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팬츠? 노 프라블럼! 올 한해 패션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 노 팬츠 룩의 부상
팬츠를 입지 않은 채 집 밖을 나서는 것은 대중문화사에 뿌리 깊게 박힌 악몽 중 하나로, 수많은 영화, TV 쇼,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흥미로운 소재다. 누가 봐도 팬츠를 입지 않은 외출은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이며, 조심성 부족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패션계에서 ‘노 팬츠’ 룩은 새 트렌드를 개척하는 뜨거운 화두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빌려서 새로운 시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거나 옷을 거의 입지 않은 꿈을 꿀 때, 간혹 자신의 상태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팬츠를 생략하고 팬티나 브리프만 입은 셀러브리티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 11월 보테가 베네타의 런웨이 룩인 크루넥 스웨터에 브리프, 검정 타이츠, 뾰족한 힐을 신은 켄들 제너가 이 트렌드에 불을 지폈다. 헤일리 비버는 오버사이즈 가죽 재킷에 달라붙는 트렁크 팬티를 매치한 캐주얼 룩이나, 검은색 매트릭스 코트에 하이웨이스트 팬티, 금장 포인트인 벨트를 스타일링한 드레스업 룩을 선보이기도 했다. 벨라 하디드는 티셔츠에 바이커 재킷을 걸친 채, 남성용 트렁크 팬티를 매치했고, 로에베 쇼에서 카일리 제너는 로에베 로고의 흰색 브리프 팬티를 입고 등장했다! 세계적인 셀럽들의 이 과감한 차림에 디자이너들은 즉각 반응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런웨이에 풀어놓았다.
마르니는 바삭한 셔츠와 부드러운 니트를 레이어링한 룩에 긴 양말과 페니 로퍼를 매치했는데, 이는 차분한 여학생을 연상시켰다. 코페르니와 프라다는 크롭트 케이프 코트에 시어한 타이츠를 매치했고, 페라가모는 잘 재단된 브리프나 핫팬츠에 슈트 재킷 또는 오버사이즈 니트를 매치해 좀 더 정돈된 룩을 제안했다. 돌체앤가바나는 실크 라펠 턱시도 재킷을 허벅지가 드러나는 보디슈트로 변형시켰고, 미우미우의 모델들은 크리스털로 덮여 있거나 혹은 평범한 면으로 된 짧은 브리프를 입고 등장했다. 이 짧은 팬티를 꽃무늬 카디건, 회색 후드 재킷과 매치한, 안경 쓴 모델들은 흥미로운 너드미를 담뿍 내뿜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건 심약한 사람을 위한 패션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 현상은 피할 수 없는 발전처럼 느껴진다. 브래지어 상의나 크롭트 톱은 곳곳에서 자주 등장해서 완전히 일상화가 됐고, 헴라인과 허리 라인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가 낮아질 대로 낮아졌다가 각각의 한계치에 도달했다. 그러니 이런 팬티 패션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패션 유니콘인 것이다.
물론 노 팬츠 룩이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 댄서들이 길고 더 우아한 선을 만들기 위해 타이츠 위에 레오타드를 입기도 했고, 오래된 할리우드 여배우 시드 카리스는 노 팬츠 차림으로 사교 파티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또 앤디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이 코뿔소 가죽 위에서 검은 스타킹만 입은 채 아라베스크 포즈를 취한 유명한 사진이나, 1980년대 에어로빅 열풍을 이끈 제인 폰다의 하이컷 레오타드 룩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의 성공적인 노 팬츠 룩이 예전과 다른 점은 에로틱하기도 하지만, 스포츠적 방식을 벗어나 좀 더 실용적인 방식에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팬츠를 입지 않는 차림새는 당찬 자유를 내포하지만 동시에 멋진 각선미도 보여줄 수 있다. 켄들 제너와 헤일리 비버의 레기(Leggy) 룩을 책임지는 스타일리스트 다니 미셸(Dani Michelle)은 이렇게 말했다. “과감한 룩을 선택할 때는 목적의식이 엿보이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바지를 잊었나 봐!’ 또는 ‘너무 멀리 간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게 해서는 안 되죠. 스타일, 모멘트, 강한 주장이 정확하게 어우러져야 합니다.” CFDA를 통해 레드카펫에서 몇 번의 노 팬츠 룩을 실험한 스타일리스트 로 로치(Law Roach)는 이 룩이 문화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트렌드는 캘빈 클라인의 흰색 팬티와 많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10, 11개월 전에는 분명 그 팬티를 입지 않았겠지만 지금 제가 입는다면 제 클라이언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몇 번의 실험을 거친 그가 말했다. “저는 그저 자유를 느끼고 싶었고, 자유를 느끼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떤 속박을 벗어날 계기가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팬데믹에 유행한 스웨트 팬츠의 횡포, 숙녀들이 다리를 감추려 애썼던 빅토리아 시대의 잔해, 최근 수십 년 동안 몸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잔혹한 신체 기준 등 이 모든 것의 조합은 노출에 대한 불안을 야기했다. 이로부터 진정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 블레이저만 입고 다른 것은 걸치지 않은 채 고루한 식당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팬츠를 다시 입고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은 앞으로 전진하고, 알다시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상상도 못한 일이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블랙 타이 드레스 코드 파티에 슬립 드레스를 입고 온 이를 이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듯, 사무실에서 주얼 장식 브리프만 입은 동료를 보기까지 몇 년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팬츠를 입지 않은 채 외출하는 악몽은 프로이트가 지적한 것처럼 두려움, 수치심, 그리고 그것에 대한 판단의 문제다. 많은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새로운 트렌드는 어떻게 체득하면 좋을까? 이쯤에서 쇼가 끝난 뒤 모여든 프레스에게 던진 미우치아의 유쾌한 말이 떠오른다. “내가 좀만 더 젊었으면, 팬티만 입고 다녔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