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분야의 작가들이 자기 세계를 녹인 현대 예술 장신구를 비롯해 오브제나 조각, 설치 작품을 넘나드는 예술을 꽃피웠다
사람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예술, 공예는 가장 진실하고 정직한 노동이자 창작이다. 그리고 여기, 장르를 가르거나 기물의 쓰임을 분간하는 대신 공예라는 절차탁마의 세계를 예술로 승화한 작가들이 있다. 푸른문화재단이 주관하고 12월 8일부터 21일까지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진행된 <Just Art! : Beyond Borders>. 장르 분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자 마련된 이 전시는 작가와 작업의 예술성에 주목했고,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기 세계를 녹인 현대 예술 장신구를 비롯해 오브제나 조각, 설치 작품을 넘나드는 예술을 꽃피웠다. 그중 여섯 작가를 만났다.
김준수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곡선이나 유동적인 형태, 또 그것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을 식물성 무두질 가죽을 활용해 공예로 표현하는 작가. 가죽끈을 켜켜이 쌓아 그릇과 여러 기물을 만드는데, 그의 작품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생장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듯하다. 작품 또한 완성된 이후 빛과 바람, 사람의 손길 속에서 무르익으며 자연의 섭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그는 개최 이래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된 이들 중 최초의 가죽 분야 작가였다.
김준수는 벽면에 설치된 브로치 다섯 점 중 한 점을 떼어 가슴팍에 달았다. 양옆에 놓인 ‘Flow’ 시리즈는 가죽끈을 켜켜이 쌓아 만든 오브제다.
굽이치는 곡선, 응축하는 타원 등을 통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에 이르는 계절의 순환을 표현한 브로치 중 ‘봄1’, ‘가을1’, ‘봄2’.
그동안 그릇 형태의 기물을 선보였다. 전시로 장신구 작업에는 처음 도전한 것인가?
가죽공예 작업을 하고 있지만, 금속공예를 전공했기에 예술 장신구 분야는 물론 나무나 유리, 보석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다루어본 셈이다. 다만 현재 하고 있는 가죽 작업을 장신구 안에 어떻게 감각적으로 녹여낼지 고민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주로 바닥과 벽이 있어 내외부가 나뉘는 그릇을 만들었는데, 장신구는 몸에 착용하는 것이니 우선 중심을 잡아줄 새로운 뼈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볼륨감 있는 타원의 부조 형태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개의 브로치에 사계절을 표현했다. 나는 장신구를 누군가의 자화상이라 생각한다. 그 자화상 안에서도 변화하는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다. 단단하게 뿌리내린 고유성은 흔들리지 않으면서 환경에 따라 외형만 바뀌는 모습을 떠올렸다.
브로치 뒷면의 핀까지 섬세하게 신경 쓴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러 개의 선을 구부리고 절단해 만드는 여느 브로치 핀과 달리 와이어 선 하나만 사용해 만들었다. 지금의 형태를 완성하기까지 많은 실험을 거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공예 작품은 레디메이드 제품과 달리 앞뒤, 옆면 어디든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신구는 작품 스케일이 작아서인지 소재의 물성, 디테일 등에 더욱 주목하게 되는 듯하다. 기존 작업과는 달리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신구는 신체에 착용하는 작은 규모의 부조 작업이다. 그래서 좀 더 포스트모더니즘적 표현이 가능하다고 봤다. 장신구 작업을 통해 그간 해보지 못한 다양한 형태를 시도해볼 수 있었다. 동시에 다음 작업에 대한 방향성을 찾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각 작가가 현대 예술 장신구와 함께 다양한 오브제를 선보이는 형식이었다. 장신구 작업을 하며 찾은 그 방향성이 전시에서 함께 선보인 오브제들에도 녹아 있을까?
그렇다. 기존의 팽팽하고 대칭을 이루는 기(器) 형태에서 벗어나 좀 더 고유성이 묻어나는 작업을 시도했다. 나아가 공예는 기능성이나 물성을 중심에 두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보다는 형태나 표현에 집중하고 싶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간 생각이라 오브제 연작에 ‘Flow’라는 이름을 붙이고 작품을 만들었다. 관람객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가’ 하는 질문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아름다운 사물 그 자체로 바라봐주길 바랐다.
공예 작가로 활동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철학은?
수공(手工)과 고유성을 지키는 것이다. 비슷한 제작 방법이나 콘셉트, 형태감을 기계로 흉내 낼 수야 있겠지만, 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완성되는 작업은 한 끗 차이로 따라 할 수 없는 고유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가죽을 쌓아 올릴 때 손에 전해지는 느낌, 그 즉흥성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당시의 감정과 의도에 따라 형태를 구현하며 생장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 공예에서 가죽공예는 아직도 마이너한 분야이기에 계속해서 작업 활동을 이어가며 이러한 매력을 알리고 싶다.
박주형
금속공예로 작업을 시작했으나 나무가 지닌 따뜻한 물성에 매료되면서 목공예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장르나 형식에 구애받기보다 끊임없이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내면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에 집중한다. 전시에 선보인 작품 ‘흘려 쓴 글씨’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전한다.
박주형은 가로로 기다란 나무 조각 ‘흘려 쓴 글씨’로 시작해 세로 형태의 조각과 장신구를 같은 이름의 시리즈로 작업했다.
나무 조각의 미니 버전인 브로치 세 점. 언뜻 화선지에 쓴 글씨가 떠오른다.
2018년 전시 <사가보월(思家步月)>부터 시작해 푸른문화재단 전시에 세 번째 참여했다.
재단의 첫 전시 <사가보월>에서는 커틀러리와 목재를 결합한 장신구를, 2021년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에서는 나무에 뾰족한 형태의 금속을 더한 노리개를 선보였다. 나는 금속공예를 전공했지만 우연히 목공예 길에 접어들면서 두 가지 소재를 결합한 장신구 작품을 줄곧 소개했다. 올해는 목재만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는데, 그 중심축을 이루는 작품 ‘흘려 쓴 글씨’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
‘흘려 쓴 글씨’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었나?
반려견 하루와 산책하다 발견한 통나무로 만든 작품이다. 정확한 용도를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집에 가지고 왔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작업하는 내내 하루가 여러 차례 입원할 정도로 아파서 그사이 열심히 작업을 마무리하고, 하루가 집에 돌아왔을 때 종일 붙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내 하루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매일 울면서 나무를 매만졌다. 내게 이 작품은 하루와 동일한 존재인데, 2020년 다른 전시에 한 차례 선보인 이후 한 번도 내보이지 못했다. 누군가는 반려견의 죽음에 왜 그토록 큰 슬픔을 느끼고 작품에까지 이어가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의 생각과 관심이 항상 이쪽으로 흐르는데 작품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깊은 철학이나 고찰을 작품에 담는 예술가가 있다면, 나 같은 작가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반려견을 향한 그리움이 담겨서일까, 160cm가량의 긴 목재 조각이 마치 물길이나 회오리처럼 사무쳐 흐른다.
2020년 <붓전>이라는 전시를 하면서 ‘흘림체’에 관심이 생겼다. 붓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글자와 글자가 물처럼 연결되고, 또 때로는 춤추는 듯한 그 형상이 무척 좋더라. 우리가 전화를 받으며 쓰는 글씨, 잠들기 전 흘려 쓴 일기 등에서도 그런 매력을 발견했다. 미래의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남긴 글인데 암호가 되고 선이 되어버린 것. 그 자체가 참 곱게 느껴졌다. 이 아름다움을 종이에서 꺼내 입체로 만든다면 어떤 형상이 나올까, 생각하며 만든 작업이다. 장신구 역시 ‘흘려 쓴 글씨’에서 파생한 작은 오브제라 생각하며 작업에 임했다.
장신구의 작은 스케일로 인해 더욱 골몰하게 된 부분도 있나?
장신구나 조각 모두 내게 똑같이 중요하다. 장신구 작가로 업력을 시작해서인지 큰 규모의 조각 작업을 할 때도 작은 스케일의 작업을 할 때처럼 마무리에 정성을 쏟아 작업 기간이 길어지곤 한다. 특히 끝단에서 사포질할 때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되는데,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손으로 만졌을 때 걸리는 부분이 없도록 만든다.
순수미술, 공예, 디자인 창작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다. 조각과 공예를 넘나드는 작가로서 지키고자 하는 철학이 있다면?
작품의 본질적 기능과 의미를 놓지 않는다면 창작에는 경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 읽은 만화 속 어딘가로 도망치던 주인공의 대사가 이러했다.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돼. 우선 지금은 열심히 도망치는 거야.” 어른이 되고 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그 대사를 떠올린다. 작업을 하다 보면 나무가 부러지거나 썩은 옹이가 발견될 때도 있다. 그마저도 목공예를 하는 나에게 주어진 숙명이자 최선을 다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지점이라 여긴다. 창작 분야를 구분 짓기보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유진
다양한 이미지와 개념을 결합하고 해체함으로써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는 조형미술 작가. 금속공예 전공 후 미국으로 건너가 디자인대학원(Cranbrook Academy of Art)과 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의 보석 감정 과정을 수학했다. 작업 근간에 금속공예를 두고 중의적 메시지를 지닌 작품을 선보이는데, 특히 신체와 사물의 이질적 조합이 녹아든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인종이나 성별, 연령에 부과되는 고정관념에 진지한 질문을 던져왔다. 그중 날카롭고 예리한 무기 형태의 현대 예술 장신구인 ‘아름다운 흉기’ 시리즈는 개인의 욕망과 타인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성의 등에서 갈고리가 돋은 조각 작업 ‘엑스 우먼’이 전시장에 기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날카로운 동물의 발톱, 톱니 등의 형태를 차용한 ‘아름다운 흉기’ 시리즈 중 한 점. 벽에서 뻗어 나온 손 모형에 전시된 방식이 재치 있다.
<Just Art! : Beyond Borders>에서 ‘아름다운 흉기’ 시리즈를 통해 무기를 연상시키는 장신구를 선보였다. 오랫동안 작업한 이 시리즈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착용하는 장신구도 있지만, 주술적인 의도나 몸을 지키기 위한 장신구도 있다. 값비싸고 화려한 보석이 타인에게 거리감이나 위협의 느낌을 줄 때도 있고. ‘아름다운 흉기’ 시리즈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장신구 작업이다. 동물의 날카로운 발톱이나 기계의 톱니, 가시나 주삿바늘을 연상시키는 요소들로 만든다. 장신구의 개념은 우리 몸에 외부의 이질적인 무언가를 착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욕망으로 바라봤다. 무언가를 염원하는 마음이 장신구에 녹아 있달까. 여기서 나아가 이러한 욕망이 우리의 외형을 변화시키고 내면까지 변성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해 완성한 것이 인체 조각 작업이다. 몸 밖으로 흉기처럼 갈고리가 돋아난 조각상은 ‘요괴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요괴 인간’이 되는 것이 나의 욕망일 수도 있다.
지난 30년간 금속공예를 중심으로 순수미술을 아우르는 여러 작업을 했다. 작가로서도 딱히 그 어디에 속하지 않는 누군가, 그야말로 ‘요괴 인간’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다(웃음). 작업을 처음 선보인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순수예술, 공예 등 각각의 장르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높고 견고하게 자리했다. 결과에 방점을 둔 국내 교육과 달리 미국에서는 과정에 중점이 있었다. 작업 후 크리틱을 통해 자기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럴 때면 공예와 미술의 장르적 구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작가로 활동하면서 공예라는 장르를 기반으로 나만의 주제 의식을 꾸준히 작품화하려고 애썼다.
작품 주제로 여성성, 타인의 시선 등을 꾸준히 다룬 계기가 있나?
1960년대에 태어난 여성으로서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며 내가 부딪쳐온 세상을 작품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미국 유학 당시 와이어 선만으로 한국 색채의 보석함을 만들고 그 안에 나를 비추는 거울과 젓가락을 넣었다. 동양인 여성으로 ‘나’라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들에 대해 표현한 것이다. 내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작은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반대로 꼭 여성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 되려 나는 아름다움과 추함, 죽음과 탄생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뉜 양극단의 개념을 동시에 가져와 우리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나 역시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이기도 하고.
공예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 경우 공예를 근간으로 다양한 작업을 펼쳐왔다. 공예는 전통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혁신해야 하는 장르다. 실용성과 예술적 메시지도 지녀야 하고. 참 어렵다. 다만 청자, 백자 같은 옛 공예품을 볼 때면 ‘당시에 실용성에만 주안점을 두고 이것을 만들었을까?’ 싶다. 그때의 아름다움, 멋이 한껏 반영되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바라보면 공예는 가장 컨템퍼러리하고 트렌디한 예술이다.
천우선
2023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제10회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수상자이기도 한 금속공예가. 지난 20여 년간 반복되는 선으로 틈과 형태를 빚어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선과 선 사이 틈을 통해 내부와 외부를 모호하게 만들고 채움과 비움, 존재와 비존재의 끊임없는 순환을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에는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으나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케 하는 힘이 서려 있다.
허공에 스케치하듯 완성한 브로치, ‘공간에 그리다’ 세 점과 나란히 선 작가.
선과 선 사이 틈을 강조하는 기존 작업 기조를 살려 만든 오브제, ‘틈이 있는 기’. 틈을 만들어 내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천우선 작업의 출발점이다.
20여 년간 금속공예 외길을 걸었는데, 다른 소재나 장르에 대한 관심은 없을까?
고지식한 성격 탓이다(웃음). 뭔가를 선택하기까지 고민이 많고 머뭇거리는 편이지만, 한번 선택한 것은 쉽게 바꾸는 법이 없다. 일상에도 큰 변화가 없고 무언가를 꾸준히 오래, 천천히 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금속공예였는데 신기하게 참 잘 맞았다. 휴학 후 군대에 갔는데 이 일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그때부터 이 길을 계속 걷겠다고 마음먹었고, 여느 선배들이 그러듯이 작가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협회에 속해 단체전을 하며 끊임없이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렇게 30대가 지나갔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대회에서 수상하거나 작품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순간에 지나지 않았고 ‘그다음은 뭐지?’ ‘뭘 해야 하지?’와 같은 질문, 공허가 뒤따랐다. 40대에 들어서며 개인적으로나 공예 업계 전반으로나 많은 기회가 생겼다. 돌이켜 ‘다른 걸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을까?’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 없다.
채우기보다 비우기에, 붙이기보다 선과 선 사이 틈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반면 장신구는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용도가 큰데, 이번 전시 작품에는 어떠한 고민을 녹여냈나?
대학원 시절부터 실용성보다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끌렸다. 공예와 조각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작품을 구상하며 고민도 많았다. ‘공예적인 것은 무엇인가?’를 두고 고민했을 때 결국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활 속 기물 중에서도 그릇이 가장 변화가 적었다. 무언가를 담는 근본적 기능으로 인해 형태가 크게 달라질 수 없으니 말이다. 나는 기능 대신 물건, 식재료가 담기고 비어지는 일련의 순환 과정에 집중해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틈을 만들고 내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데 집중한다. 이것이 내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다. 장신구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의미, 형태로 중무장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허공에 스케치하듯 장신구를 만들어보았다. 이전엔 보다 설명적이고 장식적인 작품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작업 기조를 토대로 단순함을 유지하고자 한다. 옻칠을 통해 색을 더하거나 금속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등의 변주를 줄 뿐이다.
긴 시간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낀 공예의 미덕은 무엇인가?
공예는 지난한 노동의 산물이다. 무수히 어루만지면서 더해진 온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얼마 전 어느 조각가에게 ‘공예는 슬픔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일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난 공예 작품은 없을 테니. 하지만 작가가 작품을 만들면서 느꼈을 수많은 감정 속엔 슬픔도, 생활의 힘듦도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작품에 투영하지 않았을 뿐. 공예는 그 모두를 딛고 승화된 결과물일 수 있다. 반짝이고 아름다운 것에는 실로 많은 노동이 요구되니 말이다.
공예 작가로서 특별히 몰두하고 싶은 부분이나 작업이 있나?
이전에는 큰 계획이나 목표가 있었는데 이제는 주어진 하루에 그저 성실하고자 한다. 매일 아침 8시 30분에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작업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그저 작업을 해내는 것, 그로 인해 나중이 더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여러 부침 속에서도 공예로 승화하는 작가가 되는 일에 몰두하고자 한다.
심승욱
설치미술가이자 조각가로 입지를 다졌고, 회화와 사진 등 장르를 넘나들며 내러티브를 표현해왔다. 고귀와 천박, 희극과 비극, 구축과 해체처럼 상반되는 개념을 한데 담은 작품으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온 그는 처음 선보이는 장신구 작업을 통해 권위와 아름다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칠흑 같은 영광으로 위용을 드러낸 ‘개, 돼지들의 왕관’은 기존 작업들에서 생긴 ‘찌꺼기’로 만든 것이다.
인간의 여러 욕망을 이야기하는 ‘개, 돼지들의 왕관’ 아래서. 작업 중 얻은 부산물이나 찌꺼기가 이 왕관의 재료다.
역시 찌꺼기를 조합해 만든 검정 브로치 ‘오브제 A-01, 02’는 무심하게 덩어리진 듯 독창적인 조형미를 띤다.
입체, 설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 예술 장신구 작품을 선보인 계기는 무엇인가?
아내가 공예가라 내게 공예는 꽤 친숙한 분야다. 기존 작업을 근간으로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함께했다. 그간 나는 작업할 때 양가적 가치를 조형적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해왔다. 규정짓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분류하기 어려운 주제와 메시지를 다루는 것이 베이스다. 장신구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메시지 또한 가볍게 접근했다. ‘즐겁게 작업하고 싶다’가 첫 번째 생각이었고, ‘여러 가지 재료의 부산물 혹은 작업의 찌꺼기를 조합해 독창적인 조형 구조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것이 두 번째 생각이었다. 작품마다 큰 메시지를 더하지 않더라도 괜찮을 듯했다. 작품을 만들다가 생겨난 부산물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 어떤 경우든 작품에는 그것을 만든 작가의 성향이나 조형적 표현이 그대로 녹아 있을 테니, 그것을 장신구화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선보인 장신구는 작가 심승욱의 부분이자 전체일 수 있겠다.
그렇다. 특히 왕관은 깊은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인데, 현대 장신구에서 다루지 않는 고전적 기물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권위체계에 대한 가치가 많이 바뀌었고, 그로 인해 왕관은 이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장신구가 되었더라. 이 또한 기존 작업의 부산물로 완성했는데, 왕관이라는 건 권위를 드러내는 동시에 화려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지 않나? 하지만 W PROMOTION 내 작업의 핵심은 대척점에 선 두 가치를 함께 보이며, 익숙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이 왕관을 통해 흔히 생각하는 권위에 대한 개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2023년 여름에 한 개인전 <픽! 팝! 푸!>에서는 회화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끊임없이 새롭게 진화하는 작가의 면모가 보인다.
설치미술, 현대 조각은 매우 상징적인 작업이다. 긴 서사를 다루기엔 조각이나 설치 작업보다 회화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도전해봤다. 반면 공예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장신구를 일례로 든다면, 그것을 착용한 대상에 따라 감상의 지점이 달라지며 장신구가 착용자의 어떠한 책임, 역할, 지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다.
작가로서 근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돈을 잘 벌고 싶다. 너무 노골적인가? 그를 통해 더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2024년 가을 중요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회화 위주의 컬렉팅 문화가 발달한 국내 예술계에서 설치, 조소로 전시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작업적 역량을 최고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전시는 매우 큰 즐거움이었다. 원하는 것을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었기에 환기되는 지점도 많았고. 나이가 들수록 내가 표현하는 대상을 누군가 꼭 좋아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자 애쓴다. 그랬을 때 자유로운 작업이 나오니까.
배주현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동양화와 도예 공부를 시작했다. 작가에게 예술은 낱낱이 흩어진 인생의 퍼즐을 모으는 과정으로,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곱씹으며 수행하듯 도자를 빚는다. 그리고 이러한 도자를 모아 설치미술을 연상케 하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가마에서 터져 나온 도자조차 작업의 일환이라 생각하며 다시금 이어 붙이는 식으로. 배주현은 어린 시절 신앙심 깊은 부모님을 따라 한센병 환자를 많이 만났고, 자신은 온몸이 건강하다는 데서 이유 모를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한 감정의 연장선처럼 흙을 다룰 때도 완벽한 것, 매끈한 것보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실이자 어머니의 손바느질을 연상시키는 무명사에 다양한 도자 기물을 매단 설치 작업. 각 기물은 행잉 오브제나 문진, 다하, 장신구 등등 저마다 마음 가는 대로 활용할 수 있다.
역시 여러 형태의 기물이 실에 얽히게 설치한 작업은 산산이 흩어질 시간을 붙잡아둔 듯하다.
도예가로 커리어를 쌓기 전 성악가로 무대에 오른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흙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엔 동양화를 그렸는데, 우연한 기회로 흙이라는 소재에 깊이 빠져들었다. 흙은 엄마처럼 무언가를 품었을 때 생명력을 틔우는 성질이 있다. 그 자체로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반면 도예는 작가의 의지로 흙의 이러한 성질을 죽이는 일이다. 새로운 쓰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신이 아닌 한낱 인간이 그런 대단한 일을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나름 깊은 책임 의식을 느끼며 작업에 임하고 있다. 도자에 인위적인 유약 사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참나무나 소나무를 소성해 얻은 재를 사용한다. 재를 발랐을 때의 먹먹한 색감이 내게는 자연의 일부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갖가지 도자 기물을 이용해 설치하는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매일 누구보다 열심히 흙을 만지고 있지만 일평생 흙만을 연구해온 분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그저 인생과 예술이라는 큰 그림 앞에 작은 퍼즐 조각을 만든다고 여긴다. 필요에 따라 다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이유는 시간성에 있다. 다양한 기물이 전시장에 모여 작품이 되는데, 후에 산산이 흩어지더라도 전시라는 시간성에 따라 작품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본다.
<Just Art! : Beyond Borders>에서는 꽤 많은 조각이 실에 매달리거나 갇혀 있는 듯한 작업을 선보였다. 하나하나 살피는 즐거움이 있지만, 그중 무엇이 장신구이고, 또 무엇이 도자 작품인지 분간하기 어렵기도 하다.
공예에서 유용과 무용은 꽤 큰 가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도자 작업을 할 때 쓸모를 한정하고서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다. 이번에 선보인 장신구 역시 목걸이 펜던트로 사용할 수 있는 동시에 다하나 행잉 오브제, 문진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쓸모를 한정하지 않았으니 분간하기 어려운 게 맞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주인공인 시대에 산다. 예술적 장르를 갈라 규정할 필요도, 작품의 쓰임을 지정해 쓸모를 한정할 필요도 없다고 느낀다. 작업의 맥락에 따라 내가 형태를 만들지라도, 작품으로 일궈내는 퍼포먼스, 의미, 해석은 소유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게 공예의 미학일 수도 있겠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에서 얻은 최소한의 재료로 빚은 도자를 낯설게 나열한 ‘무위의 자리’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러한 공간적 언어를 통해 시적이고 사유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작품을 통해 작업하는 사람의 사유에 바라보는 사람의 사유가 더해지길 바란다.
근래 삶과 예술 전방위적으로 가장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일. 남에게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날것의 감정, 욕망을 스스로 마주하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내 안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예술의 퍼즐을 계속 모을 텐데, 그 속에서 결핍이나 틈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메워가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들을 구슬처럼 꿰어 작업으로 보여주는 일을 지금처럼 성실하게 이어가고 싶다.
- 프리랜스 에디터
- 유승현
- 포토그래퍼
- 박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