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어린 믹스 매치, 24 FW 발렌시아가 컬렉션

명수진

BALENCIAGA 2024 F/W 컬렉션

이베이(eBay) 영수증이 담긴 인비테이션을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발렌시아가. 각 소포에는 도자기 조각, 레이스 냅킨, 키링, 잡지, CD, 스카프, 은쟁반 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즈바살리아가 이베이에서 직접 고른 800여 가지의 빈티지 소품을 함께 담아 화제가 됐다. 2015년에 발렌시아가로 와서 올해로 딱 10년 차인 뎀나 즈바살리아의 깜짝 선물이었을까? 인비테이션에 동봉된 편지에는 ‘사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한 상상’라고 쓰여 있었다.

컬렉션은 파리 앵발리드 돔(Dome des Invalides)에서 열렸다. 런웨이 사방의 스크린을 통해 해변, 파리, 설산까지 AI가 생성한 다양한 풍경을 틀었고, 뎀나 즈바살리아의 파트너인 BFRND가 믹스한 신시사이저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왔다. 습득한 지식을 조합하여 방출하는 AI처럼 뎀나 즈바살리아는 빈티지와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충실히 수집하고 이를 믹서기에 갈아버렸다! 패션계에서 흔히 얘기하는 해체와 재조합의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즌을 구상한 것. 구제품 가게에서 건진 티셔츠, 아버지의 낡은 슈트, 밑단이 다 뜯어진 페이크 퍼 코트를 마치 고가의 제품처럼 입고 으스대는 것처럼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 오래된 드레스는 그나마도 보관을 잘못한 것처럼 천끼리 쩍쩍 붙은 것처럼 보였고, 재킷은 두 개를 이어 붙인 뒤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았으며, 낡은 백팩은 리폼해서 기발하게도 원피스처럼 만들어 입었다. 청바지를 뒤집어서 상의처럼 입은 것도 흥미로웠다. 구제품을 뒤죽박죽 조합한 스타일 곳곳에는 아이러니하게 새 옷처럼 발렌시아가 태그를 부착했다. 뎀나는 이에 대해 ‘나는 실제로 종종 태그를 떼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옷에 태그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내 스타일 중 하나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구제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고가 뒤섞인 것도 흥미로웠다. 이베이 로고는 티셔츠, 후드집업, 스웨터에 새겨졌다. 오클리 로고를 비롯해 티셔츠에서 흔히 보던 ‘킵 캄(Keep Calm…)’ 슬로건이나 ‘플래닛 할리우드’ 로고를 패러디해서 비니나 티셔츠 등에 새겼다. 피날레를 장식한 드레스는 수백 개의 브래지어를 그야말로 덕지덕지 붙여서 완성한 것이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인 레이어링과 오버 사이징, 눈을 속이는 트롱푀이유 기법을 활용한 패션은 누군가에는 우스꽝스러운 누더기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세속적인 패션계에 던지는 멋진 조크라고 생각할 것이다. 분명한 건 한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점이다. ‘패션은 급진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기입니다. 그저 사람들을 속여 지갑을 사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죠’. 뎀나는 자신의 철학대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런웨이에 풀어냈고 이는 다시 한번 사람들을 솔깃하게 만들었다. 발렌시아가는 컬렉션을 마친 뒤 이베이 로고가 새겨진 오버사이즈 티셔츠와 선글라스 용도인 폴리우레탄 24/7 마스크(24/7 Mask)를 프리오더 했는데, 마스크는 425만 원이라는 고가에도 모든 컬러가 품절됐다. 새롭게 선보인 오버사이즈의 로데오(Rodeo) 백은 벌써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버킨’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인기다.

영상
Courtesy of Balenci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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