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영양제를 한 주먹씩 삼키고 있나? 내 몸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모두에게 이로운 영양제는 없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어릴 땐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는데, 30대 후반인 지금은 하루만 늦게 자거나 잠을 설쳐도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뻐근하고 정신이 몽롱하다. 매일 힘겹게 일어나 영양제를 입에 털어 넣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는 알 방도가 없다. 그저 ‘안 먹는 것보다 낫겠지’ 하며 꿀떡 넘길 뿐이다. “모두에게 이로운 건강기능식품은 없습니다. 그 기능이 필요한 사람이 섭취해야 효과를 낼 수 있죠.“
<제대로 알고 먹어라>의 저자이자 차움 푸드테라피 센터장인 이기호는 무분별한 영양제 섭취에 주의를 표한다. “누군가는 커피를 물처럼 마셔도 잠을 잘 자고, 누군가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잘 취하지 않죠. 영양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전자 분석이나 혈액 검사, 모발 검사 등을 통해 개인 맞춤 영양을 권고하는 시대가 도래했죠.”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경철은 저서 <개인 맞춤 영양의 시대가 온다>를 통해 개인의 건강 상태에 적합한 맞춤식 영양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저 몸에 좋다는 정보만으로 아무거나 섭취하는 대신, 내 몸에 꼭 필요한 성분을 찾을 수 있는 시대. 정확히 알고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의 영양소 합성 능력치는? DTC 유전자 검사
‘나는 100% 한국인일까?’ ‘나의 탈모 유전력은?’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DTC 유전자 검사가 화제다. DTC(Direct to Consumer, 소비자 직접 시행)는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유전자 검사 기업을 통해 유전자 검사를 받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DTC의 인기로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13일, DTC 유전자 검사 항목을 101개에서 129개로 확대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배송된 유전자 검사 키트에 타액이나 구강상피세포를 묻혀 반송하면 2주 뒤 영양소, 식습관, 수면 습관, 피부, 탈모, 카페인 대사 등을 포함한 수십 가지의 유전 정보 분석 결과를 받을 수 있다. 만일 내가 유전적으로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비타민 D 섭취에 더욱 신경 쓰라는 식이다. 업체마다 다르지만 분석 결과를 앱으로 연동, 영양제를 추천해주거나 구입 가능한 링크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생긴 궁금증. 유전자 분석이 타고난 특성에만 해당한다면, 유전적 요인을 뛰어넘는 후천적 습관이나 현재의 건강 상태는 반영되지 않는 게 아닐까? “앱 사용 시 사전 동의를 거쳐 최근 10년간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가져오고, 질환 여부와 이미 섭취하고 있는 영양제를 등록하면 현재 상태를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죠.”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인 ‘캐즐’을 담당하는 롯데헬스케어 홍보팀 안창현 프로의 설명이다. 물론 개인의 건강은 타고난 유전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일란성 쌍둥이에게 서로 다른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한 보조 수단을 활용하는지 따져보는 것도 DTC 유전자 검사의 홍수 속 현명한 선택법이다.
타고난 유전자 능력을 인지하고, 적합한 검사로 부족한 영양소를 파악해 이를 영양제로 보충한다면 좀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소변으로 체크하는 영양소
집에서 소변 검사로 현재 건강 상태를 판단하는 방법도 있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로 알려진 유전체 분석 정밀의료 전문기업 EDGC(이원다이애그노믹스)는 소변 자가 검사 키트를 이용한 건강관리 서비스인 ‘유리웰’을 오픈했다. 리트머스 종이를 연상시키는 12가지 색상의 시험지가 부착된 검사 스틱에 소변을 묻히고 1분 뒤, 색이 변하면 사진을 찍어 전용 앱으로 판독하는 방식이다. 포도당, 단백질, 비타민 C, 나트륨, 칼슘을 포함한 12가지 항목은 스캔 즉시 분석되며, 결과에 따른 맞춤 영양제 역시 실시간으로 추천해준다.
“선천전 특성인 유전자 분석에서 나아가 현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갖추기 위해 소변 검사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나이와 연령, 장소와 시간에 관계 없이 언제 어디서든 쉽고 빠르게 추적검사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죠.” EDGC 마케팅기획팀 김승현 MD가 편이성과 시의성을 강조했다. 에디터의 검사 결과는 포도당과 단백질 항목에 빨간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신장 기능에 영향을 주어 일시적으로 포도당이나 단백질이 검출될 수 있다며, 혈당 조절과 스트레스 개선에 도움을 주는 스피룰리나를 추천해주었다. 포도당 검출의 원인이 검사 전 많은 당을 섭취했기 때문이거나, 단백뇨의 원인이 추위일 수도 있으므로, 아침 식사 전 소변의 중간 소변으로 검사하면 보다 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평소 스트레스 관리에 특화된 영양제를 섭취하지 않기에 건강 관리에 있어 유의미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능의학 검사를 통한 영양제 처방
내 몸의 영양 상태에 관한 전문가의 정밀한 분석을 받고 싶다면 기능의학 병원의 문을 두드려보길. 유전체 검사, 소변 유기산 검사, 혈액 검사, 모발 검사, 자율신경 검사 등 다양한 임상 검사 중 의료진과 상담을 통해 적합한 검사를 진행하며, 필요한 영양제나 식단, 운동법을 추천받는다. 향정신성의약품이나 마약류 검사에도 쓰이는 모발은 일종의 ‘배출구’로 우리 몸에 유해한 중금속을 얼마나 함유했는지, 결핍된 미네랄이 무엇인지 분석할 수 있다.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가 현재 상태를 측정한다면 모발은 약 3cm 길이로 3개월 동안 누적된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달까.
“특히 미세먼지, 매연 등 중금속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속해 있거나 만성피로, 스트레스, 두통, 면역력 저하가 고민이라면 통증 없이 비교적 간단하게 진행되는 모발 검사를 권합니다.” 웰케어클리닉 김경철 원장의 설명이다. 염색 이틀 차라 채취에 적합한 모발이 전무한 에디터가 진행한 차선책은 자율신경계 검사. 팔목, 발목에 금속 패드를 대고 3분간 심장박동 변이를 측정했다. “MBTI가 J이죠? 완벽주의 성향에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고, 잠도 잘 못 이룰 테고요.” 결과는 ‘교감신경 우세형’. 쉽게 말해 긴장형이라는 의미로 취재를 위해 신경을 집중한 결과일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런 타입에게 추천하는 영양제는 신경 안정제 역할을 하는 마그네슘이나 긴장을 낮추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테아닌, 신경 전달 물질로 작용하는 아미노산인 가바로 스트레스와 불안감 감소, 이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맹신은 금물
앞서 언급한 대로 DTC 유전자 검사는 타고난 형질이기 때문에 개인의 현재 상태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 유전자 검사 기관별로 분석한 유전자형의 개수와 종류, 해석 방법이 달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소변 자가 검사 역시 질병 여부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초 검사 방법으로 전문가의 확진 검사법이 아니다. 복용하는 의약품, 극단적인 날씨 등의 요인에 의해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이토록 다양한 검사를 모두 진행해 결과를 비교해보면 좋겠지만 우리에겐 그럴 만한 시간도, 비용도 넉넉지 않다.
“만성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환자에게 자율신경 검사를 하면 교감신경 우세형에, 혈액 검사 결과 역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은 경우를 보곤 해요. 이렇듯 한 사람에게서 여러 데이터를 모으면 증상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죠. 다양한 검사로 많은 데이터를 모을수록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핵심 데이터만으로도 전문가나 인공지능의 분석을 통해 개인의 건강 특성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어요.” 김경철 원장은 이러한 데이터들이 개인의 건강 증진을 자극,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타고난 유전자 능력을 인지하고, 적합한 검사로 부족한 영양소를 파악해 이를 영양제로 보충한다면 좀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좋겠거니 하는 근거 없는 믿음에 영양제 구입에 몇십만원씩 쓰기보다는 한 번의 정확한 진단 아래 필요한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는 것이 비용이나 영양 측면에서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 사진
- ANDREW BETTLES/TRUNK ARCHIVE(알약들), JONGWON PARK(흰색 알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