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발매한 신곡 ‘Gum’에는 제시의 ‘모든 맛’이 담겨 있다
그 맛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어 신맛이었다가, 이내 달큰한 향기를 풍기고, 때때론 매콤한 한 방을 날린다. “저보다 잘하는 사람은 나올 수 있지만 제시를 대체할 사람은 나올 수 없어요. 이거는 팩트예요.” 제시가 보여주는 비교 불가, 교환 불가의 맛이 이제 펼쳐진다.
<W KROEA> 오늘 촬영장에 도착해 신곡 ‘Gum’을 들어봤어요. 과연 강렬하네요. 제시 다워요. ‘껌’ 하면 우리가 속어로 쓸 때 보통 두 가지 경우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씹는다는 의미, 아니면 어떤 일이 식은 죽 먹기라는 의미. 제시의 껌은 뭘 뜻하나요?
제시 그저 듣는 분들이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면 될 것 같아요. 저 역시 처음 이 노래를 만들 때 껌이란 단어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거든요. 그저 재밌다는 느낌이었어요. 결국 이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제시한테는 되게 다양한 맛이 있다’가 아닐까 싶어요. 껌은 여러 가지 맛으로 출시되니까. 그중엔 신 것도, 단 것도, 달콤한 것도, 조금 싱거운 것도 있잖아요. 제시에겐 다양 한 색깔과 맛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사 람들은 항상 저에게서 ‘센 언니’만 봐요. 아니면 제시는 말이 많다거나···. ‘Gum’의 뮤직비디오에서도 갖가지 베리류 과일이 많이 등장해요. 제시의 다양한 모습, 다양한 맛을 한번 보라는 거죠.
‘센 언니’라는 일차원적 인상에 가려져 사람들은 보지 못한, ‘이런 제시는 진짜 모를걸?’ 하는 대표적인 모습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화면으로 보고 음악만 들어서는 어떤 사람도 온전히 평가할 수 없어요. 시끄럽고 버르장머리 없는 친구라고 절 보겠지만 알고 보면 저 되게 여려요. 눈물도 많고. 사실 그게 특별한 것은 아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면이겠죠. 그냥 사람들
이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센 언니’라는 말도 일부는 당연히 맞다고 봐요. 다만 말을 함부로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 센 게 아니라 ‘멘탈이 강한 언니’라는 의미라면 저 ‘센 언니’ 맞아요. 데뷔한 지 제가 18년 차예요. 어떻게 안 세겠어요? 열네 살 때부터 갖은 고생을 했는데(웃음). 여태까지 버티고 여기까지 온 제가 저는 자랑스러워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서 이 길을 걸어온 멘탈은, 이거는 진짜 타고나야 해요. 넘어지고 일어나고 넘어져도 또 일어나고···. 그 과정이 그냥 센 언니의 길이에요. 저는 과거를, 뒤를 보지 않아요. 앞만 보고 가요. 진짜 힘든 일이 많았지만 과거는 과거고 미래는 미래. 그렇게 생각하면요, 사람이 진짜 건강해져요. 그리고 모르는 분들이 많겠지만 저 기독교 신자예요. 기도 많이 합니다(웃음).
오, 몰랐던 면이에요. 예배도 열심히 다니나요?
어렸을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그러진 않아요. 저마다 자기만의 신앙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아이잖아요.
요즘 주로 하는 기도의 내용은 뭔가요?
트라우마에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그러니까 집, 부모님과 나의 건강에 대해 감사 기도를 많이 해요. 이런 것들이 계속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죠.
미국 뉴욕의 퀸즈 출신. 2004년에 한국에 왔죠?
그 무렵이에요. 우여곡절이 많아서 미국과 한국을 여러 번 오갔어요. 결론은, 음악이 저를 선택했다는 거예요. 다른 공부를 하려고 해도 음악이 저를 자꾸 잡아끌었어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은데 계속 여기로, 음악을 향해, 한국으로 오더라고요. 미국에서 뭔가를 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한국 사람이니까 여기서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랩도 되고 노래도 되잖아요. 래퍼로서 이미지가 강하지만 제시의 노래를 좋아하는 리스너도 많죠. 저 역시 제시의 보컬이 상당히 좋거든요. 만일 ‘평생 랩만 할 수 있다’, ‘평생 노래만 부를 수 있다’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너무 쉽죠. 노래를 하죠. 왜냐면, 저는 원래 가수였어요. 노래하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사람은 아무리 매력 있고 예쁘고 잘해도 한 가지 면만 갖고 있으면 안돼요. 다양한 걸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해보니 랩이 저에겐 자연스러웠어요.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힙합을 듣고 자라서인지 그냥 몸에 배 있더라고요. 삶의 방식도 힙합에 가까웠고요. 그래서 어렵지 않았던 거죠.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해 랩 배틀을 한 뒤부터 래퍼 제시의 이미지가 강해졌어요. 제가 랩을 그렇게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힙합도 한마디로 자신감이에요. 제가 뜬 이유가 바로 그 자신감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랩 위주로 곡을 내니까, 재미는 있는데 더는 도전이 아닌 것 같은 거예요. 다시 R&B로 돌아가려고 해요.
어쩐지 정규앨범의 냄새가 나는데요.
14곡 정도 담을 거니까 사실상 정규 1집이 될 수 있겠네요. 제가 최근 낸 곡들은 얼핏 보기에 랩이 위주인 것 같지만 결국엔 팝이에요.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었죠. 요즘에는 저의 성숙한 모습, 아픔과 같은 것들을 보여주면서 사
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곡을 만들어보고 있어요. 지금은 그편이 훨씬 더 좋아요. 그리고 랩에 비해 노래가 좀 더 도전할 게 많아서 재밌어요. 랩에는 단순히 음절 수가 많다면 노래에는 음색, 창법 등등 표현의 수단과 양 자체가 따지고 보면 무척 많거든요. 나이를 조금 먹고 제 경험을 쓰다 보니 기분이 조금 편해졌어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제시의 20년에 가까운 커리어를 압축해서 표현하는 앨범이 될 것 같군요.
그렇죠.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순위를 신경 쓰기보다는 팬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이 앨범을 선물하고 싶어요. 그 이후엔 투어를 돌 거예요. 해외도요. 제 팬 가운데 해외에 계신 분이 상당히 많거든요.
‘멘탈이 강하다, 자신감이 있다. 그런 면에서는 나 센 언니 맞다’고 했잖아요. 그럼 이런 ‘셈’은 선천적인 건가요, 후천적인 건가요. 겪어보고 살아보며 생긴 거겠죠?
근데 기본적으로 미국 친구들이 자신감이 넘쳐요. 저도 그렇게 살았는데 한국에 와보니까 그런 면 때문에 오히려 기가 좀 죽더라고요. 한국에선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에 사람들이 약간 두려워한다고 할까. 그래서 ‘자신감 있다는 게 뭐가 이상한 거지?’ 하고 오히려 주눅이 든 거죠. 하지만 저 자신이 무너지고 망가져도 저는 그냥 쭉 저 자신을 사랑했어요. 카키(Cocky·자만심에 찬)와 컨피던트(Confident·자신감 있는)가 있다면 저는 후자죠. 그냥 막무가내로 ‘내가 제일 잘나가’ 하는 태도가 아니라, 긍정적인 마인드로서의 자신감요.
그렇다면 24시간 중에서 제시가 ‘센 언니’로 보내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요?
거의 24시간. 저는 보통 밖에도 잘 안 나가고 술도 안 마셔요. 아니다. 정정할게요. 20시간으로. 그래도 사람이 6시간, 아니 적어도 4시간은 자야 하니까(웃음).
보통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요?
저 아무것도 안 해요. 일 안 할 때는 그냥 집에서 생각 많이, 말없이 멍하니 있어요. 문자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고 그냥 ‘콰이어트’.
그룹 ‘업타운’의 멤버, 솔로 가수 제시카 H.O, 럭키제이 등 여러 활동을 했는데 만약 한 번 더 이름이나 커리어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이름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요?
아뇨. 안 바꿔요. 다시 돌아갈 수 있어도 안 돌아가요. 그냥 제시가 제일 좋아요. 그게 제 이름이에요. 과거가 있었기에 제시가 있어요. 그런 경험을 다 지나와서 제시가 됐으니 절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그럼 제시 앞에 스스로 수식어를 붙인다면? 마이클 잭슨 앞에 붙는 ‘킹 오브팝 ’처럼요. 멋있게. ‘저스트 제시’. 누구와도 저를 비교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저보다 젊은 가수 중에 잘하는 사람이 나오겠죠. 그래도 아무나 제시를 흉내 낼 수는 없어요. 그저 저는 저예요. 이건 자신감이 아
니라 그냥 팩트예요.
최근 소속사를 피네이션에서 박재범이 이끄는 모어비전으로 옮겼죠. 가장 달라진 점은 뭐예요?
제가 회사를 다섯 번 옮겼거든요. 음, 피네이션에서는 어찌 보면 상업적으로 제일 잘 됐어요. 모어비전에서는 자유가 더 많이 주어지는 기분이에요. 전 회사에서는 아티스트도 임직원도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여기는 재범 씨부터 젊다 보니 전반적으로 동생들이 많아요. 그래서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끼는 듯해요.
곧 데뷔 20주년이 다가와요. 느낌이 어때요?
숫자는 숫자일 뿐이에요. 오랫동안 잘 안 풀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돌아보면 뭐 나쁘지 않아요.
열네 살 때, 그 시작점에서 제시의 롤모델은 누구였어요?
아기 때 말이죠? 그때는 서태지, 윤미래, UP를 많이 좋아했어요. 근데 진짜 제가 사랑에 빠졌던 건 S.E.S., 핑클이에요. 진짜로! 열살 때 처음 봤는데 그 청순한 모자를 쓰고는 ‘나를 믿어주길 바래~’ 하면서 춤을 추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시간이 지나 그건 저의 길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요(웃음).
그럼 바로 지금 제시의 롤모델은요?
우리 엄마요. 엄마가 오빠 둘과 저를 진짜 잘 키웠어요. 마인드가 아주 강해요. 저보다 더 센 언니예요. 지금도 저를 보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그래요. 옷을 벗는 것도 오히려 엄마가 더 부추길 정도예요. ‘방송 할 때 비욘세, 카디비처럼 옷 좀 이렇게 입어봐’ 하고 먼저 제안하니까요. 다만 욕까지는 좀 하지 말라고 했는데(웃음). 갈수록 부모님의 소중함을 알아가요. 어려서부터 혼자 세상과 부딪치면서 나 자신을 혼내고 가르쳐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세월이 흐르고 일에서 만족감을 느낄 만한 시점이 와도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일하고 돈을 벌지만 저는 진짜 외롭거든요. 만약 제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가졌을 거예요. 부모님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아기를 너무 낳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있어야 하고, 바쁘니까 남자친구를 못 만나고···. 이젠 엄마 아빠한테 제 행복을 다 주고 싶어요. 제가 가지 않는 파티, 좋은 구경, 이런 것들을 엄마한테 주고 싶어요. 우리 엄마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언젠가는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요.
언젠가 <제시의 쇼!터뷰>에 티파니가 나온 걸 봤어요. 제시도 어쩌면 당시 소녀시대 멤버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더라고요. 요즘 이런저런 걸그룹이 정말 인기 많잖아요. 혹시 ‘나도 걸그룹에 들어갔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 적 있어요? 왜, S.E.S.도 좋아했다면서요.
예전에는요. 근데 지금은 절대. 저는 곧 죽어도 솔로이고 제 파트를 다른 사람과 못 나눠요. 환불원정대 때 조금 해보긴 했는데, 근데, 이게 참 노래는 자기가 다 해야 해요(웃음). 저는 제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아이돌 했으면 오래 못 갔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럭키제이, 환불원정대뿐 아니라 언니쓰까지 했네요. 해봤는데, 결론은 한 곡을 두고 일부만 소화하고 빠지는 게 별로예요. 혼자 다 하다 목소리가 쉬거나 가버리는 한이 있어도 제 무대를 멋있게 혼자 쓰고 싶어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여성 솔로 가수의 대중적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듯해요.
그렇죠. 더군다나 저 같은 캐릭터는 없네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은 나올 수 있지만 제시를 대체할 사람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이냐면, 이런 거예요. 윤미래 언니가 있어요. 그런데 아무도 미래 언니를 대체하지는 못해요. 미래 언니는 미래 언니고, 제시는 제시고, 이영지는 이영지고. 다들 서로 너무 다른데 비교하거나 계보를 이야기하는 건 별로예요. 미국만 봐도 늘 니키 미나즈와 카디비를 비교하는데, 같은 랩이지만 장르와 스타일부터가 둘은 너무 달라요. 뭐, 인생이 그런 거려니 해야죠.
상업적 성취와 비평적 성취 가운데 뭐가 더 좋아요? 예를 들어 신곡을 냈는데 유튜브 1억 뷰, 아니면 평론가 별점 다섯 개 만점. 둘 중에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상관없어요. 당연히 잘되는 거는 원하죠. 하지만 리뷰, 별점, 그런 건 잘 안 봐요. 누구든 싫어하려면 싫어하고 좋아하려면 좋아하면 돼요.
계절이 바뀌는 시기입니다. 제시의 커리어를 1년으로 치환하자면, 계절로 치면 지금은 어떤 계절인가요.
겨울인 것 같아요. 조금은 무르팍이 아프고(웃음). 또 살짝 외롭고 춥네요.
청자들이 신곡 ‘Gum’을 어떻게 들어주길 바라나요?
최대한 즐겁게. 샤워하면서, 메이크업하면서, 운전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노래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진정 센 언니’ 제시의 2024년 목표와 계획은 뭔가요.
그냥. 건강하고 싶어요. 행복하고 싶어요. 그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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