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친자’라면 당연히 볼 것
더 킹: 헨리 5세
<듄>과 <듄: 파트2>를 하나로 꿰는 이야기는 폴이 진정한 리더로 각성하는 성장 서사입니다. 파트2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그의 스피치 장면이 결정적이죠. 폴은 포효하듯 외치며 결전을 앞둔 반란군의 기세를 달아오르게 만드는데요. 그의 위엄과 품위가 화면 밖으로도 마구 뿜어져 나옵니다. 순간 클로즈업된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 위로 2019년작 <더 킹: 헨리 5세>의 어떤 장면이 겹쳐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왕실 밖에서 흥청망청 지내던 중 갑작스럽게 잉글랜드의 왕좌를 물려받은 젊은 왕. 티모시 샬라메가 그 헨리 5세 역을 맡아 열연을 넘어 괄목할 만한 명장면을 여럿 남겼습니다. 그중 백미는 헨리 5세가 프랑스군과의 격전을 앞두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너희는 잉글랜드다! 너희 하나하나가 잉글랜드고 잉글랜드가 너희다!”라고 1분 남짓 연설하는 장면. 이때도 남달랐던 티모시 샬라메의 외침은 어떤 다짐이자 선언처럼 들립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듄: 파트2>의 미덕 중 하나는 압도적인 시각적 이미지의 향연입니다. 사막으로 뒤덮인 아라키스의 풍광은 광활함을 넘어 매끈하게 아름답고, 수직적 스케일이 강조된 외계 건축물은 고대 신전처럼 장엄하며, 그 안에 정교하게 배치된 인물들의 움직임에는 시종일관 기품이 흐릅니다. 쏟아지는 <듄: 파트2> 리뷰들에 ‘반드시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는 코멘트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죠. 2017년작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각적 스펙터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듄> 시리즈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이 1982년에 나온 SF 걸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이 또한 SF 영화 계보에서 수작으로 손꼽힙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구현한 특유의 미학적 성취가 <듄: 파트2>로 인해 재언급되고 있는데요. 규모의 무게감과 깊이, 고독함과 웅장함이 공기처럼 담겨 있는 비주얼이 잊히지 않을 시각적 감흥을 선사합니다.
폭풍 속으로
<듄: 파트2>에서 경이로운 장면 중 하나. 황량한 사막의 우버 같은 교통수단이자 거대한 모래벌레 샤이 훌루드를 주인공 폴이 처음으로 타는 걸 입을 벌리고 구경하게 됩니다. 상하좌우 화면을 가득 채운 모래벌레의 크기도 압도적인데, 그 위에 매달린 폴이 단단하게 발을 딛고 일어나 꼿꼿이 선 자태가 장엄하고 위풍당당합니다.
1992년작 <폭풍 속으로>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 조니는 서퍼 무리들과 밤바다로 나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처음으로 파도와 하나가 됩니다. 아름답게 부서지는 파도 위를 가로지르는 실루엣은 딴말 필요 없이 그림 같습니다. “파도타기는 자신을 잃고 다시 찾는 곳”이라는 영화 속 대사는 모래벌레를 타야 전사로 인정을 받는 폴에게 필요한 조언이기도 하죠. <폭풍 속으로>는 은행을 터는 서퍼 조직에 잠입한 FBI 요원의 액션과 우정을 그린 액션 스릴러. 티모시 샬라메의 비주얼 못지 않은 키아누 리브스의 눈부신 리즈 시절에 끊임없이 감탄하게 됩니다.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
<듄: 파트2>는 여러 영화들을 소환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거대 세력에 투쟁하는 영웅과 반란군이라는 측면에서 <스타워즈> 시리즈를, 이방인이 낯선 종족의 일원이 되어 융화하는 이야기는 <아바타> 시리즈, 이 두 작품을 적절히 버무린 뒤 배경에 사막을 깔면 고전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퍼즐처럼 맞춰집니다. 구원자의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에서 떠오르는 SF 작품도 있죠. 바로 <매트릭스> 시리즈. 또 빌런 페이드 로타가 콜로세움 같은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를 벌이는 장면은 “내 이름은 막시무스”라는 대사로 회자되는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오버랩됩니다.
영화적 성취나 명성은 조금 뒤떨어지지만 앞서 나열한 <듄: 파트2>와의 교집합들을 모두 공유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1912년 출간되어 수많은 SF 작품의 초석이 된 소설을 영화화한 2012년작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입니다. 우연히 공간 이동을 하게 된 지구인 존 카터가 외계 종족 간의 전쟁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렸는데요. 사막 같은 행성의 반란군,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방인, 원형 경기장 격투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디즈니의 최대 실패작 중 하나로 언급되지만 볼거리를 있는 대로 뽑아내 킬링 타임용으로 손색없습니다. 조금 억지를 쓰면, 가벼운 버전의 <듄: 파트2>.
- 사진
- 넷플릭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소니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