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킴 | 원밀리언
크루라고 하기에는 일찍이 거대한 조직이 되어버린 원밀리언. 리아킴이 <스우파2>에 나타난 건 놀라우면서도 필연적인 일이다. 원밀리언은 지금처럼 한국에 춤과 안무 영상이 보편적인 콘텐츠가 되기 전에 그 파급력을 앞서 증명한 이름이고, 그런 원밀리언을 춤 세계의 큰 브랜드로 만든 이름이 바로 리아킴이니까. 첫 시즌 때 출연 요청을 고사했던 그녀는 당시 방송을 보면서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저기 나가야 해.’ 그리고 원밀리언은 지금까지 <스우파2>가 낳은 여러 댄스 영상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영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100명의 댄서가 모여 흑과 백이 매혹적으로 넘실거리는 움직임을 선사한 메가크루 미션. 그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조회수 900만 이상을 찍고야 말았다.
인터뷰 중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던 리아킴의 얼굴은 함께 출연한 팀원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돌연 화사해졌다. 원밀리언이 메가크루 미션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장면을 춤으로 묘사할 때의 그 느낌처럼 말이다. “가끔 놀라워요. ‘이런 아이들이 어떻게 나에게 와 있지?’ 싶어서. 원밀리언의 좋은 댄서들 중 어렵게 추린 구성인데, 어디 가면 다 센터로 돋보일 실력자들이죠. 그런데도 우리 여섯 명끼리의 밸런스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요.”
<스우파> 이후 춤과 저작권에 대한 화두가 조금씩 회자되고 있는 건 댄서들에게 의미 있는 성취일 것이다. “그 문제를 논의할 학회를 만들자는 판사님도 있었고, 국회의원 사무실이나 해외 기자들이 문의해 오기도 했어요.” 베테랑인 리아킴은 그 문제가 ‘해주세요’ 식으로 마냥 요구할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다만 대중의 관심이 생겼다는 그 변화를 체감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해내려 한다. 나아가 언젠가는 댄서들에게 오롯이 권리가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특별함을 가진 사람이 뜬다기보다, 오래 가는 사람에게 특별함이 있다고 봐요. 한 분야 일을 지속적으로 잘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오랜 세월 일하다 보면 누구나 흔들리는 순간이 있죠. 하지만 타인이나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포커스를 두는, 자기중심이 단단한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 같아요.” 세계 대회 수상 타이틀을 거머쥔 스트리트 댄서로, 안무가이자 디렉터로, 한국에서 가장 큰 댄스 스튜디오의 공동대표로 살아남은 리아킴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는 저에게 오는 기회들을 모두 감사하게 여겼어요. 1등 하고 싶다는 야망을 품은 시절도 물론 있었지만, 내가 처한 조건과 상황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어요. 그게 지금까지 저를 이끈 힘일 거예요.”
커스틴 | 잼 리퍼블릭
커스틴이 처음 춤추기 시작했을 때, 지켜보던 댄서들 중 누군가 말했다. “저 엉덩이를 어떻게 이겨.” 우선 그 ‘엉덩이’에 대해 말하자면, 커스틴이 할 수 있는 코멘트는 이렇다. “엄마한테 물려받았습니다(웃음).” <스우파2>에 전 시즌과 다른 공기를 만드는 큰 역할은 바로 뉴질랜드에서 온 잼 리퍼블릭이 맡았다. “한국과 뉴질랜드를 오가며 녹화해요. 다른 나라에서도 일정이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며칠 동안만 머물다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길 반복하죠.” 그 비행길보다 더 놀라운 건 <스우파2>를 앞두고 조직된 잼 리퍼블릭의 댄서 중 이번 기회에 처음 만난 사이도 있다는 점. 커스틴에게 오드리와 라트리스가 그렇다.
“링은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스윗해요. ‘로열패밀리’에서 함께 오랫동안 춤췄죠. 여섯 살 무렵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춤 배틀을 시작했어요. 그때 어린 엠마의 크루와 배틀을 한 적이 있고요.”
커스틴은 어린 시절 또래와 조금 다른 생활을 하며 자랐다.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할 때도, 방학 기간에도, 춤을 추거나 리허설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제가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대요(웃음). 언젠가부터 저는 굳게 믿었어요. 춤을 즐기는 마음과 열정, 또 노력하는 시간이 훗날 저를 분명 어딘가로 데려다줄 거라고요.”
커스틴이 안무가이자 댄서로 글로벌한 명성을 가진 패리스 고블의 크루, ‘로열패밀리’에서 활동한 시간은 리한나, 제니퍼 로페즈, 저스틴 비버 등과 한 무대에 섰다는 화려한 경력만 안겨준 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어떤지, 뭘 할 수 있고 뭘 더 연습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탐구하고 한계에 도전하는 법을 로열패밀리에서 다 배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션과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스우파2>의 구도 속에서 커스틴은 가장 여유로운 기운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여기에 문화와 정서의 차이가 작용하는 걸까? 혹은 타고난 성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대목에서 커스틴은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크루의 멤버로 댄서 경력을 시작하면서 늘 경쟁하고, 싸우고, 이겨야 하는 환경에 있었어요. 자칫 실수라도 하면 팀을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죠. 잼 리퍼블릭 팀원들에게는 그런 마인드셋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요. 이기지 못해도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 자체에서 누군가는 영감과 용기를 얻을 수도 있고요.” 커스틴은 학창 시절 소녀시대의 ‘I Got A Boy’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적이 있고(처음엔 K팝 곡인지도 몰랐다), 씨엘, 빅뱅과 공연하며 K팝 세계를 보다 가까이 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앞에는 여전히 더 탐험하고픈 거대한 세상이 있다. “한국의 쇼에서 외국팀이 우승하는 일이 생기긴 힘들지 않을까요?(웃음)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메이징 할 거예요! 무엇보다 우리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거기서 재미를 찾기 위해 여기 왔어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다른 댄서들을 존중하는 일이고요.”
바다 | 베베
<스우파2>가 그 첫 시즌만큼 흥과 멋을 자아낼 수 있을지 다소 심드렁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이들도 방송 2회쯤에 가서는 자세를 고쳐 잡았을 것 같다. 각 크루의 리더들이 메인 댄서 자리를 놓고 오디션을 벌인, 이른바 ‘계급 미션’. 이를테면 베베의 리더 바다와 잼 리퍼블릭의 리더 커스틴이 재차 겨루던 긴장된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이런 쇼를 지켜보는 이유다. 다이나믹 듀오와 이영지의 ‘Smoke’에 맞춰 파워풀하게 몸을 사용하는 바다식 안무는 금세 ‘스모크’ 챌린지 릴레이를 낳았다. 바다와 친분이 있는 NCT의 태용과 라이즈의 쇼타로를 비롯해 방탄소년단의 뷔와 정국이 동참한 이상, 그 챌린지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이상하지 않다.
“커스틴과 나란히 서서 춤추던 그때가 잘 기억나지도 않아요. 그만큼 제 내면에 있는 모든 걸 다 끌어올려 완전히 몰입했어요. 다시 보면 1차, 2차, 3차로 갈 때마다 제 춤이 달라져요. 점점 더 미쳐간 거죠.” 에스파의 ‘Next Level’에 등장하는, 곡의 시그너처가 된 동작이 그랬듯이 음악과 딱 맞아떨어지는 안무와 ‘큰 멋’을 보여주는 바다는 <스우파2>가 낳은 명백한 스타다. 10대 시절에도 인기가 많았는지 물었을 때 바다는 살짝 쑥스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몇몇 일화를 들려주었다. 춤꾼으로 인기 많은 학생이 오늘의 바다가 되기까지, 시작은 어느 운동회 날이었다. “선생님이 앞에 나가서 춤 좀 춰보라고 했어요. 운동회 점수를 합산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웃음). 전교생 앞에서 춤추고 환호받은 그때 재미도 맛도 알았죠.”
바다는 베베를 두고 ‘우리는 단단하게 가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베베는 바다에게 춤으로 만나 함께 성장하는 가족이다. ‘안무 선생님’의 자리가 더 익숙한 바다는, 익히 보여준 그 바른 면모대로 선생님처럼 말했다. “춤을 배우러 온 제자들에게 종종 말해요. ‘너의 장점 열 개를 써봐라, 그리고 단점은 딱 세 개만 써봐라.’ 춤을 잘 추겠다는 생각 이전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거. 이거 무시 못해요.” 긍정, 의지, 최선 같은 것들의 마법을 믿는 사람. 자신감 있고 단호하지만 공격적이진 않은 품성. 바다가 무슨 말을 할 때면 그게 그저 빈말은 아니라는 믿음이 생긴다. “언젠가는 제 콘서트를 열고 싶어요. 가수가 공연할 때 댄서들이 도와주는 것처럼, 댄서의 공연을 가수들이 도와주는 식의 협업도 해보고 싶고요. 저는 가수들의 콘서트에 많이 가봤어요. 그런 큰 공연장을 춤으로 채우고 싶은 건 오래전부터 품은 제 꿈이에요.”
놉 | 레이디바운스
놉이 이끄는 레이디바운스의 색깔은 메가크루 미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반신반인의 전사 ‘발킬리’를 콘셉트로 꾸린 무대에서 이들은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죽어라 추겠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했다. 힙합, 코레오, 아프로 장르가 하나의 무대에서 넘나들었고, 무엇보다 실제 전장의 한복판에 선 듯한 다섯 멤버의 사뭇 비장한 표정에서 이들이 얼마나 <스우파2>에 진심인지가 드러났다.
프로젝트성으로 결성한 몇몇 크루와 달리 레이디바운스는 학창 시절 댄스 아카데미에서 만난 멤버들이 오랜 시간 동고동락해온 15년 차 여성 힙합 크루다. 그 숫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팀을 이끄는 놉만이 오롯이 안다. “지난 15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이뤄왔어요. 20대 초반엔 저희 별명이 ‘상금 헌터’이기도 했어요. 모든 대회의 상을 쓸어간다 해서. 커리어도 대단하고 명성도 높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한 방’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저평가받고 있다는 자격지심도 있었고,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소수만 우리를 안다는 사실이 억울했죠. 우리가 이렇게 멋진 팀이라는 걸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알리고 싶었어요.”
15년이란 시간이 곧 실력으로, 팀워크로, 완벽한 합으로 증명된 순간은 동일한 K팝 곡을 두고 두 팀이 겨루는 3차 K팝 데스매치 미션 당시였다. 1차 미션에서 1승 8패로 최하위의 고배를 마신 뒤 3차 미션에서 딥앤댑을 상대로 저지 평가 3:0이란 압승을 거둔 순간은 놉에게 가장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정말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예요. 경연을 통틀어 가장 많이 운 순간이 1차 미션에서 참패한 때거든요. 우리를 보여줄 기회도 적었고, 몇 안 된 기회에서도 실력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으니까요. 멤버들과 ‘이러다 탈락행이다’라고 얘기하면서 이 갈고 준비한 무대가 3차 미션이에요. 그래서 그 결과가 더 값지게 다가왔어요.”
<스우파2>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놉은 자신이 프로그램에 이토록 ‘스며들’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저는 온오프가 잘 되는 사람이거든요. 방송은 방송, 나는 나. 이게 가능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멤버들과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어요. <스우파2>는 댄스 서바이벌이 아니라 인생 서바이벌이라고(웃음). 살면서 이렇게까지 뭔가에 처절하게 부딪치고 모든 감정의 최고치를 경험한 적은 처음이에요. 사실 전 배틀러 성향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란 태도로 살아온 사람인데 이번 기회로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했어요. 말 그대로 인생 공부를 제대로 한 기분이에요.” 열네 살 처음 춤추기 시작한 순간부터 놉이 계속해 춤이란 세계를 항해하온 이유는 ‘그저 재미있어서’다. ‘짧은 인생, 재미없는 걸 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나?’는 놉이란 사람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우리 재미있는 거 하자’예요. 결국 사는 것도, 버틸 수 있는 것도 결국 재미있는 순간들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춤출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아카넨 | 츠바킬
일본에서 온 츠바킬이 왜 그리 일찍 탈락했는지 아직도 의아하다. 츠바킬 멤버 6명이 다 함께 춤추는 모습을 볼 때면 늘 작은 체구들이 뿜어내는 옹골찬 힘이 느껴졌다. 씨엘의 ‘나쁜 기집애’ 뮤직비디오에서 활짝 웃으며 신나게 몸을 흔들던 댄스 신동 레나는 20대 중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잘 웃는 소녀 같았다. 그러다 돌연 야무진 얼굴과 춤을 보여주며 매번 다른 식으로 놀라게 했다. ‘미션에 따라 얼굴 표정이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팀.’ 아카넨은 츠바킬이 그런 모습이길 바랐고, 그들은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JYP 아티스트의 곡에 맞춰 창작 안무를 선보이는 K팝 데스 매치 미션에서 베베에게 패한 뒤, 울플러와의 탈락 배틀을 거쳐 가장 먼저 퇴장한 팀이 되었다. “탈락 팀을 가리는 배틀 미션에서는 유튜브에 영상 조회 수와 ‘좋아요’를 합산한 투표 수가 매우 중요했어요. 하지만 이 대중 투표는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종료되었죠. 츠바킬로서 당시엔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방영 중에 투표를 했다면 취하위가 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카넨은 SMAP, 보아, 미우라 다이치 등 일본에서 활동한 톱 아티스트들의 댄서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또 f(x) 루나의 솔로 데뷔곡 ‘Free Somebody’ 안무를 비롯해 수많은 아티스트의 안무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춤추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지 꽤 오래인 이 경력자는 배틀 대회에 나간 적도, 사이퍼로 프리스타일을 해본 적도 없는, 오직 안무가다. “진심을 다해 배틀을 하고, 그 모습이 방송으로도 나가는 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스우파2>를 하는 동안 아주 긴장 상태였어요.”
아카넨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의 10대 시절은 ‘그야말로 보아의 전성기’였다. 보아와 아무로 나미에의 백댄서가 되는 꿈을 키웠던 소녀는 이제 한국, 중국, 싱가포르, 인도, 호주, 스페인 등 세계 곳곳으로 댄서들을 위한 워크숍을 다닌다. 그사이 두 살짜리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처음으로 보아 뒤에서 춤추던 그 순간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아주 어릴 적부터 춤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댄서 인구도, 훌륭한 댄서도 많죠. 그럼에도 댄서의 입지가 그다지 높지는 않습니다. 저는 <스우파> 첫 시즌을 통해 알려진 댄서들이 여느 아티스트들처럼 미디어에서 활약하는 걸 봤어요. 일본 댄서의 입지를 높이고 여러 가지를 알리고자 이번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일본 톱 안무가로서의 책임감과 결연함마저 느껴지는 아카넨에겐 탈락이나 배틀 같은 말보다 ‘시작’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펑키와이 | 마네퀸
“춤도 춤인데 미모와 지조가 가장 중요하죠.(웃음)” 이렇게 말하는 펑키와이의 <스우파2> 첫 등장의 순간을 기억한다. 댄스 서바이벌 현장에 온몸의 실루엣을 여실히 드러내는 타이트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던 바로 그 순간. 펑키와이의 옷차림은 탄탄한 코어 근력을 이용해 우아한 선이 돋보이게 하는 와킹, 힐 코레오를 선보이는 그녀의 댄싱을 완벽히 대변하는 듯했다. “원래 힙합으로 춤을 시작했고 이후 와킹에 빠져 10년간 와킹 장르에 몰두했어요. 와킹에선 드레스업도 춤의 일부라고 볼 정도로 옷차림이 굉장히 중요하죠.”
댄스 서바이벌 애청자라면 펑키와이의 얼굴이 익숙할 테다. 춤 경연 프로그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엠넷 <댄싱9>, <스트릿 맨 파이터>의 ‘뮤즈 오브 스맨파’ 미션에 참여하며 일찌감치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녀는 언제든 <스우파2>에 참가해 자신의 춤을 맘껏 펼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댄서로서 굉장히 규칙적으로 살았어요. 교수로서 매일 아침 대학 수업을 하고, 낮엔 개인 레슨을 하고, 저녁엔 스튜디오 클래스를 진행하거나 엔터테인먼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직장인처럼 살았어요. 춤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은데 일만 하며 사는 제 삶에 도전과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어요. 그리고 너무 완벽한 타이밍에 <스우파2>에 출연하게 된 거죠.”
펑키와이가 이끄는 마네퀸은 방송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힌 크루였다. 펑키와이를 주축으로 ‘퓨전 콘셉트’ 등 세계적 배틀 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와킹 댄서 왁씨와 윤지, 현재 K팝 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핫한 안무가 레드릭 등 각자 위치에서 최고로 군림하는 이들이 한데 모여 마네퀸을 결성하게 됐다. 자신이 약자라 생각하는 댄서를 지목해 1 대 1 배틀을 펼치는 <스우파2>의 1차 미션 당시, 최다 승인 12승을 거두며 당당히 1등을 거머쥔 크루 울플러에게 유일한 1패를 안겨준 크루도 바로 마네퀸이다. 저마다의 기량과 개성이 특출하기에 크루원을 하나의 팀으로 수렴하는 것은 오로지 리더인 펑키와이의 몫이었는데, 치열했던 모든 경연의 순간마다 펑키와이의 리더십은 유독 빛이 났다.
“솔직히 나름 열심히 살았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스우파2>를 겪으면서 ‘아직도 배울 게 많구나’ 하고 느꼈어요.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속도와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단 걸 깨달았죠.” 춤밖에 잘할 수 있는 게 없어 춤을 시작했고, 춤을 추는 순간의 자신이 가장 예뻐서 오래도록 춤을 출 거라고 펑키와이는 말한다. “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예요. 보디와 자신감. 춤추는 사람의 준비물은 몸이잖아요. 자신이 추려는 춤에 맞는 근력과 체력을 갖추는 건 기본이죠. 그리고 퍼포먼스를 할 때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 있어? 틀리면 어때, 다시 하면 되지’란 태도가 중요해요. 자존감과 자신감이 있어야 보는 사람도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쇄골을 펴세요. 바른 자세를 유지하세요. 자존감은 쇄골에서 나옵니다.(웃음)”
미나명 | 딥앤댑
‘소싯적에 댄스 동아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미나명을 모를 리 없다.’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초창기 멤버이자 간판 댄서로 이름을 날린 미나명에겐 유독 ‘레전드’라 회자되는 코레오 영상이 많다. 2015년 비욘세의 ‘7/11’, 2016년 디플로의 ‘Doctor Pepper’, 2018년 스테플론 던의 ‘16 Shots’ 등 그녀가 등장해 커버한 이 영상들은 당시 코레오 키즈들 사이에서 어떤 대명사로 통했다. 흠잡을 곳 없는 간결한 선과 이를 뒷받침하는 파워풀한 에너지, 그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에 재능을 가진 이에게서 느껴지는 반짝임. 스무 살, 댄서로서 경력을 펼치자마자 미나명은 이미 신에서 자신의 존재를 견고히 다져갔다. “어린 나이에 서울에 상경하자마자 수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조그만 레슨부터 엔터테인먼트 트레이닝까지 여러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래서 당시엔 나이를 속이고 활동할 정도였어요. 댄서로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춤출 때 가장 너다워’인데, 어린 시절 춤을 시작한 이유도 거울에 비친 춤추는 내 모습이 좋아서였거든요. 중학교 1학년생의 집념이 당시의 저를 그 자리까지 이끈 듯해요.”
경연을 거치며 여덟 명의 리더 모두 성장통을 앓았지만 미나명은 그 과정을 유독 호되게 치렀다. “저는 늘 혼자 춤을 췄어요. 지금까지 팀을 만들지 않았던 이유도 고작 나라는 사람 하나가 누군가를 전부 이해하고 이끌 수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거든요. 딥앤댑을 결성하면서 처음 리더 자리에 앉았으니 당연히 헤맬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메가 크루 미션에서 공동 6위를 한 뒤 탈락 배틀을 준비할 때 처음으로 ‘재밌다’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 그 상태로 처음부터 경연을 치른다면 정말 다 씹어먹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웃음) 딥앤댑은 이제 거의 가족이에요. 팀을 만든 건 살면서 제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에요.”
인생의 벽을 혼자 넘어온 미나명은 <스우파2>로 그 길을 함께 걸어갈 동료를 만났고, 나아가 ‘다시’ 춤을 출 용기를 얻었다 말했다. 2019년 오래 몸담아온 원밀리언을 떠나 2022년 자신의 댄스 아카데미 ‘뮤트디오’를 설립하기까지는 그녀에게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지친 상태로 원밀리언을 나왔죠. 2년 정도 간간이 레슨만 하고 SNS도 안 해서 주변에서 ‘미나명 어디 갔냐’고들 했어요. 돌이켜보면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던 듯해요. 댄서에겐 몸이 전부인데 달라진 몸을 받아들이는 시기이자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난날의 오답 노트를 쓰는 시간이었죠.” 그리고 그즈음 그녀를 두드린 <스우파2> 출연 제안. “사실 은퇴까지 생각하던 시기였는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다시 춤출 용기를 얻었어요. 더 도전하고 싶다, 지금은 이 생각뿐이에요.” 미나명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비로소 평화로워지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자신과 화해하고 마침내 되찾은 용기, 미나명의 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할로 | 울플러
응원하는 팀이 내심 탈락 배틀에 오르길 기대하는 심리. 정통 힙합 크루 울플러에게 이런 마음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을 거다. 리더인 할로, 올해 40세로 최고령 참가자이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베이비슬릭 등 스트리트 댄스 신에서 잔뼈가 굵은 배틀러들이 한데 모여 결성한 크루가 바로 울플러임을 모두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울플러는 쟁쟁한 여덟 크루 가운데 방송에서 첫 눈도장을 가장 강력히 찍은 크루이기도 했다. 자신이 약자라 생각하는 댄서를 지목해 1 대 1 배틀을 펼치는 1차 미션에서 울플러는 12승 1패라는 압승을 거두며 가뿐히 1위를 차지했다. 이후 2차 계급 미션, 3차 K팝 데스 매치 미션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며 탈락행을 두고 딥앤댑, 츠바킬과 배틀을 펼쳐야 했지만, 오히려 춤 하나로 정면 승부해야 하는 기로에서 번번이 우승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했다.
“지난 10여 년간 배틀에 참가했는데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긴장되고 숨 막혀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생각해요. 연습실에서 100을 했다면 실전에선 잘 나와야 70이고, 그마저도 안 나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실력이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헛된 욕심을 버려야만 배틀에서 극도의 긴장과 떨림이 사라져요. 물론 1차 미션의 배틀 당시엔 역시나 긴장했지만요.(웃음) 배틀 무브를 마치고 팀원들에게 돌아갔을 때 다들 기쁨과 인정의 박수를 보내주는데, 마치 80억 지구인에게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어요. 역시 댄서는 댄서들에게 인정받는 게 가장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올드와 클래식의 차이를 모르는 것 같으니까 그냥 우리가 클래식을 보여주자.” <스우파2> 첫 방송에서 할로가 처음 대면하는 경쟁자들 앞에서 큰소리로 뱉은 말이다. “울플러를 결성할 당시 무엇보다 크루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싶었어요. 일반적으로 크루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목적과는 달랐거든요. 저는 힙합 댄스로 커머셜한 일을 해보고 싶었고, 10년 이상 신에서 함께해온 사람들을 모았어요. 사실 이 사람들을 이 목적으로 모은다는 게 쉽지는 않았죠. 다들 ‘곤조’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첫 번째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고, 이들을 데리고 어쩌면 커머셜의 꼭대기라 할 수 있는 <스우파2>에 꼭 참가하고 싶었어요. 결국 울플러는 여덟 참가 크루 안에 들었고, 저의 도전은 성공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방영한 <스우파2>의 에피소드를 통틀어 할로가 할로로서 가장 빛났을 때는 그의 입에서 “난 멋이 없는 건 안 해”란 말을 내뱉은 순간이었을 거다. 이 말은 어쩌면 할로란 댄서가 가진 철칙 아닐까. 이에 대해 할로가 말했다. “언젠가 멋이 없는 걸 시도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꽉 막힌 길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전전긍긍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 즐거운 기억과 긍정적 시도로 남고, 또 어떤 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과 경험으로 남더라고요. ‘멋’이나 ‘곤조’를 지킨다는 게 때로는 스스로를 방에 가둬두는 것처럼 답답하고 아쉬울 때가 있어요. 선택은 늘 도처에 깔려 있고 모두 다 제 몫이니, 적절하게 문을 열고 닫아 진짜 멋을 아는 댄서이자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