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이다. 그런데…
어휴, 관심과 논란이 무성했던 글로벌 인기 만화 <원피스> 실사 작품이 공개됐다. 해적왕을 꿈꾸는 루피와 동료들의 엄청난 모험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기대보다는 불안과 걱정이 더 거셌다. 앞서 넷플릭스가 제작한 <카우보이 비밥>을 비롯해 실사화 작품들의 성적과 평가가 그리 좋지 않은 탓이다. 사실 팬심을 울리고 달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그런 와중에 <원피스> 예고편은 온갖 혹평에 시달렸고 ‘댓글보는 게 더 재미있는’ 작품으로 찍힌 것처럼 보였다. 과연 진짜 그럴까? 폭망일까? 일단 여기에 대한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반전의 조짐은 있었다. 일주일 전 들려온 해외 리뷰가 칭찬 일색이었다. <원피스>를 미리 본 평론가들이 ‘팬 서비스 같은 작품’, ‘원작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깜짝 놀랄 것이다’ 등의 긍정적인 소견을 전했다. 공개 당일 <원피스>를 보며 그와 비슷한 수준의 감흥을 느낀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동의한다. <원피스>는 <카우보이 비밥>의 악몽을 재현하지 않았다. 실사로 구현된 캐릭터, 배경, 의상은 유치하지 않다. 일부 각색된 부분이 눈에 띄지만 서사적 완성도도 흡족할 만하다. 일단 지루하지 않다. 원작을 모르고 보더라도 끝까지 즐길 수 있을 거다. 팬심을 살짝 내려놓으면 만족도는 확 높아진다.
무엇보다 캐릭터의 높은 싱크로율을 언급하고 싶다. 애초에 ‘만화스러운’ 원작 작화와 똑 닮은 배우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멕시코 배우 이냐키 고도이는 특유의 말투, 표정, 애티튜드로 루피 대신 루피 같은 아이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원작의 루피보다 진지함을 몇 스푼 더 넣었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그보다 해적 사냥꾼 조로 역의 아라타 마켄유는 <원피스>의 최대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작과의 닮음새는 차치하고, 그가 연기한 조로는 다른 작품에 데려가 놓더라도 뾰족하게 눈에 띌 만큼 굉장히 매력적이다. 본래의 캐릭터 덕분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아라타 마켄유의 지분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또 제이콥 로메로 깁슨이 연기한 우솝도 이질감 없이 존재감을 뽐낸다. <원피스>는 앞서 연이어 실패한 실사화 작품들의 가장 큰 패착인 캐릭터 구현에 성공한 모양새다. 그런 점에서 절반의 승기를 잡고 출항했다.
앞으로 많은 리뷰에서 언급될 것 같은데 <원피스>에선 액션 장면이 흠이라면 흠이다. 아니, 심각한 문제다. 고무처럼 길게 늘어난 팔을 사방으로 날리는 장면 등 원작 만화를 최대한 재현해 액션을 설계했지만 속도감이나 박진감이 몹시 아쉽다. 칼을 휘두르는 조로나 발차기 달인인 상디의 실사 액션은 CG로 점철된 루피의 액션에 비해 어설퍼 보인다. 오히려 배속을 늘려서 보면 좀 더 낫다.
그렇다고 해서 CG가 대단히 출중한 것도 아니다. 총 8부작의 <원피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역대 최고인 약 2천억원을 들여 제작했다. 참고로 <오징어 게임> 시즌1의 총 제작비는 2백60억원 수준이다. 그 많은 제작비를 어디에 썼는지 궁금할 정도로 <원피스>의 CG는 하이 퀄리티가 아니다. 기상천외한 해적선들을 원작과 흡사하게 제작한 노력은 박수를 받을 만하지만 역대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금수저’ 작품 치고 시각적인 퀄리티가 부족하고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피스>는 준수하게 잘 나왔다. 제작 발표 직후 엄습한 불안과 불만, 공개 직전까지 쏟아진 온갖 부정적인 예측을 떠올리면 <원피스>는 성공한 실사화 작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 만화 원작이라는 운명적인 논란과 팬덤의 날카로운 시선을 떼어 놓고 보면 정주행 욕구도 불러 일으킬 만한 작품이다. 생각해 보면 끝까지 보고 싶지 않은 OTT 시리즈들이 수두룩하다. 한 마디로 <원피스>는 볼만하다. 그런데 꼭 봐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글쎄…
- 프리랜스 에디터
- 우영현