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니 시크한 할머니, 24 FW JW 앤더슨 컬렉션

명수진

JW ANDERSON 2024 F/W 컬렉션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나단 앤더슨은 런던 패션위크의 신인 디자이너 인큐베이터 시스템인 패션 이스트(Fashion East)가 발굴했다. 2010년대 패션 이스트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조나단 앤더슨이 런던 패션위크 40주년을 맞이해서 자신의 레이블 JW 앤더슨을 들고 런던으로 컴백했다. 장소는 런던의 세이모어 레저 센터(Seymour Leisure Center).

매 시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조나단 앤더슨은 이번 시즌, ‘확대’의 기법을 사용했다. 약 1만 배 정도는 확대한 것 같은 슈퍼 라지 사이즈 털실로 짠 벌키한 니트 드레스, 거대 헤링본 프린트의 원피스, XXL 사이즈의 그레이 체크 울 코트가 여전히 유효한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켰다. JW 앤더슨은 쇼노트를 통해 ‘왜곡을 통한 그로테스크한 일상’이라고 정의했다. 태슬, 리본, 프린지, 꽃 등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은 베이식한 스타일에 위트를 더했다. 조나단 앤더슨에게 영감의 준 건 BBC에서 1973년부터 2010년까지 방영한 시트콤 <라스트 오브 더 서머 와인(Last of the Summer Wine)>. 요크셔 마을에 사는 세 명의 은퇴자들의 익살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북부 노동계급 문화의 단면을 풍자한 영국의 레전드 코메디 시리즈로, 조나단 앤더슨이 딱 꽂힌 것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옛날에 입었을 것 같은 속옷과 낡은 코트 따위다. 이른바 그랜드마코어(Grandmacore). 트렌치코트는 리폼한 것처럼 재킷이나 톱, 버뮤다팬츠 등으로 변형해서 선보였고, 시크한 바이커 재킷은 세월과 함께 아래로 쭉 쳐졌다. 모든 룩에는 어글리한 양가죽 앵클부츠를 매치했다. 매트한 빨간 립스틱과 함께 ‘할머니 코스프레’에 일조한 회색 곱슬머리 형태의 ‘모자’는 헤어 스타일리스트 앤서니 터너(Anthony Turner)가 조나단 앤더슨과 함께 작업했다. 몰딩으로 찍어낸 것 같은 드레스의 펠트 패브릭이나 시어한 드레스에 장식한 테슬 디테일 등은 인테리어 용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이는 지난 1월 밀라노에서 영화 <아이즈 와이드 샷(Eyes Wide Shut)>을 테마로 선보인 맨즈 웨어 컬렉션과 일맥상통한다.

조나단 앤더슨은 ‘요즘 세대들이 노스탤지어를 추구하고 있다’며, ‘어느 날 갑자기 50년대 음악이 차트 1위를 할 수 있고, 어떤 시대의 멋지지 않은 것이 툭 튀어나와 재조명 받고 유행할 수도 있다’라고 얘기했다. 기괴한 것과 매혹적인 것 사이를 천연덕스럽게 넘나들며 무엇이 유행이 될지 감지하는 촉수는 아마도 조나단 앤더슨을 능가할 자가 없을 것이다.

영상
Courtesy of JW A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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