 한 임팩트가 있는 인물이 나올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 뿐입니다.

하지만 연기하는 일이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단하죠. 카메라가 돌면 바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고, 크로마키 배경 앞에서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것도 번듯하게 해내야 하잖아요. 배우들이 가진 가장 큰 재능은 뭘까요?
사실 연기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거든요. 어릴 때는 우리 다 역할 놀이 같은 거 자주 하며 놀았잖아요. 자라면서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억압이 생기고 놀이와 멀어지는 걸 텐데, 연기를 직업으로 삼게 된 사람들은 상상하고 표현하고 그걸 진짜 믿는 정도가 남다른 게 아닐까 해요. 〈몬테크리스토>나 <지옥> 시즌 2의 경우 보통의 인간사회를 초월하는 성격이 있어요. 제가 살면서 절대 경험하지 못할 일이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상상을 아주 많이 했어요. 배우의 재능이란 눈에 있을 수도, 목소리에 있을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재능이라면 상상력일 거예요.

김동휘

김동휘가 착용한 엠브로이더리 재킷은 카사블랑카 by 지스트리트 494. 안에 입은 티셔츠는 이알엘 by 지스트리트 494 제품.
김동휘가 착용한 오버사이즈 슈트 셋업은 아더에러, 안에 입은 티셔츠는 루단, 하이톱 스니커즈는 릭 오웬스 제품.

<댓글부대>를 준비하면서 아마추어 작가들이 모이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했다고 들었어요. 도움이 좀 되던가요?
팀알렙의 ‘찻탓캇’은 영화에서 제보자 성격이 강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작가거든요. 카페에 고민 상담 게시판이 있어요. 글쓰기에 대한 것부터 일상적인 고민까지, 다양한 글이 올라와요. 작가로만 살기엔 기약이 없으니 현실적인 타협을 할지 고민하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찻탓캇이 이런 과정을 겪는 걸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손석구 배우와 안국진 감독의 집에서 합숙했다니, 얼마나 진지한 합숙이었나요?
며칠을 연달아 머물고 그런 건 아니에요. 배우들끼리 감독님을 만나면 한 12시간 정도 같이 있는데, 저는 그냥 감독님 집에서 자기도 하고 그런 거죠. 찻탓캇은 캐릭터 자체에 워낙 변수가 많고, 처음엔 순수하게 아마추어 작가였다가 여론 조작 일에 빠져들면서 다른 면들이 나와줘야 했어요. 감독님이 ‘좀 어려운 캐릭터니까 우리가 대화를 많이 하면 좋겠다’라고 먼저 말해주셨을 때 좋았어요. 어떤 작품을 하든 감독님, 배우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은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찻탓캇은 석구 형이 연기한 임상진 기자에게 댓글부대의 존재를 알리는 제보자예요. 팀알렙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꺼내는 입장이니까 그 대목에서 찻탓캇이 얼마나 흥미롭게 말해가느냐에 따라 관객의 몰입도가 달라질 거란 말이죠. 어쨌든 범죄를 저지른 건데, 그러면서도 ‘우리가 이만큼의 일을 해냈다’ 하는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고민을 같이 했어요. 시나리오 수정을 많이 했죠. 애초 상태와 아예 다르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런 식으로 배우가 참여해서 수정해갔다면 연기할 때 대사가 말 그대로 입에 착 붙겠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작업을 한 번은 해보길 바랐는데 진짜 해보는구나.’ 연극에서는 배우들끼리 희곡이나 대본을 가지고 사전에 테이블 작업이라는 걸 하거든요. 그때 수정을 많이 거쳐요. 영화 시나리오를 가지고 그러기는 쉽지 않을 텐데, 감독님이 유연하게 의견을 나누셔서 단순히 대사 수정이 아니라 이야기 수정을 한 거죠.

감독에게 질문도 많이 하는 배우인가요?
네(웃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개봉 때 보고서 ‘이 감독님 특이하다’ 했어요. 영화를 보면 감독의 거의 모든 성향이 보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집약체니까. 당시 저는 배우 지망생이었어요. <댓글부대>로 감독님과 첫 미팅을 앞두고 있을 때 ‘안국진’ 이름을 보고서 ‘어?’ 하면서 그 영화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다시 보면서는 영화를 초, 분 단위로 뜯어보고 싶더라고요. 이 장면에서는 왜 이런 샷을 쓰셨을까, 왜 이런 연출을 하셨을까, 시나리오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댓글부대> 때문에 만난 자리에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얘기만 1시간 정도 했습니다(웃음).

최민식 배우와 출연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로 2022년 청룡영화상을 비롯해 신인남우상 트로피 여러 개를 받으셨죠. 어릴 적 친구들 중에 김동휘를 알아보는 친구가 있었나요?
두 달 전에 초등학교 동창 몇 명을 만났거든요. 다들 너무 놀랐대요. 넷플릭스를 보면서 ‘쟤 어디서 많이 본 앤데?’ 하다가 ‘아!’ 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제가 워낙 내성적이고 조용한 애였어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영화에 단정한 인상이 있어요. 그런 작품을 볼 때면 분위기가 대체로 편안해서 배우도 비교적 편한 상태로 임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죠. 실제로는 어떤가요?
배우가 편안할 일은 없어요. 저는 배우가 편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단편영화를 하든 어떤 작업을 하든, 배우가 편안한 순간 관객이 불편해진다고 봐요. 연기하는 사람이 불편하고 좀 고통스러워야 보는 사람이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워딩만 놓고 보면 <1박 2일> 피디가 상당히 반길 마인드인데요?
배우가 별 고민 없이 ‘그냥 이 정도로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면, 그게 관객의 눈에 다 보일 거라는 뜻이에요. 물론 그럴 때 관객은 ‘저 배우 고민 없이 촬영했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작품이 재미없다고 느끼겠죠. 저는 재미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거든요. 도대체 영화 혹은 드라마가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각자의 재미가 다르겠지만, 결국에는 보는 이가 몰입하게 만드는 것,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재미의 기초가 아닐까 해요. 저는 어떤 숲속에 있는 나무의 하나로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이런 나무도 있구나’, ‘어떤 나무일까’ 궁금해지게 만들어야겠죠. 그러려면 배우들이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는 참한 고등학생 얼굴이었다가, 웨이브 오리지널 <거래>나 박진영이 1인 2역으로 출연한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는 거친 느낌을 보여주기도 했죠.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좀 봤나요?
연기를 하면서 제 새로운 모습을 많이 찾았어요. 안국진 감독님한테 저를 왜 캐스팅했냐고 여쭤본 적이 있거든요. 저는 늘 감독님들에게 그걸 여쭤봐요. 안 감독님은 ‘네 눈 보고 캐스팅했어’ 하더라고요. 그래선지 <댓글부대>에 찻탓캇의 눈만 클로즈업하거나 눈을 강조하는 신들이 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저한테 ‘넌 너무 착하다, 착한 느낌을 좀 빼도 된다’ 같은 말을 자주 했어요. 뺀다고 뺀 건데(웃음).

함께 작업한 김성철, 홍경에게선 어떤 발견을 했나요?
성철이 형은 만능 엔터테이너 느낌이죠. 공연도 하고, 매체도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연기와 영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까 궁금했는데, 뭐랄까, AI 같아요. 좋은 의미로요. 감독님이 이렇게 저렇게 입력하면 뭐가 확확 나와요. 자기 가치관이 있으면서 감독님의 디렉션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연기의 AI. 경이와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콘크리트 마켓>이라는 작품으로 만난 적이 있어요. 경이는 항상 침착해요. 외유내강 스타일. 조심스러워하는 면이 있고, 한 발짝 물러서서 보는 습성이 있어요. 연기에 대한 열망도 커 보이고요. 사생활에 대해 알 만큼 가깝지는 않아요. 현장에서도 많은 이야길 나누진 않았는데, 대신 어떤 이야기를 한번 시작하면 우린 꽤 잘 통해요.

좋아하는 작품 취향은 어떤가요?
저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요. 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근본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이성 간의 사랑, 동성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다 거기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사랑이 있으니까 갈등도 있고. 갈등이 있으니까 해결하려고 하고. 사랑에서부터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홍경

홍경이 착용한 더블브레스트 재킷은 구찌 제품, 셔츠와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홍경이 착용한 오버사이즈 재킷과 크롭트 터틀넥 티셔츠, 와이드 팬츠, 뾰족한 슈즈는 모두 발렌시아가 제품.

홍경은 <댓글부대>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요?
작품을 고를 때면 늘 기준이 있어요. 역할의 비중 같은 것과 상관없이 이 스크립트가 얼마나 내 심장을 치는가. 얼마나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로 인해 조금은 두려운 생각마저 들면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감정이 피어오르게 만드는가. 그게 저에겐 중요해요. 그리고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역시 중요하죠. 작품을 앞두고 고민하는 과정이 좀 있었지만, 택한 이유는 단순해요. 감독님과 여러 차례 만났는데, 이상하게 서로 촉수가 딱 맞는 느낌이 들었어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감상이 궁금하네요. 저는 오늘 하루 동안에만 홍경의 영화 사랑에 대한 증언을 여러 차례 들었어요.
제가 꼽는, 지극히 주관적인 영화 리스트가 있거든요. 기억에 남는 영화들요. 그중 하나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예요. 우선 감독님이 가진 미학이 정말 좋았어요. 제가 말하는 미학은 단순히 외적으로 세련되게 만든다는 게 아니에요. 편집이든 의상이든 뭐가 되었든, 그 모든 걸 포함해 영화적 감각이 온갖 종류에서 묻어나야 한다는 포괄적인 미학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훌륭하게 다가왔어요. 저, 길게 말해도 되나요?

그럼요. 배우 입장에서 감독에게 궁금한 게 많았겠네요.
맞아요. 저는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 좋아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미학적인 면은 제쳐두고 내러티브만 보더라도 아주 요상하고 기괴한데,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유머가 피어나는 것들이 녹아있죠. 그러니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만나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길 많이 나눈 기억이 나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 예를 들면요?
음. 제가 영화를 보면서 좋은 순간은, 일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일깨워줄 때거든요. 그게 영화가 가지는 힘 같아요. 금기시되는 것들이 영화 속에서 구현될 때도 그렇고요. 좋아하는 영화 중에서 예를 들어 말하자면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도 불편하고 기괴하면서 좋은 영화였어요. 클로드 샤브롤의 <질투>에도 제가 말하는 불편함의 요소가 있고요. 불편하다는 게 저에게는 아주 긍정적인 거죠.

제작보고회에서 감독은 홍경을 두고 ‘집요함이 있다’고 표현하더군요.
집요한 거 되게 좋아합니다(웃음). 일하는 현장이 너무 좋아요. 그 많은 사람과 함께 하나를 맹목적으로 좇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요. 감독님들을 보면… 마술사 같아요. <약한영웅 Class 1>의 유수민 감독님, 짧게 겪었지만 의 한준희 감독님, 아직 공개되지 않은 <콘크리트 마켓>의 홍기원 감독님, 올해 개봉할 <청 설>의 조선호 감독님 모두 그랬어요. 감독님들이 자기 취향을 꺼내 보일 때마다 제가 따라가서 춤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망설이지 않고 춤추려면, 사전에 대화와 신뢰를 충분히 쌓아둬야 하겠죠? 배우 개인의 준비도 그렇고.
네, 적어도 저는 그래요. 작품을 이끌면서 서사가 분명한 역할이라면, 그 인물의 행동이 왜 그런지 설명되는 신들이 있죠. 하지만 서포트하는 위치에 있을 때는 그런 게 없이 ‘이렇게 가주세요’라는 주문을 받아도 내가 훌쩍 갈 수 있어야 해요. <댓글부대>를 하면서 감독님이 ‘여기로 뛰어봐, 저기로 뛰어봐’ 할 때마다 뛰어보는 식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재밌었어요.

<댓글부대>의 ‘팹택’이 이런 말을 하죠. “최대한 어그로 끌어.” 팹택이라는 인물뿐 아니라 팀알렙을, 키보드 워리어들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대사 같기도 해요.
저는 어떻게 보면 팹택 캐릭터가 20대의 한 면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가 결여되어서, 그걸 관계에서 찾기도 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아이처럼 보였어요.

작업하면서 보고 느낀 김성철, 김동휘에 대해서 홍경이 소개해준다면요?
음. 개인적인 면은 잘 알지 못해서 조심스럽기도 하네요. 일적으로 느낀 면모라면… 우선 김동휘 배우는 굉장히 착한 친구 같아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깊어요. 김성철 배우의 뮤지컬을 보면서는 ‘노래를 하면 저렇게 다른 매력이 나오는구나’ 알았어요. 저도 20대가 가기 전에 연극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고, 워낙 무대를 존중하거든요. 김성철 배우는 여러 경험치 때문인지 몰라도 현장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게 확실했어요. 그리고 두배우 모두 준비를 철두철미하게 해서 옵니다.

여러 인터뷰를 보면, 깊이 또 많이 생각하고 사려 깊은 홍경의 인간됨을 느낄 수가 있어요. 혹시 생각이 너무 많다는 생각도 해봤나요? 배우가 그냥 동물적으로 구는 게 필요할 때도 있는데, 복잡해질 수 있잖아요.
동물적이고 본능적일 수 있으려면 엄청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별 생각이나 준비 없이 뛰어든다고 해서 내 안의 재능이 본능적으로 튀어 나온다? 그런 게 있을까요. 제 기준으로 동물적이라고 느끼는 배우는 몇 없어요. 드니 라방처럼 다음 행동이 정말이지 예측되지 않는, 그 정도는 되어야 동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이 많은 단계는 현장에 들어서기 전까지예요. 생각을 할 때는 ‘어느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은 틀리다’ 같은 자세를 안 취하려고 특히 요즘 신경 써요. 이런 영화가 있으면 저런 영화도 있고, 이런 방식이 있으면 저런 방식도 있는 것처럼. 그런데 내 주관이 있으면 그와 다른 사람은 틀려 보이곤 하잖아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 화두나 자주 던지게 되는 질문이 있는지 묻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가 답변이 되겠어요. 그래도 한번 질문해주세요(웃음). 최근 특히 자주 하는 생각이나 화두가 있나요?
음. 어떻게 의미있는 작품과 내 20대의 초상을 더 남겨볼 수 있을까 하는 거요. 휘발되지 않고 남을 것들. 20대를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것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정말, 정말 큰 화두입니다.

드라마 <악귀>가 가장 최근 출연작이지만, <약한영웅 Class 1>에서 봤던 범석이 지금 먼저 떠오르네요. 악하지 않은 얼굴인데 속에 억압되고 뒤틀린 게 있는, 안쓰럽기도 한 아이였어요. 아, 영화 <결백>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 연기상을 수상할 때 허둥지둥대던 그 정직한 얼굴도 휘발되지 않고 남을 거예요(웃음).
저는 우리 세대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꼭 제 또래가 아니더라도 지금 좋은 작업을 해가는 그 모든 사람들 말이에요. 그들과 함께 많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지금 출발선에서 같이 손잡고 뛰는 느낌이 들거든요. 2000년대 초반의 영화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세대가 더 새롭고, 도전적이고, 기발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해요.

포토그래퍼
이준경
프리랜스 패션 에디터
이종현
스타일리스트
박선용(김성철), 이종현(김동휘), 박태일(홍경)
헤어
박규빈
메이크업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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