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 후지와라가 포착한 뉴진스 하니

김신, 전여울

히로시 후지와라의 시선 끝에 담긴 완전히 새로운 얼굴, 표정, 언어의 하니

<더블유>는 뉴진스 하니의 오늘을 포착하는 작업에 특별한 게스트를 초대했다. 프로듀서, 뮤지션, 디자이너, 크리레이티브 디렉터 등의 수식으로 불리지만, 그보다 자신의 이름만으로 하나의 현상이자 문화인 히로시 후지와라가 그 주인공이다. 이 특별한 만남에서 후지와라는 자신을 둘러싼 수 겹의 레이어와 아이덴티티 중 일상과 인물에서 비정형의 순간들을 포착해내곤 했던 포토그래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의 시선 끝에 담긴 완전히 새로운 얼굴, 표정, 언어의 하니.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탄생한 뜻밖의 만남은 그보다 더 뜻밖의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페이턴트 가죽 소재의 GG 로고 디테일 미니드레스, 체인 팔찌와 이어링은 Gucci 제품.
남색 집업 재킷과 안에 입은 흰색 슬리브리스 톱, 데님 팬츠는 Gucci 제품.
남색 집업 재킷과 안에 입은 흰색 슬리브리스 톱, 데님 팬츠는 Gucci 제품.

어떤 기억은 맛이 느껴질 정도로 선명한데, 뉴진스 하니와 히로시 후지와라(Hiroshi Fujiwara)가 서울의 어느 음악 녹음실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1월의 일요일이 그랬다. 데뷔 1년 만에 단숨에 K팝의 꼭짓점에 선 인물과 일본 출신으로 프로듀서, 뮤지션, 디자이너란 수식에서 벗어나 본인의 이름만으로 설명을 불필요로 하는 인물의 만남. 이는 잘 만든 농담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이번 <더 블유> Vol.2의 커버 촬영을 위해 서울에 도착한 지 채 여섯 시간도 되지 않은 후지와라가 하니를 담으려 조용히 카메라를 든 순간 농담 같은 일이 현실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과 필연이 모두 작용한 결과였다. “2022년 뉴진스가 EP 앨범 로 데뷔했을 때 이들이 머지않아 음악계를 장악하리라고 생각했어요. 뉴진스의 음악은 어딘가 1980~90년대 사랑받은 음악을 떠올리게 했는데, 확실히 기존의 K팝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운드였죠. 처음엔 다섯 멤버의 얼굴조차 모른 채로 음악만 들었는데 이후 뮤직비디오를 보고선 ‘이렇게 어린 친구들이었다니’ 새삼 놀랐고요. 뮤지션의 예쁘장한 얼굴을 부각시키는 일반적인 재킷 앨범과는 달리 귀여운 토끼 캐릭터를 내세우는 식으로 프로모션도 사뭇 다른 궤도로 움직이려는 접근법 또한 남달랐죠. 지금의 인기를 보면 제 점괘가 맞았다는 생각도 드네요(웃음).” ‘무언가 다른 것을 한다.’ 이는 후지와라가 뉴진스에 관해 가진 첫인상이자 그의 잔상 속에 뉴진스를 오래도록 묶어둔 첫 계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더블유> Vol.2에서 성사된 기묘한 랑데부의 단서가 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홀스빗 장식 GG 로고 점프슈트, 체인 팔찌, GG 로고 홀스빗 1955 숄더백, GG 로고 홀스빗 로퍼는 Gucci 제품.
슬리브리스 톱과 프린지 장식 스커트, 슬링백 슈즈, 크로스로 멘 페이턴트 가죽 소재의 재키 노떼 숄더백은 Gucci 제품.

“저는 스스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히로시 후지와라일 뿐이죠.” 언젠가 후지와라는 자신의 정체를 간명하고 명쾌한 수식으로 요약해달라는 어느 인터뷰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이는 자신을 하나의 카테고리에 가두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했지만, 후지와라가 자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무수한 행위들 사이 꼬집어 설명할 만한 교집합이 없기에 표한 어떤 난감함이었을 수도 있다. 1980~90년대 일본에 힙합과 DJ 문화를 대중화하는데 일조한 파이오니어. 베이프, 네이버후드, 언더커버 등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시작을 함께한 증인.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수장. 나이키, 루이 비통, 몽클레르 등과 협업하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뜨거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더블유>가 그를 둘러싼 겹겹의 레이어, 다층적인 아이덴티티 중에서도 이번에 응시한 지점은 열렬한 팬덤이 따르는 그의 음악이나 패션 영역의 활동이 아닌, 다소간 그의 비밀스러운 조각 중 하나일 포토그래퍼로서의 면모였다.

후지와라는 지난 2019년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라이카 사진 그룹전 에 전시 작가로서 참여한 적이 있다. 영화감독 박찬욱, 뮤지션 오혁, 미술감독이자 큐레이터 일 스튜디오가 참여한 전시에 그는 여러 점의 스냅 사진을 내걸었는데, 그의 사진에서는 일상을 대하는 특유의 ‘비정형’의 시선이 느껴졌다. 형광등의 빛 반사로 인형 눈알이 번뜩 점등된 듯 보이는, 짐짓 유쾌하고도 비장한 착시적 사진부터 야심한 밤 바쁘게 부리를 움직이는 오리 떼를 의도적으로 적은 광량으로 포착해 기묘한 잔상과 리듬감을 만들어낸 사진 등 그가 대상을 포착하는 방식이나 취하는 구도, 노출, 초점은 확실히 ‘정석’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성질의 것이었다. 이런 그만의 스타일은 그가 뉴진스의 데뷔 음악에서 감지했다고 밝힌 것처럼 그의 사진을 ‘무언가 다르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슬리브리스 톱과 프린지 장식 스커트, 슬링백 슈즈, 크로스로 멘 페이턴트 가죽 소재의 재키 노떼 숄더백은 Gucci 제품.
웹 디테일 니트 톱과 쇼츠, 레드 홀스빗 1955 숄더백은 Gucci 제품.

봄을 재촉하는 기색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2월을 앞두고, 구찌 2024 S/S 컬렉션을 입은 하니를 포착하는 미션에 후지와라를 초대한 것은 어쩌면 순전히 우연에 기댄 일이었지만 이를 필연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후지와라와 하니 두 아티스트였다. “이번 <더블유>의 협업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후지와라에 이어 하니가 말했다. “그의 존재에 대해 물론 알고 있었어요. 일본 힙합 문화의 시작을 견인한 아이코닉한 존재잖아요. 기존의 화보 촬영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를 것 같았어요.”

그렇게 일요일 이른 아침 녹음실에서 시작된 촬영. 50여 명의 스태프들 사이로 기타와 피아노, 앰프, 마이크가 마치 관객처럼 곳곳에 자리해 있었고, 오로지 카메라의 찰칵이는 소리만이 공간에 퍼졌다. 후지와라는 그가 오랜 시간 애정해온 라이카 M 10 모노크롬, M11 두 대를 때에 따라 번갈아 사용하며 하니의 순간을 포착해갔다. 합주실에서, 방음 부스 안에서, 대형 피아노만이 놓인 녹음실 안에서 두 사람은 촬영을 이어갔는데 둘 사이 대화는 거의 없었다. 오로지 찍는 행위와 찍히는 행위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엄숙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았는데, 그 자체로 어딘가 왠지 생경한 풍경이었다. “잠자코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셔터를 누르는데 그때 ‘아 지금 원하는 게 있구나’라고 알았어요. 확신이 있는 움직임이었거든요.” 그리고 이런 하니의 예상은 후지와라의 뜻에 정확히 명중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날 때가 담긴 사진을 좋아해요. 이번에 하니와 촬영하면서도 그런 찬스를 기다렸어요.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포즈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단지 연출된 사진일 뿐이잖아요. 어떤 오리지낼리티가 담긴 사진이야말로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검정 재킷, 안에 입은 슬리브리스 톱, 쇼츠와 슬링백 슈즈, 검정 홀스빗 1955 토트백은 Gucci 제품.
화이트 셔츠, GG 로고 쇼츠, 화이트 홀스빗 1955 숄더백은 Gucci 제품.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채 6시간 남짓한 짧고도 강렬한 시간은 고스란히 사진 속에 영원히 박제되었다. 한편 사진으로 붙들고 싶은 기억과 잊히는 기억이 따로 있다면, 하니에게 있어 비단 뜻밖의 조우로 빚어진 이날의 촬영뿐 아니라, 지난 2023년의 모든 나날은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시간이기도 했다. 작년 한 해가 열리자마자 1월 2일 발매한 싱글 1집 , 7월 공개한 두 번째 EP 은 모두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 기세에 힘입어 8월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한 대형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선 K팝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메인 무대를 장식하며 7만 관객 앞에서 총 12곡을 라이브로 소화했다. “작년 한 해 엄청 신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특히 롤라팔루자 무대는 뭐라 설명하기도 어려운 진기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Surreal’이란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달까요. 확실히 그때 이후로 멤버 모두 무대를 대하는 매너가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무대는 원래도 즐거웠지만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데뷔 후 1년여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온세뉴(온세상이 뉴진스)’라는 신조어가 나타난 것은 지금 뉴진스라는 그룹이 K팝계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어떤 방증이다. 그리고 하니는 이에 대해 말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걸 정말 많이 느끼는 요즘이에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요. 사랑받은 만큼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고요. 그리고 가끔 저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기도 하는데요, 일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제가 고작 스무 살이란 걸 깜빡하기도 해요. 걱정이 많아서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너무 높은 기대감을 가질 때가 있죠. 그런데 이제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고민부터 하기보다 ‘일단 시도하고 부딪쳐봐’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2024년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달릴 것 같아요.”

슬릿 디테일 니트와 페이턴트 가죽 소재의 하늘색 스커트, 슬링백 슈즈는 Gucci 제품.
슬릿 디테일 니트와 페이턴트 가죽 소재의 하늘색 스커트, 슬링백 슈즈는 Gucci 제품.
남색 집업 재킷과 안에 입은 흰색 슬리브리스 톱, 데님 팬츠는 Gucci 제품.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만남으로 탄생한 예상치 못한 장면들, 그리고 남게 된 사진들. 이날 두 사람은 세대도 국적도 다르지만 어쩌면 본인이 하는 일과 그 너머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다른 듯 비슷한, 기묘한 이야기를 함께 펼쳐냈다. “저는 예술을 말 없는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 또한 무대를 하거나 노래할 때 어떤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먼저 정하고 다가가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진심’으로 하자는 게 저만의 룰이에요.” 하니에 이어 후지와라가 말했다. “일과 휴식을 전혀 구분하지 않아요. 제 앞에 어떤 어린아이가 있고, 그가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요. ‘너와 같아. 그저 매일 노는 사람일 뿐이야’라고. 결국엔 모든 일에서 ‘재미’가 가장 중요할 뿐이에요.” 어쩌면 하니의 ‘진심’과 후지와라의 ‘재미’가 만나 완성된 이번 커버 화보의 장면들에는 이 둘의 조합이 그러했듯 예상치 못함으로 가득하다. 이제 그리하여 발견된 새로운 얼굴, 표정, 무언의 메시지를 당신이 발견할 차례다.

페이턴트 가죽 소재의 GG 로고 디테일 미니드레스는 Gucci 제품.
검정 재킷, 안에 입은 슬리브리스 톱, 쇼츠는 Gucci 제품.
검정 재킷, 안에 입은 슬리브리스 톱, 쇼츠와 슬링백 슈즈, 블랙 홀스빗 1955 숄더백은 Gucci 제품.
포토그래퍼
히로시 후지와라, 송시영
스타일리스트
최유미
헤어
이일중
메이크업
이나겸
프로덕션
TMN, 이지희(라이카)
어시스턴트
전지오, 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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