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 후지와라와 나눈 짧은 대화

전여울

1월의 어느 하루, 히로시 후지와라가 뉴진스 하니를 포착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분주했던 촬영을 마친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이 하루의 특별함에 대해 말했다.

어제 하네다 공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늦은 밤 연락 받고 놀랐습니다.
때아닌 폭설로 비행기가 계속해서 연착됐어요. 김포에 내려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3시더군요. 오늘 촬영을 6시간 앞둔 시간이었죠.

참, 어제 당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카레 사진은 잘 봤습니다.
하하, 늘 비행기 타기 전엔 ANA 라운지에서 카레를 먹어요. 아는 사람들은 그 사진만 봐도 알죠. ‘히로시, 해외 나가는구나’ 하고.

또 며칠 전엔 반가운 포스팅이 올라오기도 했어요. 뉴진스의 ‘Ditto’와 미니 리퍼튼의 ‘Lovin’ You’를 직접 믹스한 영상이었는데, 오늘 이뤄질 촬영에 대한 근사한 예고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2022년 ‘Ditto’가 발매되자마자 만든 거예요. ‘Ditto’는 지금 유행하는 최신 음악 트렌드가 녹아든 트랙인 셈인데 여기에 1975년 발매한 ‘Lovin’ You’를 얹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짬 나면 종종 이렇게 믹스하면서 놀아요. 예전엔 BTS나 블랙핑크 음악으로 해보기도 했고요.

오늘 촬영은 어땠나요? 꽤나 아날로그식의 음악 녹음실에서 촬영했는데 기타며 피아노, 드럼, 앰프가 마치 관객처럼 곳곳에 놓여 있어서 개인적으론 연극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사실 이번 촬영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잖아요. 깨끗하게 정돈되지 않고 여기저기 어지럽힌 느낌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딱 맞는 곳을 발견했죠. 정확히 이런 무드의 공간에서 있는 그대로의 하니를 포착해 보고 싶었거든요.

스튜디오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저에게 익숙한 공간이니까요. 평소 자주 가니까 대충 어떤 분위기일지 예상이 가죠. 피아노가 있거나 녹음 부스가 있거나 하는 식으로 상상이 되거든요.

오늘 스태프만 50명 가까이 되는 촬영이었어요. 그 속에서 당신이 일하고 움직이는 방식이 좀 인상적이었어요. 엄청난 침착함을 유지하며 촬영을 주도했는데, 상상했던 모습과는 좀 달랐어요.
평상시 일할 땐 이것보다 사람 수가 적긴 한데요. 최대한 릴랙스하면서 일하긴 해요. 저 꽤나 차분한 사람이거든요(웃음).

하하, 사실 촬영 전까지의 소통 과정도 인상적이었어요. 밤낮없이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피드백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졌거든요.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의 구분이 없는 편인가요?
네. 전혀 구별하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언제나 바쁘다고 느껴지지도, 그렇지 않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것 같아요.

그럼 언제 휴식을 취하고 어디서 충전을 얻곤 하나요?
글쎄요, 저는 일을 할 때도 늘 논다는 기분이 들어서…. 늘 휴식하고 있는 감각이라 딱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굳이 충전이라고 하면, 오랜 친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나눈 대화에서 충전되곤 한달까요. 전 따로 작업실도 없어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스타벅스죠(웃음). 대부분은 노트북으로 작업이 가능하니까 음악도 디자인 업무도 전부 카페에서 작업해요. 아니면 이동하는 비행기 안이나.

오늘처럼 패션 매거진과 협업한 적이 있나요?
이런 식으로 제가 포토그래퍼로서 협업한 경우는 처음이죠.

이번 협업에 흔쾌히 응한 이유가 있나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기대하고 있었어요.

뉴진스 하니를 피사체로 한 촬영이었어요. 평소 뉴진스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요?
2022년 뉴진스가 EP 앨범 <New Jeans>로 데뷔했을 때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이들이 머지않아 음악계를 장악하리라고 생각했어요. 뉴진스의 음악은 1980~90년대 사랑받은 음악을 떠올리게 했는데, 확실히 기존의 K팝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운드였죠. 처음엔 다섯 멤버의 얼굴조차 모른 채로 음악만 들었는데 이후 뮤직비디오를 보고선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었다니’ 새삼 놀랐고요. 뮤지션의 예쁘장한 얼굴을 부각시키는 일반적인 재킷 앨범과는 달리 귀여운 토끼 캐릭터를 내세우는 식으로, 프로모션도 사뭇 다른 궤도로 움직이려는 접근법 또한 남달랐고요.

기존 K팝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요?
일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죠. K팝 뮤지션들을 보면 굉장한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져요. 뭐랄까, 이미 완성되어 있달까요. 그런 면에서 뉴진스가 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좋은 느낌으로 ‘러프’함이 있었고 프리스타일적이었거든요.

어렴풋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오늘 직접 하니를 대면한 셈이잖아요. 그녀에게서 어떤 면모를 발견한 하루였나요?
좀 놀랐어요.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굉장히 성숙했거든요.

그랬나요? 촬영 내내 둘 사이 거의 말이 없어서인지, 무언으로 교감하고 있다는 인상이었거든요.
아, 그러긴 했죠. 사실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을 걸면서 포즈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단지 연출된 사진일 뿐이잖아요. 그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좋아해요. 이번 촬영에서도 내내 그런 찬스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평소 당신의 스냅 사진에서도 그런 지점이 엿보여요. 일상에서 쉽사리 지나칠 법한 장면을 포착하곤 하는데, 당신이 카메라를 쥐는 순간들 사이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오리지낼리티, 그러니까 무언가의 맨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을 좋아해요.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평소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동작을 취하는 때라든가, 그렇지 않고 사물이 대상일 땐 보통 때라면 유심히 들여다볼 일 없는 뒷모습이라든가. 그런 순간들이 예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죠.

오늘 촬영이 끝난 후 비록 잠시지만 서울에 머물죠. 그 시간엔 어떤 장면을 카메라로 남기고 싶나요?
오늘 거의 1년 치를 찍어서 괜찮아요(웃음).

하하, 평소 라이카 카메라만 사용하죠?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 콤팩트 카메라는 소니 것도 사용했어요. 그런데 라이카에서 M 시리즈를 디지털판으로 출시한 후부터는 라이카만 사용하고 있죠. 물론 디지털로 전환되기 전부터 썼고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서 아날로그스럽게 찍는 것도 좋아하고, 아날로그스러운 걸 디지털로 푸는 것도 좋아해요. 정반대 성질을 모두 시도할 수 있어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어요. ‘나는 스스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히로시 후지와라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 앞에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 답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너와 같아. 그저 매일 노는 사람이야.’

일과 숨의 구분이 없다면, 으레 쉽게 지치거나 슬럼프가 찾아오지 않나요?
과거엔 그럴 때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나저나, 당신도 일이 재미있지 않나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에이, 그러지 마세요.

여태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할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재미’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죠. 물론 협업에는 많은 난관이 따라요. 무엇보다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고요. 또 나이키와 일하면 아디다스와는 함께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고요(웃음). 그리고 언제나 저는 ‘사람’과 협업하고 싶은 것 같아요. 회사보다는. 물론 그 회사에 재미있는 사람이 직원으로 있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요.

무엇에서 ‘재미’를 느끼나요?
서프라이즈가 있는 것. 늘 의외의 조합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놀라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년 가을엔 대학교 ‘프라그먼트 유니버시티’를 설립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바라며 대학을 설립했을까요?
그것뿐만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잡지에 20년 가까이 칼럼을 연재해 왔는데요. 그걸 모아 단행본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보다는 대학교를 설립해 거기서 강의를 하고 그를 모아 책을 내는 아이디어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프라그먼트 유니버시티’를 설립했는데 응시자만 700명 가까이 되었던 것 같아요. 재학생은 50~60명 정도인데 17세부터 50세까지 연령도, 직업도 다양하죠. 재미있어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언가에 대해 본인이 그 이상 배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요즘 참 재미있어요.

‘프라그먼트 유니버시티’에서 강조하는 것은 ‘비언어적 마케팅’이죠. 비언어적 마케팅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평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아요. 지금까지 여러 아이템을 소개하면서도 어떤 설명도 없이 그저 ‘난 이걸 좋아해’라는 식이었어요. 그러니까 ‘비언어적’ 방식인 셈이죠. 그런데 오히려 이번 방식이 사람들의 궁금증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아요. 요즘은 취향을 강요받는 시대잖아요. ‘이게 좋다’고 소비자가 자기 취향을 드러내면 알고리즘이 멋대로 이것저것을 소비자에게 제안해요. 예를 들어 이 바지에는 이 신발이 어울린다는 식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취향을 강요받는 경우가 흔하다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 ‘참견하지 않는’ 마케팅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게 곧 ‘프라그먼트 유니버시티’에서 말하는 ‘비언어적 마케팅’이라 할 수 있죠.

당신을 열렬히 지지하는 팬덤과 소비자의 캐릭터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물론 있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스니커즈나 옷만을 제시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건 그런 것들뿐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도 일부러 그들의 기대에서 한참 벗어나 있을 법한 것들을 올리곤 해요.

일전에 올린 카레 사진도 그런 것 중 하나였나요?
하하, 그런 셈이죠. 그리고 그것도 일종의 비언어적 마케팅이죠(웃음).

하하. 당신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제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인정받게 된 것. 처음 막 일을 시작했던 30~40년 전엔 한 사람이 하나의 카테고리만을 가지는 걸 이상적이라 바라봤어요. 저는 디제이를 하면서 패션 일도 했는데, 패션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겐 ‘디제이 주제에 옷을 한다’는 말을 들었고 디제이 씬에선 ‘패션 디자이너가 디제이 흉내를 낸다’는 소리를 들었죠. 그런데 지금은 뭘 해도 되는 시대잖아요. 한 사람이 여러 카테고리에 속할 때 더 인정받는 시대죠. 이 점에서 많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과 패션 중 당신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요?
둘 다요. 무엇이 더 좋거나 무엇에 더 친밀감을 느낀다거나 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태어난 1960~7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음악과 패션이 한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힙합을 좋아하면서 펑크 록 차림으로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잖아요. 저의 세대에선 결코 통용되지 못하는 일이었죠. 요즘 시대는 패션과 음악이 그렇게까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당신을 둘러싼 가장 큰 오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글쎄요, 어릴 땐 사람들이 보는 ‘나’와 실제 제가 생각하는 ‘나’ 사이에 큰 갭이 존재했어요. 늘 그게 싫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차이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요즘 시대엔 SNS가 큰 파급력을 가지고 늘 그곳에서 이상한 소문이 생산되잖아요. 요즘엔 저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면 그저 ‘재미있군’ 하고 넘기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당신이 고수하는 크고 작은 규칙은 무엇인가요?
불가능한 것은 빠르게 거절하는 것. 제대로 ‘No’라고 말하는 것.

포토그래퍼
송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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